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권도를 내세우며 출범한 격투기대회 '무신(武神)'의 개최는 볼만한 격투기 대회에 가뭄이 든 상태에서 격투기 팬들에게 단비와도 같은 소식이었다. 이번 대회에는 이재선, 김세기, 방승환, 권아솔, 권민석 등 국내 격투기 스타급 선수들이 다수 출전한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았다.

특히 이번 대회는 주최사인 MXM의 오창진 대표가 국제태권도연맹(ITF)의 사무총장을 맡고 있고, 대한태권도협회 소속의 한국대학태권도연맹(회장 오경호)이 적극적으로 후원에 나서 태권도를 앞세운 격투기 대회를 표방해왔다는 점에서 더욱 관심을 모았다.

대대적인 홍보와 함께 국내를 대표하는 메이저 격투기대회의 실무를 맡았던 관계자들의 대회 운영 참여도 대회의 신뢰도를 높였다. 그러나 결과는 기대에 한참 못 미치는 것이었다. 우선 예고됐던 9경기 중 2개의 경기가 대회 당일 취소되는 어처구니 없는 해프닝은 대회 이미지에 결정적인 타격을 입혔다.

카타르 왕자의 격투기 대회 참여라는 점에서 관심을 모았던 경기는 선수의 주먹부상을 이유로, 특이한 외모와 스타일로 격투팬들에게 잘 알려진 버터빈의 경기는 선수 주먹에 맞는 글러브가 없다는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각각 취소됐다.

이러한 설명을 그대로 믿어준다 하더라도, 정작 중요한 이번 대회의 문제는 다른 곳에 있다. 이번 대회의 핵심은 '태권도의 격투기무대 도전'이었다. MXM의 오창진 대표는 이 대회에 앞서 "이번 대회를 위해 오랜 기간 선수들을 준비시켰으며 세계적인 무술로 발전한 태권도가 타 종목과 비교해 전혀 손색없는 기술을 보여줄 것"이라고 자신했다.

그런데 정작 이번 대회에서는 태권도의 모습을 제대로 볼 수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그나마 보여진 태권도 선수들이 태권도의 강함을 보여주기는커녕, 부족한 실력과 소극적 경기운영으로 오히려 '태권도는 약하다'는 격투기 팬들의 인식을 더욱 단단하게 만들었다.

이날 진행된 총 7개의 경기 중에서 태권도선수들이 출전한 것은 모두 5개의 경기다. 그러나 이들 7명 중에서 냉정하게 말해 태권도선수라고 할 수 있는 선수는 제1경기에 출전했던 김일권과 제5경기의 다카키 코지(일본)의 둘에 불과했다.

태권도선수라고 소개된 모리 마사노리(일본), 노르딘 타마그룹(모로코), 나집 히미치(네덜란드) 등은 경기에서 태권도의 기술이라고 할 수 있는 것들을 전혀 보여주지 못했다. 나집 히미치의 경우 기대 이상의 좋은 경기 내용을 보여주었지만, 그것은 태권도로서가 아니라 격투기 또는 킥복싱의 수련에 기인한 것이었다.

태권도선수라고 할 수 있는 다카키 코지의 경우에는 국내에서 일반적으로 알려진 WTF스타일의 태권도가 아니라 ITF스타일의 태권도를 수련한 선수였고, 일본ITF챔피언을 수차례 역임했다고 알려졌으나 실망스러운 경기 운영으로 태권도의 모습은 거의 보여주지 못했다.

이날 대회에서 우리에게 익숙한 태권도복(WTF스타일)을 입고 출전한 선수는 첫경기에 출전한 김일권이 유일했다. 그러나 김일권의 경우 국내 태권도대회에서 입상한 경력을 볼 때 A급 선수라고 하기에는 많이 부족한 선수였다.

김일권은 경기 중 간혹이나마 내려찍기, 나래차기, 돌개차기, 뒤후려차기 등을 구사하며 태권도다운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킥복싱을 주로 수련한 것으로 알려진 상대선수 최두호 역시 킥복싱계에서 A급으로 평가받는 선수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현격한 기량차이로 겨우 KO패를 면했다.

