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6/18 - [태마뱅크/백과사전] - 가노지고로(嘉納治五郞; 1860∼1939)의 생애와 근대유도의 발달 (1)
에 이어 계속.

유술의 시대에는 생명을 걸고 했던 격렬한 승부는, 창조된 안전한 경기 속에서 행하여지고 있으며 기술로부터 도에 들어가는 동양적인 무도관도 현재의 인식속에 살아있다.

술(術)은 기술(技術)을 의미한다. 따라서 술(術)에서 강조되는 것은 기술 그 자체이다. 술(術)을 행하는 가장 큰 목적은 싸우는 것이기 때문이다. 반면에 도(道)는 인간이 살아가는 삶의 길이다. 그리고 자신의 심신을 향상시키는 삶의 방법을 의미한다.

비록 유도와 유술의 기술이 닮아쓸지라도 유도의 수련과 훈련의 가장 큰 목적은 유술과 다른 것이라는 결론을 얻었다.

도(道)를 포함하고 있는 여러 단어들이 있다. 예를 들면 불도(佛道), 다도(茶道), 서도(書道) 등의 각각은 단순한 행위의 차원을 떠나서 자신의 인격함양의 의미를 갖고 있다. 가노의 유도는 승패를 떠나서 심신을 단련하는 데 목적을 둠으로써 승패만을 목적으로 하는 유술과 차별성을 갖게 되었다.

- 術에서 道로 전환은 평화와 건강의 원리를 뜻한다.

- 術은 사람을 상대하기 위한 기술로서 힘의 과시를 주제로한 폭력의 원리(공격적)이다.

- 道는 폭력을 부정하는 평화의 원리로서 순수한 방어논리(나를 지키는 수단)이다.


이러한 논리는 도(道)가 본체로, 술(術)은 부수(部隨)된 것으로 도에 들어가는 수단이 되었다. 술(術)로부터 지양(止揚)하여 인간생활 전반에 통하는 대도(大道)로 되었던 것을 의미한다. 이처럼 가노는 술(術)을 도(道)로 바꾸어 승부법으로서의 유도, 체육법(體育法)으로서의 유도, 수신법(修身法)으로서의 유도로 나누고 이것을 '유도의 세 부문'으로 이론화 하였다.

1882년 1월 가노는 당시 귀족들이 경영하던 학습원(學習院)의 강사가 되어 숙소를 시모다니영창사(下谷永昌寺)로 옮기고, 처음으로 가노주꾸(嘉納塾; 학원)을 설치하여 학생들을 가르쳤다. 5월에는 영창사(永昌寺)의 마당에 12장의 다다미를 깔아 도장을 만들고 이를 '고도깐(講道館)'이라 이름하였다. 

같은 해의 9월 영창사(永昌寺)에서 진다(神田)로 옮기고 1886년 98명, 1887년 292명, 1888년에는 378명, 1889년에는 605명으로 늘었으며 후지미(富士見)시대에는 1,400명으로 늘어나게 된다. 당시의 비용은 모두 가노가 부담하였다. 수련생들이 모두 귀족계급의 자산가들이었으므로 강도관(講道館)의 비용은 모두 여기에서 충당되었다.

이 후지미(富士見)시대에 강도관의 형태는 거의 체계화 된다. 입문자의 서약서, 원단식(元旦式), 홍백경기, 월례경기 등의 여러행사가 이 시대에 결정되었다. 기술적으로도 안정되어 현재에도 행해지고 있는 '메치기 본', '굳히기 본', '부드러운 본', '5가지 본' 등의 기본이 이 때에 성립되었다. 

가노는 여러가지 유술(柔術)의 기법(技法)을 이어받아 유도(柔道)라는 새로운 명칭을 붙였는데, 유술이라 하는 것이 실제로는 그 근본이 '도(道)'가 있고 '술(術)'이란 오히려 그 응용이란 사실을 알게 되었다. 때문에 가르침에는 먼저 도(道)로 시작하여 그 위에 응용의 술(術)을 가르치는 것이 적당하다. 그러나 후꾸다(福田), 기(磯), 오꾸보(飯久保)의 3명에게는 쥬우쥬쯔(柔術)란 명칭으로 가르침을 받았기 때문에 전연 다른 이름으로 명칭을 변경시키는 것도 그렇고 하여 '유(柔)'의 한 자만을 쓰기로 하여 유도(柔道)로 하였다. 

1882년 5월에 유도를 연구·지도하기 위하여 도장을 개설하였는데 명칭에 관해서는 어디까지나 도(道)를 중시하고, 도(道)를 넓히고 도(道)를 강의(講)하는 곳(館)이라 하여 '고도깐(講道館; Kodokan)'이라 명명하였다. 단순히 무술을 가르치는 장소가 아니라는 것을 확실히 하기 위함이었다. 만약 구태의연하게 무술의 도장이라 한다면 연무관(鍊武館), 상무관(尙武館)이라 해도 좋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명칭을 피해 '강도관(講道館)'이라고 한 것은 "도(道)는 근본, 술(術)은 응용"이라는 사실을 명백히 하기 위해서라고 하였다.

유도는 과학적인 원리에 맞추어 공격과 방어의 방법을 가르치고 여기에 가미하여 신체의 합리적인 육성법을 가르쳤다. 그리하여 그 배경으로 단순한 무사의 마음 가짐뿐만 아니라 문무의 도를 가르쳤던 것이다. 이런 이유로 무술과 체육과 수심(修心)의 도(道)를 합한 것이 유도라고 말할 수 있다.

가노는 본(本)과 자유연습의 관계에 관해 "마차의 두 바퀴, 새의 두 날개와 같이 어느 한쪽에 치우쳐서는 안된다"고 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유도의 본(本)이란 마치 문장을 쓰는데에 있어 문법과 같은 것이다. 난도리(자유연습)는 작문의 연습이다. 아무리 문법에 정통하다고 해도 곧 바로 명문을 쓸수는 없다. 또 문법도 알지 못하고 엉터리로 문장을 쓸 수도 없다. 이것과 마찬가지로 유도에 있어서도 본을 배우지 않으면 공격 방어 여러면을 이해하고 익숙하여 질 수가 없다. 그러나 오로지 본만 수련한다면, 순서에 따라 일정한 틀로 연결은 되지만 만약 상대가 본에 없는 수법으로 공격해 오는 경우 그 응수에 곤난하여 패배하게 되기가 쉬울 것이다. 상대가 어떤 변화기술을 걸어 와도 이것에 대응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난도리(자유연습)가 필요하며, 본과 난도리(자유연습)의 두가지를 함께 수련할 때 비로소 완전한 수련이 된다.

