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새해 벽두, 최홍희는 <태권도신문>에 '태권도는 세계 평화에 기여해야 한다'는 요지의 신년사를 팩시밀리로 보내 왔다. 이 신년사에서 그는 이렇게 주장했다.
"이상적인 인류사회의 건설을 위해 만들어진 태권도는 나날이 성장하여 지금은 지구촌 어디에서나 수많은 태권도 수련생과 애호가들을 만날 수 있게 되었다. 태권도는 스포츠가 아니라 동양사상에 근거한 철학과 민족정신에 기초한 순수 무도이며 임기응변의 스포츠인 가라테 식 사이비 태권도는 이제 발을 들여 놓을 수가 없다.
태권도 24틀의 마지막 틀인 통일은 우리 민족의 간절한 염원인 통일을 상징하는 틀이다. 원컨대, 새 천년 새 세기를 맞아 반세기가 지나도록 아직도 분단되어 있는 조국의 통일을 기하기 위해 힘껏 노력해야 한다. 고귀한 무도인 태권도가 세계 평화와 복리에 기여할 수 있도록 적극 보급하는데 앞장 서 주기를 바란다."
국제태권도연맹(ITF)은 무도를 지향하고, 세계태권도연맹(WTF)은 스포츠를 지향한다는 게 최홍희의 기본적인 입장이었다.
"나는 태권도를 무도라고 생각하고 있지. 내가 만들 당시에도 이것은 단순히 상대를 이기는 것에 목적을 둔 스포츠가 아닌 이기는 것에 목적을 두고 있기 때문이야. 스포츠와 무도가 엄연히 다르다는 것은 (국제태권도연맹이 가입되어 있는) 세계무도연맹의 성격을 봐도 알 수 있고…." <월간 말誌 2000년 9월호 참조>를 보면 명확히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최홍희는 어떤 사람이고, 태권도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최근 들어 국제태권도연맹(ITF)를 창설하고 북한에 태권도를 보급한 최홍희를 다시 평가해야 한다는 여론이 일고 있다. 나영일 서울대 교수는 2006년 11월 국기원이 주최한 '태권도 역사-정신 연구 세미나'에서 "남한을 배척했다고 해서 최홍희가 사망한 지금까지도 백안시한다는 것은 조금 지나친 처사"라고 말했다.
북한의 조선태권도위원회는 2006년 1월, ITF 대한민국협회에 평양태권도행사와 관련된 초청장을 보내면서 최홍희를 '태권도 창시자'라고 지칭했다. 현재 ITF에 소속되어 있는 단체와 일부 태권도인들도 그가'태권도 창시자'라고 굳게 믿고 있다.
이들이 최홍희를 태권도 창시자라고 하는 근거는 △국제적 명성의 브리태니커 사전에 그가 태권도 창시자라고 명기돼 있고 △1955년에 '태권도'라는 명칭을 만들었으며 △1959년 태권도 최초로 '태권도교본'을 집필하는 등 독자적인 '창헌류' 틀을 만들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최홍희도 생전에 자신을 가리켜 '태권도 창시자'라며 강한 자긍심을 드러냈다.그러나 엄밀히 말해 그는 태권도 창시자가 아니다. 태권도라는 명칭을 만든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그가 태권도를 창시했다고 하는 근거는 그 어떤 사료에도 나와 있지 않다. 다만 그럴 것이라고 추정할 뿐이다.
'창시(創始)'는 '처음 시작함'을 뜻하는데, 그가 '태권도를 처음으로 시작했다'는 논리적 개연성은 없다. 오랫동안 그를 연구해온 이경명 태권도문화연구소장은 "태권도 창시자란 태권도를 처음 시작한 사람을 의미하는데, 우리들은 (태권도인들은) 그와 같은 의미에 동의하지 않을 듯싶다"며 "왜냐하면 최홍희가 오늘날 태권도를 처음 시작하고 보급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에 인식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그가 50년대 오도관을 만들어 군 장병들에게 태권도를 보급하고 '태권'이라는 말을 만들어 낼 당시에도 현대적 의미의 태권도는 엄연히 존재했다. 다만 그 당시에는 태권도라는 명칭이 없어 공수도 혹은 당수도가 통용되던 시기였을 뿐이다.
1945년 해방 이후 생긴 청도관과 무덕관, 송무관, 조선연무관(지도관), YMCA 권법부 등은 창설자들의 무술 이력이 어떻든 현대적 의미의 태권도를 파생시킨 태권도 모체관(母體館)이다. 이 모체관에서 무술을 수련한 사람들이 태권도의 도약과 발전을 이끌어냈고, 현재 태권도 원로로 인정받고 있다.
그가 태권도계에 전면으로 나타난 것은 1950년대 초반으로, 자신이 사령관으로 있던 군부대에서 태권도(당시 당수도)를 가르칠 때 활용한 인력은 대부분 해방 이후 청도관에서 당수도를 배운 사람들이었다. 당시만 해도 그는 일본 유학 시절 가라테를 배운 것을 제외하고는 이렇다 할 무력(武歷)이 없었다.
만약 그가 태권도 창시자라면, 1955년 청도관에서 손덕성 관장 명의로 명예 4단증을 받은 이유를 명쾌하게 해명할 수 있어야 한다. 태권도 창시자라고 하는 그가 현대적 의미의 태권도 모체관 중 대표 격인 청도관의 명예단증을 원해서 받았다는 주장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서울신문, 1959년 6월 16일자 청도관 손덕성 관장 성명서 참조>
그래도 최홍희가 태권도 창시자라고 한다면 객관적이고 명확한 역사적 사료가 있어야 하고, 논리적 일관성이 있는 주장이 뒤따라야 한다. 그래야 많은 사람들로부터 공감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지적에 대해 ITF 측은 "WTF에 소속되어 있는 기득권 태권도인들이 그에 대한 편견과 불신이 사라지지 않기 때문"이라며 이의를 제기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태권도라는 말이 통용되지 않던 시절에 태권도라는 명칭을 만들고, 자신의 철학과 성향에 맞게 태권도를 창작하고 변형한 인물에 지나지 않는다.
그가 만들었다는 '창헌류(태권도 틀)'도 여전히 논쟁의 대상이다. 1965년 창헌류를 소개한 교본에서 故 최 총재는 "태권도와 일본 가라테를 확연히 구분하는데 분수령 역할을 하는 중요한 문헌"이라고 자평했다. 그를 따르는 사람들도 WTF의 품새는 가라테의 아류라며 창헌류야 말로 한국적인 동작이라며 많은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그러나 수년간 그를 지켜봤던 림원섭 사범(스웨덴)은 이렇게 반박한다.