결과적으로 '무신'은 태권도의 강함을 증명한 것이 아니라 약함을 증명하고 말았다. 대회가 마무리될 무렵 "오늘 태권도의 성적이 좋지 않은데 어떤가"라는 질문에 오창진 대표는 "태권도는 앞으로 더 깨져봐야 한다"고 말했다. 오경호 회장도 "현재의 격투기 선수들과 대결하면 태권도선수들이 이길 수 없다. KO가 되지 않은 것만도 다행이다"라고 말했다.  

두 사람의 말은 '태권도가 현재의 틀을 깨고 다른 무술들의 장점을 받아들여야 더 발전할 수 있다'고 호의적으로 해석할 수도 있지만 그 깨지는 과정에서 태권도의 이미지 역시 함께 깨지게 될 것이라는 점은 간과할 수 없을 것이다.

냉정하게 말해 현재의 무신룰에서 태권도가 이길 확률은 희박하다. 그러나 대회 주최 측에서는 룰을 바꿀 계획을 가지고 있지 않다.

태권도와 무에타이가 룰이 없는 상황에서 대결한다면 누가 이긴다고 쉽게 말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런데 만약 태권도의 룰로 둘이 대결한다면, 태권도가 이길 것이다. 그런데 그것은 판정승이 될 것이다. 무에타이의 룰로 대결한다면, 무에타이가 이길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KO승이 될 것이다. 무에타이의 전매특허와도 같은 로우킥이 허용되는 한 현재의 무신룰에서 태권도를 주무기로 내세우는 선수가 무에타이를 주무기로 내세우는 선수를 이길 확률은 극히 희박하다.

그러므로, 앞으로도 당분간 '무신'은 태권도의 강함을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태권도의 약함을 고스란히 증명하게 될 것이다.

[by 박성진 기자의 무림통신]

(사진제공 = 태권도조선)

[태마시스 - 태권도와 마샬아츠의 오아시스 ㅣ www.taema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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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음 그런데요  수정/삭제  댓글쓰기

    문득 드는 생각이,
    태권도가 타 무술의 장점을 받아들인다면, 태권도의 모습은 어디갔는지 사라져버릴 것 같습니다. 제가 잘 몰라서 하는 소리지만요.
    '태권도의 기술이 몇개 가미된 킥복싱' 내지 무에타이로 변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어떤 모습이든 은연중에 '이것은 태권도다'라고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는가 궁금합니다. 그것이 있으면 다른 무술의 장점을 취합해도 태권도로써의 모습을 갖출 수 있을 거 같습니다.

    2009.06.11 10:07 신고
  2. 아무개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확한 지적이군요. 무신 경기는 태권도의 약함만을 증면한 경기였다고 생각합니다. 태권도를 배운사람의 한사람으로 태권도는 종전의 이종격투 룰에서는 한없이 약할수 밖에 없는가 라는 슬픈 생각이 가시지 않습니다.
    이 기사 맘에 듭니다.

    2009.06.11 15:02 신고
  3. 광화문이순신  수정/삭제  댓글쓰기

    제가 어릴때 배운 태권도는 이런게 아니었습니다. 완전히 싸움이라는 수준. 대련시 코피나고 앞니가 부러져나가고......., 그런데 품세라는것이 나와서는 스포츠로 변했죠. 복부 및 얼굴 주먹타격후 발차기가 기본이고 엎어치기 밀고 차는 ... 많이 맞고 배웠죠. 그런것들이 사라진후 에는 지금과 동일하게 변하였지만 나중엔 호신술이란 걸로 따로 가르쳐주기도 했습니다. 태권도의 기본은 무조권 이기는데 있다고 합니다.격투기의 기본이죠.형식에 연연하지않는..., 도장끼리의 대결에서도 진자는 모든것을 두고 떠나야만되는 생존의 법칙... 이것을 모두 잊고있는것이 아닌지....
    어째든 스포츠화된 태권도는 격투기가 아닌듯합니다. 발차기 몇번으로 승부를 가른다는 스포츠.
    격투기는 온몸으로 하는 무술입니다. 그것이 조상대대로 내려온 태권도입니다.