처음의 '메치기의 본'은 10가지였다. 이 본은 주로 사용되는 신체의 부위에 따라 손기술, 발기술, 허리기술, 바로 누우며 메치기기술, 모로 누우며 메치기기술로 분류하여 메치기 기술의 이치를 이해시키려 하였다. 이후 새로운 메치기, 굳치기 등의 기술체계가 발전하게 되었다.

현대 유도를 창시한 가노가 유도경기의 방법을 오직 일본의 여러 유술 유파의 장점에서만 따온 것은 아니다. 그는 1930년에 공인된 레슬링 규정을 참고하기도 하였다. 일본 강도관의 자료실에는 가노 지고로가 생전에 쓰던 메모를 전시하고 있다. 가노 지고로가 친필로 깨끗하게 정서한 내용은 '레슬링심판규정'이라는 제목하에 북미합중국 아마추어 레슬링규정(1930공인)에 관한 경기장 설비규정과 선수의 복장 등에 관한 것이다. 또 강도관 자료실의 전시자들도 유도가 레슬링규정을 참고하였다고 분명히 밝히고 있다. 이로 미루어 보건데 현대의 유도는 경기장과 선수복장 등에서 레슬링의 제규정을 참고하였음을 알 수 있다.

유도는 더욱 발전하여 1911년에는 일본의 중학교에 "체조의 격검(검술), 유술은 부과할 수 있음(수의과)"이라 하여 정식과목으로 채택된다. 그리고 세계 제1차대전을 전후하여 일본 국민의 상무적 기풍으로 1914년 제1회 전국고등전문학교 유도대회가 개최되고, 1930년에는 제1회 전 일본유도 선사권(選士權)대회가 개최된다. 뿐만 아니라 가노는 해외의 유도보급을 위해 선수들을 이끌고 직접 한국, 중국, 유럽 등을 순방, 일본 유도를 세계에 소개하였다.

1941년 일본은 태평양전쟁을 일으키면서 유도도 군사적 실전을 위한 훈련으로 변질 규정된다. 1945년 8월 15일 일본의 폐전으로 인해 무도(武道)라는 용어가 사용금지 되는 등 대단한 박해를 받게 되지만, 경찰은 그래도 유도와 검도를 실시하여 그 전통을 이었으며, 학교 유도의 금지령해제를 원하는 소리가 높아지면서 1950년 학교유도가 부활되고, 1951년 6월에는 전 일본학생유도 연맹이 결성된다. 

1952년 일본은 국제유도연맹을 창립하고, 가노의 아들인 가노리세이(嘉納履正)가 회장에 취임한다. 1956년에는 동경에서 제1회 세계유도 선수권대회가 열리고, 1960년 로마올림픽대회 총회에서는 유도를 올림픽 선택종목으로 결정한다. 이제 유도는 일본의 유도가 아니라 인류 공통의 무도스포츠로 발전되었다.

by 허건식 체육학박사(1999년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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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의 글은 《유도론》의 저자 김상철교수님과 필자가 1999년 겨울방학을 이용해 '일본유도연구'라는 주제로 용인대학교 무도연구소에서 정리한 글이다. 이 당시만 해도 근대유도의 효시라 할 수 있는 강도관유도와 강도관유도의 창시자 가노지고로에 대한 소개가 국내에서 부족한 시기였다. 당시 정리한 내용을 좀 더 요약한 글이다.
글. 허건식(사단법인 대한무도학회 간사 / 현 서일대학 교수)

가노지고로는 1860년 10월 28일 가노지로사꾸마레시가의 3남으로 효고겡 무꼬군 미가게초 하마시가시에서 태어나 어렸을때의 이름은 신스께였다. 메이지 3년, 11살이었을 때 고향에서 동경으로 상경하여 가기가라초에서 부친과 함게 살게 되었다. 상경한 지고로는 가까운 요고꾸의 세이다쯔즈꾸에 다니게 되어 우부가타게이또라는 사람에게 학문을 배움과 동시에 간다의 미쯔꾸리 슈헤이라는 학당(쥬꾸)에서도 학문을 닦았다.

메이지6년, 14살때에는 이꾸에이 즈꾸(학당)에 들어가 처음으로 기숙사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이 즈꾸는 네델란드사람이 선생이었고, 독일사람이 조교였으며, 모든 학과는 영어로서 진행되었다. 가노는 이전에 미즈꾸리 슈헤이의 즈꾸에 다닐 때 어느정도의 영어를 배웠기 때문에 학과에서는 별다른 어려움이 없었지만 당시에 그들사이에 강한 사람이 인정을 받는 풍조가 있었기 때문에 신체가 작았던 가노로서는 여러모로 불리하였다. 또한 병은 없었지만 매우 허약해 보이는 체구인탓에 항상 그들 사이에서는 약해 보였다. 

학문에서는 타인에게 지지않다는 자신감은 있었지만 몸이 허약했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소외당한 것에 대해 항상 불만을 지니고 있어 자신을 강하게 하는 좋은 방법이 없을까하는 고민을 하였다. 때때로 어렸을 때 일본에는 유술이라는 것이 있어 약한자가 강한자를 이길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기억을 상기하여 유술을 배우고 싶어 했다. 그때 가노의 집에 자주 오던 자들중에 나까이 우메이나리라는 사람이 있어서 자신이 옛날에 유술을 배운적이 있다고 자랑하면서 여러 가지 가타(形)을 보여 주었기 때문에 그 사람에게 유술을 배우고 싶다고 부탁했다. 그러나 그 사람은 이 당시에 유술을 배울 필요가 없다고 하면서 거절하였다. 

또한 고이시가와 마루야마초에 있던 부친의 별장에서 일하던 편동유사라고 하는 사람이 가끔씩 유술의 형을 보여 주었기 때문에 이 사람에게도 유술을 배우고 싶다고 부탁을 하였지만 거절당하였다. 그밖에 마찬가지로 자신의 집에 출입하던 비후출신으로 이마이겐시로라고 하는 사람이 큐신류라고 하는 유술을 배운 사람에게도 부탁하였지만, 그 역시 거절 당하였다. 이와같이 유술수련이 불가능한채로 학업에 열중하였지만, 보다 강하게 되고 싶다는 생각이 항상 머리속에 있었다.