"최 총재의 회고록 『태권도와 나』라는 책 안에는 최 총재의 태권도 동작 사진이 15개 있다. 그중 중복된 동작 사진은 5개가 있어 실상은 10개의 동작 사진이 있는데, 5개 동작은 태권도 동작이 아니다. 가라테 동작을 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옆차기는 가라테 동작과 똑같다. 최 총재는 평소 수천 개의 태권도 동작이 있다고 하면서 자기 회고록에 15개 동작, 그것도 중복된 동작이 5개인데, 이는 사람을 교묘히 우롱하는 처사이다." <태권도신문 1998년 10월 기고문 참조>
최홍희는 태권도 발전에 이바지했다. 그러나 신처럼 우상화하고 맹목적으로 추앙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나열일 교수의 말처럼 그가'태권도'라는 이름을 새롭게 만들어낸 공(功)은 크지만 그렇다고 태권도를 그가 홀로 창시했다고 하는 것은 지나치다.
쇼를 해라
태권도란 말이 없던시절에 당수도 공수도라 불리던 가라데스타일은 태권도가 아니라
비록 그것들을 한번에 묶어 태권도란 말을 만들었지만..
과연 그러지 않았다면 태권도가 존재했을까?
가라데가 되었든 권법이 되었든간에 태권도란 이름안에 하나로 묶어서 시작을 했고..
오늘날의 이르기까지 ITF,WTF는 가라데와 다르게 진화되어왔다
그것만으로 최홍희는 창시자라는 말을 듣고도 남는다
주짓수가 유도에서 왔지만..오늘날에는 주짓수가 유도보다 더 강한 무술로 인식되어진다
무엇이 문제인가?
태권도가 가라테나 다른 무술의 영향이 전혀 없다고는 할 수 없죠. 님의 의견처럼 태권도는 해방 이후 태권도란 명칭으로 급속한 발전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까지 그 역사와 정신에 대한 논쟁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관련 기관, 학계, 전문가 연구모임 등에서 하루빨리 다수가 공감하고 인정할 수 있도록 정립해야 한다고 봅니다.
무술에 관심이 좀 있다 싶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생각해보았을 질문으로 '세상에서 가장 강한 무술이 무엇이냐'는 것이 있다.
그렇다. 세상에서 가장 강한 무술이 무엇일까? 과연 그런 것이 있기는 할까? 기존에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무술들 중에서 꼽는다면 어떤 무술이 가장 강할까?
태권도를 하는 사람들은 태권도가, 유도를 하는 사람들은 유도가, 복싱을 하는 사람들은 복싱이 가장 강하다고 말들을 한다. 물론 누구의 말도 그대로 믿어줄 수는 없다. 그렇다면 붙어보면 될 것 아닌가? 그래서 생긴 것이 바로 현대 종합격투기의 원조이자 메이저리그인 UFC(Ultimate Fighting Championship)다. 1993년 미국에서 시작됐다.
UFC의 등장은 가히 '무술사의 혁명'이라고 부를 만 하다. 이제 꿈은 현실이 되었다. '내가 이기네, 네가 이기네'하고 말로만 떠들던 무술들이 8각의 철망 안으로 들어왔다. 유도, 가라테, 레슬링, 무에타이 등 각 무술들의 내로라하는 고수들이 자신은 물론이고 자신이 수련해온 무술의 명예를 걸고 승부를 겨뤘다. 초창기의 UFC는 현재와 같은 종합(綜合)격투기가 아닌 이종(異種)격투기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어떤 면에서는 이 때가 더 재미있었는지 모른다.
어쨌건 대회가 이어질 수록 승부가 가려졌다. 최강의 무술이 등장한 것이다. 그런데 '주짓수(柔術)'란다. 주짓수? 주짓수가 뭔가? 이때만 해도 무술전문가들에게 조차 생소했던 주짓수를 기반으로 한 호이스 그레이시(브라질)라는 선수가 유도, 레슬링, 가라테, 무에타이의 고수들을 판판이 꺾어 버리니, 세상에 놀래도 이만 저만 놀랠 일이 아니었다. 그 이후, 주짓수는 전세계적인 붐을 일으켰고 현대 종합격투기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무술로 여전히 인정받고 있다.
UFC70 가브리엘 곤자가 vs 미르
현재의 UFC는 이미 이종격투기가 아닌 종합격투기가 되어, 하나의 무술만 가지고 경기에 출전하는 선수는 찾아볼 수가 없다.
최소한 두세 가지의 주특기를 가지고 있어야 비로소 대회에 나올 만 하다고 하겠다. 내가 잘 하지는 못해도 당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다른 무술을 배우는 것은 상식이 되었다.
이종격투기가 점차 종합격투기로 발전하면서, 최강의 무술로 잠시 군림했던 주짓수는 권좌에서 물러났다. 여전히 영향력을 가지고 있긴 하지만 말이다.
이제 종합격투기의 팬들은 '가장 강한 무술이 무엇이냐'는 것 보다는 '가장 강한 자가 누구인가'라는 것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므로 종합격투기의 시대가 되어버린 지금, 하나의 무술만을 강조하는 것은 시대에 뒤떨어졌다고도 볼 수 있다.
물론 자신의 근본이 된 무술을 강조하며 그 무술의 아이콘처럼 자리잡은 선수도 있기는 하다. 추성훈(유도)이 그렇고, 현 UFC 라이트 헤비급 챔피언 료토 마치다(가라테)가 그렇고, 세계 최강이라고 불리는 예멜리야넨코 표도르(삼보)도 이 범주에 포함시킬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표도르가 최강의 선수라고 인정받는다고 해서, 삼보가 최강의 무술로 평가받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해둘 필요가 있다. 삼보가 훌륭한 무술이긴 하지만,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는 것은 왜 삼보는 강한가가 아니라, 왜 표도르는 강한가이다. 절권도를 수련한다고 해서 누구나 이소룡처럼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이제 다들 알고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 최강의 무술을 꼽는다면, 어떤 순서가 될까? 종합격투기에서의 성적을 참고로 해서 말한다면, 주짓수, 무에타이, 레슬링 정도의 순서가 아닐까? 물론 순전히 개인적인 견해임을 전제로 해서 하는 말이다.
그렇다면 생각을 한번 뒤집어 보자. 세상에서 가장 강한 무술이 아니라, 가장 약한 무술을 꼽는다면 어떨까?
전 세계의 수 많은 무술들을 강하다는 기준을 놓고 일렬로 세울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기는 하지만, 흔히 '저 무술은 무술로서의 가치가 없다' 거나, '짜고 치는 것'이라거나 '형태에만 치우쳐 무술보다는 무용에 가깝다'는 혹평을 듣는 무술들이 없는 것은 아니다.
대표적인 예로 들 수 있는 것이 중국무술 중에서는 태극권(太極拳), 일본무술 중에서는 아이키도(合氣道)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유감스럽지만 한국의 국기라는 태권도도 약하다는 평을 받는 무술 중 하나다.
