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예보고서 -  무예의 지식체계를 고민해보자]

창시-분파-통합-분파-창시 등으로 반복되는 한국무예계의 생리를 두고 일부에서는 답답함을 금치 못하고 있다. 이런 모습때문일까. 

무예 언론들이 여러 사건들을 기사화하면서 비판의 소리를 내기도 하고 달래기도 하지만 정부관계자들은 물건너 불구경하는 모습이다. 이러다보니 어디부터 잘못이 시작되었는지 모르게 무예계는 또 갈팡질팡 혼란스러운 모습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이익을 챙기겠다고 일부 몰지각한 단체들은 얼마되지도 않는 돈에 좌지우지 패싸움 양상을 띠는 모습도 보인다.

 마치 밥그릇싸움이 아닌 구걸하는 모습속의 갈등으로 비추어지고 있다. 온통 축제장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고 여기저기 축제장을 점유하기 위한 모습을 볼때면 안타깝다는 생각도 해 본다. 

한 무예가 완성되기 위해서는 단시간에 만들어지기란 어렵다. 결국 오랜 시간이 필요하고 그 시간속에서 해당무예가 추구하는 이념이 무엇이고, 어떠한 원리로 기술체계가 정립되어 간다. 말만 협회지 유사단체와 동일한 기술체계라든가 용어도 똑같다면 독립무예로 보기 힘들다. 이들은 그냥 특정무예의 관(館)중심 무예로 밖엔 볼 수 없다. 

무예의 교본들을 보면 대단한 창의력으로 짜깁기 그림책을 만들어 놓은 경우가 많다. 어떠한 원리인지, 어떠한 철학을 지니고 있는지에 대한 논리도 없다. 이렇다보니 파생 혹은 분파, 그것도 아니면 급조된 무예라는 인식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경우도 많다. 물론 태권도도 최근들어 이러한 논쟁에서 피해갈 수 없는 위치에 놓여 있는 부분이 많다.

솔직담백한 논의로 지식체계 만들어 가야 

왜 이런 일이 생기고 있을까? 몸으로 전승된 무예이건, 창시된 무예이건간에 그것을 정리해 가고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소홀한 점이 많았던 것이 원인이다. 그냥 그림책을 만들거였다면 비전(秘傳)이라고 합리화하고 안 만든 것이 나을 뻔한 무예들도 있다. 그만큼 무예교본은 해당 무예를 평가하는 소중한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한 무예의 지식체계는 혼자 고민하는 것이 아닌 둘이상이 끊임없는 토론을 통해 만들어질 수 있다. 물론 무예의 특성상 비전적 요인을 고려한다면 창시자나 전승자가 스스로 체험하고 체득한 원리로 대신할 수 있겠지만, 지금 우리시대는 그러한 논리로 많은 사람을 이해시키는데는 한계가 있다. 

무예의 정체성을 구성하기 위해서는 구체적으로 지식체계의 관리나 윤리지침의 제정과 그 운영이 뒤따라야 한다. 이를 위해 승단제도나 칭호, 그리고 단체내부의 시스템이 구축되기도 한다. 그러나 국내 많은 무예단체들은 도장 하나에 협회가 있는 경우가 많다. 이것을 무예단체로 보기도 어렵고, 그 무예가 완성된 무예로 보기도 힘들다. 당연히 그런 무예는 시스템도 없고 정체성도 없는 단체라는 것으로 평가받기 마련이다. 

무예인들의 솔직하지 못한 무력(武力)도 문제다. 자신이 어떤 무예를 접했고, 수련했으며 누구에게 가르침을 받았으며, 몇 년의 수련 속에서 자신만의 독창적인 무예를 창시했다 한다고 뭐라 말할 사람은 없다. 그러나 대부분의 무예인들은 삼국시대의 벽화를 그려 놓고 조선시대 <무예도보통지>를 차용해 그려 놓는 무예계의 윤리를 망각한 일을 아무 부끄러움없이 하고 있다. 가장 윤리적이고 도덕적이어야 할 무예계가 생각할 수 없는 일들을 스스로 하고 있다. 

일부 유명한 무예의 경우에는 이념이 있다. 그 이념을 바탕으로 기술의 원리와 그 무예가 추구하는 목표가 있다. 이것만 보더라도 그 무예의 정당성은 담보된다. 하지만 유사한 기술들로 여기저기서 짜깁기를 해 놓고 쇼(show)적 무예들이 고개를 내밀고 있는 현실은 우리 무예계를 왜곡하고 발전을 저해하는 요인이다. 

그동안 먹고살기 위한 단증장사니 상업성이니 수많은 비판의 목소리가 있었다.하지만 이러한 근본적인 문제에는 무예의 지식체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서 생겨난 것은 아닌가 생각해 본다. 지금이라도 제자가 의문을 제기하고 기술의 논쟁을 일으킬 때 기득권 지도자들은 겸허히 받아 들여야한다.  끊임없는 논의와 솔직담백한 토론을 통해 지식체계를 만들어 가야 한다. 그리고 당장의 순간적인 이익을 위해 에너지를 소비하지 말고 자신이 책임지고 있는 무예에 대한 정체성을 만들어 갔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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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정하의 일본은 검도라는 말을 사용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들은 지속적인 명맥을 유지하기 위해 새롭게 고안된 요경기(撓競技)라는 것을 만들었다. 당시의 검도와 비교해 보면 다양한 점에서 특색이 있는 경기지만, 이것은 미군정하에 기존 검도정신함양을 부여하지 못하도록 한데에 대해 서양의 펜싱 형식을 흉내 냈던 방식으로 만들었다. 