메이지 7년 4월21일 동경외국어학교의 입학시험에 합격하였기 때문에 이구에이즈꾸에서 동경외국어대학의 영어학부에 전학하였고, 이 학교가 얼마 있지 않아 영어부가 독립하여 관립 영어학교로 되었다. 메이지 8년 개성학교에 입학하였다. 이 개성학교에는 육체적으로 강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지배하려는 풍조가 이꾸에이즈꾸에 있을때보다 더욱 강하였기 때문에 신체적으로 허약했던 가노는 더욱더 유술에 대한 욕구가 강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부친에게 유술가를 소개해 달라고 여러차례 부탁하였지만, 그 당시에는 공부가 우선이라고 하여 동의하여주지 않았다. 그러나 자신도 상당한 연령에 있었고, 신체를 강하게 하기위하여 유술을 배우는 것이기 때문에 자기자신에게 적당한 스승을 찾으려고 신중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

 명치10년 18살 때 동경대학이 창설되어 그 대학의 문학부 제2기생으로 입학하였지만, 입학당시 언뜻 정복술을 하는 사람이 유술가로서 유명하다고 들었기 때문에 그때부터는 정복이나 접골이라는 간판이 있으면 직접 들어가 유술을 한적이 있는지 없는지를 물어보며 찾아 다녔다. 그러나 유술에 대해서 잘 모른다는 사람이 많았고, 그 중에서는 과거에는 유술을 하였지만 당시에는 유술을 하지 않고 있다는 사람들이 더많았다. 이런식으로 스승을 찾아 헤매고 다니던 때에 니혼바시(日本橋)의 민교초 거리에서 벤케이바시에서 멀리않은 곳에 접골간판이 보였기 때문에 들어가 물어 본 결과, 야기마사스게라는 사람이 있었다. 이 사람은 머리와 수염이 하얗고, 골격이 장대하고 실로 위풍당당한 대장부의 풍모를 지니고 있었다.

유술을 한 적이 있느냐고 물으니, 가만히 가노를 살펴본 뒤에 왜 그런 질문을 하느냐고 되물었다. 자기자신이 유술을 배우고 싶다는 처지를 설명하니, 가만히 듣고 있던 야기노인은 무릎을 치며 기뻐하였다. 그러나 자신은 이소마타우에이몬의 제자로서 그 면허를 받을 정도로 옛날에는 전문적으로 유술을 하였지만, 지금의 분위기는 유술에 대해 인정을 하지 않는 추세였기 때문에 접골한 하고 있다고 하였다. 왠만하면 가노의 희망을 들어 주고 싶지만, 이곳은 8장의 다다미공간으로 비좁고 게이코가 불가능하다고 하였다. 그러나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니혼바시의 모토다이꼬초에 자신의 동문인 후꾸다야스께라는 사람이 있다. 다른 친구들은 거의 대부분 유술을 그만 두었지만 이 후꾸다는 도장을 가지고 있으니 한번 가 보아라고 소개를 해주었다. 여기에서 후꾸다를 방문하니 여기서도 겨우 10장의 다다미공간밖에 없었고, 그 중에서도 다다미 한 장정도는 계단으로 사용되고 있어 나머지 9장이 도장으로서 사용되었고, 다음의 3장정도의 공간이 접골의 치료소가 되어 있어 6장밖에는 도장의 공간으로 활용할 수 밖에 없었다. 이 공간도 때로는 환자의 대기실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가노는 자신의 바라던 희망이 이루어져 크게 기뻐하며 드디어 텐진신요류의 유술을 접하게 되었다. 이때 후꾸다의 문인으로 게이코를 하러 온 관원들은 가끔씩 오는 사람이 4-5명정도였고 매일 오는 사람은 1명이었다. 격일로 오는 사람은 1명정도였다. 그중에서 매일 다니고 있던 사람은 선생으로부터 형을 배워 그 것을 관원들에게 게이코를 시키고 선생과 동료들과 자유연습을 하는 형태의 연습이 매일 계속되었다.

이때의 연습은 찰과상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온몸이 만진창이 되도록 연습하였던 시기였다. 이렇게 열심히 한 덕분으로 기량은 더욱더 늘게 되어 메이지 12년 미국의 전대통령(18대)인 글랜튼장군이 왔을 때 시부자와에이이찌 라는 사람에게 초대되어 이소 마사토모, 후꾸다 야스께와 그밖의 유술 명가와 함께 아스까야마에 있던 시부와자별장에서 유술시범을 보였다.

메이지12년 8월 14일 후꾸다 스승은 52세로 죽게 되었고, 후꾸다의 제자들중에는 난도리로서는 가노보다 강한 제자가 있었지만 형과 난도리를 병행해서 수행하였고, 매일 도장에 나온 제자는 가노뿐이 없었고 그 게이코 연습에 열심히 한 점을 고려해서 후꾸다 사람들로부터 신용을 받아 후꾸다가에 전해져 오는 전서 1절을 물려받게 되어 후꾸다의 도장을 위탁받았다. 여기서 한때 그 도장을 맡아 연습을 하였지만, 아직까지 혼자서 도장을 운영할 자신이 없었고, 더욱이 더 높은 수준의 수행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였다. 그레서 새롭게 인문한 것이 간다에서 도장을 열고 있던 텐진신요류(天神眞楊流)의 이소마타우에이몬의 내제자로서 이소가에 입적하여 3대째의 도장을 상속받고 있던 이소마사토모의 도장에 인문한다. 이소도장에서는 후꾸다도장의 동료 후꾸시마 겐요시와 함께 입문하게 된다.

당시에 마사토모는 이미 60세정도의 노령으로서 자신이 직접 난도리 지도를 하지 못하였지만 형의 명인으로 가타의 가르침은 자기자신이 직접하고 있었다. 난도리는 사또와 우라마쯔라고 하는 사람이 간사를 담당하고 있었지만, 가노와 후꾸시마도 후꾸다 도장에서 상당한 출현을 하고 있던 상황이였으므로 이 2사람도 입문과 동시에 간사에 취임하게 되어 앞의 2사람과 함께 보조사범의 역할을 하게 되었다.

이 도장에 매일 출석하는 사람은 30명정도 되었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휴식하는 사람이 많았다. 따라서 가노 혼자서 대부분의 사람을 상대로 매일 형을 수련하였다. 또한 난도리도 매일 30인을 상대로 수련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고, 형연습과 난도리의 연습으로 늦게까지는 11시가 넘어서 귀가하는 경우가 많았다. 어떤때는 연습과다로 인하여 길을 걸을때는 비틀비틀거리며 쓰러진 적도 있었다고 한다. 이 마사토모선생은 체격이 매우 작았고, 젊었을 때부터 난도리는 별로 하지 않았기 때문에 형에는 명인있지만 난도리에서는 강하지는 않았다.

그러므로 자신은 이소의 도장에서는 난도리는 거의 자신이 가르치면서 선생으로부터는 형에 대한 것은 매우 많이 배웠다고 술회하고 있다. 이와같이 열심히 수행하고 있을 때 이소는 명치 14년 6월 62세로 죽게되어 또다시 스승을 잃게 되었고, 다시 새로운 스승을 찾으려고 노력하였다. 세 번째의 스승은 기또류의 이이꾸보고넹이다. 이이꾸보는 가노의 대학친구 모토야마마사시사의 부친인 마사오의 소개로 알게 되었다.