    2009.06.12 19:25 신고
  4. 하수  수정/삭제  댓글쓰기

    옛날 도장에서 운동할때 경기식 겨루기 보다 실전식 겨루기로 많이 수련을 했습니다.
    어느날 부터인가 태권도가 스포츠로써 겨루기가 경긱식으로 많이 바뀌었더군요
    지금의 태권도가 실전 겨루기가 아닌 점수를 따기 위한 경기식 겨루기로 바뀌다
    경기 룰도 틀리고 주먹 공격보다는 발차기 공격이 주가 되다 보니 이런 결과가 나온거 같습니다.
    예를 들면 미국의 WTF 국가대표랑 ITF 챔피온이랑 공개 대회를 가졌는데 WTF 선수의 참패 였습니다.
    WTF 선수가 공격하려고 들어가면 ITF 선수가 주먹으로 먼저 응수를 가하더군요
    태권도의 단점을 많이 인식을 하고 보완해야 하는게 제 짧은 생각입니다.

    2009.06.13 08:45 신고


2004년 난 생각지도 못했던 일을 시작하게 된다. 기자라는 직업을 얻게 된 것이다. 꿈에도 생각 못했던 직업이다. 평소 태권도에 깊은 관심이 있었던지라 중학교 3학년 때부터 태권도신문과 대한태권도협회에서 발행하는 계간태권도(이후 월간태권도)를 구독했다. 또 과거 지금처럼 인터넷이 활발하게 이용되기 전에는 천리안, 하이텔 등 PC통신에서 태권도 소모임을 통해 내가 생각하는 태권도를 피력해왔다.  

어쩌면 그때부터 태권도 전문기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은연중에 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아무튼 2004년 무토(현재 무카스)에 태권도 전문기자로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당시 내게 체계적이고 전문적으로 일을 가르쳐줄 선배가 없었다. 그러다 보니 삭막한 태권도 취재현장(이때만 해도 태권도 관계자들은 다른 분야와 달리 폐쇄성이 강해 정보를 쉽게 공유하지 않았다. 

이후 다양한 전문지들의 등장과 환경변화로 각 기관별 홍보부가 신설되고, 정보공유에 관한 인식이 전환돼 취재환경이 날로 좋아졌다.)을 다니는 데는 여러모로 어려움이 뒤따랐다. 길 잃은 강아지마냥 헤매고 있을 때 내 손을 잡아준 은인이 나타났다.

그는 동종업계 선배인 태권도신문 서성원(현 무신미디어 편집장. 96년 태권도신문에 입사해 현재까지 태권도 전문기자로 10년 이상 활동중에 있다.) 기자였다.
 
 오늘 우연히 사진첩을 정리하다 그와 함께 찍었던 사진이 있어 그와 맺은 추억담을 늘어 놀까 한다.

[사진 - 지난해 어느날, 우연히 대한태권도협회에서 만났을 때]

일을 시작하기 전 나름대로 태권도에 대해서는 전문적인 지식이 있다고 자부해왔다. 그러나 막상 일을 시작하니 내가 알고 있던 거와는 거리가 멀었다. 이 때 서 선배는 태권도계에 생리와 취재방법 등 노하우를 아무런 조건 없이 알려줬다. 내가 소속된 무토(MOOTO)는 태권도신문과 경쟁사인 관계에서도 말이다.

어려운 취재가 있을 때, 취재원의 한계가 있을 때, 기사로 인해 곤욕을 치르고 있을 때, 취재현장에서 난감한 상황에 처해 있을 때 등 언제든지 내 곁에 서 선배는 든든한 힘과 조언을 해주었다. 또한 글 쓰는 실력이 부족한 내게 늘 “정확한 사실을 근거해 잘 쓰고 있는 거”라며 자신감을 불어 넣어주기도 했다.

심지어 자신이 취재한 이른바 특종 감을 내게 많이 줬다. 또 그가 속한 회사 후배들에게 조차 알리지 않은 정보도 내겐 솔직하게 털어놓곤 했다. 반대로 난 그러지 못했다. 아니 하지 않았다. 지금생각하면 내가 속이 좁았던 것 같고, 직업적 프로 의식이 강해 그랬을지도 모르겠다.(ㅋㅋ) 그의 배려와 든든한 도움을 얻어 난 태권도 전문지에서 빠르게 이름을 알리며 성장할 수 있었다. 반면, 그가 속한 신문사는 그가 내게 지나칠 정도로 도움을 주는 것을 두고 탐탐치 않게 생각하곤 했다.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고향에서 태권도 대회가 있어 함께 취재를 갔다. 학창시절 태권도 선수생활을 한 탓에 경기장 관계자들 모두가 스승과 선배였다. 공적인 업무로 방문한 곳이라고는 하나 그 자리는 내게 어려운 자리였다. 옛 스승과 선배들을 만나 인사하기도 바빴다. 취재를 위해 질문조차도 쉽게 못했다. 당시 일부 선배들은 “니가 무슨 기자”라고 하면서 비아냥거리곤 했을 때였다. 그걸 서 선배가 유심히 보고 있었나보다.

