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는 다양한 문화를 가지고 있다. 이 문화들이 유럽에 전파된 것은 영국군에 의해서다. 폴로(Polo)역시 인도의 스푼폴로(Spoon Polo)를 유입해 개량화한 것이다. 폴로이외에 전세계적으로 보급된 것으로는 요가(Yoga)가 있다. 요가는 현재 각국에 보급돼 다양한 형태로 존재한다. 이러한 인도의 몸문화의 영향력은 생각이상으로 대단하다. 무술이외에 음식이나 향료, 차 등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검술이 유럽으로 보급되었다는 것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모르고 있다.

인도검술에 대한 자료를 무술공부의 후배이자 제자에게 건네받았다. 짧은 소개정도의 글이지만 여러분들에게 알린다. 인도의 경전 속에는 무술의 훈련원칙이 포함되어 있다. 인도의 브라만들은 공공장소에서 검술을 가르친 검술지도자도 존재했다. 인도의 검술 캇카는 여기서부터 유래된다.

캇카(Gatka, 펀자브어 : ਗਤਕਾ gatkā)는 인도 무술로 시크교 펀자브 지역과 연관된 이름이다. 이 검술은 나무 막대기로 만든 검을 사용한다(Williams, Rosetta, 2007). 19 세기에 인도에 체류중이던 영국인들이 검술연습의 수단으로 성장해 오다, 20세기 접어 들어 국제캇카연맹을 설립(1982)하고 1987년에 공식화해 지금은 캇카스포츠 또는 검무와 같은 예술적 활동을 하고 있다. 

인도의 캇카캠프 장면(출처: 국제캇카연맹 홈페이지www.gatka.de)

캇카는 인도의 근대학교에서 교육과정으로 사용되어 왔으며, 호신술체계를 강조하는 무술이다. 이 무술은 제2차 앵글로-시크 전쟁(1848-1849)을 계기로 금지령이 내려진 것이 있다. 하지만 1860년대 접어들어 새로운 형태로 영국군에 의해 수련체계가 개발되었다. 이것은 다시 1880년 유럽의 펜싱규칙을 적용해 변형되면서 유도, 중국무술 등과 함께 인도내에서 보급되고 있는 무도스포츠가 되었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경전에 있을 만큼 캇카는 시크교의 신앙적 성격을 강하게 적용하고 있다. 이러한 양식은 종교단체와 반종교단체간의 갈등을 초래하기도 했다.

캇카는 양손으로 두개의 막대기, 막대기와 칼, 검술과 방패 또는 기타 여러가지의 조합된 형태의 검술형태가 존재한다. 필리핀의 아르니스와 유사한 점이 있으나, 무기를 개인이 선택할 수 있고, 또 다양한 무기를 조합해서 사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Singh, Arjun, 2006)아르니스와는 구별된다. 

이러한 캇카의 예술적인 측면은 몸, 팔, 무기의 조화를 갖추고 있다는 점과 상대와의 리듬운동이며, 불안과 경쟁, 공격과 방어, 손, 발, 무기 등의 다양한 정신적 육체적인 수련법을 동반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국제캇카연맹(IGF)은 현재 베를린에 본부를 두고 있다. 하지만 영국에서는 BabFateh Singh Gatka Akhara를 동런던에 1992년에 설립해 현재 국제 Gatka기구 (IGO)의 설립에 기여하고 있으며 단체의 분화가 있다. 2002 년 gatka에 대한 대체 용어로 등장한 것이 Shastar Vidiya다. 이것은 Shastar Vidya 학교가 설립되는 등 활동을 펼치고 있다. 최근에는 시크교의 성서인 구루 그란트 사힙(Guru Granth Sahib)의 400주년 행사를 위해 캇카를 시연하기도 한다.

Singh, Arjun (2006). Gatka. Atlanta Martial Arts Directory.