모토야마는 법학부의 제1회 졸업생으로 명치 12년에 졸업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가노보다 선배였고, 학과도 틀렸지만, 가노가 대학에 입학한 때에 대학에서 야구가 시작되어 가노와 고다이류사꾸(오대용작)는 투수, 모토야마와 시오다라는 사람은 포수를 하였다. 그래서 모토야마와 매우 친하였고, 조정(漕艇)이나 소풍에도 항상 함께하는 절친한 관계였다. 

모토야마의 부친은 전 막부의 강무소에서 기또류 유술의 선생을 역임하였고, 상당한 기또류 유술의 명인이었기 때문에 가노는 전에 배운 텐진신요류와는 다른 유파여서 가르침을 구하였다. 이 사람은 가타의 명인으로 난도리는 그다지 훌륭하지는 않았지만, 당시에는 제자를 받아들이려고 하는 기분은 아니었다고 한다. 그러나 가노의 스승에 대한 가르침을 갈구하는 자세에 감동한 그는 자신이 선생으로 모시고 싶었던 유술의 명인을 소개하고 싶다고 하여 가노는 찾아 가게 되었다. 그가 바로 이이꾸보고넹이었다.

그 역시 강무소의 유술사범으로 가노는 처음으로 기또류를 접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텐진신요류와 기또류의 기술차이에 많이 놀랐다. 텐진신요류에서는 조르기와 관절기, 눌러굳치기 등이 주된 기술이었고, 던지기 , 메치는 어느정도 있었지만, 배되치기(도모에나게), 아시바라이, 허리기술(고시나게) 등은 기또류와는 기술사용방법이 많은 차이가 있었고, 기또류의 가타와 텐진신요류의 형은 서로 그 기술상 시각에서 차이가 있었다. 또한 이이꾸보고넹은 47세 연령이었지만, 난도리도 상당한 수준에 있었기 때문에 가노도 열심히 게이코를 하였고, 처음에는 가노도 이이꾸보에게는 절대적인 열세였다. 여기에 가노는 성심껏 새로운 연구에 몰두하여 신중하게 기술을 창출하였다. 이렇게 하여 유술수련에 열중할때도 학생으로서의 본분은 열심히 하여 명치 14년 7월 9월 정치과와 경제과를 동시에 공부하며 문학부를 졸업하였다. 당시의 제도에서는 문학부는 정치, 경제, 철학, 국문학의 4부분으로 나누어져 그 중에서 국문학은 독립하였지만, 그밖의 학과는 2개학과씩 전공할 수 있었고, 더욱이 정치, 경제, 철학의 3과는 3년간 공통전공으로 배울 수 있었다. 이외에도 1년 더 철학을 전공하였다. 

철학을 전공할 당시 명치 15년 1월에 학습원에 새롭게 연수과가 설치되어 1월 15일 강사로 위촉되어 정치학과 경제학과에서 강의하였다. 이외에도 가노는 유술이외에 야구, 체조, 배구, 조정 등 다양한 운동을 하였다. 그중에서도 유술에 매력을 지니고 매진하였다.

가노지고로는 18세때 텐진신요류(天神眞楊流)를 후꾸다(福田八之助)와 이소마사지(磯正智)에게 배웠으며 20세때에는 오꾸보(飯久保恒年)으로부터 기또류(起倒流)의 가르침을 받았다. 그리하여 두 유파의 교육적 가치가 대단히 큰 것임을 깨달았으며, 아울러 다른 유파에 관해서도 비교 연구하여 유술이 정신과 신체발달에 귀중한 것임을 알게 되었다.

모든 유파에는 그 나름대로 장·단점을 갖고 있음을 발견하여 이것을 어느정도 개량하면 무술로서 뿐만 아니라 체육으로서도 유익하며, 정신의 수양 혹은 처세법으로도 가치가 대단히 높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가노지고로는 배운 유술 가운데 텐진신요류(天神眞楊流)의 급소지르기와 굳히기, 기또류(起倒流)의 메치기 기술을 중심으로 타케우찌류(竹內流)의 체포술(捕縛), 세끼구찌류(關口流)의 낙법(落法) 등 다른 많은 유파를 비교 연구하여 실제로 연습을 실시함으로써 원리에 맞는 것은 취하고 맞지 않은 것은 버렸으며, 여기서 더 나아가 새로운 기술을 만들어 새로운 지도체계와 방법을 확립하였고, 자유연습과 본의 연습에 의해 체육의 목적을 이루고 승부의 방법도 일종의 지육(知育), 덕육(德育)도 될 수 있도록 고쳤다. 단순한 무술에서 도(道)로 지양(止揚)되어 여기에 유도라는 명칭이 나오게 되었다. 

유술을 유도로 개칭한 이유를 살펴보면 옛날부터 유술은 전쟁에서 우선 활의 위협으로부터 시작되어 나중에는 도검(刀劍)에 의한 싸움으로 이행되어 화살이 떨어지고 칼이 부러졌을 때 아무것도 없이 맨손으로 싸우는 무술이다. 유술은 상대를 넘어 뜨리는 기술 외에 상대를 찌르기도 하고 차기도 하는 급소지르기 기술, 상대의 손목과 팔꿈치를 꺾는 관절기술, 상대의 목을 졸라서 죽이는 조르기 기술 등 많은 기술을 갖춘 종합무술이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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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진 기자의 태권도와 타무도] 제9편 유도  
 
                         Sports News - February 15, 2009

유도(柔道)는 여러 가지 면에서 태권도가 배워야 할 점이 많은 무술이다.

태권도의 경우 올림픽 잔류 여부를 걱정하고 있지만, 유도가 올림픽 종목에서 퇴출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태권도보다 36년이나 빠른 1964년에 이미 올림픽 정식종목으로 채택되었으며, 이후 동양을 대표하는 무술스포츠로서 전 세계에 확고한 뿌리를 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에서도 유도에 대한 관심은 높다. 실례로 태권도 세계대회에서 우승한 국내 선수들에 대한 일반 미디어의 보도는 찾아보기 어렵지만 유도 세계대회에서 우승하는 등의 성적에 대해서는 빠지지 않고 다뤄지는 것을 볼 수 있다.  

태권도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로서 대중적인 스타로 자리잡은 사람으로는 문대성 정도를 꼽을 수 있지만, 유도의 경우에는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 스타로 자리잡은 최민호, 왕기춘을 포함해 이원희, 추성훈 등이 CF모델로 활동할 만큼 대중적 인지도를 가지고 있다. 이 모두가 유도가 국제스포츠로서 확고한 위치에 있다는 증거라고 할 수 있다. 