우선 태극권은 무술이라기보다는 체조에 가깝다는 평을 받는 경우가 많다. 중국 정부에서 정책적으로 보급한 간화24식 태극권을 보면, 그런 평가도 무리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격투의 상황을 전제로 상대를 제압하거나 호신을 목적으로 한다기 보다는 건강의 차원에서 남녀노소 누구나가 쉽게 할 수 있는 형태를 띄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태극권도 종류가 많아서 곡선적이고 부드러운 양식태극권이 있는 반면에 직선적이고 강해보이는 진식태극권도 있다.
게다가 태극권의 고수가 보여줄 수 있다는 발경(發勁)은 그야말로 무술의 최고봉이 다다를 수 있는 경지라고 말해지기도 한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종합격투기의 역사에서 태극권을 주력 무술로 출전한 선수는 전무하며 앞으로도 기대하기는 어렵다. 흔히 하는 말로, 싸움이나 격투를 잘하기 위해 태극권을 배우는 사람은 찾기 어렵다는 것이다.
아이키도에 대한 평가도 비슷하다. 아이키도의 경우에도 유파에 따라 차이를 보이기도 하지만, 일반인들에게 보여지는 아이키도는 두 사람이 손을 잡고 마치 춤을 추는 것 같기도 하고, 공격과 방어가 시연되더라도 미리 짜놓은 각본에 따라 넘어가주는 것처럼 보이는 경우가 많다. 게다가 아이키도는 한국의 합기도처럼 주먹이나 발차기 등의 타격기술을 수련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도무지 실전에서는 '먹힐 것' 같지 않아 보인다.
2007년 소림사에 방문했을 당시 소림무술의 진수를 엿볼 수 있었다.
태극권의 발경처럼 아이키도에서는 '합기'라는 신비한 기술을 이야기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 합기라는 것을 실제로 경험해봤다고 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고, 또 합기를 할 수 있다고 선전했다가 실전 대련에서 망신을 당한 경우도 실제로 있었다. 합기를 한다는 것은 장풍을 날린다는 것처럼 허황되게 들리는 것이 사실이다.
태권도의 경우에도 다른 무술들과의 대결에서 적어도 공식적인 대회에서만큼은 성적이 저조하다. 성적으로 치면 낙제를 면치 못했다고나 할까? 그래서 현재의 태권도가 경기에 치중하다보니 일격필살의 정신은 사라지고 상대를 맞춰 점수따는 것에 급급하다는 비판은 어느 정도 상식처럼 받아들여지고 있기도 하다.
그러므로 가장 약한 무술을 꼽는다면, 태극권, 아이키도, 태권도 정도의 순서가 되지 않을까? 물론 이것도 개인적인 견해임을 전제로 해서 하는 것이다. 해당 무술을 열심히 수련하는 분들을 허탈하게 만들 의도는 없으니 오해는 없으시기 바란다.
21세기 현대에 무술을 수련한다는 것의 의미가 단지 '싸움을 잘하기 위해서'인 것은 아닐 터 이므로 취미로, 운동으로 한다면 남들의 평가는 중요한 것이 아닐 것이다. 물론 그래도 명색이 무술인데, 약하다는 평가를 받 으면 유쾌하지는 않겠지만.
무도는 스포츠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이종격투기 종합격투기는 이미 무도가 아니죠. 무도의 진정한 의미는 육체단련을 통한 자기수련이지 누구에게 강함을 증명하기 위함도 누구를 이기기위함도 누구와 싸우기위함도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궁금해야 할것은 과연 이종격투기 선수들이 정말 그무도의 진정한 고수들인가를 의심해 봐야합니다.
무도의 진정한 고수들은 누군가와 겨루는것에 관심이 없기 때문에 강함을 과시하는것을 금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강함을 과시하고자 하는 사람을 수련이 덜된사람으로 치부하기도 하지요.
스스로를 단련하는 무도가 어느새 남의 눈요깃거리나 되어 어떤 무술이 강한가라는 쓸데없는 생각에 휩쓸려야 하다니 씁슬하군요.. 남을 이기는 자가 강한게 아니라 자신을 이기는 자가 강한겁니다.
이종격투기에 나오지 않는 진정한 고수 한사람이라도 만난다면 이런 것들 참부질없는 생각이구나 라고 생각할겁니다.
단기간 태권도를 배워본 입장에서 말씀드리면 태권도 자체는 강한무술이라 생각합니다..단지 현재 너무 스포츠화 되고 경기에 치중하다보니 그렇게 된거라 봅니다...스포츠라고 해도 보통 사람보다는 또는 투기를 수련하지 않은 사람에 비해서는 어느정도 격투능력을 가졌다고 봅니다.태권도 품새를 보면 하나하나가 상대를 제압하기 위한 의미가 들어있고 요즘은 그 품새가 그저 형식적인 동작으로만 치부되는거 같기도 합니다. 결정적으로 보급에만 신경쓰니 무술로서 태권도의 면모는 퇴화 된거라 봅니다. 태권도가 진정으로 무술이라는것을 증명하기 위해선 여타 대회에서 강함을 입증하는것도 필요 합니다. 단지 개인 수련만 하면서 심신운운 하는건 선비노름일 뿐이라 생각합니다. 올림픽에서는 올림픽에 맞게...격투기 무대에서는 격투기 무대에 맞게 수련을해야 합당하다고 봅니다..꼭 태권도 뿐만 아니라 열거한 무술들도 마찬가지라 봅니다.
글쎄요...태권도 자체가 약하다는 말에도 설득력이 있는 듯 합니다. 예전에 월간잡지 신동아에 주먹으로 이름을 날렸던 조창조씨를 인터뷰한 기사가 나왔는데 거기서도 태권도 발차기는 화려하기만 했지 실전엔 쓰지 못한다라는 내용을 본 적이 있습니다. 태권도가 너무 경기화되면서 무술로써의 본질을 잃은 것은 사실이라고 봅니다...
그러나 희망적인 것은, 실전적이라고 평가받는 극진가라데와 태권도를 비교해봐도 두 무술 사이에는 기술적인 차이가 별로 없다는 데 있습니다.
이는 바꿔 말하면, 태권도 자체가 약한 무술이라기보다는 수련과정이 실전이 아닌 경기 위주로 촛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이란 말이죠.....만약에 태권도를 가지고 무에타이처럼 대련을 시키면서 훈련시킨다면 (얼굴펀치 ok, 팔꿈치도 ok, 다리공격도 ok 등등) 아마도 최소한 입식경기에서는 좋은 성적을 낼 것으로 예상합니다.....종합이야 타격기만으로 되는게 아니니 논외로 치고요...
지금같이 얼굴에 펀치공격도 못하고, 둘이서 통통 뛰다가 발차기나 한두번 내지르는 식으로 훈련 및 대련을 해서는 더 실전적으로 수련하는 다른 무술에게 통할리가 없자요...
태권도를 가르치기 위해 이집트에 온지 벌써 1년이 훌쩍 지났다. 초기 낯선 문화를 적응하기 위해 거리 곳곳을 누볐다. 현지인들과 직접 부딪치면서 문화를 체험하기 위해서다. 이 때 한 슈퍼마켓을 지나다가 내 눈을 사로잡는 상품이 하나 있었다.