호면은 ‘마스크’라고 하고 ‘면금’의 점이 철망으로 되어 있었고, 면포단은 두꺼운 천포제로 펜싱의 면과 흡사하게 만들었다. 갑은 ‘프로텍터’라는 이름을 사용하고, 펜싱식으로 서구사회에서 15세기부터 16세기에 걸쳐 행해진 금속 옷감을 사용해서 서구의 15세기로부터 16세기에 걸쳐 행해진 금속을 옷감에 철 또는 대나무의 세판을 꿰맸던 것으로, 호완의 경우는 ‘글러브’라고 해 검도의 호완과 비슷하게 만들었지만 금속이나 파이프의 세반을 꿰맸다. 이러한 방어용 기구의 특징외에도 많은 특색을 갖고 있다.

나카무라다미오(中村民雄, 1985: 273-274)의 《劍道辭典 -技術と文化の歷史-》 에 나온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 번째는 시합장을 7m×6m 의 경계선을 정하고 출발점을 명기한 것이다.

두 번째는 복장을 “건강한 옷감으로 만든 상의와 바지를 이용한다”라는 것이고, 색은 “흑색을 제외한 것 외에는 자유”로 되어 있디미나 실제는 백색이 대부분이었으며, 옥외의 경우에는 운동화 사용을 인정했다.

세 번째는 듀레이션 오브 게임을 규정상에 명기한 것으로 개인 시합의 듀레이션 오브 게임은 A등급 7분, B등급 5분, C등급3분, 단체 시합의 듀레이션 오브 게임은 각각인의 듀레이션 오브 게임을 3분으로 하여, 개인과 단체시합 모두 연장 시간은 2분이라고 했다.

네 번째는 심판을 3심제로 하여, 판정에 즈음해서는 일정한 재결권을 갖는(평등의 권리)다고 한 것.

다섯 번째는 단판승부나 삼판승부가 아니라, 일정 시간내의 득점제를 채용한 것이다.

여섯 번째는 다리를 도약하는 것을 금지하고, 그 밖에 일정한 행위를 반칙으로 하여, 위반자에게는 벌칙을 과한 것이다.

일곱 번째는 타돌의 시기, 자연스럽게 생긴 생리적 발성 이외를 반칙으로서 금지한 것이다(中村民雄著, 1985).
 

 당시에 일본에서는  “요 경기를 진흥하여 경기 애호자의 체력의 향상과 각요경기연맹 서로의 연락 친화와 스포츠 정신의 함양을 도모한다(中村民雄, 1985: 107)”는 목적 아래 구현된 것이고, “요 경기는 일본 민족 독자적인 고귀한 경험을 소재로서, 이것에 완전히(전혀) 새로운 의의를 수북이 담고 근대화하고, 과학화하여, 밖에도 평화 민주적인 순수 경기로서 새롭게 고안된 것이다. 국민 대중 대망속에 화려하게 발족한 체육인(大塚忠義, 평성7년: 158)”과 같은  목적 이념을 제시하고 있다( 日本劍道の歷史, 大塚忠義著, 窓社, 平成7年、158)

전국 일본요경기연맹에 의한 요경기법에서 이도에 관한 규정을 살펴 보면, 요의 규정에  “요는 외부를 흰색의 옷감의 봉투에 감싸고(袋撓), 길이 3척9촌까지, 무게 80문이상”, “길이는 직경 5촌 이내로 하고 형태는 제한하지 않다”는 보고 규정되어 있다. “또 득점의 부위에 관해서는 ‘면부(중앙, 좌, 우), 손목(좌, 우), 허리(좌, 우), 후두부(단 A등급만)”으로 되어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中村民雄編, 1985: 268-269).

2차세계대전이전의 시합규칙과 다른점은 대요(袋撓)의 규정은 일도(一刀)이고, 이도에 관한 기술은 서로의 공정한 조건이라는 차원에서 실용화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요경기는 무도로서가 아니라 스포츠로서 부활되어 실시된 것이고, 무도적 요소를 받아들여지지 않았기 위해 손목에 있어 좌우 기술이 모두 유효해진 것이고, 스포츠라는 특성에 있어 시합자 서로가 동일한 조건이라는 차원에서 일도와 이도의 시합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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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경기에 사용된 호면(당시에는 마스크라고 함)과 죽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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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경기참가자들의 복장, 출처:http://www.houryou.org/homepage/m2-tenzi-S4-Kendo.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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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경기 결과목록 출처:http://www.houryou.org/homepage/m2-tenzi-S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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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기도 단체들은 무려 50여개로 분파로 나뉘어 있다. 사단법인의 지위를 가지고 서로의 독립성을 주장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태권도의 태동과 관련하여 1959년에 최홍희에 의해 무술단체가 통합된 적이 있다. 당시에도 무덕관을 비롯한 몇 개 단체가 통합에 문제가 있었고, 아직도 대한태권도협회와 다른 노선을 걷는 태권도단체도 있는 것을 보면 무술단체들의 분파성은 대단히 뿌리가 오래된 것임을 알 수 있다 .

첫째, 무술단체의 분파 형태는 몇 가지의 내, 외부적인 요인으로 정리할 수가 있다.

무술단체분파적인 현상이 무술내용의 기술적 체계에 의한 분파라면 어느 정도 이해되는 면도 있고 무술의 속성상 자연스러운 면도 있다. 무술의 기술은 끊임없이 변화하기 때문에 보다 더 나은 기술체계로 무술이 재편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일면, 자기 단체의 기술적 우위를 강조하고 자기 단체의 기술적 체계의 우수성을 알리기 위한 행위는 경쟁이 있는 경우에 보다 발전적인 현상이 될 수도 있다. 택견단체와 해동검도단체의 경우에 기술적인 체계를 가지고 서로 다름을 주장하고 있는 것도 일부 있기는 하다. 택견의 경우 문화재 보유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유사 택견단체들의 조직이 비대해지고 있고, 해동검도의 경우는 규모가 확대되면서 분파되기 시작해 지금은 합기도와 유사한 분파형태를 보이며 해외에도 보급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분파과정에서 가장 큰 문제는 원류에 대한 법적논쟁이 있어 해당무술에 대한 사회적 신뢰성을 상실하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외형적으로는 기술상의 분열과 분파이기는 하지만 내부적으로 들여다보면 거기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둘째, 이권과 관련된 갈등으로 나타나는 내부적인 요인이다 .


