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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호무도 및 상황조치 훈련 시범중 유도시범을 보이고 있는 대통령경호실 (2003.5.29 연무관) 출처: 대통령경호처 홈페이지


청와대 경호처에서 무술을 중시한 것은 옛이야기가 되었다. 무술을 하는 많은 사람들이 대통령 경호원을 꿈꾸었고, 무술을 중심으로 경호관련학과가 개설되기도 했다.그러나 현실은 경호처에서는 무술에 대한 중요성이 하락했다.

청와대 경호처가 2010년도 경호관 공개채용에서 영어 공인성적표를 필수항목으로 채택했다고 한다. 연합뉴스에 의하면, 올해 공채에서는 영어 필기시험을 폐지하는 대신 서류전형에서 최근 2년 이내에 치른 토플(TOEFL)이나 토익(TOEIC) 등 영어 공인시험 성적표를 반드시 내도록 했다.
 
토익은 700점 이상, 텝스는 625점, 토플은 PBT 530점(CBT 197점, IBT 71점) 등을 기준으로 내세웠다고 보도했다. 그동안 상식 50문항과 영어 50문항으로 구성됐던 필기시험도 성적표 제출로 인해 상식 100문항으로 변경되었다.

또, 무술에 대한 자격증은 필수조건이 아닌 필기시험에 합격한 자에 한해 유단자나 국내외대회 입상경력자를 대상으로 별도의 측정을 통한 가산점을 부여한다고 한다.

무술을 수련하는 많은 수련생들은 무술유단자를 중심으로 경호원을 채용한다는 기존 인식과는 전혀 다르다는 점을 알아야한다. 또, 무술을 지도하는 지도자들 역시 대통령 경호원을 운운하며 수련생을 끌어 모으려는 술책도 있어서는 안된다.

하지만, 경호원이 지녀할 것이 상식과 영어가 우선이 되어야 하는 것에 대해서는 필자도 반대하는 입장이다. 무술의 수준. 즉 경호원이 지녀야 할 기본적인 능력은 대통령 등의 경호업무에 있어 충정과 판단력은 무술수련을 통해서 길러질 수 있다.

물론 많은 무술지도자들이 기능중심만을 강조하기는 하지만, 무술수련을 통해 경호원의 또 다른 자질을 평가할 수 있다는 것을 경호처에서도 알았으면 한다.

일단 이번 채용공고로 많은 무술수련생들의 경호원에 대한 꿈에 고민이 될 것으로 보인다. 지도자들은 솔직하고 현실에 맞는 지도를 했으면 한다. 거품같은 경호원의 세계를 상업적으로 이용하지 않기를 바란다. 

[by 허건식의 무예보고서 ㅣ www.woma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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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killerich  수정/삭제  댓글쓰기

    맞습니다..상업적인 냄새가..;; 흠..
    테마시스님~ 행복한 3월 시작하세요^^

    2010/03/01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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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 내게 한달을 수련했는데 나가서 사단법인을 만들어 총재나 회장 행세를 하는 모습을 보면 안타깝다. 그러나 전체 단체장이 모이는 자리에서 동등한 위치에 앉아 있는 제자에게 과거 한달간 있었던 사제간의 관계는 버려야 한다. 그 이유는 동등한 무술단체장의 입장으로서 존중해야 하는 현실때문이다"

이 말은 이미 우리 무술계에 스승과 제자간의 관계는 떠난 이야기처럼들린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날 수 밖에 없을까? 그 이유에 대해 필자는 여러 무술계 관계자들과 대화를 나누어 보았다.

그 제자의 입장에 대한 대답은 다양했다. 스승이 너무 거만하다. 스승밑에 제자들의 생활이 너무 엄격했다. 배워보지만 기술의 한계가 있다. 금전을 요구했다. 인생을 걸었지만 돌아오는 현실은 너무 허무했다. 하지만, 스승의 입장은 또달랐다. 내부갈등에 밀렸다. 금전적 유혹에 넘어갔다. 승단에 있어 한계를 극복 못했다. 결혼하더니 떠나더라. 이런 이야기들속에는 뼈가 있다. 대부분이 배고픈 무술계, 위계를 앞세운 무술계가 현실에 맞지 않는다는 점, 그리고 무술이라는 세계의 올바른 이해에 대한 부재 등에서 출발한다.

또, 지금 하나 둘 드러나는 무술계에서 복잡한 스승과 제자관계가 존재한다. 솔직하게 누구 누구에게 이것을 배웠고 어떻게 수련했다라는 솔직함보다는 자신의 과거를 숨기려는 신생무술계의 수장들의 모습은 온통 거짓에 거짓이 쌓이고 있다. 심지어 최근에는 전통무예진흥법이 등장하면서 자신의 조상까지 엉뚱한 사람으로 팔아 먹는 사람들도 있다. 자신이 배운 스승은 온데 간데 없고, 자신과 함께 수련했던 수련동료들을 비판하기까지 한다.

많은 세미나뒤의 뒷풀이에는 이런 복잡한 사제관계에 대한 현실을 듣게 된다. 가장 솔직해야 하고, 가장 그 무맥(武脈)을 유지해야 할 사람들이 무협지를 참고했는지 온갖 수련방법과 사이비 무도철학을 논하기도 한다. 이런 모습을 보고 최근 무술학계에서는 "무협지를 쓴다"고 비판한다. 모든 것이 자기가 최고라는 스승들역시 문제다. 자신의 과거를 잊은채 최고의 실력이었고 최고의 수련을 했다고 자신한다. 그러나 그 밑에서 수년간 수련한 제자들 눈에는 '한계'를 느끼게 만들었다 해도 과언은 아니다.


개념없는 단(段)체계 문제다

여기서 잠시 무술의 수련단계를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100년도 안된 승단체제이기는 하나 단(段)으로 이야기를 해 보자. 무술에서 최고의 단(段)은 9단이 설득력이 있다. 그러나 필자가 받은 명함에는 14단까지 보았다. 정말 개념없는 무술인인지 아니면 다시 태어나 4단을 의미하는 건지, 그것도 아니면 자신이 배운 무술의 합(合)인지 명함을 받고 상당히 당황한 적이 있었다.

동양에서 최고의 수라 일컫는 9단은 '입신(入神)의 단계'로 자주 이야기하곤 한다. 10단은 0이다. 오래된 무술단체에서는 10단을 9단이 세상을 떠날때 수여한다. 이런 무술계 정서가 있음에도 살아 10단이 존재하고, 단체를 만들면 아무 꺼리낌없이 9단을 쓰기도 한다. 그러나 9단이라함은 그동안 자신이 수련한 다양한 수련법, 그것도 여러 스승에게서 배우고 이를 기예화하고 다시 자기화했을때 가능하다. 자신만의 수련체계를 제자들에게 지도하고 이를 따르는 수련생이 있을때 무슨 무슨 유파(流派) 혹은 문파(門派)라고 한다.

굳이 나이로 따진다면 인생에서 모든 수련인생을 걸고 생을 다하기 전 무술의 9단이라는 말을 쓸 수 있다. 빨라도 70대, 80대가 되서야 9단이라는 아름다운(?) 자리에 서게 된다. 이런 수행과 수련을 통해 새로운 유파가 만들어짐에도 불구하고 우리 무술계는 잠시 2, 3년 잠적한 후 해성같이 신생무술이 등장한다. 그 사이 무엇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대부분 그 사이 짜집기 무술을 만들어 내 시판(?)해 왔다.

이런 현실속에 어떤이는 '경기화'라는 극단적인 방법으로 무술이 아닌 스포츠로 변신을 꾀하기도 하고, 엉터리 무술에 대한 제한적 환경을 극복하기 위해 정치인이나 유명인사, 심지어 연예인까지 등장시켜 세를 확장하기도 한다. 이러한 급변하는 현실이 무술계 스승과 제자간의 관계를 끊어 놓은 원인을 제공하기도 했다.


무술계 계보정리는 필요하다

자신의 무술수련과정을 알리는 것이 마치 자신의 무술이 정당성을 잃어버린다는 두려움에서 탈피해야 한다. 필자는 약 10년전부터 국내 무술계 계보정리에 취미아닌 취미를 갖게 됐다. 개인적으로는 태권도가 가장 먼저 접한 무술이고, 그 다음이 검도였다.

대학과 대학원시절 그동안 알지 못했던 다양한 무술을 수련생으로 있던 동료들을 통해 알 수 있었고, 그 후 계보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다. 특히 90년대 검도바람이 불던 때 신생검도단체들이 등장하고, 일본과 중국 등지에서 유입된 여러 유형의 검술과 검법 등을 접하면서, 무술계에서 일어나는 변화에는 계보작업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말도 안되는 계보의 혼선을 주는 이야기들을 많이 듣곤 한다. 같이 수련한 사람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니란다. 그러나 이런 거짓은 명백한 증거로 하나 둘 정리되고 있다. 사진과 신문기사,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의 증언이 그것을 입증해 주고 있다.

또, 계보를 찾을 수 없는 상황도 있다. 다시말해 스승이 없는 무술이 있다. 대부분 신화(?)를 쓰고 있다고 비판하고 싶다. 몸의 움직임은 어떤 특정 무술의 형태인데도 꿈이나 산신을 만나 배웠다는 허무맹랑한 설명을 하기도 한다. 아마 무협영화나 드라마를 보면서 잠이 들거나, 무협지를 보다가 잠이 들어 꿈을 꾼 것은 아닌지 의심해 보기도 한다.

필자가 하는 무술계 계보작업은 무술을 색출해 낸다기 보다는 스승과 제자의 관계, 그리고 새롭게 태어난 무술의 형태 등을 진실되게 찾기 위함이다. 근대이후 무술계가 연합조직을 만든 것은 1912년 10월 7일에 단성사 주 인 박승필이 유각권구락부(柔角拳俱樂部)가 최초다.

당시의 명칭은 유술, 씨름, 권투로 각종 행사를 단성사에서 했다는 기록도 있다. 어찌보면 유술과 권투는 외부에서 유입된 것이기는 하나 이때부터 우리 사회에 무술이 일반 대중에게 제공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여기서 부터라도 우리 무술계의 계보정리는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끝으로, 스승과 제자 관계를 부정하고, 자신의 무력(武歷)을 숨긴다면 무술인이전에 무술을 빙자한 사기꾼에 불과하다. 또, 어설프게 무술단체를 만들어 제자들을 끌어 모아 온갖 행사장을 떠돌며 행사비 챙기기에 급급한 최근 무술계 사람들을 보면, 과거 어렸을때 보았던 역전이나 시장 한구석에서 무술행위로 약을 팔던 무술계사람들의 아픈 과거가 떠오른다.

[by 허건식의 무예보고서 ㅣ www.woma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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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거짓은 언젠가 탄로난다 - 몸철학 팔극권

    Tracked from zhengzai  삭제

    이 글은 [by 허건식의 무예보고서 ㅣ www.womau.net] [태권도와 마샬아츠의 오아시스 - 태마시스 ㅣ www.taemasis.com] 에서 발췌한 글입니다. 과거에 내게 한달을 수련했는데 나가서 사단법인을 만들어 총재나 회장 행세를 하는 모습을 보면 안타깝다. 그러나 전체 단체장이 모이는 자리에서 동등한 위치에 앉아 있는 제자에게 과거 한달간 있었던 사제간의 관계는 버려야 한다. 그 이유는 동등한 무술단체장의 입장으로서 존중해야 하는 현실..

    2010/02/28 2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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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 입니다

    2010/02/23 10:43
    • BlogIcon 태마시스  수정/삭제

      아이쿠! 제가 실수를 했네요!! 수정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즐거운 하루 되세요.

      2010/02/24 00:16
  2. BlogIcon 아이프리드  수정/삭제  댓글쓰기

    현대 들어서 무술이라는 개념이 과거에 비해 'Light'해져서가 아닐까요? 과거에 비해 자신을 단련할 방법이나 정보도 쉽게 얻을 수 있는것도 한 몫 했구요.

    ps. 제목에 '살아져'가 아니라 '사라져'가 맞는 말입니다.

