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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5.05 태권도 전문기자로 이끌어준 서성원 선배

2004년 난 생각지도 못했던 일을 시작하게 된다. 기자라는 직업을 얻게 된 것이다. 꿈에도 생각 못했던 직업이다. 평소 태권도에 깊은 관심이 있었던지라 중학교 3학년 때부터 태권도신문과 대한태권도협회에서 발행하는 계간태권도(이후 월간태권도)를 구독했다. 또 과거 지금처럼 인터넷이 활발하게 이용되기 전에는 천리안, 하이텔 등 PC통신에서 태권도 소모임을 통해 내가 생각하는 태권도를 피력해왔다.  

어쩌면 그때부터 태권도 전문기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은연중에 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아무튼 2004년 무토(현재 무카스)에 태권도 전문기자로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당시 내게 체계적이고 전문적으로 일을 가르쳐줄 선배가 없었다. 그러다 보니 삭막한 태권도 취재현장(이때만 해도 태권도 관계자들은 다른 분야와 달리 폐쇄성이 강해 정보를 쉽게 공유하지 않았다. 

이후 다양한 전문지들의 등장과 환경변화로 각 기관별 홍보부가 신설되고, 정보공유에 관한 인식이 전환돼 취재환경이 날로 좋아졌다.)을 다니는 데는 여러모로 어려움이 뒤따랐다. 길 잃은 강아지마냥 헤매고 있을 때 내 손을 잡아준 은인이 나타났다.

그는 동종업계 선배인 태권도신문 서성원(현 무신미디어 편집장. 96년 태권도신문에 입사해 현재까지 태권도 전문기자로 10년 이상 활동중에 있다.) 기자였다.
 
 오늘 우연히 사진첩을 정리하다 그와 함께 찍었던 사진이 있어 그와 맺은 추억담을 늘어 놀까 한다.

[사진 - 지난해 어느날, 우연히 대한태권도협회에서 만났을 때]

일을 시작하기 전 나름대로 태권도에 대해서는 전문적인 지식이 있다고 자부해왔다. 그러나 막상 일을 시작하니 내가 알고 있던 거와는 거리가 멀었다. 이 때 서 선배는 태권도계에 생리와 취재방법 등 노하우를 아무런 조건 없이 알려줬다. 내가 소속된 무토(MOOTO)는 태권도신문과 경쟁사인 관계에서도 말이다.

어려운 취재가 있을 때, 취재원의 한계가 있을 때, 기사로 인해 곤욕을 치르고 있을 때, 취재현장에서 난감한 상황에 처해 있을 때 등 언제든지 내 곁에 서 선배는 든든한 힘과 조언을 해주었다. 또한 글 쓰는 실력이 부족한 내게 늘 “정확한 사실을 근거해 잘 쓰고 있는 거”라며 자신감을 불어 넣어주기도 했다.

심지어 자신이 취재한 이른바 특종 감을 내게 많이 줬다. 또 그가 속한 회사 후배들에게 조차 알리지 않은 정보도 내겐 솔직하게 털어놓곤 했다. 반대로 난 그러지 못했다. 아니 하지 않았다. 지금생각하면 내가 속이 좁았던 것 같고, 직업적 프로 의식이 강해 그랬을지도 모르겠다.(ㅋㅋ) 그의 배려와 든든한 도움을 얻어 난 태권도 전문지에서 빠르게 이름을 알리며 성장할 수 있었다. 반면, 그가 속한 신문사는 그가 내게 지나칠 정도로 도움을 주는 것을 두고 탐탐치 않게 생각하곤 했다.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고향에서 태권도 대회가 있어 함께 취재를 갔다. 학창시절 태권도 선수생활을 한 탓에 경기장 관계자들 모두가 스승과 선배였다. 공적인 업무로 방문한 곳이라고는 하나 그 자리는 내게 어려운 자리였다. 옛 스승과 선배들을 만나 인사하기도 바빴다. 취재를 위해 질문조차도 쉽게 못했다. 당시 일부 선배들은 “니가 무슨 기자”라고 하면서 비아냥거리곤 했을 때였다. 그걸 서 선배가 유심히 보고 있었나보다.