무술단체의 이권은 대부분 하위단체나 하위도장의 장악과 관련하여 승급 및 승단 시의 심사비 횡령과 각종 자격증 남발로 나타난다. 이권과 관련한 문제는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자연스러운 현상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때의 갈등이 보편적인 상도덕행위를 넘어서서 윤리적인 문제로 나타날 경우에는 대단히 치명적인 현상으로 나타난다. 윤리도덕을 강조하는 무술계에서 서로 도덕성 시비를 하는 경우가 너무 많이 보이고 있다. 이러한 문제의 단체들은 대부분 협회와 연맹이라는 단체운영이 아닌 도장이라는 개념으로 인식하고 운영한데 문제가 있다. 가장 많은 분파를 보이고 있는 합기도류와 해동검도류의 경우는 각 지역별로 법인화를 추구해 전국단체의 성격이라기보다는 시도 총관장의 성격으로 활동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법인화를 통한 분파의 특성은 대부분 승급과 승단에 대한 이권문제가 지배적이며 기술체계는 유사한 경우가 많다. 이렇다 보니 형태적인 측면에서는 법인의 단체형태지만 운영은 총관장과 다를 바 없는 관(館)중심으로 운영으로 문제를 야기시키고 있거나, 지방자치단체의 축제가 증가하면서 무예단체의 도장교육에서 벗어나 시연단이나 예술단형태로 운영되는 단체들이 많아 이에 대한 대책도 필요하다.

셋째, 정치권과의 밀착에서 학습된 외부적 요인이다.


우리나라의 무술단체는 정치권과 대단히 밀착되어 있고, 2008년 3월 전통무예진흥법 제정이후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 한편으로 이는 무술의 특성상 일정부분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무술관계자들이 과거 권력의 하수인 노릇한 경우는 일제시대에도 상당히 많이 있었고 대한민국이 수립된 이후 제1공화국에서부터 현재까지도 이러한 현상들이 나타나고 있다. 과거에 무술경관들이 국회에서 야당을 몰아내는 역할을 한 좋지 않은 일을 하여 정치깡패라는 말을 듣기도 하였다. 근래에는 총선이나 대선에서 특정후보들의 보디가드로서 인원동원과 요인보호라는 임무를 맡으면서 자연스럽게 정치인들의 행태를 학습하여 정치적 분파주의가 나타나면서 무술계를 정치판으로 만든 면이 너무도 많이 있다. 또한 지역정치인들이 도장을 운영하는 관장이나 사범들의 힘을 빌어 지역민과 접근을 시도하는 사례도 있고, 이런 관계는 당선이후에도 지속적인 관계를 유지하거나, 선거이후 신생단체를 만들어 각종 기금을 받는 특혜의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여기서 더욱 큰 문제는 무술단체에 ‘총재’나 ‘명예총재’라는 직위로 참여하는 정치인들의 경우 무술단체의 실제적 등기임원이 아닌 얼굴마담의 역할들이 많다는 점이다. 이러다 보니 무술단체에서 정치권의 유력인사를 영입하는 경우 정권이 교체되는 시점에 가장 많이 있으며, 여당의 정치인을 선호하고 그들을 유입해 정치계와 다를 바 없는 영향력을 발휘하려는 의도를 가지면서 정치인들의 파당행태를 학습하여 정치권 이상으로 정치화 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넷째, 정부의 정책의 변화에 따른 외부적 요인이다.


1989년 사회체육지도자(현, 생활체육지도자) 제도를 실시하면서 무술종목을 채택하고 1990년대 후반 비영리 사단법인 설립의 행정규제 완화, 그리고 2008년 전통무예진흥법 제정과 같은 외부적인 정책변화에 따라 무술단체들의 이합집산현상이 뚜렷하게 나타났다. 이러한 무술단체들의 분파주의는 무술 그 자체를 위해서도 대단히 좋지 않은 현상이다.

단체운영과 관련된 협회장과 관련 보직자들의 이해관계로 인해 단체가 분열되는 모습은 영문도 모르는 무술수련자들에게 크나 큰 피해를 주고 있고 특히 스승과 선배를 존중하는 무술의 특성과 자기 무술의 권위와 무술의 역사성을 지나치게 강조하거나 자기 무술의 정통성을 주장하는 경우에는 자기 부정이라는 논리적인 모순에 빠지게 하기도 되면서 무술의 본질과 무술계의 권위와 질서를 파괴시킨다. 또한 무술단체들 간의 법정다툼은 무술 그 자체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로 나타나기도 한다.

현재 분파주의를 일으키는 협회장들의 면면을 보면 과거 타무술이나 타단체에서 주요보직자로서 사무총장 혹은 사무국장 등을 했던 사람들이 많이 있다. 협회를 운영하고 조직을 장악하는데 있어서 정치인들의 행태이상으로 과격하게 행동하는 경우가 너무 많이 나타나고 있다. 이처럼 무술인들이 정치인을 답습하고 정치인의 무술계 개입이 무술이 지닌 본래의 정체성을 흔들어 놓는 등 큰 문제를 야기시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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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연회에 참가한 태극권 고수들이 한자리에 모여 자세를 취하고 있다. (사진 = 태권도조선)


지난 6월 10일, 서울 강남의 한 호텔(리베라 호텔)에서 태극권 콘서트가 열렸다.

태극권 콘서트? 그렇다. 태극권 콘서트.