    2010/02/23 19:05
    • BlogIcon 태마시스  수정/삭제

      비단 무술 뿐만 아니라 과거와 현대 사이에 변화는 어쩌면 당연할 수 있겠죠. 하지만 모든 무술의 기본은 사제지간, 선후배간의 끈끈한 유대관계와 위계질서, 예의 등의 기본인데, 그 관계가 사라져 가는게 많이 아쉬움을 주고 있습니다. 저부터라도 정도를 지키도록 노력해야겠죠. (제목은 제가 실수를 했네요. 곧바로 수정했습니다. 감사합니다.)

      2010/02/24 00:19
  3. BlogIcon 무예24기  수정/삭제  댓글쓰기

    에휴 서로 에의를 안지키는 상황이니 그런거져죠 뭐

    2010/02/24 00:44
    • BlogIcon 태마시스  수정/삭제

      순수하게 그 무술 수련에만 전념 한다면 이런 일도 없겠죠. 하지만 권력에 눈을 뜨기 시작하면 선후배는 물론 사제지간까지 모두 필요 없어지는 현실이 되어가곤 하죠. 님의 말씀처럼 상호간의 예의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2010/02/24 01:18
  4. Racer  수정/삭제  댓글쓰기

    무술에서 정신수련의 측면이 점점 사라져 가는 현실이 무섭습니다. 인격의 수양없이 살인기술만 발달한다

    면 앞으로 어찌될련지 모르겠네요. 지인들도 어떤무술이 더 파괴적인가, 살상력이 강한가만 따지고 드니

    살벌한 세상입니다.

    2010/02/24 0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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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룡이 스스로 스승이라고 말하는, 중국 광동출신의 엽문(1893~1972)을 소재로 만든 영화로 2008년작 '엽문'이 있다.  이번에 톱스타 송혜교는 왕자웨이 감독의 ‘일대종사’에 출연한다. 이 이야기 역시 엽문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라고 한다.

갑자기 이소룡의 스승을 다룬 영화가 제작될까? 2년전 홍콩의 무술산업관계에게 들은 이야기로 짐작해 본다. 그들은 중국무술이 전세계에 보급되고 있어 중국무술내 산업의 경제적 파급효과는 상당하다고 평가하고 있다.

이미 1960년대 미국 헐리우드에 진출한 이소룡이라는 인물은 중국무술의 상징인물이 됐고, 서양사람들에게도 무술하면 이소룡이라는 인물을 떠올릴정도로 전설의 인물이 됐다고 한다. 그 후 등장한 성룡, 이연걸, 견자단 등 홍콩출신의 무술배우들이 스타로 이어졌지만, 무술수련자들에게는 아직도 이소룡에 대한 신비감과 그의 특기무술인 영춘권과 절권도에 대해 큰 관심을 불러오고 있다.

이런 이유에서 이소룡은 최근 영화뿐만 아니라 각종 무술쇼 등에서도 잘 인용되는 인물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소룡의 스승인 엽문에 대한 이야기는 또다른 관심을 불러 일으킨다. 그를 소재로 만들었다는 것은 그의 인물뿐만 아니고 영춘권에 대한 새로운 관심대상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영춘권은 여러 기원설이 있다. 하지만 최근 학계에서는 청나라 시대에 엄영춘이라는 여자가 창시했다는 것을 정설로 보고 있다. 엄영춘의 남편 양박주에 의해 보급되기 시작했고, 황화보, 양이제에 의하여 광동성과 복건성지역에 보급되면서 성행되었다.

특히 이들의 제자였던 양찬은 '영춘권왕'이라는 칭호를 받으며 당대의 고수로 자리하였다. 그는 일생에 단 4명의 제자만을 두었다고 한다. 그 중 진화순(陳華順)이 길러낸 제자 중 한명인 엽문이 영춘권을 세계화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하지만 중국이 혁명이 일어나자 엽문일파는 홍콩으로 옮겨 여기서 영춘권의 본거지를 만들었다. 엽문에게서 영춘권을 배운 이소룡은 영춘권을 기본으로 하는 절권도를 만든 것으로 유명하다.

영춘권은 어떤 무술일까. 영춘권은 군더더기 없기 간단하게 치며 위력적인 기술을 구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런 특성과 비슷한 것이 북파권법인 팔극권과 형의권과도 비슷하다. 근거리의 상대를 손기술 등을 통해 상대를 무마시키고, 상대의 손과 팔을 제압해 상대의 반격과 방어의 기능을 제한 시키는 기법이다. 이러한 제압이 이루어지면 마지막으로 상대의 몸에 강력한 공격을 해 제압하는 기술이다. 이런 과정에는 타격기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관절기나 급소지르기 등이 포함되어 있어 상당한 파괴력과 실전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영춘권의 형성과정을 보면 수많은 권법중에서 필요한 기술들만 재정립된 무술로 보인다. 근대시기 새로 정립된 기술들도 많았을 것이고, 해외에 보급되는 과정에서 변용된 것도 많았을 것이다.

송혜교가 출연해 이소룡의 스승을 다른 영화가 나온다고 하니, 2008년 먼저 개봉되었던  영화 <엽문> 에 대해 프로덕션에서는 다음과 같은 정보를 제공했다.



REAL INFORMATION 1. 엽문

“우리의 무술은 ‘인(仁)’을 기본으로 남을 헤아릴 줄 안다.
그러므로 너희 일본은 평생 이해할 수 없는 이치이며, 무술을 논할 자격이 없다!”


중국 광동의 불산에서 태어난 엽문(1893~1972)은 7세의 어린 나이에 무술을 시작하여, 16세가 되던 해 ‘영춘권’의 대가 ‘양벽’ 밑에서 수학하며 무술실력이 장족의 발전을 이룬다. 이후, 불산에 있는 다른 무인들과의 교류와 대련을 통해 그의 명성은 중국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그러던 중 중일전쟁이 발발하고 중국이 일본의 손아귀에 들어가자, 애국심이 투철했던 엽문은 일본군을 위해 일하기를 거부하며 가난한 생활을 자처하였고, 중국인들이 일본으로부터 자신의 몸을 지킬 수 있도록 자기방어 수단이 뛰어난 호신무술 ‘영춘권’을 가르치며 일본에 맞서 중국의 자존심을 지켜냈다. 해방 후, 홍콩으로 건너간 엽문은 개인에게 맞는 차별화된 교육 방식으로 홍콩 전역에 ‘영춘권’의 붐을 주도하였으며, 전통무술의 대중화에 앞장섰다. 특히, 당시 13세의 이소룡을 제자로 받아들여 훗날 이소룡이 가장 존경하는 스승이자 ‘절권도’의 기본원칙과 그 사상의 중심이 된 인물로도 유명하다. 겸손한 성품을 가진 그는 영춘권의 대가로서 절대 거만한 모습을 보이지 않았고, 홍콩에 자리를 잡은 후 영춘권과 무술계의 발전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다. 영춘권에 대한 끝없는 열정과 무술인에 대한 존경심은 물론 국가와 민족을 진정으로 아끼고 사랑했던 영춘권의 대가이자 중국을 대표하는 무술인으로 중국인들에게 여전히 존경 받고 있다.

REAL INFORMATION 2. 영춘권

“영춘권은 ‘엄영춘’에 의해 창시되어 ‘양찬’의 손으로 뿌리내려지고,
‘엽문’이 널리 번영시킨 무술이다.”


중국 명나라 말, 청나라의 압박을 피해 후난마을로 피신한 소림의 ‘오매선사’는 동네건달에게 결혼을 강요 당하고 있던 두부장사의 딸 ‘엄영춘’을 돕기 위해 여성의 신체에 적합한 무술동작을 가르쳤고, 무술에 타고난 재능을 가진 그녀는 이 무술을 직선적이고 간결한 호신무술로 승화시켜 자신의 이름을 딴 ‘영춘권’으로 탄생시킨다. 여성의 자기 방어를 위한 수단으로 만들어진 영춘권은 자세가 높고 부드러우며 실용성까지 겸비한 실전무술이다. 이후 그녀의 남편인 ‘양주박’에게 전수된 ‘영춘권’은 그의 제자 ‘황화보’와 ‘양이제’ 등에 의해 영화 속 배경인 중국 광동의 ‘불산’에서 새롭게 태동하게 된다. 계속해서 발전을 거듭한 영춘권의 기술은 영춘권의 왕이라 불린 ‘양찬’을 거쳐 그의 제자인 ‘진화순’에 이르러 제대로 된 권법으로 재확립된다. 그리고 그의 수제자인 ‘엽문’에 의해 누구나 쉽게 배울 수 있는 실용무술로 재탄생, 비로소 대중화에 이르게 된다. 여기에 ‘이소룡’의 인기를 바탕으로 세계적으로 알려지면서 중국을 대표하는 무술로 자리잡게 된다.
ABOUT THE MOVIE 1.

전대미문! 유일무이! 상상초월!
이소룡의 스승이자, 중국 무술의 전설 ‘엽문’의 감동 실화가 펼쳐진다!!


<엽문>은 ‘이소룡’의 스승이자, 중국 무술계의 전설적인 영웅 ‘엽문’의 파란만장한 일대기를 다룬 감동 실화. 무술 하나로 10억 대륙의 힘과 마음을 하나로 모았으며 전세계적으로 200만명 이상의 제자를 둔 ‘엽문’은 지금도 전세계 무인들에게 큰 인기를 누리고 있는 세계적인 명성의 전통무술 ‘영춘권’을 대중화시킨 인물이다. 특히, 그는 세계적인 우상이자 액션스타 ‘이소룡’이 유일하게 인정하는 스승이며, 그가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이소룡이 창시한 ‘절권도’가 표방하는 모든 형식과 규칙을 버리라는 원칙이 엽문의 사상과 정확히 일치하는 것만 보아도 엽문이 이소룡에게 끼친 영향력은 대단하다고 할 수 있다. 1930년대 최고의 무술실력을 가졌지만 사사로운 감정으로 무술을 남용하는 일이 없었던 ‘엽문’이 갑작스레 발발한 중일전쟁으로 일본의 억압을 받으며 고통 받는 국민들을 위해 ‘인(仁)의 무(武)’로 항거하며 시대가 원하는 진정한 영웅이 되기까지의 과정을 그린 영화 <엽문>. 이소룡의 유일한 스승이자, 맨주먹으로 민족의 자존심을 지켜낸 중국 무술계의 전설 ‘엽문’의 감동 실화가 지금 스크린 위에 펼쳐진다.

ABOUT THE MOVIE 2.

놀라운 스피드! 강력한 파워! 폭발적인 타격감!
‘리얼’을 넘어 이제는 ‘실전’이다!
2009년, 액션의 새로운 키워드 ‘실전액션’!!


<엽문>은 실존인물인 엽문과 그의 무술인 ‘영춘권’의 기본기를 컨셉으로 현실에서도 활용 가능한 100% ‘실전액션’을 자랑하며, 짜릿한 통쾌함은 물론 놀라운 스피드와 강력한 타격감으로 생생하고 실감나는 ‘실전액션’의 진수를 선보인다. 특히, 빠른 손기술을 기본으로 공격과 방어가 결합된 직접적이고 실용적인 근접 격투로 유명한 ‘영춘권’이 영화 <엽문>의 액션 장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기에 그 현실성은 상상을 초월한다. 실제로 현대의 이종격투기에서도 그 격투기술에 커다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영춘권’은 놀라운 속도의 손기술과 강력한 파워, 폭발적인 타격감 등으로 인해 영화 속 특별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또한, 각종 무술 대회 1위를 휩쓴 37단의 무술 유단자이자, 아시아 최고의 액션배우 ‘견자단’이 실제 엽문의 아들인 ‘엽준’에게 전수받은 ‘영춘권’을 기본으로 직접 펼쳐 보이는 액션 장면들은 견자단의 팬뿐만 아니라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의 매력에 빠져들 만큼 강력한 흡입력으로 완벽한 실전액션을 선보인다. 실제 ‘영춘권’으로 영화 <엽문>만의 특별한 ‘실전액션’이 주는 쾌감은 통쾌한 액션의 짜릿함을 뛰어넘으며 보는 이의 시선을 단번에 사로잡게 될 것이다.

ABOUT THE MOVIE 3.

홍콩 박스오피스 1위! 홍콩 금상장영화제 12개 부문 노미네이트! IMDB 관객평점 8.1!
액션과 감동을 넘나들며 모두를 열광시킨 <엽문> 연말 개봉 목표로 속편 제작중!!