영어로 'KARATE(가라테)'라고 적혀있는 과자 박스였다. 설마하고 가까이 다가가 봤다. 내가 잘못 본 게 아니었다. 실제 과자봉지에는 가라테 도복을 입은 어린아이가 이단 옆차기를 하고 있는 사진까지 있었다. 가라테가 늘 태권도와 비교되는 무술인 만큼 신선한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이후 아스완 태권도 협회장에게 과자 이야기를 했다. 그랬더니 협회장은 그 과자는 오래 전부터 인기리에 판매되고 있다고 했다. 이집트에 한 제과업체와 가라테태권도협회가 협의를 맺고 ‘가라테’라는 과자를 생산해 판매되고 있었다.
양측은 각각 가라테를 홍보하고, 판매를 극대화하는 소위 윈윈전략으로 이 특별한 과자를 생산했다. 가라테 수련생들은 자연스럽게 그 과자를 사 먹을 것이고, 미 수련생들은 그 과자를 즐겨 먹음으로서 가라테를 보다 친숙하게 생각하며 수련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이집트에 이 특별한 과자가 얼마만큼 잘 판매되는지는 알 수 없다. 맛은 특별한 게 없다. 시중에 판매되는 일반 과자들과 비슷하다. 가격은 우리나라 돈으로 200원이 조금 넘는다. 그런데 주 고객인 어린 아이들에게 인기 있는 상품이다. 웬만한 슈퍼마켓에는 이 과자가 판매되고, 길거리에서 이 과자를 먹고 다니는 아이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품이 우리나라에서도 가능할지는 모르겠다. 가능하다면 여러 무술, 스포츠 종목 명을 이름을 단 과자 등을 만들어 판매 수익에 일부를 그 종목의 진흥기금으로 사용하면 좋을 듯하다.
한편, 이집트태권도협회도 여러 제과업체와 태권도 과자 생산을 위한 협의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by 한혜진의 태권도 세상 이야기 - 이집트 in 태권도]
가라테(空手道)는, 태권도의 입장에서 볼 때 ‘만지면 만질수록 덧나는 상처’ 같은 것일지 모른다. 태권도의 발생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 몇몇 원로들(이원국, 노병직, 최홍희)이 일본에서 가라테를 수련했으며, 이를 토대로 근대 태권도가 만들어지고 발전해왔기 때문이다.
이러한 태권도 초창기의 역사를 어떻게 해석하느냐는 논자들에 따라 견해가 다르지만, 적어도 이 사실만큼은 부정하는 경우가 드물다.
이원국, 노병직, 최홍희 등이 가라테를 배운 스승이 바로 일본 ‘근대 가라테의 창시자’라고 불리는 후나고시 기친(船越義珍, 1868~1957)이다. 오끼나와 사람인 후나고시는 ‘당수(唐手)’라고 표기되던 오끼나와의 전통무술 가라테를 일본 본토에 소개했고, 이 과정에서 ‘당수(唐手)’는 같은 발음인 ‘공수(空手)’로 변형된다.
후나고시가 일본에 자신의 가라테 도장인 쇼토칸(松濤館)을 세운 것이 1936년. 노병직, 이원국 등은 이 무렵부터 쇼토칸에서 수련을 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후 오끼나와의 당수가 1940년, 50년대를 지나면서 ‘일본식 가라테’로 변화 발전했다고 해석한다면, 태권도는 ‘일본식 공수’보다는 ‘오끼나와식 당수’의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노병직, 이원국 등이 오끼나와의 가라테와 일본의 가라테를 연결하는 후나고시의 직제자들이기 때문이다. 노병직의 송무관(松武館)과 이원국의 청도관(靑濤館)이 쇼토칸에서 각각 ‘松’자와 ‘濤’자를 따온 것은 잘 알려져있는 사실이다.
과거의 전통주의식 역사서술에서 태권도가 가라테의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을 드러내지 않았던 것은 36년간 일본의 식민지배를 받았던 한국의 피해의식이 배경에 깔려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
왜색이라는 이름으로 금기시되던 일본문화 자체가 1990년대 후반에 들어서야 본격적으로 개방되기 시작한 점을 고려한다면,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현재 태권도의 형태와 가장 가까운 모습을 한 타무술은 역시 가라테다. 도복, 단급체계, 기본 훈련, 품새 등등이 매우 흡사하다. 실제로 태권도는 태권도가 아직 덜 알려지던 시절 ‘코리안 가라테’라는 이름으로 미국대륙과 유럽에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고, 가라테를 먼저 수련한 현지인들을 태권도로 전향시키면서 조직을 확장했다. 태권도가 세계화되었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실질적인 수련인구만을 놓고 본다면, 태권도가 가라테를 앞질렀다고 자신할 수는 없는 현실이다.
그런 면에서 태권도를 정말 사랑하고 연구하고자하는 태권도인들이라면, 가라테에 대한 연구를 게을리 해서는 안될 것이다. ‘태권도의 기본자세와 가라테의 기본자세는 어떤 점에서 비슷하고 어떤 점에서 다른가’, ‘아직도 태권도 품새에 남아있는 가라테의 영향은 무엇이고, 이를 극복해야 한다면 그 방안은 무엇인가.’ 등등.
일본에서는 어쩌면 이미 태권도에 대한 상세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을지 모른다. 자신의 문화에 비해 나은 것이 있다면 연구하기 좋아하는 일본이기에 ‘가라테의 영향을 받은 태권도가 어떻게 가라테 보다도 먼저 올림픽 종목이 되었고, 세계적으로 뿌리를 내리고 있는가’를 궁금해하고 연구를 하고 있을지 모른다는 것이다.
태권도인들은 가라테에 대해서 지금처럼 몰라도 되는 것일까? 쇼토칸을 비롯해, 고주류니, 시토류니 하는 주류 유파들에서부터 한국인 최영의가 창시한 극진가라테에 이르기까지 가라테에서 태권도인들이 참고하고 배울만한 요소는 적지 않을 것이다.
극일(克日)은 지일(知日)에서 시작된다는 말이 있다. 태권도가 세계적인 무술로서 가라테보다 한수 위라고 자신하기 위해서는 가라테를 보다 더 깊이있게 연구해야 할 것이다. [by 박성진 기자의 무림통신]
얼마 전부터 태권도 원류가 무엇인지에 대한 포스팅도 꽤 있었고 같은 테마의 게시물도 심심치 않게 있었다. 태권도가 우리나라의 국기이며 올림픽 종목이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고 신체 건강한 대한민국 남성이라면 누구나 군대에서 원하던 원치 않던 태권도를 할 수밖에 없는 것이 사실이다. 여기에 일제시대에 들어온 가라테가 태권도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으며 가라테와 의복에서 초기 품형까지 흡사한 부분이 한두 군데가 아닌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명칭의 흡..