좁은 의미의 콘서트, 즉 음악연주회는 아니었지만, ‘세계태극권명가시연회’라는 이름으로 열린 이날 콘서트에는 중국, 대만, 일본, 프랑스의 내로라하는 태극권 고수 14명이 한 자리에 모여 태극권 시연회를 벌였다. 가히 최고 수준의 태극권 콘서트가 열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 싶다. 사실 태극권의 특성 상 무술 시연 중에는 항상 배경음악이 깔려나오기도 했다.

이날 참석한 태극권 고수들은 서억중(徐憶中) 중화민국정자태극권연구회 이사장, 황유성(黃裕盛) 세계태극권연맹총회 주석, 진정의(陳政嶬) 싱가포르 덕무체육회 창립회장, 조유빈(趙幼斌) 중국 시안(西安) 영년양식태극권학회 회장, 양지방(楊志芳) 한단(邯鄲)시 무술협회 태극권위원회 주석, 마위환(馬偉煥) 홍콩 양식태극권총회 창립회장, 윌리엄 넬슨 프랑스 정자태극권연맹 회장, 쿠리사키 케이코 일본국술총회 회장 등이다.

솔직히 태극권 전문가가 아닌 기자로서는 이들이 어느 정도의 고수들인지 감을 잡을 수는 없었다. 적어도 시연을 보기 전까지는.

이들 태극권 고수들의 시연은 1부와 2부로 나뉘어 양식태극권, 진식태극권, 정식태극권, 형의권, 태극검(劍), 태극도(刀), 태극창(槍), 추수(推手) 등이 차례로 시연됐다. 태극권의 정수를 느껴보기에는 부족함이 없는 자리였다.

이날 이들 태극권 고수들의 시연은, 아름다웠다.

‘아름답다’라는 형용사가 어울일 수 있는 무술이 얼마나 될까? 많지 않을 것이다. 태극권의 시연을 찬찬히 감상해보면, 굳이 태극권에 조예가 깊은 사람이 아니더라도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고 생각된다. 그것은 마치 고전음악에 조예가 깊지 않다하더라도, 모차르트나 브라암스의 음악을 듣고 감동을 느낄 수 있는 것과 비슷한 것이다.

무술기자로서 감히 말하건데, 이러한 아름다움과 감동을 느낄 수 있는 세계 최고수준의 태극권 시연을 국내에서 감상할 수 기회가 그리 흔한 것은 아니다. 이번 태극권 시연은 그 흔하지 않은 기회 중 하나였다.

이날 각 국의 태극권 고수들이 모인 것은 한국 태극권, 특히 양식 태극권 분야의 권위자로 손꼽히는 이찬 대한태극권협회 명예회장의 태극권 국내 보급 3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서였다.

이찬 회장은 대중적으로도 가장 많이 알려진 태극권 지도자의 한 사람이다. 수년 전 국내 유명 탤런트인 이미연씨가 출연한 한 광고에서 태극권을 하는 모습이 나온 적이 있다. 이 때 이미연씨를 지도한 사람이 바로 이찬 회장이다. 현재는 국내에도 태극권도장을 찾기가 그리 어렵지 않은데, 활발하게 태극권 지도에 나서고 있는 태극권 지도자 중 몇몇은 이찬 회장으로부터 태극권을 배운 제자이기도 하다.

태극권을 비롯해 태권도, 소림권, 당랑권 등을 섭렵하던 이찬 회장이 마침내 태극권에서 길을 찾고 본격적으로 태극권을 보급하기 시작한지 만 30년을 기념하기 위해 그 동안 이찬 회장과 연을 맺었던 각 국의 고수들이 한 자리에 모인 것이 바로 이번 시연회다.

태극권의 장점은 누구나 쉽게 배울 수 있다는 것이다. 많은 무술들이 누구나 쉽게 배울 수 있다고 내세우기는 하지만, 사실을 말하면 그런 것만은 아니다. 70대의 노인이 킥복싱이나 레슬링을 20대의 젊은이들과 함께 하는 모습을 상상하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태극권은 그것이 가능하다. 오히려 그러한 점이 태극권의 장점이다. 나이를 들수록 더욱 ‘그림이 나온다’는 것이다. 물론 건강에도 유용하다. 태극권이 건강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가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보고들이 있다.

이찬 회장은 “태극권의 장점은 신체건강 뿐만 아니라 정신건강에도 도움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점 때문에 전 세계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태극권을 수련하고 있지요. 고령화사회에 진입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경우 앞으로 태극권 수련인구는 더 많아질 것으로 전망합니다”고 말했다.

이찬 회장은 그러면서 한마디를 덧붙였다.

“일단 태극권을 해보시기 바랍니다. 직접 배워보시면 태극권의 좋은 점을 느끼실 수 있을 것입니다.”

태극권을 조금이나마 배워본 경험이 있는 기자는 이찬 회장의 말에 전적으로 동감한다. 태극권, 한번 배워보시기 바란다.


[* 이 글은 태마시스 팀블로거가 작성한 것으로 필자가 소속된 태권도조선에 먼저 게재 되었음을 알립니다.] 

[by 박성진의 무림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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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운동,태극권] 중국무술 태극권, 태극권 수련일기 - 간화 태극권 (24식) (Tai Chi Training diary)

    Tracked from 월풍도원(月風道院) - Delight on the Simple Life.  삭제

    이미지출처 : www.visitreykjavik.is 1. 기세 2. 야마분종 3회 3. 백학양시 4. 누술요보 3회 5. 비파세 6. 도권굉 4회 7. 좌남작미 8. 우남작미 9. 좌단편 10. 좌운수 3회 11. 좌단편 12. 고탐마 13. 우등각 14. 쌍봉관이 15. 전신좌등각 16. 좌하세독립 17. 우하세독립 18. 좌우천사 19. 해저침 20. 섬통비 21. 전신반란추 22. 여봉사페 23. 십자수 24. 수세 ---- 고쳐야 할 점들...