<엽문>은 지난 12월 홍콩에서 개봉하여 중국 무술영화 부활의 가능성을 제시하면서 커다란 반향을 불러 일으켰고, 개봉과 동시에 홍콩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함은 물론 영춘권을 배우려는 사람들로 인해 ‘엽문 신드롬’으로까지 이어지며 홍콩뿐만 아니라 중국 등 아시아 전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특히, 홍콩 개봉 당시 <트와일라잇>, <마다가스카2>등 할리우드의 쟁쟁한 경쟁작들을 물리치고 개봉 첫 주 홍콩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하는 저력을 발휘하며 관객들의 폭발적인 지지를 이끌어냈다. 또한, 4월초 개최예정이며 홍콩에서 가장 권위 있는 영화제인 ‘제28회 홍콩 금상장영화제’에서 최우수작품상을 비롯 감독상, 남우주연상, 무술상, 음악상 등 총12개 부문에 노미네이트 되는 쾌거를 이뤄냈다. 이는 중국을 대표하는 전설적인 영웅의 탄탄한 스토리와 빠르고 강력한 실전무술 ‘영춘권’의 완벽한 재연, 실감나는 액션영상과 웅장한 음악 등 작품의 전반에 걸쳐 완성도 높은 웰메이드 작품으로 인정 받았기에 가능했던 것. 여기에 까다롭기로 소문난 IMDB에서 현재 관객 평점 8.1이라는 높은 점수를 기록하며 전세계적으로 열광적인 반응까지 얻어내고 있다. 작품성과 흥행성을 모두 인정받은 웰메이드 영화 <엽문>. 국내 개봉과 동시에 그 파란만장한 흥행돌풍을 이어가며 관객들을 시선을 사로잡을 것이다.

ABOUT THE MOVIE 4.

아시아 영화의 전설적인 최강 제작진들이 모여 만든 최고의 기대작 <엽문>!
완벽한 열연과 감각적인 액션, 감동적인 음악까지 환상적인 조화로 빛나다!!


중국을 대표하는 전설적인 영웅을 스크린에서 만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가슴 설레게 하는 영화 <엽문>. 빠르고 강력한 실전무술 ‘영춘권’의 실감나는 액션은 물론 웅장한 음악까지 어우러져 더욱 특별한 작품으로 완성되었다. 중화권 최고의 액션 장르의 달인 ‘엽위신’ 감독의 탁월한 연출은 물론 각종 무술 대회 1위를 휩쓸 만큼 뛰어난 무술실력으로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는 액션배우 ‘견자단’과 일본의 석호필이라 불리는 연기파 배우 ‘이케우치 히로유키’가 열연을 펼쳤으며, 80년대부터 홍콩 최고의 액션영화배우이자 살아있는 역사 ‘홍금보’가 무술감독으로 참여해 완벽한 조화를 이룬다. 여기에 <공각기동대>, <데스노트>, 한국 영화 <야수>, <남극일기> 등을 통해 일본 영화음악계의 거장이라 불리는 ‘카와이 켄지’가 음악감독으로 참여해 웅장하고 비장미 넘치는 OST를 완성시키며 가슴 벅찬 감동의 음악을 선사한다. 아시아 최고의 제작진의 의기투합과 열정으로 만들어져 더욱 완성도 높은 작품으로 탄생한 영화 <엽문>. 관객들의 가슴에 영원히 기억될만한 최고의 작품으로 이제 대한민국마저 흥분시킬 것이다.

PRODUCTION NOTE 1.

9개월 간의 무술 수련! 2개월 간의 ‘불산’ 답사와 인물 연구!
견자단, 최고의 열정을 불태우며 실존인물 ‘엽문’으로 완벽하게 변신하다!!


견자단은 <엽문>의 캐스팅 제의를 받자마자 최근 자신의 영화들에서 자주 선보였던 종합격투기(MMA)를 기본으로 한 ‘리얼액션’ 컨셉을 버리고, ‘실전액션’인 ‘영춘권’을 완벽하게 구사하기 위해 시간을 쏟기 시작했다. 그는 엽문의 아들인 ‘엽준’에게 직접 영춘권을 전수받으며 9개월이 넘는 기간 동안 집중적으로 이를 연마했다. 특히, 시간이 날 때마다 엽준에게 엽문의 행적에 대해 듣는 것은 기본이고, 인터넷이나 책 등을 통해 자료를 수집하여 연구했다. 또한 엽준, 엽위신 감독과 함께 생전 엽문이 활동하던 중국 광동의 불산을 2개월여 동안 드나들면서 당시 엽문의 삶과 혼을 직접 체험하는 등 영화를 위한 만반의 준비를 하였다. 뿐만 아니라 실제 엽문과 외모까지 비슷해지기 위해 10kg이나 감량하였으며, 결국 영춘권의 고수들도 감탄할만한 실력을 갖추게 되었다. 이런 그의 노력들은 촬영장에서도 계속되었는데 평소에도 신사답게 말하고, 침착한 자세로 걸으며 물 한잔을 마셔도 엽문이 쓰던 전통 찻잔을 쓰는 등 자신을 1930년대의 엽문으로 완벽하게 변신시켰다. 또한, 도끼를 사용했던 대결 장면을 촬영하던 중 도끼가 얼굴에 스쳐 실명의 위기까지 갔으나 응급처치만 한 채 바로 촬영에 임하는 열정을 보여 스탭들을 놀라게 하기도 했다. 이런 견자단의 준비와 노력 등으로 인해 그의 훌륭한 액션 연기는 스크린 위에서 빛을 발할 수 있었다.

* PRODUCTION NOTE 2.

폐허가 된 창고를 1930년대 공장으로 탈바꿈 시켜라!
대륙의 자존심을 지킨 ‘엽문’처럼 불가능을 가능케 하는 기적을 일으키다!!


<엽문>의 첫 촬영은 상하이 공업지구의 한 창고에서 시작됐다. 이 곳은 영화에서 엽문의 친구가 운영하는 면직공장으로 엽문이 중국인들에게 처음 무술을 가르친 장소이며, 그가 일본군에게 대항하여 민족의 자존심을 건 대결을 신청했던 중요한 촬영지였다. 그러나 촬영에 적합한 분위기의 공장을 찾기 어렵게 되자, 세트가 아닌 실제 공장을 짓기로 결정한다. 그 후, 영화 <엽문>의 미술팀은 기적과 같은 일을 일으키는데, 밤낮을 가리지 않은 3주간의 작업 끝에 폐허가 된 창고를 1930년대의 면직공장으로 완전하게 탈바꿈시킨 것이다. 여기에 아트디렉터인 ‘켄’은 당시 불산은 중국과 서양의 문화가 충돌했던 독특한 지역의 특성을 살려 공장의 기둥과 조명, 의자와 식기류 등에 서양 문화의 요소를 가미하는 등의 디테일도 놓치지 않았다. 또한, 일제강점기의 상황을 감안 건물은 매우 노후하고 낡아 보이도록 하였으며 얼마 되지 않는 참고자료가 전부였음에도 미술팀은 실제로 기계가 작동하는 공장을 만들어냈다. 그곳은 실제로 면 생산이 가능할 정도로 모든 것이 완벽했으며, 이 기막힌 작업을 목격한 <엽문>의 다른 스탭들은 그저 기적이란 말로 밖에 표현할 수 없다며 혀를 내둘렀다. 그것은 마치 민족의 자존심을 지킨 ‘엽문’의 애국심처럼 최고의 작품을 위한 스텝들의 불타는 열정이 있었기에 기적을 가능케 했던 것 같다고 엽위신 감독은 회고한다.

PRODUCTION NOTE 3.

전설적인 10대 1의 대결!
단 한가지 동작에 단 한 명씩만 쓰러뜨려라!
전통 무술 ‘영춘권’에 현대적 액션의 색채를 입히다!!


실제 ‘엽문’이 ‘영춘권’의 고수였기에 영화 속 액션의 대부분은 ‘영춘권’이 차지하고 있다. 기존의 중국 무술 액션영화에서 다뤄왔던 태극권, 취권 등과 같은 무술들은 멋진 액션 장면을 연출해내기 위해 실제보다 동작을 과장하고 리액션을 더 크게할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영춘권은 공격과 방어가 결합된 직접적이고 실용적인 근접 격투 그 자체다. 특별히 꾸밀 필요가 없기에 인상적이고 극적인 액션의 합을 짜는 것에만 집중하면 되었다. 무술감독 ‘홍금보’는 액션 장면에 영춘권이 지닌 무(武)의 컨셉과 동작 등을 최대한 액션의 합에 반영해 영춘권만의 차별화된 액션을 화면에 담아내려 노력했다. 엽문의 첫 번째 액션 장면에서는 계속되는 점프와 강한 리듬, 매끈하고 큰 동작으로 영춘권의 단순한 매력을 소개했고, 엽문의 전설적인 10대 1의 대결 장면에서는 단 한가지 동작에 한 명씩만을 쓰러뜨리는 모습을 선보이며 영춘권의 특징인 빠른 스피드와 강한 타격감을 확실하게 표현해 냈다. 또한, 일본 가라테 고수와의 마지막 대결에서는 영춘권의 화려한 공수 기술을 유감없이 만끽할 수 있는 최고의 하이라이트를 뽑아냈다. 이로써 아시아 최고의 무술감독 홍금보가 구성한 액션의 합이 견자단의 훌륭한 무술 연기에 녹아 들어 영춘권으로만 표현해낼 수 있는 차별화된 액션 장면들을 스크린 위에 펼쳐낼 수 있었던 것. 이는 무술 본연의 기본기를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최근 액션의 경향을 가미하여 중국 전통 무술 영화가 새롭게 나아가야 할 방향성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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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나무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보고갑니다. 좋은정보 감사합니다.

    2010/02/19 09:26
    • BlogIcon 태마시스  수정/삭제

      감사합니다. 더 좋은 정보 제공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태마시스-

      2010/02/24 0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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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술의 기원이 중국이라는 것은 세계 무술인들이 공감하는 부분이다.

이런 중국무술이 국내에서는 그리 인기가 없어 보인다. 긴 역사와 민간무술로 발전해 지금은 전세계 무술계의 가장 많은 수련생을 확보하고 있는 태극권 역시 국내에서는 소수의 수련생들이 집중해서 수련하거나, 건강을 위한 임시 프로그램으로만  운영되고 있다.


양가태극권의 Yang Chengfu

왜그럴까?

중국대륙에는 수많은 민간무술들이 존재했고, 그 민간무술은 사람과 사람, 마을과 마을에 의해 보존되거나 유지되었다.

중일전쟁이후 국민당이 공산당과 내전이후 대만으로 갔다. 일부 유명한 무술인들은 대만으로 가 활동하며 '국술'이라는 이름으로 활동을 하게 되고, 이들은 국내에도 많은 화교들이 인천과 여러 서변(국내에서 서해안주변 지역) 등에 정착하면서 일부인들이기는 하지만 중국무술을 하던 사람들이 있었다. 국내에 화교로 활동하던 중국인들은 대부분 무술을 생업으로 하기 보다는 중국집과 같은 중화요리점을 운영하거나 다른 상업을 통계 생계를 꾸려갔다.

이러한 중국인들의 해방이후 국내 유입은 우리에게도 적잖은 무술에 대한 영향력을 미친다. 이미 개화기뿐만이 아니고 일제시대의 광복군들도 중국대륙에서 무술의 영향을 받았었고, 대만을 통해서 받았다.

현재 한국무술사에서 조심스럽게 다루어지고 있는 근대 무술의 영향력이 만주, 대만, 일본이라는 세 지역에서 활동하던 국내인들의 무술수련경험과 해방이후의 활동을 추적하고 있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영향을 받기 시작한 것은 국내에 상륙한 중국인들에게 의해서다. 이와더불어 일본에서 유입된 유도나 검도, 가라테의 무도도 있다. 중국의 무술은 화려한 액션과 다양한 기술, 다양한 문파로 구분돼 어찌 보면 산만하다는 느낌이 있다. 반면에 일본무도는 해방이후 군사정부시절에 적합한 직선적이고 군대무술같은 획일성을 지니고 있었다.

이러한 양면성을 해방직후 직면한 국내 무술계는 중국의 문화혁명과 더불어 중국무술에 대한 인식보다는 일본무도를 선호하는 경향이 짙다. 또, 대한체육회에서 일본무도인 유도와 검도를 적극 수용하면서 중국무술에 대해서는 쿵후라는 이름으로 도장이나 보여주기식의 쇼로 치부된 것으로 보인다.