 그날 저녁 옛 스승과 대선배들과 함께한 회식자리에서 서 선배가 갑자기 그들을 향해 “여기 옆에 앉아있는 한 기자는 옛날 여러분의 제자 후배를 떠나 기자로 오늘 대회를 취재하기 위해 찾은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께서는 공사 구분하지 않고 아직까지 어린애 다루듯 함부로 대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을 한 것이다. 

예상하지 못했던 그에 발언에 옆에 있는 나로서는 당혹스러웠다. 그 때 또 서 선배는 “여러분이 오히려 앞장서 한기자의 지원군이 되어 지금의 일을 잘 할 수 있도록 작은 배려를 해준다면, 한 기자는 더욱 빠르게 성장해 머지않아 여러분께 도움을 줄 것”이라고 말을 이어나갔다. 게다가 옆에 있던 김창완 태권도신문 편집국장도 “서 기자 말이 틀린 것 같지 않다. 같은 동종업계 기자로서 보기에도 민망하니 시정해주었으면 한다”고 서 선배의 말에 힘을 보탰다. 

내 의지와 전혀 무관한 그들의 발언으로 내 몸은 꽁꽁 얼어붙을 지경이었다. 하지만 이날 서 선배의 도움(?)으로 고향 스승과 선배들을 대하는 울렁증에서 벗어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서 선배는 내게 늘 도움을 주면서도 그는 내게 생색이라는 것을 단 한 번도 내지 않았다. 이를테면, 일급 정보를 전해줬으니까 ‘밥 한 끼, 술 한 잔 사라’라는 말도 하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언젠가 그는 “태권도 전문지 기자로서 생활한다는 게 다른 분야보다 어렵다. 아무리 일간지 정치부, 사회부에서 기자생활을 잘 했던 사람도 1년도 못 버티는 게 이 바닥 생리다. 그런데 한 기자는 성실하게 잘 이겨내고 있어 대견하다”고 말했다. 그렇다. 그는 태권도 전문기자로 10년을 넘게 생활하면서 동종업계에 많은 기자들이 쉽게 적응하지 못하고 일을 그만두는 것을 많이 봐왔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나뿐만 아니라 다른 신문사 후배들도 많이 챙겼다.

[사진 - 2006년 어느 가을, 동종업계 기자들과 만나 호프 한 잔에 일에 대한 이야기를 할때]

그와 인연을 맺고 태권도계에서 쌓은 추억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많다. 올해 초 내가 일을 그만두고 이집트로 떠나기 전에 해가 지도록 술을 함께 마셨다. 그는 “그동안 수고했다”는 말은 반복하며 날 격려했다. 떠나보내는 입장이 더 괴로웠을까. 그만 그날 저녁 술이 너무 취해 넘어져 앞니가 부러지고 말았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를 마지막 추억을 남긴 작은 사건이 되었다.

내가 이집트에 온 후 그에게도 작은 변화가 있었다. 10년을 넘게 일한 신문사를 그만두고 다른 신규매체로 자리를 옮겼다. 글을 쓰는 거야 그에게는 큰 어려움이 없다. 그런데 그가 옮긴 곳은 인터넷매체다. 문제는 그가 젊은 나이인데도 불구하고 인터넷이나 전자기기 사용에 약하다. 아직도 문자메시지 발송도, 전화번호 입력도 누구의 도움 없이는 못할 정도이니 말이다.

그런 그가 인터넷매체에서 요즘 사진 편집부터 동영상 촬영 등 전에 하지 않았던 일들을 하고 있다. 다행히 새로운 일에 흥미를 갖고 활기를 얻어가며 열심히 일하는 모습이 후배로서 기분이 좋다.

내게는 늘 ‘아낌없이 주는 나무’였던 서성원 선배의 건필을 기원한다.

2008년 11월 27일

한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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