    2010/07/30 1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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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kungfu45  수정/삭제  댓글쓰기

    선배님 무진 우석입니다. 이런 거 있으시면 좀 같이 데려가 주시지...저 이찬 선생님 제자인데...ㅋㅋㅋ
    아무튼 고생 많으셨습니다. 저희 사이트도 좀 들리셔서 추천 좀 해주세요 추천 없어 죽겠어요

    2010/06/22 11:22

우리는 흔히 국내에 난무하고 있는 모든 무예들이 한국의 모태라거나 한국의 전통무예라고 말한다. 뿐만아니라 그 맥락을 우리 민족문화의 고유한 전통성이니 하고 역사속에서 그 뿌리를 찾고 있다.


우리 나라에서 각종 무예가 해방이후 단체들이 조직되고 사회적으로 가치를 인정받으면서 신체단련과 정신수양, 기술의 연마, 그리고 화랑도정신의 앙양 등으로 수련의 목적을 제시해 오고 있다. 

심지어 일본에서 전래된 무도역시 화랑도 정신을 뺀 나머지는 일본의 수련목적과 같을뿐, 일본무도의 수련목적과 화랑도정신이라는 그럴싸한 목적을 제시하고 각종 단체들이 창립되고 지금까지 유지하면서 이어져 온데에 대해 놀라움과 허술하기 짝이 없는 짜맞추기식의 무도정책이었음에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

대체로 오랜 역사를 가진 민족국가들은 그 민족의 전통사상이 있다. 중국은 인(仁)이나 도(道), 인도는 자비(慈悲), 일본은 신도(神道), 이스라엘의 경우는 시오니즘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정신은 무엇인가? 1970년대이전에만 해도 화랑도정신을 강조하다가 화랑에 대한 근원이 일본에도 있었다라는 일본의 연구발표가 있으면서 1970년대 박정희정권에서는 화랑도정신이 아닌 충무공정신을 강조하기 시작했다. 그 나라의 민족정신이 한 통치자에 의해 뒤죽박죽되는 경우를 우리는 경험한 것이다.

우리민족의 전통사상에 대해서는 유고, 불교, 도교 등과 같은 외래사상에 기반을 두고 있다고 단정하기는 곤란하다. 한반도라는 작은 땅덩어리에 우리 민족이 공유할 수 있는 사상은 없었겠는가? 과연 우리민족의 원동력 역할을 한 것은 무엇이었는가에 대해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우리 민족은 오랜 옛날부터 한반도라는 땅덩어리에서 그 나름대로의 사유방식이 있었으리라 보여진다. 이러한 환경속에서 나름대로의 고유한 문화가 성립되었고, 그 속에 정신적인 성향이 있었을 것이다. 그 중 하나가 '풍류'인데, 이 풍류에대한 어원은 최치원의 난랑비 서문에 "國有玄妙之道 曰風流"에 나타난다. 이 풍류에 의해 유고, 불교, 도교의 외래사상이 유입되어 융합되면서 한국적 형태의 전통사상이 새롭게 형성된 것이다.

그러나, 개화기에 서구사상이 유입되면서 우리민족의 정신세계는 큰 혼란을 갖게 되었고, 일제의 식민치하가 되면서 그 혼란은 더욱 심화되었다. 여기서 과거 유교, 불교, 도교, 서구사상, 일제의 식민지사상 등이 우리 민족사에 영향을 준 것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 속에서도 풍류라는 ?사상의 맥은 그대로 살아 숨쉬어 왔다는 것 역시 알아야 할 것이다.

우리의 정신사상이 깃든 무도의 이념접목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그것은 우리 무예가 우리 문화의 한 분야로 인식되어 오고 있으며, 전통사상의 형성이 한국적인 무도개발에 원동력이 될 것이다. 우선적으로 일본식 무도의 탈피는 떳떳한 한국적 무도의 틀을 만들 수 있으며, 후세에 부끄럽지 않은 한국무도인이 될 것이다.

아직도 일본잔재의 의식속에 무도를 지향하는 많은 사람들은 스스로 부끄러워 해야 할 것이다. 각종 무도대회를 보면, 충무공대회니, 화랑대회니 하는 식의 충무공이나 화랑을 언급하면서 충무공 사상이나 화랑사상을 언급하고 있는지도 의심스럽다.

이글은 2002년 초에 쓴 것으로 기억된다. 고맙게도 보관하고 있지 않았는데, http://cafe.daum.net/kumdo36 고구려검도관 카페에서 이 글을 보관하고 있어 다시 이 곳에 올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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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영상콘텐츠 소재로 무예를 선택하는 빈도가 늘어났다. 다양한 국가나 기업들의 지원으로 이루어지는 이 사업들은 앞으로 이를 시청한 우리 국민들이 무예에 대한 새로운 눈이 떠지길 기대해 본다.

하지만 몇가지 문제점이 많이 발견된다. 일부 제작업체들이 자문을 의뢰해 온 작품들을 보면 전문성이 결여된 허무맹랑한 무예사를 근거로 기획부터 잘못된 사례들이 발견된다.

일부 단체들이 주장하는 짜맞기 무예역사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가 하면, 우리가 보는 관점이 아닌 중국이나 일본이 보는 한국무예사를 반영하고 있기도 하다. 이러한 문제는 국내 무예사연구가 미흡한데도 있지만, 제작사들이 좀 더 깊은 관심을 가지고 접근하거나, 제작팀들의 연구노력이 부족한데 있다.

이러한 무예사의 오류는 지금의 일만은 아니다. 1950년대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가장 많이 접했던 신문에서도 말도 안되는 왜곡된 역사를 기사화한적이 많다. 대부분 무예가 삼국시대의 신라를 운운하는 등 외부유입무술일지라도 우리것이라고 주장하는 수많은 기사들이 우리 국민들에게는 무예에 대한 올바른 이해의 장애요인이었다. 