1990년 북경아시안게임에 우슈가 정식종목으로 채택되었지만, 국내 우슈계는 지금도 불황이다. 많은 무예단체들이 제도권에 들어가면 금방 대중화되고 성공할 것이라는 예측과는 전혀 다른 양상이다.

우슈의 이러한 문제는 우리 무술계에서의 경험들이 중국무술에 대해 쉽게 접근하지 못한 것도 있지만, 가장 큰 문제는 협회라는 개념보다 다양한 문파를 지닌 중국무술의 특성상 우수협회라는 통합적 개념의 무술협회의 운영이 어려운데 있다.

이렇다보니 보급의 과정역시 문파중심이거나 인물중심으로 전수되는 과정속에서 대중화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듯 하다. 또, 중국이 개방되면서 어설프게 중국에서 1주일 혹은 길게는 1개월정도 수련하고 국내에 돌아와 활동하는 지도자들때문에 지금도 중국무술이 왜곡되고 있지는 않나 생각해 본다.


과연 중국무술이 보잘것 없는 무술일까?

무술은 역사와 함께 변용되고 그 내적 가치가 극대화된다. 이런 면에서 중국무술들은 그 역사가 어느 무술보다 길다. 다양한 유형들이 존재하기도 하고, 수많은 시대적인 상황때문에 변용되기도 했지만 우수한 중국무술의 문파들은 그 내면의 철학과 사상이 깃들여져 있다. 특히 몸에 대한 경험이 축적되어 몸을 이해하는 학문으로도 불린다.

최근 동북아 무술을 통합적 개념으로 보자는 주장이 학계에 많이 등장한다. 같은 문화권에서 무술이 발전해왔다는 근거에서 나온듯 하다. 또, 신생무술들은 시대에 따라 변용되어 새로 만들어진 것들이라면, 그 과정속에는 한, 중, 일 무술들의 다양한 기법과 수련방식이 적용되어 있다는 점에서도 동북아 무술의 통합적 개념은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최근 전통무예건, 중국무술이건, 일본무도건 모두가 불황이다. 하지만 이 무술들에 매료되어 있고, 깊이 있는 지도체계를 갖춘 도장들은 도장이탈이 크지 않다. 어떤 무술이건 어느나라 무술이건 내 몸에 맞고 몸을 이해하는 무술이라면 생명력은 길 수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중국무술을 이해 못한다면, 우리 무예도 이해하지 못한다. 일본무도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역시 우리 무예를 이해하기 힘들다. 이런 관점에서 무술을 공부하거나 수련하는 사람들은 다양한 무술을 이해하고 관심을 가졌으면 한다. 

PS : 아침에 일어나 문득 생각나 두서없이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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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전젼짱  수정/삭제  댓글쓰기

    현재 종합 격투기의 유행은 많은 무술들을 대련의 장으로 끌어내고 있죠 그런 상황에 봉착하는 많은 무술들이 자신들의 형태를 잃어 버리고 맘니다. 싸움에서 승리를 이끌기 위해선 그런 형식들이 다 무너지고 마는거죠. 이렇게 투기와 접목 하였을때 중국 무술의 형태의 무너짐은 다른 나라 무술 보다 심하죠 그래서 중국 무술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지 않나 싶습니다. 그러나 영화에서 사용 되는 중국 무술은 오히려 중국 무술의 다양한 형태가 많은 이점을 보이고 있습니다. 중국 영화를 보면 액션의 아름 다움은 아직 다른 나라 무술이 따라오기 힘들다고 생각 합니다. 무술의 다른 한 면인 자기 수양의 면에서 보면 일본의 무술이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일본 무술은 실전성을 잃어 버리면서 자기 수양의 면을 많이 강조하게 되어 무도라는 말이 잘 맞는것 같습니다.

    2010/02/08 11:37
  2. 흠...  수정/삭제  댓글쓰기

    "무술의 기원이 중국이라는 것은 세계 무술인들이 공감하는 부분이다."

    전혀 동의할 수 없네요....레슬링도 복싱도 택견도 씨름도 무에타이도 펜싱도 인도전통권도 전혀~ 중국에서 유래된게 아닌데요... 무기술 같은건 세계 어느 나라에나 다 있구요...

    이 글 쓰신분이 그렇다는 건 아니지만, 이야기해보면 중국사람들은 이상하게 뭐든지 자기네가 원조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은것 같습니다....

    2010/02/08 13:52
    • ...  수정/삭제

      원조 따지는거 좋아하는건 우리나라가 세계제일.(하다못해 동네분식점마저.)

      2010/02/08 14:02
    • 흠...  수정/삭제

      설마 지금 "원조주물럭" 이나 "원조떡볶기" 같은 이야기를 하시는 건 아니겠죠 ^^

      음...원조 따지는 건 중국이 더 심한듯....뭐든지 자신들이 젤 처음으로 만들었다고 하는데야...

      한국은 "전통무술" 이라고 뻥치고 다니는 문제가 더 심하죠. 택견 씨름 국궁 무예도보통지 정도가 증명된 전통무술.... 태권도도 이제는 한국화된 전통무술이라고 해도 좋을 듯. 그 외의 무술들은 글쎄요, 문서기록이 없어서 뭐라 논의하기 힘들죠.

      2010/02/09 06:04
  3. BlogIcon 무슨외면??  수정/삭제  댓글쓰기

    너무 몇가지 무술에만 집중되어 있어서 그렇지 내가 홍콩에 살면 배우싶은거 배우고 살겠다
    한국 식상한 태권도 그만 배워으면해

    2010/02/08 1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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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술의 세계화에서 가장 심각하게 제기될 철학의 문제들은 무술의 세계화 본질과 정체성에 대한 물음이 될 것이다. 무술의 세계화의 본질에 대한 물음은 단순히 무술을 누가 어떤 목적으로 주도하고 있는가하는 물음을 넘어서서 그것이 어떤 의미를 갖는가를 묻는 것이다. 이것이 무술의 정체성에 대한 물음과 맞물려 무술의 세계화가 자칫 동양무술의 정체성을 절멸시키면서 진행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가 있다.

첫째, 무술의 세계화가 가속화되면서 여러 문화가 뒤섞이는 현상들이 나타나고 있다. 동양에서 보급된 무술들이 각국에서 그들만의 문화와 접목돼 새로운 신생무술들이 등장하고 대중화에 이르고 있다. 그리고 무술이 서구문화의 영향으로 스포츠화된 종목 역시 그 내면에는 서구스포츠의 경기규칙에 의해 지배되고 있다. 하나의 보편 문명(universal civilization)이 생겨나고 있다. 보편 문명이란 인류의 문화적 융합, 즉 세계 곳곳의 사람들이 공통된 가치관과 믿음 및 이상을 그리고 공통의 체제나 제도를 받아드린다는 것을 의미한다(이희재, 2000). 서구음악과 무술의 만남, 서구의 신체리듬에 맞는 무술형태의 변화, 그리고 합리성을 앞세운 경기규칙 등이 무술의 세계화속에 나타난 특성들이다.

이러한 형태들은 구지 ‘무술’로 해석하기에는 어려운 논리다. 일시적인 대중문화로서의 변화이지 한때의 유행으로 볼 수 있다. 한때의 대중적 유행이 세계 곳곳에 열병처럼 퍼진 사례는 역사 속에서 수 없이 많이 발견된다. 그러나 이것들이 심층적 구조를 바꾸지는 못했다. 어떻게 보면 무술도 대중문화의 일부분으로서 변화되고 있는 듯 하다.

무술의 세계화가 가속화되고 있는 시점에서 동양3국은 자신의 무술 정체성을 확보하려는 욕구가 강화되고 있다. 왜 이런 욕구가 발생하는가? 여기에는 무술의 정체성을 회복함으로써 무술의 세계화가 갖는 제국주의적 획일화에 대항하려는 논리가 깔려 있다. 서구문명이 반강제적이고 폭력적으로 수행해온 세계화에 대한 반론일 수 있다. 지리상의 발견이라 불리는 시기부터 서구는 전 세계의 다양한 국가와 문화를 식민화함으로써 자신을 중심으로 세계화를 시도해 왔다. 서구의 선진국들이 후진국을 돕는다는 미명하에 세계 은행(world bank), 국제통화 기금(IMF) 등과 같은 국제금융기구들을 만들어 세계 금융시장을 자신들이 주도하는 단일 체제로 재편한 것도 같은 맥락의 세계화 물결이었다. 무술역시 수많은 서구문명의 환경속에서 서구중심의 무술조직으로 변화하고 있고 다시 이러한 문화가 동양으로 유입되고 있는 가운데 많은 동양의 무술인들은 반항하고 있는지 모른다.

둘째, 무술에 대한 지적 재산권에 대한 원천적인 재 검토가 필요하다. 무술의 근원이 어디이고 무술에 대한 체계를 어느 나라가 만들었는가에 대한 것보다는 무술이 애초 각 나라와 민족마다 존재했다는 거시적인 기원론을 근거로 한다면 공동으로 지니고 있던 신체문화가 어떠한 수련체계를 가해 처음의 신체운동체계보다 더욱 좋은 결과를 산출했다면, 그 무술은 개간된 것이다. 특히 무술이 서구중심의 재생산과정에서 지적 소유권의 확립과 함께 무술지식의 사유화는 새로운 지식을 모두 사유화 할 정도로 가속화되고 있다.

무술에 대한 사적 소유권은 토지나 자본의 사유화와는 다르다. 어떤 무술을 만들었다고 해서 그것이 다른 무술의 지식 획득을 방해하지는 않는다. 뿐만 아니라 누군가가 자신의 무술을 독점적으로 활용해서 좋은 결과를 산출한다면, 그것을 사장시키는 것보다 낫다고 해야 한다. 같은 논리로 그것 때문에 아무리 많은 돈을 벌었다고 할지라도, 다른 무술의 기회를 박탈하지 않는 이상 부도덕한 것이 아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무술의 사적 소유에 대한 주장은 해당무술의 본질에 대한 완전한 곡해 위에 기초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하나의 새로운 무술이 창안되는 과정을 보면, 누구든 새로운 무술을 창출하려면 지금 까지 축적된 무술의 지식을 배우지 않고는 불가능 할 것이며, 이 배움의 과정에서 그에게 무상으로 제공된 모든 것을 고려해 보면, 그가 창안한 무술의 양은 대개의 경우 극히 적은 부분에 불과 할 수 있거나 대부분일 수 있다.

또한 지적 재산권의 보호가 혁신을 촉진시킨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는 상황에서 새로운 무술의 창출자에게 지나친 특권을 부여하는 것은 심각한 문제를 계속 야기 시킬 것으로 생각된다. 뿐만 아니라 최근 무술이 건강을 위한 소재로 확산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지적 소유권은 생명의 도구화라는 측면에서 심각한 우려가 있을 수 있다.

셋째, 무술이 스포츠화되어 가는 과정에서 철학은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은 무술이 지닌 기술체계와 정신적인 면에 있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심각한 영향을 미칠 것이기 때문이다. 무술의 겨루기식 경기화는 무술이 지닌 본래의 특성들 중 승부의 세계를 강조하고 결과론적인 입장을 고집한다는 측면에서 무술의 본질은 약화될 수 있다. 또한, 스포츠세계에서 나타나는 조직의 갈등을 고려해 볼 때 조직권력이 강화된 국가에 비해 다른 국가들의 가맹국의 권력은 약화된다. 말하자면 경제적 세계화에 의해 종전과 같이 효과적일 수가 없다. 이러한 관점에서 과연 스포츠화된 무술을 무술로 볼 것인가? 스포츠로 볼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이어진다. 엄밀하게 따지면 스포츠라할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무술들은 경기속에 모두 무술적 요인들이 포함되어 있다고 강조한다. 그것은 스포츠맨쉽이나 아마츄어리즘을 무도정신과 똑같이 보기 때문이다.