사실 태권도가 가라테와 유사한 점이 있다고 생각은 했지만, 그 원류가 오키나와 당수인 줄은 몰랐네요...
결국은 어떻게 발전시켜나가는가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요즘 태권도 수련인구는 계속 줄어들고 있고, 성인 수련인구는 거의 없다시피 하는데 올림픽 정식 종목이라고 태권도가 가라테보다 낫다고 이야기 하기 보다 끊임없는 연구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또한 만화나 드라마, 영화 같은 2차매체들의 소품으로 적극적으로 활용되면서 일반인들에게 더욱 다가가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마루치 아라치를 제외하고 태권도를 중심으로 전개되던 이야기가 얼마나 있었는가 궁금합니다..
일본의 경우는 가라테(뿐만아니라 여러가지 전통무술들)에 대한 만화들이 많이 나와 있고, 각종 스타일로 변형되어서 그 원류를 설명함은 물론 전체적으로 그 무술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는데 많은 역할을 하고 있는데요... 우리나라는 그런 문화산업 부분에서 좀 약한 것 같습니다...^^
태권도가 지속적인 발전을 위해서는 가라테를 비롯한 타무술에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봅니다. 태권도가 가지지 못한 것들이 있기 때문이죠. 문화산업 적인 측면에서도 태권도계와 문화계에 상호노력이 필요하는데 공감합니다. 더불어 수련층 다양활르 위한 프로그램 개발에도 많은 노력이 필요하죠. 깊은 관심 감사드립니다.
태권도의 역사적 논쟁은 어제오늘 일이 아님이 분명합니다. 이를 위해 태권도계에서도 하루 빨리 역사 및 정신에 대한 재정립리 속히 이뤄져야 하겠죠. 태권도계에 잇따른 비리와 문제들이 많은 요즘입니다. 태권도를 이끄는 세대가 교체되는 과정과 시대 흐림인 탓이죠. 보다 나은 태권도가 되기 위해 현명한 사태 수습과 해결 방안이 모색돼 하루빨리 정상화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 입니다.
올림픽에 채택된 이유?............뇌물과 아부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런 얘기 하지 마세요.사실 이면 챙피 하잖아요.그런 일이 한둘이 아닌데 굳이 밝힐 필요 까지야 있겠어요.나라 꼴을 보면 알 수 있다고 몰아 부치는 사람도 있던데 그러지 마세요.도적의 무리의 대장은 도적이랍니다.
우리나라의 자랑스러운 문화유산이자 국기인 태권도를 지나치게 비하할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이유가 어쩌든간에 태권도는 분명한 가치가 있기 때문에 정식적으로 올림픽 정식종목에 채택돼 세계인들의 사랑을 받고 있으니까요. 내부간의 갈등과 기술적인 문제점은 있으나 속히 해결되리라 믿습니다. 따라서 님도 태권도에 따뜻한 애정을 가져주셨으면 합니다.
이집트에 온 후 태권도와 함께 타 무술인 가라테를 새롭게 보게 됐다. 소싯적부터 태권도만 하고 태권도만 보다보니 다른 무술, 다른 스포츠에 눈을 돌릴 여유가 없었다. 어쩌면 관심 분야만 보는 성미 탓일 수도 있다.
그 중 태권도와 가장 유사한 무술인 가라테에 관심은 있었으나 애써 눈을 돌리지 않았다. 태권도와 가장 유사한 무술로 여러 부분에서 비교되는 무술이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오히려 더 알아야할 무술인데 말이다. 그러나 요즘 가라테에 무척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 계기는 가라테 수련생들을 지도하면서 부터다.
내가 아스완(이집트)에 온 후로 태권도 수련생들이 많이 늘었다. 그 중 가라테를 수련하다 태권도로 전향한 수련생들이 많다(100여명 정도 됨). 지도자들도 태권도로 많이 전향하고 있는 추세다. 나름 아스완에서 태권도가 대세라고 할까. ^^ 여하튼 기분 좋은 일이다. 그렇다고 가라테가 태권도 보다 못한 무술이라고 단정 지을 수 없다.
기존에 가라테를 수련한 경험했던 수련생들을 지도하면 가끔 놀라게 된다. 이제 막 태권도를 시작했는데 몇 개월 수련한 것처럼 잘하기 때문이다. 한 번 가르치면 곧 잘 따라온다. 태권도와 가라테와 기술 구성과 수련 형태가 비슷하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다.
이집트 아이들은 말이 참 많다. 장난도 심하다. 인성 및 예절 교육을 시키는 것이 가장 힘들다. 때문에 지도하는데 체력이 많이 소비된다. 이집트에 와서 가장 힘들었던 것도 수련생들이 웃고 떠드느라 수련에 집중을 못하는 것이었다. 잠시라도 내가 다른 곳을 보고 있노라면 옆 사람과 대화를 하거나 장난을 친다.
눈이 뚤어져라 사범인 날 바라보는 수련생들.
문화가 달라 그러려니 이해가 가다가도, 화가 치밀어 오를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때마다 자중할 것을 권고하였고, 태권도 인으로써 갖춰야할 품행과 덕목을 재차 강조해 교육했다. 요즘은 조금 나아진 편이다. 소통의 한계와 문화적 차이 때문에 인성교육을 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교육 이었다. 개인적으로 인성교육은 수용자가 이해를 하고 깨달아야 된다고 본다.
가라테에서 전향한 수련생들은 따로 교육할 필요가 없을 정도다. 예쁜지 않을 수 없다. 수련 형태는 다르나 두 무술이 예의를 기본으로 하는 것은 분명 한 듯하다. 실제 가라테를 비롯한 검도, 유도 등 일본의 무술들이 예의를 매우 중시하고 잘 지켜지는 교육이 이뤄지는 것 같다. 태권도가 오히려 배워야 할 점들이 아닌가 생각한다. 내가 말하는 예의와 인성이란 단순히 흉내를 내는 것이 아닌, 이해와 깨달음을 통해 몸에 베이는 것을 말한다.
[박성진 기자의 태권도와 타무도] 제10편 가라테 가라테(空手道)는, 태권도의 입장에서 볼 때 ‘만지면 만질수록 덧나는 상처’ 같은 것일지 모른다. 태권도의 발생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 몇몇 원로들(이원국, 노병직, 최홍희)이 일본에서 가라테를 수련했으며, 이를 토대로 근대 태권도가 만들어지고 발전해왔기 때문이다. 이러한 태권도 초창기의 역사를 어떻게 해석하느냐는 논자들에 따라 견해가 다르지만, 적어도 이 사실만큼은 부정하는 경우가 드물다. 이원국,..
얼마 전부터 태권도 원류가 무엇인지에 대한 포스팅도 꽤 있었고 같은 테마의 게시물도 심심치 않게 있었다. 태권도가 우리나라의 국기이며 올림픽 종목이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고 신체 건강한 대한민국 남성이라면 누구나 군대에서 원하던 원치 않던 태권도를 할 수밖에 없는 것이 사실이다. 여기에 일제시대에 들어온 가라테가 태권도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으며 가라테와 의복에서 초기 품형까지 흡사한 부분이 한두 군데가 아닌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명칭의 흡..