이러한 잘못은 정책을 수반하는 관계자들이나 학교에 이르기까지 그대로 반영되고 잇어 더욱 혼란을 가중시키는 경우도 발생하고 있다. 특히 무예관련학과가 개설된 대학에서 무예와 관련된 인문학관련 교과목이 많이 개설되어 있음에도 그 강의의 내용이 의심스러울정도다.

좌로부터 고려대 허인욱, 한국학중앙연구원 곽낙현, 서울대 박금수 선생

그러나 다행스러운것은 최근 일부 젊은 학자들이 새로운 사실들을 밝혀내고 있다. 한국무예사를 연구하고 있는 주변의 일부 연구자들의 연구물들은 우리 무예사에서 매우 중요한 사료들을 발견하고 해석하고 있다.

그 대표적인 연구자들은 고려대학교에서 한국사 박사과정을 전공하고 있는 허인욱선생과 한국중앙연구원에서 한국사박사과정을 전공하고 있는 곽낙현선생, 그리고 서울대에서 체육사 박사과정을 하고 있는 박금수 선생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무예를 전공하거나 지속적으로 수련하고 있는 연구자들이다.


이들은 40을 바라보는 나이로 열정적으로 한국무예사에 대한 연구에 몰입되어 있다. 이들보다 몇년 앞선 필자로서는 이들의 훌륭한 논문들을 볼때면 그래도 한국무예사에 대한 연구영역이 살아 있다는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

허인욱선생의 경우는 한국무예사에서 인물연구로 강한 입지를 만들어 가고 있고, 곽낙현선생은 조선시대의 도검기, 그리고 박금수 선생은 무예의 진법과 활용 등에 국내에서 서서히 부각되는 소장파 무예연구자들이라 자신있게 이야기 할 수 있다.

이외에도 현재 학위를 받고 활동하고 있는 일부 학자들이 있지만, 그들은 이미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 활동이기에 대외적으로 잘 알려져 있어 이 글에서는 생략한다. 이러한 젊은 연구자들이 있기에 앞으로 무예의 활발한 연구를 기대할 수 있다.

이들의 연구활동은 곧 빛을 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최근 국내 무도 관련학회들도 있지만, 이번달 유네스코 자문기구로 승인될 세계무술연맹은 산하에 세계무술아카데미와 세계무술포럼을 통해 왕성한 활동을 기획하고 있다. 다행스러운것은 이러한 젊은 학자들이 세계 무술학자들과 어깨를 겨루며 연구할 수 있는 환경이 될 수 있다는데 무엇보다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어느 분야든 젊은 연구자들을 육성하는 것이 그 분야의 미래를 보장받을 수 있는 길이 된다. 무예역시 이들뿐만 아니라 앞으로 많은 연구자들이 나오고, 연구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다면 한국 무예의 미래는 밝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환경조성은 정부정책도 있겠지만, 우리 무예계가 포용하고 연구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주는 것이 우선일 것이다.

앞으로 많은 연구자들이 열띤 한국무예의 논의와 토론이 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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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년 원화평감독이 만들과 성룡이 출연했던 취권(Drunken Master)는 국내에서도 폭발적으로 인기가 있었던 홍콩무협물이었다. 그 뒤 2탄 3탄이 나올정도로 코믹한 무술은 관객에게 흥미를 주고 있다. 

여기서 등장하는 취권은 창시자가 소화자로 알려져 있다. 취권은 상당히 부드럽고 허리의 유연함을 이용한 공격술이 많고, 자신의 하반신을 공격하는 적들이 많은 것을 착안해 도약기술이 많고 공중공격이 많은 것이 특징이다.  

무예관련 사이트들에는 '취팔선권'이라고 하여 팔선취권이라고 한단다. 성룡영화에 나오는 여동빈 등 8명의 이름을 딴 '취팔선'이라는 이야기다. 취팔선권은 홍가문에 실제 전해지는 투로가 있으며, 황비홍이 소화자에게 배운후 홍가권에 포함시켰다는 이야기도 있다. 취권은 육단취권, 노지심취권, 취나한권, 수영취, 무팔선권 등 다양한 문파가 존재한다고 하는데 아직 검증은 하지 못했다.

취권이 실전성은 있는가? 술을 마신상태(적당히)에서 취권을 행하면 더욱 강력진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러한 논리는 통각의 마비와 불시의 공격시 살기를 감출수 있다는 것때문에 주장하는 의견같다. 술을 마신후 격파가 더 잘될까? 그것은 검증의 검증이 필요할 듯 하다. 아무래도 술을 먹었으니 겁이 없어진게 아닌가 생각된다. 그러다 보니 파출소를 자주 방문하게 되는것이고..

그러나 취권의 창시자는 성룡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그가 영화를 만들기위해 창작한 권법이라는 것이다. 만약 성룡이 창시자라면 창작과정에서 아무래도 특정 권법의 몇개를 응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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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국시대 및 무예도보통지 등 들먹이져 전통 무술 주장하는 무술단체 난립

저마다 전통이라고 말하는 무술들을 언론들은 검증없이 내
보낸다. 이러한 보도는 언론을 믿는, 무술에 대해 잘 모르는 예비수련생들에게 사실처럼 다가선다. 이와더불어 가장 도덕성과 윤리성을 지녀야 할 무술인들 스스로가 언론앞에 확실치 않은 말들을 내뱉어 기자들도 바보로 만드는 경우도 많다. 