무술의 스포츠화는 경쟁이라는 본질에서 떠날 수 없다는 점에서는 여타 스포츠와 동일하지만 경쟁이라는 과정과 단련이라는 과정을 통해서 정신수양과 같은 교육적 기회를 마련해야만 한다는 점에서 스포츠와 구별된 무술경기만의 특성이 있다(최종삼, 1997). 무술경기는 서양의 일반적인 스포츠와는 달리 동양적인 전통위에서 발전하여 왔기 때문에 문화적 전통을 무도경기에 강하게 심고 있다. 무술경기가 갖고 있는 전통문화의 의식은 해당 종목의 국제화에 걸림돌로 작용하기도 한다. 무술경기는 아직까지 경기용품과 경기내용에서의 예법 등을 유지하려는 동양의 입장은 국제화를 위한 도약에 제약요인이 되고 있다. 그러나 국제화되면서 이러한 무술의 전통이 서서히 무너지고 동양적 특성이 점차 약화되고 있다.

스포츠에 대항하는 무술인들의 주장들은 대부분 수련의 과정을 중시한다. 서구문화의 융합따위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고 서구인들에게 강요하지도 않는다. 그 이유는 해당 문화권에서 자생적으로 그 환경에 맞게 형성된 것이라는 점에 대해 더 크게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예들은 일본의 무도에서 강하게 나타난다. 일본의 대표적인 무술이라 할 수 있는 검도의 경우를 보면 스포츠화에 대해 상당히 거부반응을 보이고 있다. 그 이유는 일본정신을 함양하는 것이 검도(劍道, Kendo)라는 것이다. 경기화에 대해서는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경기화를 하려면 경기화를 하되 일본의 검도계에 관여하지 말라는 주장을 펼친다. 상당히 국수적인 입장에서 무도교육을 하고 있는 모습이다. 반면에 중화민족의 무술이라는 입지를 강화하고 있는 중국의 경우는 다르다. 중화민족문화가 세계로 뻗어나간다는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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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는 다양한 문화를 가지고 있다. 이 문화들이 유럽에 전파된 것은 영국군에 의해서다. 폴로(Polo)역시 인도의 스푼폴로(Spoon Polo)를 유입해 개량화한 것이다. 폴로이외에 전세계적으로 보급된 것으로는 요가(Yoga)가 있다. 요가는 현재 각국에 보급돼 다양한 형태로 존재한다. 이러한 인도의 몸문화의 영향력은 생각이상으로 대단하다. 무술이외에 음식이나 향료, 차 등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검술이 유럽으로 보급되었다는 것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모르고 있다.

인도검술에 대한 자료를 무술공부의 후배이자 제자에게 건네받았다. 짧은 소개정도의 글이지만 여러분들에게 알린다. 인도의 경전 속에는 무술의 훈련원칙이 포함되어 있다. 인도의 브라만들은 공공장소에서 검술을 가르친 검술지도자도 존재했다. 인도의 검술 캇카는 여기서부터 유래된다.

캇카(Gatka, 펀자브어 : ਗਤਕਾ gatkā)는 인도 무술로 시크교 펀자브 지역과 연관된 이름이다. 이 검술은 나무 막대기로 만든 검을 사용한다(Williams, Rosetta, 2007). 19 세기에 인도에 체류중이던 영국인들이 검술연습의 수단으로 성장해 오다, 20세기 접어 들어 국제캇카연맹을 설립(1982)하고 1987년에 공식화해 지금은 캇카스포츠 또는 검무와 같은 예술적 활동을 하고 있다. 

인도의 캇카캠프 장면(출처: 국제캇카연맹 홈페이지www.gatka.de)

캇카는 인도의 근대학교에서 교육과정으로 사용되어 왔으며, 호신술체계를 강조하는 무술이다. 이 무술은 제2차 앵글로-시크 전쟁(1848-1849)을 계기로 금지령이 내려진 것이 있다. 하지만 1860년대 접어들어 새로운 형태로 영국군에 의해 수련체계가 개발되었다. 이것은 다시 1880년 유럽의 펜싱규칙을 적용해 변형되면서 유도, 중국무술 등과 함께 인도내에서 보급되고 있는 무도스포츠가 되었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경전에 있을 만큼 캇카는 시크교의 신앙적 성격을 강하게 적용하고 있다. 이러한 양식은 종교단체와 반종교단체간의 갈등을 초래하기도 했다.

캇카는 양손으로 두개의 막대기, 막대기와 칼, 검술과 방패 또는 기타 여러가지의 조합된 형태의 검술형태가 존재한다. 필리핀의 아르니스와 유사한 점이 있으나, 무기를 개인이 선택할 수 있고, 또 다양한 무기를 조합해서 사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Singh, Arjun, 2006)아르니스와는 구별된다. 

이러한 캇카의 예술적인 측면은 몸, 팔, 무기의 조화를 갖추고 있다는 점과 상대와의 리듬운동이며, 불안과 경쟁, 공격과 방어, 손, 발, 무기 등의 다양한 정신적 육체적인 수련법을 동반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국제캇카연맹(IGF)은 현재 베를린에 본부를 두고 있다. 하지만 영국에서는 BabFateh Singh Gatka Akhara를 동런던에 1992년에 설립해 현재 국제 Gatka기구 (IGO)의 설립에 기여하고 있으며 단체의 분화가 있다. 2002 년 gatka에 대한 대체 용어로 등장한 것이 Shastar Vidiya다. 이것은 Shastar Vidya 학교가 설립되는 등 활동을 펼치고 있다. 최근에는 시크교의 성서인 구루 그란트 사힙(Guru Granth Sahib)의 400주년 행사를 위해 캇카를 시연하기도 한다.

Singh, Arjun (2006). Gatka. Atlanta Martial Arts Directory.

Tyshler. D. A.(1996). Develop one's physical strength, Moscow; Russian State Academy

Williams, Rosetta (2007). Sikh Gurus Page 68. Har-Anand Publications

Zarrilli, Phillip B. (1998). When the Body Becomes All Eyes: Paradigms, Discourses and Practices of Power in Kalarippayattu, a South Indian Martial art.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이 자료는 선문대 강의시절 검도전공 학생이었던 길상욱선생에게 받은 자료다. 벌써 석사학위를 취득해 박사과정을 준비하고 있다. 이글은 길선생의 자료를 재구성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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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건식의 무예보고서 - 일본 2012년 전 학교에 무도교육 필수화 추진]

현대사회구조가 변화하고 있다. 도시화와 산업화, 그리고 핵가족화되면서 우리 사회는 인성교육이라는 영역이 확대되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우리 무예계에서 인성교육의 중요성은 최근 몇 년간 화두가 되고 있다. 일선 무술 도장들이 인성교육을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도장지도자들은 정책적인 뒷받침이 있다면 더욱 효과적인 프로그램으로 접근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인성교육에 무도교육이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이 그동안 일부 연구를 통해 발표됐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정책적 차원에서 무도교육의 필요성 등이 아직은 중요한 소재로 인식되지 못하는 실정이다.'방과후 학교'라는 제도를 두어 활성화를 추진하고는 있으나, 그 효과가 아직은 명확하지는 않는 실정이다. 이런 가운데 최근 일본 문부과학성에서 내놓고 시행중인 사업이 눈길을 끈다. 최근 몇 달간 각종 무도관련 세미나에서 발표자들이 공공연하게 말하고 있는 일본무도정책은 어떤 것인지 살펴보았다.


2012년 전학교에 필수화 추진

무도교육 필수화정책 모델중 정비조건 (자료출처: 일본 문부과학성)

일본은 2008년 '중학교 학습지도요령개정고시'를 통해 중학교 보건체육에서 무도를 필수과목으로 추진하고 있다. 이 사업은 우선 시범학교를 시작으로 2012년부터는 일본내 전체 학교로 확대시킨다는 방침이다. 이를 위해 2009년부터 지도자양성 확보, 지역 무술인재 활용 실천 지원사업 등의 세부 계획안을 제시했다. 특히 지방교육위원회 등이 지방교부세를 이용해 무술강습회를 실시하고, 무술도장을 안전하고 안심하게 수련할 수 있도록 보수나 신축을 공립학교의 경우 필수항목으로, 사립학교의 경우에는 도장을 보수해주고 있다. 또, 무도수련에 필요한 용품에 대해서는 3년간 지방교부세로 지급하도록 긴급사항을 만들었다.

사업의 규모는 2009년도 예산을 보면, 시설정비와 지도자교육비 등 국고지원이 약 50억엔(한화 약 610억원)이었다. 특히 국가 부담이 30%선이었던 기존의 교육정책과는 달리, 무도교육의 경우 국가차원에서 50%를 지원하고 있다. 이 예산은 기존 무도와 관련된 사업의 국가보조금과는 별도로 책정된 것이서 실제 학교무도교육에 순수예산만 1,000억원이 넘는 규모로 국고가 지원되고 나머지 50%는 해당 지방예산으로 책정돼 무도교육에 상당히 많은 예산이 투여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은 일본정부에서 무도교육의 중요성을 강하게 인식하고 있다는 것을 짐작케 한다.

원래 일본이 무도교육을 학교교육의 일환으로 권장한 것은 1980년대 중반부터다. 하지만 이 사업에 대해 1990년대 말에 실패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었다. 이런 결과에도 불구하고 무도교육을 강화한데는 최근 일본청소년들의 사회적 문제 때문인 것으로 학계는 보고하고 있다. 일본 가정의 대부분이 맞벌이 가정이며, 1인자녀를 두고 있어 청소년들이 사회문제에 그대로 노출되고 있다.

실제로 최근 청소년 범죄률과 이기적인 성격이 동반 증가하고 있어 국가적인 문제로까지 지적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문제를 두고 무도교육이 청소년들에게 체력향상 뿐만아니라 상대를 존중하고 일본의 전통문화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을 일본은 확신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또, 세계로 진출하는 계기가 많아지면서 “세계에서의 일본인 육성과 청소년들의 건전육성”이라는 무도교육의 최종목표를 두고 있다는 점에서도 일본무도를 통한 일본인의 자긍심을 청소년들에게 부여하겠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무도지도자들에 대한 배려도 정책에 반영하고 있다. 지도자들에게 부담을 줄이고 교육의 질을 높이기 위한 노력이 바로 그것이다. 2009년도에 무도교육 400여개의 시범학교에 학교당 3명의 지도자를 배치해 제대로 된 교육의 효과를 보겠다는 것이다. 특히 무도 교육 시범학교는 기존 2,000여개의 스포츠시범학교 보다 예산이 더 많이 지원되고 있다.

이외에도 교재개발 등 부수적인 사업뿐만 아니라, 지도자의 교육과 배치에도 큰 그림을 그리고 있다. 그 중 하나가 체육계열 대학에서 무도지도자 육성을 활성화하고, 지역도장에서는 무도를 보급하는 역할을 분담할 뿐만아니라 이에 대한 예산도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여기서 일선 지역도장에 대한 배려를 정책에 반영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최근 국내에서 시행중인 방과학학교로 인한 일선도장의 운영위기론이 대두된 것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글로벌사회, 무예의 다양성 정책반영되어야

이러한 일본의 무도교육정책에 대해 일각에서는 우려를 표시한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일본이 패망하자 미군정은 무도교육금지령을 내린바 있다. 일본의 무사도 정신과 무도가 결과적으로 전쟁에서 일본인들을 강인한 전범(戰犯)으로 양성케했다는 분석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때도 일본은 무도라는 말 대신 '격기(格技)'라는 말로 이를 대신해 왔다. 이런 과거사 때문에 지금 일본을 두고 세계 각국에서는 그들만의 무도를 통해 일본인의 정신을 부활시키려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도 한다. 특히 이번 무도교육의 필수화 정책의 일환으로 일본의 무도인 유도와 검도에 집중되고 있다는 점은 더욱 의혹을 제기할 만 하다.

그렇다고 이를 무작정 비판 할 수는 없다. 우리나라도 청소년들이 지니고 있는 국가에 대한 의식과 글로벌 사회에서의 리더십 등이 부족하다는 점에서 우리만의 무예교육을 강조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국내에서 태권도의 교육을 정규교과에 채택시키려는 노력을 보면 이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자칫 태권도만의 특정종목에 대한 배려로 볼 수 있지만 가장 선호하는 종목이 태권도라는 점에서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사항이다. 하지만, 태권도 이외의 전통무예에 대한 배려에도 정부는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글로벌 사회를 지향하면서 무도종목에 대한 다양성과, 이 다양성을 수용하지 못한다는 것은 앞으로 세계속에서 또 한국 무예발전에 있어 소극적인 정책만을 양산할 수 밖에 없다. 이러한 시점에서 정책 수용 이전에 많은 무예단체들도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태권도를 보면 혼란스럽다는 평을 받고있다. 하지만 어떤 체육단체들 보다도 눈과 귀가 열려있는 종목이다. 이러한 환경이 지금의 태권도를 만들어 낸 것이고 다른 어떤 무예보다 다양한 사업과 발전을 꾀할 수 있게한 계기가 된 것이다.