조금 자존심 상하는 이야기겠지만 실질적으로 태권도의 원형은 가라테입니다. 왜정 때 조선 땅에 들어와서 널리 퍼졌던 무술 가라테(공수도)는 해방무렵 송도관 지도관 청도관 등등의 5개의 대표적인 가라데 도장을 중심으로 정착이 되어있었습니다. 이 5개 가라테도장의 사범들이 박정희대통령이 주도한 한국의 무술통합정책의 주축이 되면서 태권도를 창시하게 된 것입니다. 결국 태권도는 가라테를 원형으로 해서 해방이후 태어난 신흥무술인 셈이죠.
덕쇠님 말씀, 옳소이다. 태권도인들이 발끈할 일은 아니라고 봅니다. 문화는 어떤 형태로든 섞이게 되는 것이니깐요. 중요한 것은 그것을 우리 것으로 잘 소화해서 발전시키는 것이 중요하니깐요. 그런 점에서 태권도는 대한민국의 국기로써 세계화시킨 자랑스런 우리무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굳이 그 뿌리를 따질 필요도 없구요. 원류를 따져 논쟁하는 것에만 집착한다면, 우리가 편리를 누리는 기계문명도 우리민족이 발명한 것은 아니잖아요?
태권도나 가라테는 뿌리가 어디서 시작되었냐를 떠나서 예의와 인성교육을 중요시한다는 것에서는 공통점이 있는 거 같습니다. 비록 가라테로 먼저 시작한 아이들이지만 이젠 태권도를 통해 한국의 무술과 정신을 배워나가겠네요.^^ 짜증나고 힘드시겠지만 이집트의 아이들에게 한국의 강한 정신을 팍팍 전해주십시요. 파이팅입니다.!!!!
그런가요? 가라테를 공수도, 당수도라고 부르는데 그건 오키나와...[지금은 같은 일본이지만, 근현대전까지만 해도 다른 나라였다고 합니다.]에서 중국쪽의 무술을 기반으로한 오키나와 전통무술이라고 합니다. 덕분에 정의로운 유도맨과 악당 가라테맨의 대결이 초창기 일본의 공식이었다고 합니다. 그 이후 최배달로 인하여 세계적으로 엄청나게 세력을 확장하고, 일본으로 무도를 배우러 간 한국인을 박정희가 불러들여서 새로운 군대 무술을 창시하는데... 그것이 바로 태권도죠. 그 과정에서 정통성을 세우기 위해 수박이니 태껸이니.... 일본의 전통(?)적인 가라테에 비해 현란한 발기술을 보이는 태권도이지만, 제가 보기엔 창으로 찌르거나 치는 듯한 태권도식 발차기와 채찍을 휘두르는 듯한 태껸은 상당히 다른 듯.....
동아시아 특히 중국,일본,한국 3국 무술의 원류는 그리 중요한게 아니라고 봅니다. 다만 무술이 어찌 전파되었던 간에 그 나라에 맞게 발전하는 것이겠지요. 보통 우리가 알다시피 중국은 현란하고 화려한 기예 중심이면 일본은 예와 격을 중요시하고 우리는 놀이로서의 무예를 즐기는 각각의 문화적 특징이 있지 않나요? 이렇 듯 각국의 무술이 그 특징을 달리하는데 태권도가 가라테의 영향을 받았다고 너무 예와 격에 억지로 강요될 필요는 없다고 보여집니다. 타 문화를 배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에 앞서 먼저 우리가 우리의 문화에 맞게 소화 시켜야 되지 않을까요? 이건 태권도 전체에 관해 바라는 점입니다..분명 가라테등의 여러 무술과 문화적 교류는 중요합니다만 태권도 시간을 즐기는 아이들을 통해 오히려 격식과 예에 얽매이지 않고 놀이로서 즐겁게 익히는 시간을 만들어 딱딱한 태권도가 아닌 즐기는 태권도로 가르치면 어떨까요. 태권도도 많이 변했으면 합니다. 써놓고 보니 좀 주제넘는 이야길 한게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 세계로 나아가는 태권도 화이팅입니다.
님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감하는 바 입니다. 태권도 역시 가라테와 예를 중시하는 무술인 바, 어쩐지 비교가 되는 것 같아, 조금은 예민하게 받아들이는게 없지 않았던 것 같네요. 중요한 건 역시 태권도를 태권도로서 보다 독창적으로 지속적인 발전을 거듭해 나가야 겠다는 겁니다. 좋은 의견에 감사합니다. 즐거운 하루 되세요.
초창기 도장 운영에 관한 이야기가 시작되자 그는 흥분했다. 인터뷰 내내 흥분을 감추지 않았다. 힘겨운 미국 정착시절과 도장을 개관하기에 이르기까지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서 말이다. 흑인 빈민가에서 시작한 태권도장 운영은 쉽지 않았다. 어느 정도 예견은 했었다.
가장 큰 문제는 태권도에 대한 인지도와 관심 부족이었다. 당시만 해도 미국인들 대부분은 ‘태권도’란 무술 자체를 모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반면 ‘가라테(공수도)’라고 하면 고개를 끄덕일 정도로 알고 있었다. 가라테는 태권도보다 훨씬 앞서 미국과 유럽 등지에 보급이 되었다.
[정우진 회장이 1973년 아이오아주 씨더래피즈에서 처음으로 개관한 정스태권도장의 전경이다.]
그는 “도장 문을 연지 얼마 되지 않아 여러 사람들이 도장에 들어왔다. 반가운 마음에 달려 나갔는데, 오늘의 점심 스페셜은 무엇이냐고 하더라. 내가 무슨 말은 하느냐고 반문했더니, 그들은 중국음식점이 아니냐고 했다”면서 초창기 태권도장에 관한 해프닝을 들려주었다.
정우진 회장은 결심했다. 도장을 살리기 위해서였다. 울며 겨자 먹기로 간판에 ‘가라테’라는 말을 같이 사용하기로 한 것이다. 그러나 제자들 앞에서까지 태권도와 가라테가 혼동되도록 할 수는 없었다. 비록 가라테의 명칭을 빌려 관원을 모집했지만 태권도의 정신을 알리고자 했다. 그래서 “태권도는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드는 힘이 있으며, 자신에 대한 정신적인 도전이다”고 강조했다.
정우진 회장의 초창기 도장운영은 말 그대로 ‘태권도장’이 아니었다. ‘코리안 스타일 가라테 도장’이었다. 실제 80년대 만 해도 외국에서 태권도에 대한 인지도는 매우 낮았다. 지금도 유럽과 중동 등에서는 태권도가 가라테에 비해 보급률이 적은 편이다. 정 회장을 비롯한 당시 해외 곳곳에 태권도를 보급한 한인 사범들이 있어 지금의 태권도가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 회장은 가라테가 아닌 태권도를 미국에 알리기 위해 매일같이 미국인들을 상대로 이마로 벽돌을 격파하고, 발차기를 보여주며 태권도를 알렸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 태권도를 배우기 위해 도장에 방문자가 점차 늘어났다.