많은 무술들은 전통을 표방하면서 삼국시대와 <무예도보통지>를 들먹인다. 삼국시대에 살아보지도 않은 사람들이고, <무예도보통지>를 보며 대충 흉내 낸 것을 마치 집안대대로 내려오는 전수집안인냥 합리화해 자신들의 족보와 무술사를 왜곡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왜곡된 사실속에서 예비수련생이나 어린수련생들의 학부모들은 광고전단지나 신문기사를 믿고 수련공간인 도장을 선택해 피해자(?)를 양성하기도 한다.

대부분의 무술들은 과학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것이 많다. 무술이 지니고 있는 깊이와 효과에 대해 알지 못하는 수련생들은 도장에서 시키는데로 수련할 뿐이고, 그것이 몸에 좋은지 나쁜지도 모르고 스스로 몸을 맡긴다.

우리 무술계의 가장 큰 맹점은 이러한 문제를 안고 건강을 담보로 수련할 수 있느냐에 대한 과학적인 답변이 미흡하다는 사실이다. 실제 스트레칭정도만 해도 안하는 것보다 관절이나 근육을 사용함으로써 효과적인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몸을 혹사시킬정도로 과격한 무술의 동작들이 검증되지 않은 지도자에 의해 교육되고 있는 현실은 앞으로 10년 20년 동안 수련뒤 '건강'을 담보할 수 있느냐 없느냐는 누구도 알 수 없다.

무술에 대한 검증은 두가지의 경우가 많다. '전통'이라는 시간적 상황에서 자연 체득되고 변용된 무술들의 경우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있다는 부분과, 다른 하나는 첨단 장비를 이용한 현대식(?) 검증절차일 것이다. 왜 몸이 이롭고 해로운지, 어떤 방법으로 해야 하는지, 몸이 어떻게 변하는지는 우리가 먹는 음식과 다를 바 없다.

<전통무예진흥법>의 시행을 앞두고 정부는 갈등을 하는 모습도 여기에 있다. 400여개에 이르는 단체들중에 도장현황을 제대로 갖추고 있는 협회가 몇 안된다는 것이다.

또한 신생무예들이 10년, 20년정도로 그 무술체계가 건강을 위해 정당한 것이냐, 과학적이냐 라는 의문을 가지고 있다. 비슷비슷한 동작과 기술들로 구성되었는데도 불구하고 명칭이나 협회가 달리 운영되고 있다. 한 협회에서 파생된 것이 분명한데도 불구하고 서로 다른 무술이라고 주장하고 있다는데 있다. 이렇게 혼란스러운 단체들의 특성을 놓고 어느단체는 지원하고 어느 단체는 지원하지 않는다는 형평성 문제도 있다. 그렇다고 유사무술단체들의 헤메모니 싸움에 정부가 정비를 한다고 개입하거나 나설 수 도 없다. 


<전통무예진흥법>. 어느나라에도 없는 우리 무술인들에게는 소중한 법이 제정되어 시행된다. 이러한 제도적 기반은 앞으로 한국무예의 발전에 큰 교두보역할을 할 것이며, 무술인들역시 그동안 소외되었던 환경에서 관심의 대상으로 전환될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상황에서 무엇보다 무술인들이 스스로 자신들에게 떳떳해져야 한다. 그리고 수련생들에게 떳떳해야 하고, 무술계의 도덕과 윤리문제에도 떳떳해야 한다. 이와더불어 이에 대한 객관적인 시스템구축은 정부가 법을 집행하는 기관으로서 당연히 만들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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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 공식적으로 일본의 가라테가 선보인 사료다. 동아일보 1937년 8월 13일자 1면에는 종로에 있던 YMCA(중앙기독청년회) 유도부 도장에서 13일 오후 8시반 일본 동경에 소재한 임명관대학(리츠메이칸대학)의 야마구치 고겐(山口剛玄,1909-1989)을 초청해 가라테의 대의급(大意及) 실제시범을 보였다는 기록이 있다.

이 당시 야마구치 고겐(山口剛玄)가 시범보인 가라테 유형은 고주류(剛柔流) 가라테였을 것으로 보인다. 

고주류는 1860 년대 후반  히가온나 칸조(東恩納寛量)가 오키나와에서 중국 복건성으로 가 남파 소림권에서 14년동안 중국무술을 수행한 후 그것을 오키나와로 전했다고 한다.  히가온나는 오키나와로 전했다 무술은 후에 "那覇手"이라는 이름으로 부르며, 수제자였던 미야기 쵸준(宮城長順)에게 전승하고 다시 과학적이고 보편적인 합리성을 추가하여 체계화 한 것이라고 한다. 미야기 쵸준(宮城長順)은 1930년(소화5년) 중국 복건성의 소림권백학문의 전서인 <무비지(武備志)>에 있는 권법 8구인 '法剛柔呑吐'를 인용해 자신의 무술을 '고주류(剛柔流)'라고 명명하였다고 한다.

고주류의 특징은 느리면서 호흡을 강조하는 중국 남파권법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이 유파의 가라테는 최배달(최영의)도 수련했다는 기록도 있다.



야마구치 고겐(山口剛玄)

 

야마구치 고겐(山口剛玄) 수련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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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마을비리 전경환배경과 A씨의 유도원 관선체제

1988년 ‘새마을’비리가 연일 터지자 유도계는 긴장을 하게 된다. 5공 당시 새마을 비리의 주인공으로 부각된 전경환은 한국유도의 막후실력자로 군림하면서 유도회는 물론 유도원, 유도학교 등 유도계의 주요 현안에 관여해 왔다. 서울올림픽을 5개월여 앞두고 새마을비리가 불거지자 전 씨 체제 때 소외당했던 원로급 유도인사들은 유도회 집행부를 비롯한 유도원에도 불신을 갖기 시작했다.

전경환은 전두환 전 대통령의 동생으로 제5공화국이 들어서면서 막강한 힘을 발휘했다. 그는 1980년 9월 대한체육회 이사로 선임되면서 체육계와 직접적인 관계를 맺었다. 당시 체육계 일부에서는 전경환을 체육회 회장으로 추대하기 위한 사전포석이었으며, 한국체육행정을 좌지우지할만한 막강한 인물로 부상할 것이라는 추측이 많았다.