일본은 대한민국 보다 무도교육 정책에 더 심한 애착을 보이고 있다. 현재 한국 정부가 전통무예보다 태권도에 대해 더 큰 관심을 보이고 있는 것을 일부 무예계에서는 아쉬워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부터라도 우리 무예계가 많은 관심과 고민을 하게 된다면 또 더욱 효과적이고 글로벌한 무예교육을 위해 노력 한다면, 좋은 정책 소재가 될 수 있다. 이는 자연스럽게 무예의 발전으로 이어질 것이다.

[by 허건식의 무예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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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건식의 무예보고서 - 무술의 인식을 바꾸자]

태권도공원 후보지를 놓고 각 지자체들이 흥분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그것은 동양문화를 가장 잘 알려줄 수 있는 ‘무술’이라는 소재, 그것도 한국을 대표한다는 "태권도"에 대해 서구인들의 관심을 끌어 모으기 위한 것이다. 이런 관심들을 끌어 모아 지역경제를 살려낼 수 있는 최고의 수익사업을 창출할 수 있다는 기대 때문이다.

일반인들은 이런 무술이 지닌 엄청난 힘을 잘 모른다. 심지어 정치하는 사람부터 사회각계의 지식인이라고 하는 사람들마저도 무술은 단순히 쌈박질, 호신술로만 인식하고 있다. 심지어 체육학자들마저도 단순한 ‘체육활동의 일부’또는 "문화에 가기도 그렇고 체육에 가기도 그렇고 애매모호해서 힘들다"는 식의 풀이가 더욱 안타깝게 만든다. 하지만 중국은 달랐다. 무술을 경제논리로 접근했고, 전 세계 무술인들을 중국으로 모이게 했다.

중국이 개방 되기 전, 전 세계에 무술은 한국과 일본인들에 의해 보급되었다. 그전에 이미 중국무술이 서구인들에게 소개는 되었으나, “무술의 성지”를 알리지 못하는 이데올리기의 갈등으로 중국 땅은 굳게 닫혀 있었다. 이 사이 한국과 일본 무술지도자들은 무예, 무도라는 이름으로, 태권도와 가라데라는 이름으로 서구인들을 자극했다. 이 사이 중국의 무술은 “춤이다”, “실전성에 있어 미흡하다”, “체조다”는 식으로 치부해 버렸다.

하지만 지금 서구무술인들의 인식은 다르다. 심지어 한국과 일본지도자들에게 “속았다”라는 말을 하기도 한다고 한다. 그것은 중국이 개방된 후 거대한 무술시장이 중국으로 쏠리고 있는 모습에서 알 수 있다.

세계 무술인들은 중국으로 모이고 있다.

소림사는 관광객들을 위해 매일 정기 공연을 선보인다.


중국 중원(中原)은 무술을 상징할 만큼 전 세계 무술인들이 모여드는 곳이다.

지난 16일부터 20일까지 5일간 열린 제1회 세계 전통무술제가 열린 허난성 정저우시와 덩펑시. 거리 곳곳에 "무(武)"자 깃발로 가득한 축제분위기였다. 전 세계 62개국에서 2천1백 명이 넘는 고수들이 참가했다고 한다.

이 행사는 중국에 천하의 무공은 소림에서 나온다’는 말처럼 화려했다. 전통 무술 우슈의 본산인 소림사의 역사적 상징성을 잘 나타내주는 말처럼 말이다. 지금 소림사를 끼고 있는 덩펑시는 60여개의 무술학교가 운집해 있고 각국의 수련생을 포함해 3만 명이 넘는 수련생들이 무술고수의 꿈을 안고 모여 있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그들이 그곳에 머물며 무술의 발상지에서 기술과 정신을 동시에 습득하기 위한 이유는 무엇 때문인가? 그것은 소림사가 역사적 상징성으로 부각되었기 때문이다. 이번 개최된 세계전통무술축제에는 전 세계 무술인이 집결하여 기량을 겨루었으며, 관광객이 수십만 명에 이뤘다. 이는 소림사의 역사적 상징성이 없었다면 힘들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이야기다.

무술과 경제논리로 접근하고 있다

심지어 중국은 무술을 통한 경제논리로 접근해 가고 있다. 정저우시가 이번 세계전통무술축제를 경제 활성화를 위한 기회로 활용한 것이다. 이 축제기간동안 개발구 투자 설명회 등을 개최하였고, 미국과 일본을 비롯한 우리나라 등이 상하이와 광둥 등지에 2백30여명의 기업인들이 참가했다.

이런 분위기에 정저우시는 1백20여개 투자유치 프로젝트 목록을 만들어 배포했다고 한다. 또, 덩펑시는 숭산 소림사를 끼고 있다는 이유로 무술경제 효과를 보기위하여 중국 4대 고대서원인 숭양서원과 도교의 발상지인 중악묘도 있지만 무술의 성지로 부르는 소림사가 관광객 유치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그리고 미국의 한 기업은 지난 16일 소림사 주변 관광지 개발에 대해 1억8천만위안(약 2백70억 원)을 투자하는 계약을 체결했다는 말도 있다. 소림사 주변에 60여개 무술학교와 3만 명이 넘는다는 수련생들, 그리고 “소림(少林)”이라는 명칭을 사용한 호텔과 관광시설들까지 상품화 하고 있다. 이처럼 중국 중원에서 부는 무술경제는 문화자산을 활용한 투자유치 등 경제육성 기법을 적용하고 있다.

문화마케팅관계자들은 “무술은 어느 하나 버릴 수 없는 소중한 자산가치가 있다”고 평가한다. 영화, 애니메이션, 게임, 패션산업 등 다양한 영역을 개발하고 경제가치로 보기 때문이다. 경기화를 위해 발버둥치며 흥행을 유도해 왔고, '전통’이라는 굴레 속에 발버둥 치며 헤어나지 못하는 우리네 무술계가 이제는 새로운 인식으로 거듭날 때라 생각된다.

- 작성 : 2004.10.

2009/05/06 - [한혜진의 태권도 세상/해외 / 명소 탐방] - 무술 성지가 아닌 관광지 소림사
2009/05/06 - [한혜진의 태권도 세상/해외 / 명소 탐방] - "무술 달인들이 모여 사는 곳"
2009/05/06 - [한혜진의 태권도 세상/해외 / 명소 탐방] - '쿵푸 본산 소림사, 무술학교 수련생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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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killerich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읽고 갑니다^^.. 즐거운 하루 시작하세요^^

    2010/01/15 0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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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건식의 무예보고서 - 긴장감 도는 무예역사]
 
중국은 ‘동북공정’이라는 정책연구를 통해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보다 더 치밀하게 한민족의 뿌리를 자극하고 있다.


지난 2007 베이징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 개막식 태권도 시범 중 ‘태권도는 중국에서 유래되었다’는 해설을 놓고 동북공정이 시작된 것이 아니냐는 무예계의 우려가 있었다. 하지만 태권도계에서는 별 신경 쓸 일이 아니라는 식으로 넘어갔다.

하지만 최근 무예를 연구하는 교수들이 모이는 자리에 가보면 생각보다 심각할 정도로 중국은 무술에 대해 동북공정을 이미 시작했다고들 이야기한다. 그 사실에 대해 동북공정에서 다루고 있는 동북삼성은 우리 민족의 역사터이고 우리 무예의 역사가 존재하는 곳이라는 점에서 이미 무술의 동북공정은 시작된 것이나 다름없다고 볼 수 있다.


SBS뉴스의 한 장면
동북삼성은 과거 고구려가 지배했던 영토다. 그러나 당나라, 여진, 말갈, 거란, 몽고, 청, 국민당을 거쳐 현재는 중국공산당 정권에 의해 중국영토가 되어 있다. 이곳은 현재 중국의 지방정권으로 간주되고 있으며, 이곳의 역사는 중국역사의 작은 일부분으로 해석하고 있다. 이러한 논리는 공산주의식 사고로 당연할지 모른다. 공산주의는 인종을 비롯해 민족을 구분하지 않는 계급에 의한 체계다. 결국은 중국의 공산주의는 혈연, 인종, 종교 활동을 비롯한 사회집단이며, 현재 한족의 지배체계로 다른 소수민족의 역사와 문화는 한족에 포함되어야 한다는 논리로 보여진다.

“태권도는 중국의 권법에서 출발했다”, “합기도와 유도는 중국의 솔각에서 출발했다”는 말은 무술의 기술적 측면에서 중국무술계가 내세울 만하다. 문제는 이런 논리에 대해 우리는 어떻게 대처하고 있는가가 문제다.

중국이 주장하는 것처럼 어떤 무술이 어디서 오고, 어디로 전해진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우리민족의 수천 년의 역사는 온데 간데없고 “우리 땅에서 시작된 것이니 우리 것이다”라는 동북공정의 불도저식 사업을 어떻게 이해할 것이냐다. 미래의 한국보다는 과거의 동북삼성의 한민족역사를 없애는 정책으로 우리 뿌리를 잘라 중국화 시키겠다는 것이다. 동북삼성의 고구려 땅을 중국의 역사로 편입하는 순간 고구려벽화의 씨름은 중국의 씨름이 되는 것이고, 수렵도에서 말을 타고 활을 쏘는 것 역시 중국의 기사가 되는 것이다. 심지어 고구려의 무술이라고 주장하는 무술단체들은 동북공정이 성공할 경우 중국무술인 것이다.

전통무예진흥법은 식은 감자

이런 동북공정같이 엉뚱한 논리로 살아가는 국내 무예들도 많이 있다. 말도 안 되는 논리로 ‘전통무예’ 혹은 ‘민족무예’라고 주장하고 있고, 전통무예진흥법이 제정되면서 무예계의 일부 단체들은 ‘단체 살아남기’에 급급한 이기적 모습으로 앞 뒤 못 가리고 무예계를 좌지우지하려고도 한다. 수입무술을 놓고 우리 것이라고 외치고 있는가 하면, 갑자기 자신의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무예인으로 변신을 꾀하고 스스로를 전승자라고 주장하는가 하면, 생긴지 10년도 안된 무예들이 역사성이 미비하다보니, 가전무예로 돌연 변신한 경우도 있다. 개가 호랑이 가죽을 쓰고 호랑이 흉내를 낸다고 호랑이가 되는 것은 아닌데 말이다.

우리 무예역사의 뿌리를 흔들고 있는 동북공정에 대한 대처는 뒷전이고 오로지 자기 단체나 자기만 살아 보겠다는 이기적인 근성을 보이기도 한다. 어설픈 ‘전통무예론’을 내세워 정치권 실세들과 손을 잡고 무예의 정체성을 흔드는 한심한 무예인들이 있는가 하면, “아니면 말고”식의 시장잡배 같은 행동으로 정치권을 기웃거리는 사례도 많다.

지난 대선이후 처럼 여야가 바뀐 새 정부가 들어서면 정치권이 개입되기도 한다. 어설픈 무예인들은 정치인들의 학습을 통해 단체를 만들기도 하고, 통합하기도 하면서, 또 분파되기도 한다. 이런 일은 해방이후 정권이 바뀔 때마다 일어난 일이다. 이 과정에서 정권이 바뀔 때마다 등장하는 단골 무예와 무예인들이 있는가 하면, 집권당의 혜택을 보겠다고 집권당만 쫓아다니는 무예인들도 있다. 이를 두고 무예계에서는 자정의 소리가 높지만 도무지 막무가내다.

더욱 답답한 것은 중국이 무술에 대해 자신 있게 뿌리와 지역 론을 외치며 ‘무술의 원류는 중국’이라고 외치고 있는 마당에 우리 무예계는 밥그릇 챙기기에 급급한 한심한 처세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부역시 전통무예진흥법이 제정된 이후에는 도대체 관심이 없는 것인지, 그것이 아니면 당장에 긴급한 법이 아니라는 인식 때문인지, 그것도 아니면 태권도도 정비하지 못하고 있는 마당에 전통무예에 신경 쓸 시간이 없는 것인지 시원스러운 그림이 아직 나오지 않고 있다. 이렇다보니 지금 무예계마저 전통무예진흥법은 식은 감자로 취급되고 있다.