정우진 회장 사무실 벽면에는 정스태권도장의 역사가 한 곳에 정리되어 있다.
또 하나. 미국이라고 텃세가 없는 게 아니다. 우리나라도 타 지역에 가면 텃세가 있다. 미국인들 없겠는가. 흑인들로부터 작은 키의 동양인이 ‘희한한 무술’을 한다는 소문이 주변 동네까지 일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부터 정 회장은 동네 깡패들에게 표적이 되어 있었다. 당시만 해도 폭력과 범죄가 난무하는 흑인 빈민가였던 까닭에 도장개관 1년여 동안은 그들과의 힘겨루기가 반복되었다.
그가 가장 아끼는 도복과 띠. 낡았지만 태권도의 혼이 느껴진다.
이러한 과정은 정 회장 뿐만 아니라 초창기 태권도를 전파하기 위해 해외에 진출한 한인사범들이라면 모두가 겪었던 고충 중 하나다. 그래서 지금 태권도 인들은 초창기 해외 파견 한인사범들의 노고를 잊어서는 안 된다. 그들의 노고가 있었기 때문에 태권도가 세계화 될 수 있었고, 올림픽에 정식종목에 채택될 수 있었다.
무도로서의 태권도가 미국인들을 바꿨다. 태권도라는 이름조차 들어본 적이 없는 미국인들을 대상으로 시작한 태권도장. 사실 이때까지만 해도 정 회장은 앞날에 대해 확신이 서지 않았다고 뒤늦게 털어놓았다. 그래도 확실한 믿음이 있었다. 바로 태권도가 고유한 무도로서의 정신적인 가치가 높다고 생각했었기 때문이다.
그것이 결국 미국인들을 바꾸기 시작했고, 오늘날 태권도가 미국에서 타 무술에 비해 가장 높은 인기를 갖게 한 이유일지도 모른다. 그는 “도장의 문을 열고 첫 제자를 맞이한 순간부터 태권도의 정신적인 면과 무도적인 측면을 누누이 강조하고 실천했다”고 말했다.
태권도 가치를 깨닫는 미국인들이 늘어나면서 그의 도장은 자연스럽게 정신적인 수련장으로 변해갔다. 동시에 수련생도 급격하게 늘어났다. 그의 제자들 중에는 비교적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몸과 마음이 다 망가진 소외 계층도 많았다. 또 신체적으로 건강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선천적 후천적 장애를 가진 사람들도 많았다. 그러나 그에게는 남녀노소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그들은 태권도를 통해 인연의 끈을 맺은 소중한 제자들이었다.
제자를 안고 있는 정우진 회장
이런 제자들을 보며 그는 “무도 태권도를 통해 자신이 갖고 있던 문제점을 훌훌 털어버리는 여러 제자들을 보면서 나는 오히려 그들에게 참으로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내가 무도인의 한 사람이라는 사실이 너무도 감사했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국내외 여러 태권도인들을 만나 보았다. 그 중 정우진 회장은 그 누구보다 태권도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었다. 눈을 뜨는 순간부터 잠에 들 때까지 오직 태권도 생각 뿐이다. 그래서 많은 태권도인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다. 태권도를 통해 얻은 것은 다시 태권도에 환원하겠다던 그다. 이를 위해 그는 소외된 곳을 찾아 뜻을 같이 하는 태권도사범들과 자선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 본 내용 중에 일부는 무술전문미디어 무카스미디어(www.mookas.com)에 게재 되었음을 알립니다.
정우진 회장은? 1943년 경상북도 울주군 청량면 개곡리에서 출생, 한양공대 기계과를 졸업하고 1971년 미국 이민. 아이오와 주 시더래프즈에 정착해 현재까지 거주하면서 한평생 태권도를 위해 몸을 바치고 있다. 1년 동안의 주유소 펌프맨 생활을 거쳐 1973년 흑인 빈민가에 처음으로 태권도장을 열었으며, 97년에는 뉴 라이프 피트니스 월드를 설립하여 동양인 이민자로서는 이례적으로 헬스클럽 사업에 진출하였다. 이후 미국 중남부전역으로 사업을 확장, 현재 8개 클럽에 2만여명의 회원을 확보하고 있다. 2002년부터 본격적으로 중국에 진출, 베이징에 설립되는 첫 헬스컬럽을 비롯하여 중국 내에 총 12개 클럽 오픈을 계획하고 있다. 이 밖에 Mountain Top Co.을 통해 백화점 및 오피스 빌딩 임대사업에도 참여하고 있다. 특히 태권도의 해외 보급하업에 관심을 기울여, 세계 120개국에 영문 태권도 잡지인 ‘태권도타임즈’의 회장을 맡고 있으며, 미국 콜로라도 주에 태권도연구소를 설립하였다.
저서로서는 1998년 ‘Free Style Sparring와 2002년 ‘세계가 우리를 기다린다’ 등 2편이 있다.
원래 태권도가 가라데에 파생된 무술인데 무슨 코리안 스타일 가라데가 되었던 사연이란 겁니까.. 나참 황당해서..
신동아에서도 다 까발라진건데...
어찌 되었든 태권도는 가라데에서 파생된 무술입니다.
그 근거로 태권도 초기 사범들이 전부 가라데 사범이라는 거...
그리고 가라데는 중국에서 건너온거 맞습니다. 중국의 남권이던가.. 중국 남쪽 지역의 무술의 영향을 받아 오키나와에서 발전된 거지요.
수박치기라는 원형이 있기나 한가..마구 갖다부치지 마시져..
택견이랑 태권도가 전래되어서 그렇다고? 택견을 한번이라도 해보고 그런소리하십니까?
그냥 인정할껀 하고 앞으로 태권도의 역사를 써야지 본류가 어디인들 뭔 상관인가..태권도가 우리 고유무술이라는 건 집어져야한다.
환상을 개야 발전이 있을뿐이다..
태권도가 일제 시대 가라데를 했던 분들이 해방 후 이름을 바꾸고 뭔가 약간 수정해서 비롯되었다는 것은 모두가 다 아는 주지의 사실입니다. 그분들은 순수한 무도인들이었다는 것을 믿고 싶습니다. 그 이후에 위 글의 주인공과 같은 수많은 사범들이 해외로 진출하여 태권도를 알리고 동시에 한국을 알린 공적은 높이 평가되어야 마땅합니다.