이런 전씨는 유도계에 직접 영향력을 미치기 보다는 당시 한국유도원 A 이사장을 통해 영향력을 행사했다. A씨는 유도학교 교장을 비롯해 관선체제에 있던 유도원에 5공 중기가 넘어선 1985년 2월 이사장까지 맡게 된다. 그는 당시 싯가 60억원이 넘었던 유도원을 내부분규를 틈타 관선 이사장직에 오르며 유도원을 접수한 것이다.

이후에도 각종 소송 등을 승소하며 그의 영향력은 지속됐다. 당시 A원장의 라인들은 유도회 행정에도 깊이 관여하기 시작했다. A원장은 유도회 실무 부회장으로 상당히 많은 권한을 가지고 있었으며 막대한 권력을 지니고 있었다. 1986년 1월 박용성 당시 OB사장을 회장으로 영입할 때도 영향력을 행사했다.

전씨는 새마을운동본부나 유도계를 통해 체육계에 영향력을 행사했다. 그 과정에서 숱한 비리가 불거졌다. 당시 이 비리들은 전씨 보다는 주변 인물들이 그를 내세운 것들이 많았다고 한다.

당시 언론들은 전씨를 마치 핵심인물로 떠받치며 허영심을 만족시켜 주는 대신, 기금조성, 호화판 체육행사 등을 통해 얻어지는 단맛을 즐겼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전씨가 내세운 사회체육정책은 당시에 체육행정에서 소외된 부분을 극복하려는 긍정적인 평가도 받는다. 그러나 막강한 정치적 영향력을 바탕으로 체육기금조성을 위한 성금강요나 막대한 국고낭비 등은 부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유도회, 유도원통합 역제안 나서지만 실패

88서울올림픽이 끝나고 1989년 8월 유도원의 이사장에 송학준씨가 선임된다. 이 집행부를 계기로 유도원이 5년간 관선체제에서 민선이사로 집행부를 구성하고 정상적인 이사체제의 운영에 돌입하는듯 했다. 신임집행부는 유도원의 그림을 바꾸는 전략을 쓴다. 바로 재벌그룹에 의지해 오던 유도회의 재정을 자립시키겠다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유도원이 건물임대료를 확보하는 방법으로 유도원 2층 건물을 헐고 그 자리에 20층에서 25층 사이의 건물을 짓는 것과 이 건물을 팔고 서울근교에 고층건물을 신축해 임대료를 유도회 운영자금으로 지원하겠다는 두가지 안을 제시한다. 결국은 부동산임대업을 통해 유도회의 자립을 지원하겠다는 의도였다.

하지만 이러한 유도원의 계획에 대해 유도회는 서서히 힘겨루기를 시도한다. 바로 유도원이 관선체제를 탈피하기는 했으나 5공 관선 이사가 포진된 것에 대해 고단자(6단이상)들의 불만이 크다는 점이 부각된 것이다. 그러나 유도원측은 이미 싯가 2백억원이 되어 버린 중앙도장을 쉽게 포기하지는 않을 태세로 맞섰다.

이런 분위기가 오고 가고 유도회측은 유도원과의 통합 법인을 통해 유도원 건물을 고층빌딩으로 신축, 임대료 등으로 재정자립을 하자고 제안한다. 이러한 제안에는 정부에서 대한체육회 산하단체들의 법인화를 시책에 힘을 얻으면서 유도회가 법인화될 수 있다는 근거로 설득력을 발휘한다.

1991년 1월 29일 유도회는 올림픽회관에서 정기대의원총회를 열고 유도원 흡수통합을 위한 특별위원회를 구성한다. 참석 대의원 22명은 임의단체인 대한유도회와 재단법인 한국유도원이 국내에서 별개의 단체로 알려져 있다는 점과 경기단체의 법인화시책을 내세운 정부의 입장을 반영한 것이라며 유도원을 압박한다. 이를 통해 유도회, 유도원, 중앙대의원 각 2명씩 6명과 유도고단자회 3명으로 구성된 9명을 특별위원회로 구성해 유도회와 유도원을 통합하기 위한 협의체를 구성하자는 제의를 한다.

1991년 2월 5일 유도회는 올림픽파크텔에서 9인 특별위원회를 열고 유도원 9명의 이사에 대해 자진사퇴를 권고키로 결의한다. 한국유도원에는 한명의 이사를 제외한 8명의 위원이 참석한 상태였다. 그러나 그 후 이 특위는 순탄한 길을 걷지 못한다.

1991년 7월 13일 특위는 유도회 이사로 4명의 유도원 이사를 영입하고 유도원도 유도회가 추천하는 4명의 유도인을 유도원 이사로 서로 교환하도록 결의하지만 통합의 실마리를 풀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결국은 유도회의 박용성 회장과 집행부가 사퇴하겠다는 배수진까지 치며 유도회와 유도원의 통합을 설득하지만 이 특위는 9개월만에 해체된다.

1991년 10월 22일 제5차 회의에서 끝내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이견만이 난무한 상태에서 더 이상의 회합이 필요없다는 결론을 내리게 된다. 9명의 위원중 5명이 참석한 이날 회의에서 유도원 이사장겸 유도회 부회장과 유도회 전무이사는 "양단체의 이사 4명을 교환 영입한다"는 특위 4차회의의 합의사항이 잘 지켜지지 않고 있는데에 대해 쌍방의 책임만을 물을뿐 해결의 실마리는 찾지 못하고 사실상 특위는 완전히 해체되었다.

(다음편에 계속)


2010/03/22 - [허건식의 무예보고서/무예보고서] - 파란만장한 유도중앙도장 이야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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