 그날 저녁 옛 스승과 대선배들과 함께한 회식자리에서 서 선배가 갑자기 그들을 향해 “여기 옆에 앉아있는 한 기자는 옛날 여러분의 제자 후배를 떠나 기자로 오늘 대회를 취재하기 위해 찾은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께서는 공사 구분하지 않고 아직까지 어린애 다루듯 함부로 대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을 한 것이다. 

예상하지 못했던 그에 발언에 옆에 있는 나로서는 당혹스러웠다. 그 때 또 서 선배는 “여러분이 오히려 앞장서 한기자의 지원군이 되어 지금의 일을 잘 할 수 있도록 작은 배려를 해준다면, 한 기자는 더욱 빠르게 성장해 머지않아 여러분께 도움을 줄 것”이라고 말을 이어나갔다. 게다가 옆에 있던 김창완 태권도신문 편집국장도 “서 기자 말이 틀린 것 같지 않다. 같은 동종업계 기자로서 보기에도 민망하니 시정해주었으면 한다”고 서 선배의 말에 힘을 보탰다. 

내 의지와 전혀 무관한 그들의 발언으로 내 몸은 꽁꽁 얼어붙을 지경이었다. 하지만 이날 서 선배의 도움(?)으로 고향 스승과 선배들을 대하는 울렁증에서 벗어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서 선배는 내게 늘 도움을 주면서도 그는 내게 생색이라는 것을 단 한 번도 내지 않았다. 이를테면, 일급 정보를 전해줬으니까 ‘밥 한 끼, 술 한 잔 사라’라는 말도 하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언젠가 그는 “태권도 전문지 기자로서 생활한다는 게 다른 분야보다 어렵다. 아무리 일간지 정치부, 사회부에서 기자생활을 잘 했던 사람도 1년도 못 버티는 게 이 바닥 생리다. 그런데 한 기자는 성실하게 잘 이겨내고 있어 대견하다”고 말했다. 그렇다. 그는 태권도 전문기자로 10년을 넘게 생활하면서 동종업계에 많은 기자들이 쉽게 적응하지 못하고 일을 그만두는 것을 많이 봐왔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나뿐만 아니라 다른 신문사 후배들도 많이 챙겼다.

[사진 - 2006년 어느 가을, 동종업계 기자들과 만나 호프 한 잔에 일에 대한 이야기를 할때]

그와 인연을 맺고 태권도계에서 쌓은 추억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많다. 올해 초 내가 일을 그만두고 이집트로 떠나기 전에 해가 지도록 술을 함께 마셨다. 그는 “그동안 수고했다”는 말은 반복하며 날 격려했다. 떠나보내는 입장이 더 괴로웠을까. 그만 그날 저녁 술이 너무 취해 넘어져 앞니가 부러지고 말았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를 마지막 추억을 남긴 작은 사건이 되었다.

내가 이집트에 온 후 그에게도 작은 변화가 있었다. 10년을 넘게 일한 신문사를 그만두고 다른 신규매체로 자리를 옮겼다. 글을 쓰는 거야 그에게는 큰 어려움이 없다. 그런데 그가 옮긴 곳은 인터넷매체다. 문제는 그가 젊은 나이인데도 불구하고 인터넷이나 전자기기 사용에 약하다. 아직도 문자메시지 발송도, 전화번호 입력도 누구의 도움 없이는 못할 정도이니 말이다.

그런 그가 인터넷매체에서 요즘 사진 편집부터 동영상 촬영 등 전에 하지 않았던 일들을 하고 있다. 다행히 새로운 일에 흥미를 갖고 활기를 얻어가며 열심히 일하는 모습이 후배로서 기분이 좋다.

내게는 늘 ‘아낌없이 주는 나무’였던 서성원 선배의 건필을 기원한다.

2008년 11월 27일

한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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