Tyshler. D. A.(1996). Develop one's physical strength, Moscow; Russian State Academy

Williams, Rosetta (2007). Sikh Gurus Page 68. Har-Anand Publications

Zarrilli, Phillip B. (1998). When the Body Becomes All Eyes: Paradigms, Discourses and Practices of Power in Kalarippayattu, a South Indian Martial art.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이 자료는 선문대 강의시절 검도전공 학생이었던 길상욱선생에게 받은 자료다. 벌써 석사학위를 취득해 박사과정을 준비하고 있다. 이글은 길선생의 자료를 재구성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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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이었던 길상욱선생에게 받은 자료다. 벌

    2013.10.29 20:11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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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시절 검도전공 학생이었던 길상욱선생에게 받은 자료다. 벌써 석사학위를 취득해 박사과정을 준비하고 있다. 이글은 길선생의 자료를 재구성한 것이다.

    2013.10.29 20:14 신고


일본검도의 정신적 지주 다쿠앙선사

다쿠앙 소오호오(澤庵宗彭, 1573∼1645) 선사는 무도학을 연구하는 사람들에게 익히 알려진 인물이다. 일부학계에서는 조선의 선승일 것이라는 주장도 있지만, 일단 출신지는 일본으로 학계에서 보고되고 있기 때문에 여기서 출생에 대해서는 거론하지 않겠다.

다쿠앙은 일본식 무짠지나 우리가 중국집에서 자장면을 시키면 나오는 ‘다꽝’이라 부르는 반찬(단무지)의 이름이다. 일본 도쿠가와 이에미쓰(德川家光)장군은 동해사(東海寺)를 방문했을 때 다투앙 선사가 평소 먹던 무짠지를 내놓았는데, 소박한 반찬이었지만 그 맛에 크게 감동을 받았다고 한다.

그 후 도쿠가와장군은 이 반찬의 명칭을 ‘다쿠앙쯔케’라 불렀고, 요즘엔 다쿠앙이라 부른다.



다쿠앙은 에도시대의 대표적인 병법서인 <부동지신묘록(不動智神妙錄)>이라는 편지를 쓴 저자이기도 하다. 부동지신묘록은 미야모토 무사시(宮本武藏)의 <오륜서(五輪書)>와 더불어 일본무도의 대표적인 병법서로 알려져 있다.


병법(兵法)은 원래 '사람을 죽이는 법'이나, 검술이나 창술 등을 총괄해 사용하는 말이기도 하다. 일본의 병법은 검술을 중심으로 발전해 왔다. 당시 검술이 중심이 된 일본은 혼란스러운 시기였다. 이에 대해 다쿠앙은 일본의 전국시대의 살벌한 분위기가 남아 있는 에도시대 초기에 무사가 지녀야 할 자세에 대해 강조했다. 특히 무사들이 겪어야 했던 죽음에 대한 공포와 사회적인 살벌한 분위기속에 진정한 무사의 자세는 부동심이라는 말을 정리한 것이다.

부동심은 삶을 지혜롭게 하는 실천공부

부동심(不動心)은 불교용어다. 이와 유사하게 사용된 용어로는 무심(無心)과 평상심이 있다. 현대검도에서도 사계를 극복하고 평상심과 부동심을 갖도록 하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평상심은 평온한 상태를 유지하는 것을 말하며, 부동심은 외부의 충격이나 어떤 상황에도 동요되지 않는 정신력을 의미한다. 마음을 어느 한 곳에 치우쳐져 있거나 욕심을 부리면 효과를 얻을 수 없다는 논리다. 이렇다보니 이 용어가 최근 유행하고 있는 멘탈스포츠에서도 적절히 사용된다. 생사의 갈림길에 서 있는 무사들에게 던진 메시지가 지금은 스포츠에서 활용되고 있는 것이다.

편안한 마음으로 스포츠에 참가해 경쟁을 하면 좋은 결과를 얻는다는 스포츠심리학의 이론과 다를 바 없다. 아무런 욕심 없는 무심(無心)의 상태에서 상대를 공격하여 의외의 효과를 거둔 경험들이 생활체육계에서도 이야기 거리가 된다. 이러한 현상은 군더더기 없는 마음이 몸과 일치되는 현상이기도 하다.