국제스포츠로서의 유도는 국제유도연맹(IJF)이 이끌고 있다. IJF의 위상도 확고하다. 박용성 현 대한체육회장이 IJF 회장을 지냈으며 현재도 일본인이 아닌 오스트리아의 마리우스 비제르 회장이 IJF를 이끌고 있다. 

유도는 국제스포츠로서의 위상도 확실하지만, 무도(武道)로서의 위상도 그에 못지않게 확고하다. 유도의 본산 고도칸(講道館)이 있기 때문이다. 태권도의 국기원이 바로 이 고도칸을 본보기로 해서 만들어졌다고 할 수 있다. 

태권도의 기술발전 및 연구, 지도자 배출, 수련의 3가지가 주요 업무라고 할 수 있는 중앙도장으로서의 국기원이 현재 제 역할을 잘 해내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불만의 목소리가 많다. ‘단증 공장’이라는 오명까지 쓰고 있는 게 현실이다. 

고도칸에 있는 유도 창시자 가노 지고로의 동상.

그러나 고도칸의 경우, 이런 불만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내부적으로는 문제되는 부분들도 없지 않겠지만, 유도의 성지(聖地)로서 고도칸이 가지고 있는 위상에는 흔들림이 없다. 가장 큰 이유로는 유도의 창시자 가노 지고로(嘉納治五郞, 1860~1939)의 힘을 꼽을 수 있다.

잘 알려진 대로 유도는 사무라이들의 무술인 유술(柔術)을 모태로 해서 만들어졌다.
 
가노 지고로는 천신진양류(天神眞楊流), 기도류(起倒流) 등 몇 가지 주요 유술 유파들에서 위험하거나 비효율적이라고 생각되는 기술은 빼고,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기술들은 강조해 오늘날의 유도를 만들어냈다. 이렇게 과거의 ‘무술(武術)’을 ‘무도(武道)’의 경지로 끌어 올리고, 이를 가르치는 곳[講道]으로 강도관을 설립했다. 이후 ‘도’라는 이름이 들어간 무술들(태권도, 검도, 공수도, 합기도 등)은 모두 유도의 영향으로 만들어졌다고 볼 수 있다. 

가노 지고로는 ‘유도’를 만들어냈을 뿐만 아니라, 근대스포츠의 발전에도 지대한 공헌을 한 인물로 꼽힌다. 동경제국대학을 졸업한 가노는 1909년부터 30년간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으로 활동했으며, 근대 올림픽의 창시자 피에르 드 쿠베르텡의 가장 중요한 협조자가 되었다. 

이렇듯 근대 동양무술의 발전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인물이 바로 가노 지고로다. 지금도 강도관의 정문 입구에는 가노 지고로의 동상이 서 있다. 가노 지고로는 말하자면, 김운용과 최홍희가 한 역할을 혼자서 해낸 인물인 것이다. 그러면서 모든 유도인들의 존경을 받는 인물이다. 모든 태권도인들의 존경을 받는 인물은 누가 있을까?

[by 박성진의 무림통신 - 태권도와 타무도]

[태마시스 - 태권도와 마샬아츠의 오아시스 ㅣ www.taema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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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gamelog.kr BlogIcon 태현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태권도는 '스포츠'라는 의미에서 올림픽 종목에 맞게 룰을 뜯어 고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유도는 시간이 종료 될 때까지 '한 판'이라는 마지막 카드가 있기 때문에 끝까지 긴장을 놓칠 수 없듯이 말이죠.

    분명 태권도도 유도에 뒤지지 않는 우리의 자랑스러운 무술일텐데 올림픽종목에서 보이는 스포츠는 안타깝기만 합니다.

    2009.06.05 16:18 신고
  2. Favicon of http://blog.yahoo.co.kr/greatjobs30 BlogIcon Michael  수정/삭제  댓글쓰기

    대국적인 지혜가 필요합니다.
    스포츠 선수나 스포츠 외교를 펼쳐서 외교선양을 하는 사람이든지 과학이나 학술 분야, 그외 모든 분야에서 국위선양하는 사람에게 특혜는 못줄 망정 조금의 잘못이 있을 때 한번의 기회를 더 주는 것이 옳지 바보같이 그것을 빌미로 죽이면 다 무너집니다. 국익과 글로벌 위신을 생각하는 차원을 대국적으로 높여야 합니다.
    소국민의 마인드와 닭대가리의 지혜로는 결단코 세계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할 수 없다는 것을 명심하고 각성하도록 합시다. 나라는 작지만 마인드가 대국적이면 가능성이 있습니다.

    2009.06.13 00:22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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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름다운 여자가 해바라기하는 걸 좋아해요

    2013.04.02 00:11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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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름다운 여자가 해바라기하는 걸 좋아해요

    2013.04.03 00:50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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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세계를 놓고 말하면 당신은 한 사람이지만,단 한사람을 놓고 말하면 당신은 그라삼의 세계입니다.

    2013.04.03 22:51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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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죠? ^.^ 귀여운 애들이 있어, 피로가 덜 쌓이는 듯 합니다.

    2013.05.08 17:45 신고
  7. Favicon of http://19027.jasonjordans.com/nikefree.php BlogIcon nike free run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람들은 죽을걸 알면서도 살잖아 .사랑은 원래 유치한거에요

    2013.07.13 07:28 신고

[박성진 기자의 태권도 vs 타무도] 제6편 대동류 합기유술

대동류 합기유술(大東流 合氣柔術, 다이토류 아이키주즈츠)은 한국의 합기도와 일본 아이키도의 뿌리가 된 무술로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대중적인 관심을 모으게 됐다. 

[대동류 합기유술의 시연 모습. 시연자는 대동류 육방회의 오카모토 세이고.]


대동류 합기유술의 중흥조(中興祖)라 불리는 다케다 소가쿠(武田忽角, 1860∼1943)가 한국 합기도의 시조 최용술, 일본 아이키도의 창시자 우에시바 모리헤이(植芝盛平)의 스승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에시바가 다케다의 제자라는 점은 의심의 여지가 전혀 없지만, 최용술이 다케다의 제자였다는 점은 논쟁거리로 남아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합기도계 주류에서는 최용술이 다케다 소가쿠의 제자라는 점을 전혀 의심하지 않고 있다. 그 이유는 한국 합기도계의 합기도 역사에 대한 이해와 관련이 있다.

