[서성원의 쾌변독설]

장면 1> 1905년 11월 17일, 을사늑약이 강박된 덕수궁 앞과 회의장 안은 완전무장한 일본군이 겹겹이 둘러싸고 있었다. 슬피 부르짖는(哀呼) 참정대신 한규설이 별실로 끌려 나가는 순간 이토 히로부미는 다른 대신들을 보며 “너무 어리광을 부리면 죽여 버리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한규설·민영기·이하영은 어떤 위협에도 굴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완용을 필두로 이지용·이근택·권중현·박제순의 을사오적은 매국노의 길을 걸었다.

장면 2> 2009년 11월 4일, 김대기 문체부 제2차관은 기자간담회를 열어 “태권도 총본산 국기원을 전과자들이 점령했다. ‘우울한 뉴스의 생산지’로 각인된 국기원이 급기야 '깡패 집단'으로 전락하는 지경까지 이르게 됐다"고 개탄하면서“국기원 문제에 정부가 개입하는 것을 자제하려 했으나 결국은 그대로 놔둬서는 안 되겠다고 판단했다”며 법 개정을 해서라도 국기원을 정상화시키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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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면 1>과 <장면 2>는 외교-민족-역사 등 모든 측면에서 아무런 연관이 없다. 시대적 상황과 정치 쟁점 등도 판이하게 다르다.

<장면 1>은 국가 존립과 주권행사를 둘러싼 국가와 국가, 민족과 민족 간의 매우 중요하고 큰 문제인 반면 <장면 2>는 한 국가의 문화 체육 울타리 안에서 일어난, 어떻게 보면 사사롭고 단편적인 문제일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장면 1>과 <정면 2>를 비교 대상에 올려놓고 가타부타 논하는 것 자체가 쓸데없는 짓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2개의 장면을 유심히 살펴보면, 곱씹어볼 공통점과 논쟁을 벌일만한 가치있는 이야깃거리가 숨어 있다.  우선 <장면 1>을 보자. 일본이 대한제국을 강압하여 을사늑약을 체결해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박탈하고 통감부를 설치해 내정(內政)을 장악했다. 이 조약으로 대한제국은 사실상 일본의 식민지로 접어들었다.

당시 고종황제는 이틀 동안 저항한 후 조약에 서명했지만 워싱턴에 대표를 보내 일본의 강박에 대해 맹렬히 이의를 제기했다. 하지만 약육강식의 국제질서는 대한제국의 손을 들어주지 않았다. 대한제국은 러시아와 일본 사이의 힘의 균형에서 연명하던 모래성 같은 왕국이었다. 

<장면 2>을 보자. 문체부는 태권도진흥법이 발효된 후 1년 6개월이 지나도록 국기원 법정법인화가 이뤄지지 않자 “현행 이사진들은 더 이상 태권도를 개인적 욕심의 대상으로 삼지 말고 정관 제정에 임하고, 새로운 정관에 의해 이사를 선정함으로써 국기원 정상화와 태권도계의 발전에 기여해 주기를 바란다”고 압박했다.

이 무렵, 문체부 핵심관계자는 이승완 국기원 이사장(원장) 직무권한대행에게 정관(안)을 빨리 통과시키라는 최후 통첩성 메시지를 보냈다. 이 대행은 문체부의 종용과 압박에 굳건히 버티면서도 태권도계의 입장을 어느 정도 반영하는 선에서 문체부의 정관(안)을 수용했다. 이 과정에서 그는 “문체부가 나를 국기원 파행의 주범으로 호도했다”고 공식 사과를 요구했다. 

다시 <장면 1>을 보자. 을사늑약에 체결되자 일본은 이 조약을 기초로 개항장과 13개의 주요 도시에 이사청과 11개의 도시에 지청(支廳)을 설치해 대한제국을 식민지화하는 기초를 마련했다.

을사조약에 대한 반대투쟁도 각지에서 활발히 벌어졌다. 민영환, 조병세, 이상철 등은 죽음으로 항거했고, 각지에서 의병이 봉기했다. 또 을사조약이 강압에 의한 무효임을 알리는 외교활동도 전개됐다. 하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1910년 대한제국은 일본의 식민지가 돼 36년간 통치를 받았다.

여기서 또 다시 <장면 2>를 보자. 문체부는 12일 국기원 이사회를 통과한 법정법인 정관(안)을 승인하지 않았다. 문체부의 입장이 반영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문체부는 “세계 태권도의 전당인 국기원은 몇몇 사람의 것이 아니다. 국내 및 세계의 존경을 받을 수 있는 최소한의 도덕적 기준을 마련하겠다. 법을 고쳐서라도 전과자가 얼씬거리지 못하는 '명품 단체'로 만들겠다”며 단호한 입장이다.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자 태권도계 곳곳에서 태권도의 자존심과 정체성을 세우기 위해 문체부와 맞서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국기원의 역사성과 상징성, 그리고 그동안 이룩한 사업 등을 무시당하면서 문체부의 하수기관으로 전락할 필요가 있느냐”며 분개하는 사람들도 있다.

특히 문체부 산하의 법정법인이 된다고 해도 국기원의 상징성과 자율권(행정-인사)은 보장받아야 한다는 여론이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해외 태권도 지도자들도 이에 가세해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여기서 꼭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문체부가 국기원 발전을 위한 구체적인 비전과 대안을 제시하지 않은 채 국기원 이사회를 범법집단으로 몰아세우면서 손쉽게 장악하려는 의도가 있다는 것이다. 

국기원과 태권도의 상징성과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고 일반적인 법정법인 논리에 국기원을 짜맞추려는 조짐이 여러 곳에서 나타나자태권도인들은 "문체부는 법정법인화를 통해 국기원이 발전하도록 지원과 협력을 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간섭과 통제를 하려고 한다"며 반발하고 있다.

이런 정국에서 문체부가 의도하는 대로 국기원이 법정법인화가 되면, 경쟁력이 있는 '명품단체'가 될 지 의구심이 든다. 도대체 무엇을 위한 법정법인화인지 종잡을 수가 없다.

어쨌든 현재 국기원 안팎은 혼란스럽다. 국기원 이사회가 문체부의 종용과 압박에 굴복해 문체부가 원하는 대로 정관(안)을 의결하면 문체부의 식민지와 진배없다는 말도 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국기원 이사(임원)들과 태권도 제도권 인사들은 국기원과 태권도를 위하는 척하면서도 속마음은 그렇지 않은 듯하다. 1905년 일본이 강압으로 을사늑약을 체결할 당시, 이쪽 저쪽 기웃거리며 어디에 몸 담을 것인가를 저울질한 위정자들처럼 국기원의 고위직을 탐내고 원장과 부원장을 하고 싶어 안달이 난 사람들이 여럿 있다. 

이들의 처세술을 무조건 비판할 수는 없다. 하지만 차기 국기원 이사장과 원장, 부원장, 사무총장을 꿈꾸는 사람들은 일정한 자격을 갖춰야 한다. 인물론도 중요하고 청사진도 중요하다. 국기원이 법정법인화가 된 후 국기원을 어떻게 혁신시키고 경쟁력이 있는 국제조직으로 발돋움시킬 것인가를 구상하지 않는 사람은 국기원 수뇌부가 될 자격이 없다.

문체부가 종용하고 있는 법정법인 정관(안)은 104년 전 일본이 강압한 을사늑약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하지만 국기원의 앞날이 걱정스러운 태권도인들은 여러 상황을 염두해 두고 한번쯤 되새겨볼만하지 않을까 싶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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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태권도, 태권도 갈등, 태권도진흥법

    2013.03.07 11:58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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