아무나 부동심이나 무심을 자유자재로 사용하진 않는다. 그것은 어느 정도의 수련경지에 도달했을 때, 혹은 심법의 단계가 도달했을 때 가능한 것이다. 또 이 경지에 도달한 것을 어떻게 측정할 수 있는지도 자신밖에 모를 일이다. 똑같은 기량에서 결정적인 승부의 역할을 하는 것이 부동심이고 무심인 것이다. 선불교에서 말하는 ‘무심시도(無心是道)’라는 말처럼 생활 속에서 번뇌 망념이 없는 무심(無心)의 경지에서 자신의 삶을 지혜롭게 사는 것이 실천적인 공부라 할 수 있다.


삶의 여유 도장을 찾자

현대사회에서 청소년이나 성인들은 복잡한 사회구조로 인해 마음의 여유를 갈망한다. 독일의 헤리겔 교수가 일본에서 초청교수로 생활하면서 배운 일본의 궁도를 서양인의 관점에서 쓴 책이 있다. 이 책은 <궁도의 선>으로 서양인들이 일본을 이해함은 물론 동양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유명한 책이다.

그 책에도 “활시위를 힘으로 당기지 말고 마음으로 당겨라”라는 말이 있다. 이 역시 부동심과 무심을 강조하는 말이다. 팍팍한 삶에서 생겨나는 갈등과 불안, 그리고 스포츠나 직장에서의 승부욕 때문에 받는 스트레스를 또 다른 마음으로 극복할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어찌 보면 단순한 반찬인 단무지에 대해 당시의 실력자인 도쿠가와 장군은 단무지의 맛보다 다쿠앙 선사를 만나 정신적인 안정을 찾은 까닭에 단무지의 맛이 더욱 좋았을지 모른다.

삶의 번뇌 속에 살아가는 현대인들도 어느 순간 마음을 버리고 자연과 동화할 때 자신을 알아갈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현대인들은 그럴만한 여유를 찾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 유일한 방법으로 주변의 도장을 찾아 부동심을 배우고 무심을 배우는 여유를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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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18 - [태마뱅크/백과사전] - 가노지고로(嘉納治五郞; 1860∼1939)의 생애와 근대유도의 발달 (1)
에 이어 계속.

유술의 시대에는 생명을 걸고 했던 격렬한 승부는, 창조된 안전한 경기 속에서 행하여지고 있으며 기술로부터 도에 들어가는 동양적인 무도관도 현재의 인식속에 살아있다.

술(術)은 기술(技術)을 의미한다. 따라서 술(術)에서 강조되는 것은 기술 그 자체이다. 술(術)을 행하는 가장 큰 목적은 싸우는 것이기 때문이다. 반면에 도(道)는 인간이 살아가는 삶의 길이다. 그리고 자신의 심신을 향상시키는 삶의 방법을 의미한다.

비록 유도와 유술의 기술이 닮아쓸지라도 유도의 수련과 훈련의 가장 큰 목적은 유술과 다른 것이라는 결론을 얻었다.

도(道)를 포함하고 있는 여러 단어들이 있다. 예를 들면 불도(佛道), 다도(茶道), 서도(書道) 등의 각각은 단순한 행위의 차원을 떠나서 자신의 인격함양의 의미를 갖고 있다. 가노의 유도는 승패를 떠나서 심신을 단련하는 데 목적을 둠으로써 승패만을 목적으로 하는 유술과 차별성을 갖게 되었다.

- 術에서 道로 전환은 평화와 건강의 원리를 뜻한다.

- 術은 사람을 상대하기 위한 기술로서 힘의 과시를 주제로한 폭력의 원리(공격적)이다.

- 道는 폭력을 부정하는 평화의 원리로서 순수한 방어논리(나를 지키는 수단)이다.