일반적으로 한국 합기도계에서는 합기도의 역사에 대해, “원래 신라(新羅)의 무술이었던 합기도가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 다케다(武田) 가문을 통해 이어지다가 다케다 소가쿠에 이르러 최용술에게 전해지고 이것이 다시 한국으로 넘어와 발전하게 되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즉 대동류 합기유술은 다케다 가문에만 비밀스럽게 전해지던 가전(家傳) 무술인데, 다케다 가문의 조상이 사실은 신라 도래인(渡來人)이라는 것이다.
 
다케다 가문은 일본의 명문가로 일본 전국시대의 무장 다케다 신겐(武田信玄)이 바로 이 가문 출신이다. ‘풍림화산(風林火山)’이라는 문구로도 유명한 다케다 신겐은 일본영화의 거장 구로사와 아키라(黑澤明)의 걸작 <카게무샤(影武者)>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다케다 가문의 뿌리가 신라 도래인이라는 주장에 전혀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닌데, 그 근거로 제시되는 사람이 다케다 가문의 조상의 한사람으로 헤이안(平安) 시대에 살았던 실존인물 신라사부로 미나모토 요시미츠(新羅三郞源義光, 1045~ 1127)다.
 
신라사부로 미나모토 요시미츠는 대동류 합기유술의 실질적인 창시자로 여겨지는 인물이기도 하다.요시미츠의 성 앞에 ‘신라삼랑’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유는 요시미츠가 신사(神社)에서 성인식을 치를 때 신라명신(新羅明神) 앞에서 했기 때문이고 삼랑은 세 번째 아들이기 때문에 붙었다는 것이다.

이 때 신라명신이 신라의 장보고(張保皐)이고 따라서 대동류 합기유술과 신라의 관계가 깊다는 주장은 최근 한 연구[송일훈, '대동류유술의 장보고(신라명신) 기원에 관한 연구]를 통해 학문적으로도 제기된 바 있다. 이에 앞서 소설가 최인호도 자신의 소설 <해신(海神)> 등을 통해 신라명신이 장보고라는 의견을 펼친 바 있다.
[사진 -  대동류 합기유술의 달인 다케다 소가쿠]

이러한 주장이 아직 명확하게 밝혀진 것은 아니지만, 한반도를 통해 많은 사람들과 많은 문화가 일본으로 건너갔다는 것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하는 분명한 사실인 만큼 신라명신, 장보고, 신라사부로 미나모토 요시미츠, 대동류 합기유술이 관계가 있을 것이라는 주장은 설득력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한 가지 지적할 것은 이 모든 것이 실제로 연관이 있다고 밝혀지더라도, 대동류 합기유술은 분명한 일본의 무술이라는 점이다. 대동류 합기유술이 신라에서 건너갔으므로 한국의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일본의 문자 히라가나가 한자 초서체에서 변형된 것이므로 중국의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과 같다. 대동류 합기유술은 1천년 이상 일본에서 발전해온 무술이므로 일본의 고유한 무술이자 문화로 이해하는 것이 옳다.

대동류 합기유술은 이러한 한국과의 특별한 관계로도 주목받고 있지만, 이 무술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아이키(合氣)’라는 개념으로도 유명하다. 이 ‘아이키’라는 것은 중국 무술에서 말하는 ‘발경(發勁)’과 비견되는 것으로 ‘말로는 설명되지 않는 신비한 힘’으로 이해되고 있다. ‘아이키’의 경지는 대동류 합기유술을 수려한 제자들 중에서도 극히 일부만이 도달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기자는 ‘아이키’를 시연하는 유명한 고수의 모습이 담긴 동영상을 본 적이 있는데, 고수가 아이키를 시연하자, 상대방은 마치 감전이라도 된 것처럼 꼼짝도 못하고 고꾸라지는 모습을 보였다. 손만 대고 사람을 날린다는 바로 그 경지였다. 직접 잡아보지 않고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모습이었다.

이 아이키의 실체는 발경과 마찬가지로 무술계의 지대한 관심사의 하나이기도 하다. 한국과의 역사적 관계, ‘아이키’ 등으로 대동류 합기유술에 대한 관심은 국내에서도 높아져가고 있다.


[by 박성진 기자의 무림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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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나그네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냥 지나가다 과거에 합기유술을 접했던 사람으로써 한마디 하자면..

    본문에 " 최용술이 다케다의 제자였다는 점은 논쟁거리로 남아있다."
    -> 한국사람들이 이를 주장하는 이유는 역사에서가 아닙니다.
    한국의 합기유술인들이 그렇게 주장하는 이유는 직접 무술 시연을 보시면 아시겠습니다.
    일본의 한 가문에만 비밀리에 전해오던 무술이 전혀 한국에서 전승되고 있다는건 제자가 아니면 할 수 없는거겠죠. 그리고 일반 태권도나 타격기와 달리 합기유술은 일대일의 지도수련이 아니면 익힐 수 없는 기술들이 대부분입니다. 그리고 기술들이 제대로 나오기까지 몇십년 이상을 꾸준히 수련해야만 합니다. 이게 정통 합기도인 합기유술이 널리 퍼지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고요.
    부드러움을 강조하는 아이키도(일본식 발음 합기도)와 달리 합기유술은 어떤 면에서는 잔인할 정도로 살기성을 가지고 있는 기술이 많습니다. 뛰어난 실전성과 강함에도 불구하고 대동류합기유술이 생각만큼 널리 퍼지지 못한 것처럼, 한국에서의 합기유술(최용술 도주가 세운건 원래는 합기도였으나 합기도가 변질되어 퍼져버린 후 그 제자들이 본 기술을 합기유술이라고 개명함)도 그 기술의 난이도가 높고, 그 수련 기간이 매우 길어 많이 한국에서도 퍼지지 못하였씁니다.

    2009.05.23 17:52 신고
  2. 나도 지나가다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소시적에 여러가지 무술을 두루 수련한 사람인데요...

    아이키도나 대동류 합기유술이나 근본은 동일하구요...

    아이키도가 합기유술에 비해 부드러운건 시대상을 반영하기 때문이죠...

    태권도가 발차기 위주로 스포츠화 되면서 가라데보다 연성이 되었듯이 아이키도나 유도 모두 당대에는 살인기술이었습니다...

    유도는 던지기나 조르기 기술등으로 특화 되었고...

    아이키도는 관절기 중심으로 특화되었죠...

    사람들이 잘 모르는데 원래 고류 유도도 가라데와 유사한 타격기술이 있었습니다. 물론 아이키도 처럼 관절기도 있습니다.

    고류 무술을 처음 접해본 사람들은 그걸 잘 모르고 이상한 소리를 하게 되죠...

    그리고 최용술이 다케다의 제자란 근거는 아직도 문헌이나 사료에서 발견된 적이 없습니다.