무예계의 관심, 노력, 대응 필요

이런 원인에 대해 한 무예계의 원로는 “무예계가 배고파서 그렇다”라고 말했다. 이런 배고픔은 우리나라 무예정책이 태권도, 씨름, 국궁에 대부분 지원되고, 나머지 무예들은 박해수준에 가까웠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해방이후 태권도에 집중된 정책으로 인해 태권도이외의 무예들은 설 자리도 없이 제도가 바뀔 때 마다 표류해 왔다. 정부가 태권도에 예산을 투여할 때 나머지 무예들은 정부 지원 없이 스스로 살아남아야 했다.

이제 정부는 서자취급만 했던 무예들에게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중국은 동북공정을 통해 스스로가 명품이 아닌 ‘짝퉁’ 역사를 만들 정도로, 동북공정은 이미 한국과 중국의 역사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이 전쟁에는 우리의 민족과 무예가 포함되어 있다. 우리의 몸짓인 무예가 중국의 짝퉁역사 때문에 근간이 흔들려서는 안 된다.

우리 무예계도 사리사욕을 버리고, 눈치만으로 일관하지 말고, 적절하게 대응을 할 수 있는 고민과 대책이 필요하다. 동북공정으로 인해 우리 무예의 역사를 빼앗길 수 는 없지 않은가. 정부가 관심이 없더라도 무예의 역사를 바로 알고 바로 잡기를 위해 무예계의 노력과 무예연구가들의 적극적인 관심이 있어야 할 것이다.

[동북공정(東北工程)]

동북공정은 동북변강역사여현상계열연구공정(東北邊疆歷史與現狀系列硏究工程)의 줄임말이다. 우리말로는 '동북 변경지역의 역사와 현상에 관한 체계적인 연구 과제(공정)'이다. 중국의 국경 안에서 전개된 모든 역사를 중국의 역사로 편입하려는 연구 프로젝트를 말한다. 무술은 우슈로 통합하는 과정에서 80년을 연구했다. 그 과정에서 우리 무예와 일본무도는 중국에서 유래된 것이라고 공공연하게 주장해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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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장민우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제 짱꺠들이 이런데에도 손을 쓰네...
    우린 문화재,유물,유적부터 무술까지 동북공정 당하고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손쓰는게 업네요...
    한심한 대한민국...

    2010/01/14 1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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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화기 일본에서 Kendo유입, 90년대 유사단체 증가 혼란

우리나라에서 검도는 근대체육의 태동기라 할 수 있는 근대초 개화의 분위기속에 일본에서 유입된 것이다. 우리나라의 개항시기인 1876년에 일본에서 다양한 서구식 혹은 일본식 체육이 유입되었다는 가설속에서 죽도형태의 검도가 이 시기에 무도적인 특성을 지니고 있으면서 해방이후 우리나라의 힘으로 단체를 조직한 대한검사회 조직구성이전인 1947년까지 존재했음을 부인할 수 없다.

해방이후 한국검도는 일제검도의 유형이 그대로 반영된다. 대한검도회 창립과 더불어 대한체육회에 가맹되게 되고, 그후 학교체육과 군경에서 활성화가 이루어진다. 하지만 1988년 올림픽이후 대중화가 이루어지면서 도장이 급증하게 되었고, 유사검도단체가 등장하기 시작한다.

이러한 유사단체의 급증에 대한 원인은 기존 단체인 대한검도회의 수련체계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가장 크다. 그것은 죽도검도수련-형의 검도수련-실전베기검도수련이라는 일본의 검도틀과는 달리 죽도검도만을 고집해 온데 있다. 

 근대체육의 태동기에 유입된 일본의 Kendo 

대한검도회가 죽도검도수련체계위주라고 하면, 유사검도단체들의 경우는 형의 검도와 실전베기검도중심으로 그 단체는 1996년 50여개가 넘었다. 이 당시 유사검도단체들의 명칭은 해동검도, 한국검도, 검선도, 화랑무예 검도 등으로 6개월에서 1년의 지도자과정을 통해 급조된 지도자들이 세를 넓혀 대한검도회의 수련인구만큼 증가하게 된다.

이 단체들의 수련내용은 도법 혹은 검법, 격검으로 구분된 것이 특징인데, 대부분 도법이라는 실전베기와 형위주의 수련으로 시작돼 단체가 성장하기 시작하면서 격검이라는 부분의 경기적 측면도 등장한 것이 특징이다. 그 후 2000년대에 접어들어 80여개의 단체가 생겨나고, 이후 현재는 100여개의 유사검도단체가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Kendo를 Kumdo로 사용하는 것, 설득력 없다

검도의 기원은 <한서(漢書)>의 劍道38編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오늘날 말하는 검도라는 용어는 일본에서 죽도의 발명과 함께 등장한 죽도경기를 칭하는 말로 국제용어에서는 ‘Kendo’로 정의되고 있어 국제용어자체에 일본에서 시작함을 명시하고 있다.

40여개국의 국제연맹가맹단체에서 유일하게 ‘Kendo’가 아닌 ‘Kumdo’로 표기하고 있는 나라는 우리나라 밖에 없다. 이것은 일본에서 정립한 검도의 원류가 우리나라라는 강한 집착에서 나온 것이다. 그러나 그런 강한 집착만 있었지, 과연 우리만의 독창적인 검도를 발달시켜왔는가라는 비판의 소리도 크다.

우리는 ‘Kumdo’라는 영문표기에 익숙해져 있다. 또한 당연히 ‘Kumdo’가 맞다고 주장하고 있으며, 끝까지 고집하고 있다. 그동안 인터넷상에서 네티즌들은 ‘Kendo’냐, ‘Kumdo’냐를 놓고 논쟁을 벌인 적이 있다.

유도가 우리나라에서 1980년대까지 ‘Yudo’라는 명칭을 사용하다가 국제용어 'Judo’로 명칭을 변경한바 있다. ‘Yudo’를 사용할 시기 유도계에서는 유도는 우리의 유술이 일본으로 건너가 다시 유도로 유입되었다는데 강한 집착을 보인바 있었다. 그러나 지금의 유도경기는 일본의 가노지고로에 의해 정립된 ‘강도관유도’라는 점을 인정하고 있다. 그리고 올림픽종목에서 역시 종주국은 일본이라고 명시하고 있어 거부할 수 없는 용어의 변화를 가져왔다.

그렇다면 현재 대한검도회의 검도는 'Kendo'를 사용해야 한다. 검도인 ‘Kendo’는 지금 무엇을 의미하는가? 일본 혹은 국제적인 입장에서 “Kendo’는 죽도경기를 말하고 있다. 검도라는 용어가 한서(漢書)에 나왔다는 근거를 대며 ‘kendo’로 해석 되어지지는 않는다. 우리말로 ‘켄도(Kendo)’가 아닌 검도로 한자 풀이가 될 뿐 국제적인용어는 ‘Kendo’가 맞다는 주장이 앞선다.

우리는 ‘Kendo’와 다른 것이 무엇이냐는 제3국의 입장 혹은 비 검도인들의 주장에 어떻게 답변해야 하는가? 그래도 ‘kumdo’다 라고 말한다면, 서양인들이 표현하는 “Japanese Fencing’이라는 표현도 맞다고 해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에도 지금의 ‘Polo’와 동일한 ‘격구’가 있었다고 해서 ‘Polo’라 하지 않고 ‘Kyeoku’라고 해야 하는가? 이러한 논쟁의 소재는 서구에서 일고 있는 동양무도의 연구방향의 확대로 인해 그들이 손대기전에 정리되어야 할 과제이다.

 수련환경 무시한 요판제거 

    원안은 도복하의의 요판 

도복의 문제는 해결되리라 생각된다. 그것은 국내에서도 나름대로 한국식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에 극복되리라 생각되지만, 그래도 우려가 되는 점은 있다. 지금의 도복은 일본인들의 전형적인 평상복에서 출발한 것이다. 우리나라 검도가 더 우월하고 긴 역사성을 갖고 있다고 한다면, 우리나라에서 수련하는 수련복은 한국식이 되어야 할 것 이다. 그렇다고 지금의 죽도경기에 한국식을 가미한다면 훗날 죽도검도의 역사는 일본에서 한국으로 전환된 것이라는 비판의 대상이 될 것이다. 훗날 우리의 치욕스러운 검도사를 만들 수도 있다는 것을 고려한다면 신중을 기해야 할 것이다.

죽도검도는 일본에서 고안된 것이다. 도복역시 일본 것이기에 이 경기화 된 죽도 검도를 할 때 일본식 도복을 착용하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국제화가 된다면 국제적인 취향으로 변화될 것이 뻔하다. 그것은 유도의 컬러도복의 논쟁거리로 우리는 미리 경험하고 있다. 따라서 지금의 일본식 죽도검도 경기에서 국제적인 취향으로 제시될 것으로 보인다.

몇해 전부터 국내 주요경기에서 요판이 부착된 도복착용을 금지시키고 있다. 일본색이 강하다는 것과 개량된 도복의 안정성을 설명하며 정해진 규정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검도수련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허리이다. 밸트형도 허리를 보호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벨트형의 경우 허리강화운동에 도움은 주지 못할 것이라는 한편의 주장도 있다. 이러한 요판의 문제는 충분한 임상 실험에 의해 실험을 공개하고 검증을 받았어야 했다. 일복식 도복의 개량문제와 한국식도복의 착용에 대한 주장들은 앞으로 검도복의 한국화 작업의 소중한 자료가 될 것이다.

심지어 지난 사회인검도대회에서 국내 선수들의 경우는 요판에 따른 금지조항이 적용되었으나, 일본에서 출전한 선수들의 경우는 묵인한 일이 벌어졌다. 모호한 심판규정이 아닐 수 없다.

도복은 수련자의 환경에 대한 최후의 자존심이다. 언제나 환경은 인간을 지배하려 들고 인간은 스스로 그 환경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검에 대한 수련에 있어 그 본질은 내,외적으로 도전에 대한 자아 정체감의 확립이라 할 수 있다.

도복의 의미는 자연으로서의 인간이 인간적 질서를 내세워 환경에 대한 가장 최선의 예우이다. 검을 수련하는 것은 환경과 또 다른 자극과의 싸움에서 스스로가 초월하고자 하는 것인데 수련차원에서 일본식 도복을 입고 수련하는 그 의미는 한국인으로서 지켜야 할 도리라 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경기화 된 죽도경기에 한국식 도복은 맞다고 생각 될 수 있는가? 모든 의견을 수렴해 문제를 해결해야 할 것이다. 

 편향된 수련체제 강조가 많은 유사단체 등장시켜

지금 국내의 모든 법인 단체들은 과거 특정 단체만이 누린 ‘단일체제’의 특성이 사라졌다. 김영삼정부 당시 많은 법인 단체들이 독단적인 운영 혹은 비리가 발생되었다는 것과 단체들의 자유경쟁원리에 위배된다는 이유에서이다. 이러한 결과로 사단법인가가 자유롭게 이루어져 법인으로서의 검도유사단체들이 급증했다. 국내 법인이 어려울 당시 해동검도의 한 단체는 미국에서 법인을 받았다.

근본적으로 국내검도의 다양한 단체형성은 기존 검도계(대한검도회)의 지나친 죽도경기위주의 오류에서 나타난 것이라 할 수 있다.

대한검도회 이외의 단체들이 대한검도회의 검도와 상반되는 논리를 펴고 있는 것은 크게 두가지다.

첫째는 ‘탈(脫) 일본검도’에 있다. 반일 감정이 어느 민족보다도 강한 우리 사회에서 ‘탈일본검도’라는 이슈는 검도 동호인들로 하여금 신선하게 다가섰고, 많은 검도인구를 확보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그러나 이단체들의 특수한 형태나 역사적 논리의 난해함, 그리고 불분명한 지식체계의 난립으로 이한 문제가 야기되었다.

둘째는 죽도위주의 검도가 아닌 진검 수련에 큰 목표를 두고 있다. 검도가 다른 무도와는 달리 정신적인 수련활동에 도움을 준다는 기존 사고들을 죽도가 아닌 진검 수련 중심이 일반인들에게는 많은 호기심을 불러 일으켰다. 이것은 기존 대한검도회에서 진검수련의 여부를 놓고 많은 갈등을 일으키던 가운데, 일선 지도자들이 대부분 경기 위주의 죽도검도에는 기량이 우월하나 진검 기능에는 미흡하다는 부문에 사설 단체들의 검도수련매력은 큰 효과를 초래하였다.