이러한 논리는 도(道)가 본체로, 술(術)은 부수(部隨)된 것으로 도에 들어가는 수단이 되었다. 술(術)로부터 지양(止揚)하여 인간생활 전반에 통하는 대도(大道)로 되었던 것을 의미한다. 이처럼 가노는 술(術)을 도(道)로 바꾸어 승부법으로서의 유도, 체육법(體育法)으로서의 유도, 수신법(修身法)으로서의 유도로 나누고 이것을 '유도의 세 부문'으로 이론화 하였다.

1882년 1월 가노는 당시 귀족들이 경영하던 학습원(學習院)의 강사가 되어 숙소를 시모다니영창사(下谷永昌寺)로 옮기고, 처음으로 가노주꾸(嘉納塾; 학원)을 설치하여 학생들을 가르쳤다. 5월에는 영창사(永昌寺)의 마당에 12장의 다다미를 깔아 도장을 만들고 이를 '고도깐(講道館)'이라 이름하였다. 

같은 해의 9월 영창사(永昌寺)에서 진다(神田)로 옮기고 1886년 98명, 1887년 292명, 1888년에는 378명, 1889년에는 605명으로 늘었으며 후지미(富士見)시대에는 1,400명으로 늘어나게 된다. 당시의 비용은 모두 가노가 부담하였다. 수련생들이 모두 귀족계급의 자산가들이었으므로 강도관(講道館)의 비용은 모두 여기에서 충당되었다.

이 후지미(富士見)시대에 강도관의 형태는 거의 체계화 된다. 입문자의 서약서, 원단식(元旦式), 홍백경기, 월례경기 등의 여러행사가 이 시대에 결정되었다. 기술적으로도 안정되어 현재에도 행해지고 있는 '메치기 본', '굳히기 본', '부드러운 본', '5가지 본' 등의 기본이 이 때에 성립되었다. 

가노는 여러가지 유술(柔術)의 기법(技法)을 이어받아 유도(柔道)라는 새로운 명칭을 붙였는데, 유술이라 하는 것이 실제로는 그 근본이 '도(道)'가 있고 '술(術)'이란 오히려 그 응용이란 사실을 알게 되었다. 때문에 가르침에는 먼저 도(道)로 시작하여 그 위에 응용의 술(術)을 가르치는 것이 적당하다. 그러나 후꾸다(福田), 기(磯), 오꾸보(飯久保)의 3명에게는 쥬우쥬쯔(柔術)란 명칭으로 가르침을 받았기 때문에 전연 다른 이름으로 명칭을 변경시키는 것도 그렇고 하여 '유(柔)'의 한 자만을 쓰기로 하여 유도(柔道)로 하였다. 

1882년 5월에 유도를 연구·지도하기 위하여 도장을 개설하였는데 명칭에 관해서는 어디까지나 도(道)를 중시하고, 도(道)를 넓히고 도(道)를 강의(講)하는 곳(館)이라 하여 '고도깐(講道館; Kodokan)'이라 명명하였다. 단순히 무술을 가르치는 장소가 아니라는 것을 확실히 하기 위함이었다. 만약 구태의연하게 무술의 도장이라 한다면 연무관(鍊武館), 상무관(尙武館)이라 해도 좋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명칭을 피해 '강도관(講道館)'이라고 한 것은 "도(道)는 근본, 술(術)은 응용"이라는 사실을 명백히 하기 위해서라고 하였다.

유도는 과학적인 원리에 맞추어 공격과 방어의 방법을 가르치고 여기에 가미하여 신체의 합리적인 육성법을 가르쳤다. 그리하여 그 배경으로 단순한 무사의 마음 가짐뿐만 아니라 문무의 도를 가르쳤던 것이다. 이런 이유로 무술과 체육과 수심(修心)의 도(道)를 합한 것이 유도라고 말할 수 있다.