    대동류 본가에도 그 어떤 기록도 없구요... 최선생님의 기술을 봐도 대동류 합기유술 본가에서 계승되고 전해내려오는 것과 틀린점도 많았습니다. 게다가 선생의 증언과 대동류 본가의 일이 일치하지 않는점도 많구요.

    양자로 입적되었다고 했다가 기록이 없으니 그건 취소고 동에 번쩍 서에 번쩍 관동대지진때 사람을 구하고... 뭐 거의 김일성 신화와 가깝더군요...

    최용술 신화를 주장하시는분들 보면 태권도의 뿌리가 쇼토칸 가라데였다는것을 아직도 부정하시는분들이 생각나더군요...

    태마시스님 말씀처럼 신라의 무술을 받아들여 1천년간 개량하면 일본의 무술이 되는것입니다. 가라데가 단 100년만에 독자적인 무술인 태권도로 바뀌었듯이... 합기도도 한국고유의 무술로 발전시키면 되는것이죠.

    문제는 최용술 선생과 그 1세대 제자들이 수련하는 원류에 가까운 놀라운 관절기는 현재 난립한 합기도 도장에서는 볼수 없다는것입니다.

    지금 현재 합기도 도장을 보면 이것도 저것도 아닌 상황입니다. 이건 뭐 관절기를 하는지 타격기를 하는지...

    타격기를 접목시킨걸로 봐서는 고류에 더 가까운 무술로서의 가치를 높이겠다는 시도였던걸로 보이는데 합기도는 이것도 저것도 아닌 상황이 되어 버린것 같아요...

    왜냐면 관절기도 제대로 수련이 안된 사범들이 제대로 배워본적도 없는 어슬픈 타격기까지 짬뽕을 시켰으니 죽도 밥도 아닌것이 된것이죠...

    개인적으로 제일 재미없었던 수련이 한국 합기도 수련이었습니다.

    언젠가 나이가 들면 아이기도를 한번 배워 보고 싶네요...

    아마 나이들어 멋지게(?) 건강미를 보여줄수 있는 무술은 아이기도가 가장 좋은것 같아요...

    2009.05.24 01:07 신고
  3. 짝퉁도사  수정/삭제  댓글쓰기

    최용술옹은 다케다가 여러 사람앞에서 시범을 할때 기술을 당하는 역을 했다고 합니다. 조선인이라 정식제자는 아니지만 사실 당하는 역활이 오히려 배우는 바는 더 큽니다..일본대동류류의 제자가 용술관(최용술옹의 기술이 남아있는 곳)을 찾아와 대동류의 기술임을 확인했다더군요.(그 역시 대동류역사에는 최용술이란 이름은 없다고 했습니다만) 아이키(합기)는 태극권에서 중시하는 "인진낙공합즉출"과 거진 동일한 원리입니다.태극권의 핵심도 合입니다. 합을 한후에 타격을 하는 유권술입니다. 역시 태극권의 인진낙공합죽출이 완전히 되는 사람은 극히 소수입니다.

    2009.06.01 16:39 신고

[박성진 기자의 태권도와 타무도] 제5편 아이키도  

아이키도의 한자 표기는 合氣道(합기도)다. 표기만을 놓고 본다면 우리나라의 합기도와 같다. 간단히 말하자면 일본식 합기도라고 할 수 있다.

아이키도는 일본의 우에시바 모리헤이(植芝盛平, 1883~1969)에 의해 창시된 근대 무술이다. 우에시바 모리헤이의 스승은 대동류 합기유술의 달인으로 유명한 다케다 소가쿠(武田忽角, 1860∼1943). 이견이 있기는 하지만 다케다 소가쿠는 한국 합기도의 개조 최용술(1899~1986)의 스승이라고도 알려져 있다. 이러한 점 등을 볼 때 아이키도와 합기도에 비슷한 점이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자세히 알고 보면 큰 차이가 있다.

아이키도의 가장 큰 특징은 경기(시합)가 없다는 점이다. 물론 수련할 때는 공격자와 방어자로 나뉘어 공격과 방어를 하지만 태권도, 검도, 유도 등과 같은 다른 무술들과 같은 겨루기는 하지 않는다. ‘경기(시합)를 하지 않는다’, ‘경쟁을 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을 이기려 하지 않는다’는 평화의 원리가 아이키도를 세계 무술사에서 가장 독특한 무술로 만드는 철학이다. 

그래서 아이키도는 선제공격을 거의 하지 않으며 공격에 대한 방어를 위주로 수련한다. 게다가 공격자를 격렬하게 제압하는 것이 아니라 다치지 않도록 배려하면서 제압하는 것을 이상(理想)으로 한다. 그래서 아이키도는 ‘사랑의 무도’, 즉 ‘愛氣道’라는 별명으로도 불린다.(일본어에서 合와 愛의 발음은 모두 ‘아이’로 같다.) 이러한 점들 때문에 아이키도는 흡사 양식 태극권을 보는 것처럼 무술이라기보다는 춤에 가까운 경우가 많다. 그래서 아이키도는 무술로서는 약하다는 오해를 받기도 한다. 물론 사실이 아니다.

우에시바 모리헤이는 86세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계속해서 제자들을 직접 가르쳤다. 그렇다보니 우에시바에게는 수많은 제자들이 있고 언제 배웠느냐는 시기에 따라 각각 다른 스타일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즉 우에시바가 젊었던 40, 50대에 배운 제자들의 스타일은 상대적으로 빠르고 격한 움직임을 보이는 경우가 많고 60대 이후에 배운 제자들의 경우에는 느리고 부드러운 모습을 보인다. 

우에시바에게는 탁월한 제자들이 많은 것으로도 유명하다. 시오다 고조, 도헤이 고이치, 도미키 겐지 등이 각각 스승의 가르침에 기반해 자신들의 스타일을 완성해 독립했으며 학문적으로도 아이키도를 깊이있게 만들고 있다. 

아이키도는 전 세계적으로도 많은 수련인구를 가지고 있는 무술로 국제아이키도연맹(IAF)이 1984년에 국제경기연맹총연합회(GAISF)에 가입이 되었을 만큼 세계적인 무술로서 인정받고 있다. 국내에는 1990년대에 이르러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했으며 현재는 ‘대한합기도회(회장 윤대현)’가 일본 아이키카이(日本 合氣會)의 정식 인정을 받아 활동하고 있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아이키도의 가장 큰 특징은 겨루기가 없다는 점이다. 상대와 경쟁하지 않는다는 것, 남을 이기려는 것이 아니라 나를 이기는 것. 이것이 바로 무도정신의 극의(極意)에 가장 가까운 것이 아닐까? 