이미 국제적인 보급과정에서 오는 죽도 검도의 본질 규명에 있어 한국 것이 아닌 일본 것 이라는 정통성이 고수 된 것은 이미 인정된 사실이다. 이러한 일본성향에 맞서 대한검도회내에서도 개선의 의지, 즉 한국화 하려는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러한 의지는 쉽게 결심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탈일본화의 정책과 통합적 의미로의 단체육성이 과제

수련체계 개선을 위하여 탈일본화와 진검 중심의 수련과정에 대해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먼저, 탈일본화의 정책적 방안은 없는가? 이미 검도의 종주국인 일본은 ‘검도의 올림픽화’를 거부하고 있는 층이 강하다. 그러나 우리나라를 비롯한 여러 검도가맹국들은 ‘경기화추진’과 ‘올림픽정식종복채택’이라는데 긍적적인 입장을 제시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태권도의 한국화작업에 대한 선례가 있다.

태권도가 '탈 공수도' 혹은 '탈 가라데'를 표방하고 한국화작업에 대한 많은 노력을 해왔고, 지금도 올림픽의 정식종목채택으로 인해 많은 변화와 노력을 해오고 있다.

우리검술의 뿌리를 복원하는데 노력해야 하고, 우리 검도의 본질을 파악하는 것이 시급하다. 여기서는 대한검도회의 검도가 정통성 콤플렉스에서 벗어나면 자기우월성과 비전성, 철학성을 지나치게 강조하지않게 되고 순수하고 본래적인 전통검도의 의미가 성립될 것이다. 이러한 토대위에서 민족적 자긍심으로 우리의 전통검도를 기를 수 있다.

또한 전통검도라 이야기할 수 있는 기준이 무엇인가를 밝혀야 하고, 전통의 바른 해석을 통해 생명력을 갖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특히 우리의 몸짓이 무엇이고 그 기능을 후대에게 올바르게 전수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밝혀야 할 것이다.

대한검도회에서는 여러 사설단체들을 더 이상 방관할 수 없으므로 대한검도회내에 활발한 검법연구와 더불어 조직적인 학회 및 정부기관이나 대학기관과의 책임있는 단체로 급부상하면서 여러 사설검도단체와의 폭넓은 의견교환 등으로 조직을 제정비하고 학회를 발족시켜 전통검도를 활성화화 시키는 방안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전통적인 검법은 문화적인 차원에서 보전하고 존속시켜야 하며, 경기 검도는 스포츠로서 지속적인 발전을 모색해야 하는 이중적인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 사회단체들에게도 대회규칙이나 공통적인 법률을 일률적으로 적용하고, 해당 단체나 도장들은 자율적인 차원에서 고난도의 동작이나 독특한 형 등을 발전시켜 여러 단체들의 검증을 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

예를 들면 검도라는 모든 단체들은 <무예도보통지>와 같은 내용을 기본적인 모델로 삼아 기본자세나 동작을 개관적인 입장에서 심사하고 각 단체의 특성을 살린 전문실기를 평가하는 이중적인 기준이 그 예이다.

죽도경기의 국제적 취향으로의 변모를 갖추어야 한다. 현행 죽도 경기의 복장,용구,시합규정은 일본식의 방법으로 일본을 상징하는 무도경기의 색채가 강하다. 죽도경기의 세계화를 위해서는 국제적인 취향의 복장과 용구, 그리고 시합규정의 합리화에 맞게 개선해야 할 것이다.

현재 대한검도회에서 죽도경기 위주의 체제에서 탈일본화의 체제국축을 위해 함께 노력해야 할 것이 바로 수련체계의 구체화다. 이미 일본에서 죽도경기이외의 진검수련에 대한 비중을 높이고 있다는 것은 기존 무도경기인 유도, 태권도, 검도(죽도경기)가 서양스포츠의 경기룰을 모방한 방법을 채택하고 있는 반면에, 한편에서는 무도특성을 살린 평가기준에 의한 경기방법이 채택되기도 한다. 그것은 무도의 본질 계승해 나아가려는 의도가 크다.

예를들면. 태권도의 품새경연대회의 경우 겨루기 위주의 경기에서 표연(방법에 의한 심사기준을 채택한 예라든가, 우슈의 경우 표현경기와 산타(겨루기)가 있듯이 검도의 경우도 검도의 본질을 살리고 창작성을 도모하기 위해서는 진검의 표현연기나 실전베기 경기가 실현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의 죽도경기위주나 일본의 죽도경기와 형위주를 탈피하여 앞으로는 죽도경기와 검도의 본질에 접근하는 베기까지의 구체적인 수련체계가 이루어져야할 것이다. 또한 무도가 경기화되면서 경쟁을 떠날 수 없다는 이론이 있듯이 겨루기와 표연의 연무대회는 앞으로 검도경기가 새롭게 반영해야 할 중요한 과제라 여겨진다. 이것은 기존에 죽도경기 위주의 탈피와 함께 진검수련의 체제를 만들어내 우리나라 검도와 일본검도의 특성을 확실히 구분할 수 있는 계기가 될것이다. 뿐만 아니라 세계각국의 고유검술의 인정과 함께 한국고유의 검술을 세계화시키는 노력도 병행해야 할 것이다.

국내의 많은 검도단체들의 난무는 다양한 원인이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검도라는 독립적 운동의 가치를 육성하려는 의지가 중요하다. 이러한 문제해결은 지나친 자기우월주의에 빠진 단체들의 과욕을 저버리고, 상업성을 배제한 관심이 중요하다.

해결의 실마리는 국가에서 정책적인 지원이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중국과 일본의 경우 정책적으로 지원육성하는 무도정책과는 달리 우리나라의 경우는 경기위주의 무도스포츠 육성에만 치우치고 있으며, 전통무예라든가 국내에 산재해 있는 각종 무도단체들을 외면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문제는 산만한 무술단체들이나 검도단체들 스스로가 체계화시키지 못하고 정리되지 못한 상황에서 더욱 문제시되고 있다. 이러한 가장 큰 원인은 상업성에 있다. 상업성의 배제는 국가의 정책적 지원이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대만의 경우나 중국의 경우 중앙위원회를 두어 각 유파의 무술을 정리하고 보존하는데 노력하고 있고, 일본의 경우는 교육적 차원에서 대학과 각 학교에서 정식과목으로 채택되고 있거나 각유파의 활동을 인정하여 '무도제(武道祭)'를 유치하는 것을 볼 때 국내의 무도는 열악한 환경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열악한 상황에서 각 단체들의 혼란은 정책의 배경에서 멀어지고 있다.

한국에서 100여개의 검도단체들을 통합관리하는데는 문화관광부의 개입도 필요하다. 경기위주의 스포츠로서의 검도에 대한 장려도 중요하겠지만, 이것은 스포츠종목으로서 엘리트선수육성체제에 불과하며, 문화의 한 부분으로서 검도의 장려가 필요하다. 특히 각종 단체들을 관리하는 중앙위원회의 조직이 필요하며, 각 단체들은 자기우월주의에서 탈피한 유사검도의 통합과 지식체계의 설계에 적극성을 보여야 할 것이다. 또한 교육기관중 하나인 대학의 전공과정에서 검도의 대중화를 촉진하고, 여러 검도인들의 문화사업에 도움을 줄 수는 환경을 개방해야 할 것이다.

최근 ‘전통무술진흥법’이 발의되었다. 이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게 되면, 대한체육회가맹단체 이외의 무술종목을 보존 육성한다는 취지다. 1996년부터 생활체육지도자 종목에서 제외돼 자율경쟁체제로 두었던 각종 제도권이외의 무술들이 10년이라는 시간뒤에 다시 평가를 받게 된다.

구체적인 검도에 대한 수련체계구성이 중요하다. 1980년대 전일본검도연맹의 수련체계는 검도의 기본원리를 기∙검∙체일치에 두고 있다. 이 수련을 기초과정으로 본 것이 죽도검도인 'Kendo(劍道)'라 한다. 이후 형의 검도라 일컫는 ‘Iaido(居合道)’가 있고, 형의 검도수련의 완성도에 따라 실전베기술인 ’Battodo(拔刀道)‘가 있다. 이러한 수련체계는 “검의 이치를 배운다”는 일본검도의 특성으로 자리잡고 있다.

한국에서의 수많은 검도단체들은 이러한 수련특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단지 각 단체별로 분리돼 수련되고 보급되고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기검체일치의 수련-형의 검도-실전의 검도라는 수련구조를 충분히 결합하여 재구성할 수 있을 것이다.

* 작성시기 : 2005년

[by 허건식의 무예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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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문화 주권과 언어적인 전통을 고려해야 합니다.  수정/삭제  댓글쓰기

    각 나라마다 문화적 언어적 전통을 고려해야 합니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나라 신문지상에서 해당 국가의 발음으로 고유명사를 표기하기 시작했는데,
    예를들면 중국의 수도는 북경, 일본의 수도를 동경이라고 했었던 것으로 아는데 어느 순간에 베이찡(페킹), 토쿄로 바뀌었더군요.
    그리고 임진왜란시 일본 침략장수였던 가등청정(加藤淸正)이 언제부턴가 가또 기요마사로 바뀌었고,
    그러더니 모택동이 아니고 마오쩌뚱으로 바뀌어서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일본"이라는 국가명은 왜 닛뽄이라고 표기하지 않고, 일본 국왕은 왜 텐노오라고 표기하지 않고 일왕(or천황)이라고 표기하고, 로만 카톨릭의 수장인 pope는 왜 "포우프"라고 표기하지 않고 교황이라고 말하며, 로만 카톨릭의 경전은 왜 "바이블"이라 통칭하지 않고 성서라고 부릅니까?
    (제 생각에는 성서는 일반명사라고 생각하는데, 이것을 바에블에만 갖다 붙쳐서 고유명사화된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기독교관련 단체나 조직에서는 성경이라 부를지라도 일반적으로는 기경(基經)정도로 족합니다. 동일한 관점에서 하나님이 아니라 야훼라 불러야 할 것입니다. 논어도 성경이며, 불경도 성경인 것입니다. 유사한 관점에서 일본왕을 천황이라고 표기하지 않고 일왕이라는 우리의 일반적인 표기법으로 표기한 것은 잘 한 일입니다. 천황이라는 말은 일본인들의 주관적인 관점이 녹아 들어가 있는 표현인데, 일왕이라는 표현은 객관적인 표현인 것입니다. 이것들은 다른 주제라 다음 기회에...)

    언어 환경은 우리나라의 주관적인 표현인 것입니다. 해당국가의 발음을 참고할 수는 있겠지만, 불편을 감수하고 외국발음을 따온다는 것은 문화적 주체성을 잃어 버리는 일입니다. 우리의 언어 문화로 볼때는 해당국가의 발음이 아니라 우리의 한자발음을 그대로 읽어야 맞다고 봅니다.

    다른 나라의 예를 보면 오스트리아의 수도는 오스트리아 말로는 빈(Wien)입니다. 그런데, 영어로는 비엔나(Vienna), 체코어로는 비덴(Videň), 헝가리어로는 베치(Becs)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북경,동경이라고 말했던 것을 베이찡,토쿄라고 말하는데... 참 한심한 일입니다. 만일 요즘의 생각대로라면 세계 어느 나라든 오스트리아의 발음을 존중해서 "빈"이라는 발음이 나도록 표기해야 할 것입니다. 이런 예는 수도 없이 많습니다.

    이것은 정말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언어문화(습관)으로는 우리의 전통적 언어습관대로(한자발음대로) 발음해야 맞다고 봅니다. 일본은 자국의 언어환경에 맞게 외국어를 자기네들 발음대로 편하게 변형시켜 표기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왜 어느 누구도 강요하지 않는데 우리 스스로 불편을 감수하고 있는지 알길이 없습니다. Kendo는 劍道의 일본식 발음을 영어로 표기한 것일 뿐입니다. 우리는 검도로 부르고 그것을 우리가 영어로 표기할 때에는 Kumdo로 하는 것이 당연한 것입니다.

    2010/01/24 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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