가노는 본(本)과 자유연습의 관계에 관해 "마차의 두 바퀴, 새의 두 날개와 같이 어느 한쪽에 치우쳐서는 안된다"고 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유도의 본(本)이란 마치 문장을 쓰는데에 있어 문법과 같은 것이다. 난도리(자유연습)는 작문의 연습이다. 아무리 문법에 정통하다고 해도 곧 바로 명문을 쓸수는 없다. 또 문법도 알지 못하고 엉터리로 문장을 쓸 수도 없다. 이것과 마찬가지로 유도에 있어서도 본을 배우지 않으면 공격 방어 여러면을 이해하고 익숙하여 질 수가 없다. 그러나 오로지 본만 수련한다면, 순서에 따라 일정한 틀로 연결은 되지만 만약 상대가 본에 없는 수법으로 공격해 오는 경우 그 응수에 곤난하여 패배하게 되기가 쉬울 것이다. 상대가 어떤 변화기술을 걸어 와도 이것에 대응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난도리(자유연습)가 필요하며, 본과 난도리(자유연습)의 두가지를 함께 수련할 때 비로소 완전한 수련이 된다.

처음의 '메치기의 본'은 10가지였다. 이 본은 주로 사용되는 신체의 부위에 따라 손기술, 발기술, 허리기술, 바로 누우며 메치기기술, 모로 누우며 메치기기술로 분류하여 메치기 기술의 이치를 이해시키려 하였다. 이후 새로운 메치기, 굳치기 등의 기술체계가 발전하게 되었다.

현대 유도를 창시한 가노가 유도경기의 방법을 오직 일본의 여러 유술 유파의 장점에서만 따온 것은 아니다. 그는 1930년에 공인된 레슬링 규정을 참고하기도 하였다. 일본 강도관의 자료실에는 가노 지고로가 생전에 쓰던 메모를 전시하고 있다. 가노 지고로가 친필로 깨끗하게 정서한 내용은 '레슬링심판규정'이라는 제목하에 북미합중국 아마추어 레슬링규정(1930공인)에 관한 경기장 설비규정과 선수의 복장 등에 관한 것이다. 또 강도관 자료실의 전시자들도 유도가 레슬링규정을 참고하였다고 분명히 밝히고 있다. 이로 미루어 보건데 현대의 유도는 경기장과 선수복장 등에서 레슬링의 제규정을 참고하였음을 알 수 있다.

유도는 더욱 발전하여 1911년에는 일본의 중학교에 "체조의 격검(검술), 유술은 부과할 수 있음(수의과)"이라 하여 정식과목으로 채택된다. 그리고 세계 제1차대전을 전후하여 일본 국민의 상무적 기풍으로 1914년 제1회 전국고등전문학교 유도대회가 개최되고, 1930년에는 제1회 전 일본유도 선사권(選士權)대회가 개최된다. 뿐만 아니라 가노는 해외의 유도보급을 위해 선수들을 이끌고 직접 한국, 중국, 유럽 등을 순방, 일본 유도를 세계에 소개하였다.

1941년 일본은 태평양전쟁을 일으키면서 유도도 군사적 실전을 위한 훈련으로 변질 규정된다. 1945년 8월 15일 일본의 폐전으로 인해 무도(武道)라는 용어가 사용금지 되는 등 대단한 박해를 받게 되지만, 경찰은 그래도 유도와 검도를 실시하여 그 전통을 이었으며, 학교 유도의 금지령해제를 원하는 소리가 높아지면서 1950년 학교유도가 부활되고, 1951년 6월에는 전 일본학생유도 연맹이 결성된다. 

1952년 일본은 국제유도연맹을 창립하고, 가노의 아들인 가노리세이(嘉納履正)가 회장에 취임한다. 1956년에는 동경에서 제1회 세계유도 선수권대회가 열리고, 1960년 로마올림픽대회 총회에서는 유도를 올림픽 선택종목으로 결정한다. 이제 유도는 일본의 유도가 아니라 인류 공통의 무도스포츠로 발전되었다.

by 허건식 체육학박사(1999년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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