태권브이 미친놈.. 난 70년초에 청도관에서 팔괘형으로 태권도를 배우기시작했지만 성인반선배들은 철기,내보진등 가라데품세를 했어.. 청도관 만든 노병직님이 일본에 가라데를 전파한, 후나고시선생에게 직접 배웠다구.. 후나고시의 송도관가라데가 한국 태권도의 뿌리야, 한국에 토착화되고 몇십년의 시간이 흘렀으니 전통무술이라고 해도되는 것이지
후나고시기찐이 오끼나와(유구)사람이고 일본에 정착시키려 온 과정에서 한국인이 배워온 것이니 일본이 아닌 오끼나와에서 직접 배운 것이나 다름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습니다..오키나와에 데(手)라는 전통무술이 있었지만 낱기술위주였고, 오키나와를 방문한 중국사신의 일행중 공산군이란 사람이 품세를 가르쳐줌으로서 가라데(唐手)가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가라데 최초의 품세가 "공산군"입니다. 이 품세는 중국북파무술에 해당됩니다. 그후 오키나와사람들이 복건성에 들어가 중국남권을 배우고 와서 가라데의 범위를 넓혔습니다.복건성의 대표무술 백학권의 품세 '삼전'은 가라데의 대표적인 품세이기도 합니다.
이게 진실이니 데(手)의 원형이 조선무술이라는 주장이 생겼습니다. 조선초에 오키나와와 교류를 했다는 기록이 있고 홍길동이 세웠다는 율도국이 오키나와 남쪽의 저항세력으로 상당기간 존속했다는 것도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홍가라(洪家王)세력은 극히 일부였기 때문에 귀족들의 압제를 받는 민초들을 부축여 민란을 만들어냈다고 합니다.그러기위해 철저히 오키나와민중들과 하나가 되기위해 언어,복식등을 받아들였구요. 축성이나 민간풍습에 조선식은 남아있지만 무술이 있었다는 흔적은 없습니다.
가라테를 수련하던 아이들이 날 찾아왔다. 내게 태권도를 배우고 싶다며 말이다. 태권도 사범으로서 반가운 손님이 아닐 수 없다. 게다가 그들을 지도하던 가라테 사범도 제자들과 함께 태권도로 전향하겠다고 했다.
이집트에는 현재 태권도의 인기가 지속적으로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가라테와 비교해서는 수련인구는 절반 밖에 되지 않는다. 특히 지방의 경우에는 가라테 수련생이 절대적으로 많다. 이런 가운데 가라테 수련생들이 태권도를 전향하는 사례가 매우 높다.
처음 태권도를 배우고자 날 찾아온 아이들에게 태권도에 대해 충분히 설명했다. 또한 태권도의 기본 예절과 용어를 가르쳤다. 첫 수련을 마친 아이들은 하나같이 밝은 표정이었다. 웬만하면 수련생의 눈치를 보지 않지만, 이렇게 타 무도를 수련하던 아이들이 오면 조금은 긴장이 되는게 사실이다.
[태권도를 처음 배우는 수련생들에게 태권도의 기본 예절과 정신을 지도하고 있다.]
아스완에는 현재 약 250여 명이 태권도를 수련한다. 가라테는 2천 여 명이 넘는다. 10배에 가까운 수치이다. 그래서 나는 내년 중순까지 아스완 태권도 수련인구를 적어도 1천명 이상으로 끌어올릴 계획이다.
오늘 오전에 그토록 기다리던 한국에서 보낸 태권도 도복이 도착했습니다. 다음 주면 이곳 수련생들도 제대로 된 태권도복을 입을 수 있게 되었네요. 도복을 받고 기뻐할 수련생들을 생각하니 제가 더 설레네요. 코이카로 이집트에 온 저는 아스완에서 태권도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보급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아 모든 것이 부족하고 환경도 매우 열악합니다. 우선 이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태권도복을 지원하는 것입니다. 지난 달 코이카에 활동물품을..
이국생활이 고생스럽겠지만 지금 하시는 일이 큰 보람이 될거예요. 특히 님의 글에서 타문화에 대한 열린 마음이 느껴져서 좋습니다. 저는 독일에 유학온 후 태권도를 시작했어요. 대학 태권도부라 사범님도 같은 대학생인데 무슬림이예요. 태권도부에 유독 무슬림학생들이 많은 것이 신기해요. 평소에도 말이나 행동이 절도 있고 한국사람처럼 항상 허리굽혀서 인사하고 말이죠. 그랜드마스터는 한국분이라는데 정말 존경받는 듯해요. 님도 이집트에서 가장 존경받는 그랜드마스터가 되시기를 바래요. 그리고 재미있는 글 계속해서 올려주세요~~~
이국에서 태권도를 배우시나봐요? 그것도 특별한 경험이 될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한국 문화에 대한 소중함도 느끼실 수 있을 것 같구요. 저도 가끔은 힘들때가 있지만 수련생의 변화를 느꼈을 때 큰 보람을 얻는답니다. 타문화에 대한 이해와 존중은 아직까지 겉으론 하고는 있으나, 실제 속으론 이해 못하는 부분이 많은 것 같아요. 그래도 현지에 관습과 문화인 만큼 이방인이 맞추는게 당연하다고 보고 따를 뿐입니다. 님의 격로로 오늘 하루 기분이 좋아졌네요. 더욱 열심히 활동해야 하겠다는 생각도 하게되고요. 재미는 없겠지만, 이곳에 대한 생활을 계속 올리겠습니다. 관심있게 지켜봐주시길 바랍니다. - 한혜진
댓글을 달아 주세요
쇼를 해라
2010/02/14 12:15태권도란 말이 없던시절에 당수도 공수도라 불리던 가라데스타일은 태권도가 아니라
비록 그것들을 한번에 묶어 태권도란 말을 만들었지만..
과연 그러지 않았다면 태권도가 존재했을까?
가라데가 되었든 권법이 되었든간에 태권도란 이름안에 하나로 묶어서 시작을 했고..
오늘날의 이르기까지 ITF,WTF는 가라데와 다르게 진화되어왔다
그것만으로 최홍희는 창시자라는 말을 듣고도 남는다
주짓수가 유도에서 왔지만..오늘날에는 주짓수가 유도보다 더 강한 무술로 인식되어진다
무엇이 문제인가?
태권도가 가라테나 다른 무술의 영향이 전혀 없다고는 할 수 없죠. 님의 의견처럼 태권도는 해방 이후 태권도란 명칭으로 급속한 발전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까지 그 역사와 정신에 대한 논쟁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관련 기관, 학계, 전문가 연구모임 등에서 하루빨리 다수가 공감하고 인정할 수 있도록 정립해야 한다고 봅니다.
2010/02/24 00:26태권도의 원류는 가라데입니다.
2010/02/24 11:20우리 전통 무술인 택견,수박치기,씨름 등과 비교해보면 유사점이 전혀 없죠.
태권도는 뒤틀린 우리 역사를 보는 것 같아 아쉽읍니다.
태권도가 가라데에서 출발해서 지금은 다른 무술이 되었지만, 국기로서 자리할 무술은 아니라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