아이키도는 수련과 그 철학이 따로따로인 것이 아니라, 수련 속에 철학(상대에 대한 배려, 평화주의)이 녹아있다는 점에서 볼 때 가장 진보한 무술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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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04.11 18:16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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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른 사람을 이기려 하지 않는다’는 평화의 원리가 아이키도를 세계 무술사에서 가장 독특한 무술로 만드는 철학이다

    2013.05.08 11:48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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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는 검도8단 승단시험 (10)

    2016.06.21 17:52 신고

[by 박성진 기자의 무림통신 - 태권도와 타무도] 제4편 합기도  
 
도장의 수를 기준으로 국내에서 가장 성행하는 무술을 꼽는다면 태권도, 합기도, 검도, 유도를 4대 무술로 들 수 있다. 이 중에서 태권도는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다른 세 종목을 모두 합친 것보다도 큰 비중을 가지고 있는 게 현실이다.

그러나 검도의 경우 대한검도계열과 해동검도계열로 나눌 수는 있으나 검이라는 무기를 사용한다는 정체성이 명확하고, 유도의 경우에도 태권도를 능가하는 국제스포츠로서의 위상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합기도의 경우에는 손과 발차기를 한다는 점에서는 태권도와, 무기술을 한다는 점에서는 검도와, 관절기를 한다는 점에서는 유도와 어느 정도 겹치는 부분이 있다. 그렇다보니 자신들만의 정체성을 제대로 확립하지 못하고 대한체육회에서도 인정을 받지 못한 채 수많은 협회들이 난립되어 있는 현실이다. 그러나 합기도가 가지는 호신술로서의 가치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태권도도 호신술에서 지도하고 있는 기술의 많은 부분을 합기도에서 차용해온 경우가 많다.

합기도가 태권도에 뒤지지 않는 역사적 전통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태권도의 세에 뒤지게 된 이유는 해석에 따라 다양한 의견이 있을 수 있겠으나, 그 중 하나로 합기도의 원류에 대한 불명확성이라고 볼 수 있다.

태권도와 합기도는 모두 그 뿌리를 일본에 두고 있다. 태권도 1세대라고 할 수 있는 이원국, 노병직, 최홍희 등이 유학생으로 일본에 갔다가 후나고시 기친(船越義珍)에게서 쇼토칸 가라테를 배우고 귀국해 오늘날의 태권도가 만들어지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국내 합기도의 창시자라 불리는 최용술(1899~1986)은 일본에 유학생 신분으로 건너갔던 것이 아니다. 고아나 다름없는 상황에서 10세 무렵(1908년) 일본인 부부를 따라 일본으로 건너갔다. 이후 최용술은 1946년 귀국할 때까지 근 40여 년간 일본에서 생활한다. 이때 그의 생활이 어떠했는지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밝혀진 바가 없다.

 

                                 ▲ 한국 합기도의 시조 최용술이 기술 지도를 하고 있다.

한국 합기도계의 주장에 따르면 최용술은 일본에서 생활하던 시절 일본 대동류 합기유술(大東流 合氣柔術, 다이토류 아이키주즈츠)의 대가 다케다 소가쿠(武田忽角, 1860∼1943)를 만나 제자로서 따라다니며 무술을 배워 수제자의 위치에까지 올랐다는 것이다. 다케다가 사망하자 최용술이 귀국해서 대구에서 합기유술을 가르치기 시작한 것이 한국 합기도의 시작이다.

이때 대구에서 배웠던 최용술의 1세대 제자들이 지한재, 김무홍, 김정윤, 서인혁 등이며 이들로부터 현재 한국합기도의 주류인 대한합기도협회, 기도회 등이 시작됐다.

문제는 최용술이 가르친 합기도(유술)와 1세대 제자들에 의해 전수된 합기도에 적지 않은 차이가 있다는 점이다. 최용술은 주로 ‘술기’라고 불리는 관절기를 지도했으나 1세대 이후의 제자들은 술기만이 아닌, 발차기, 무기술, 낙법 등에 오히려 치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래서 현재의 합기도는 초창기 최용술이 지도했던 합기도와는 큰 차이가 있으며 어느 경우에는 최용술의 비중과 존재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경우까지 있다. 이러한 이유가 합기도가 단일한 조직으로 통합되지 못하는 이유의 하나로 꼽히고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최용술이 가지고 있던 기술에 대한 평가만큼은 누구도 부인하거나 폄하하지 못하고 있다. 한국 근대 무술사에서 손가락에 꼽히는 경지에 달한 무술인으로 최용술이 빠질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최용술이 이 대단한 기술을 실제로 누구한테 배웠느냐는 점이 또한 아직까지 풀리지 않는 논쟁거리로 남아있다. 한국 합기도계의 주류 견해는 최용술이 다케다 소가쿠의 수제자라는 것이지만, 정작 일본의 대동류 본가에는 최용술에 관련된 기록이 전혀 남아있지 않다. 게다가 최용술이 언급했다는 다케다 소가쿠에 관한 사실이 실제와 다른 경우도 종종 나타나는 것이다.

최용술 본인은 대구에서 처음 합기도를 지도할 때 자신의 무술을 합기유술(아이키 주즈츠)이라고 하지 않고 야와라(柔)라고 말했다고 일부 1세대 제자들은 증언하고 있다. 또한 최용술이 보여준 기술과 현재 일본 대동류 합기유술 본가에 내려오는 기술과도 적지 않은 차이가 있다.

이러한 정황을 종합해 볼 때 최용술이 일본에서 배운 것이 다케다 소가쿠의 대동류 합기유술이 아니라 일본의 많은 유술 유파 중의 하나를 배운 것이 아니겠느냐는 견해가 힘을 얻고 있다.

한국 합기도계가 최용술의 스승이 다케다 소가쿠라고 주장하는 이유의 하나는 한국의 합기도와 이름이 겹치는 일본의 합기도(合氣道, 아이키도)의 창시자 우에시바 모리헤이(植芝盛平, 1889~1969)가 다케다의 수제자 중 한사람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합기도는 일본의 합기도에서 이름을 따왔기 때문에 최용술이 우에시바에 비해 더 먼저, 더 많이 다케다 소가쿠로부터 대동류 합기유술을 배웠고 따라서 합기도의 정통성이 한국에 있다는 주장의 근거로 삼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은 명확한 사실에 근거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설득력을 잃고 있다.

이러한 불분명한 문제들을 명확히 정리하고 난립한 협회들을 정리, 통합해 대한체육회에 가입해야 한다는 것이 현재 합기도가 가지고 있는 과제다. (끝)

[태권도와 마샬아츠의 오아시스 - 태마시스 -  l www.taema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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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짝퉁도사  수정/삭제  댓글쓰기

    국술 5단형 운학의 경우 홍가권(황비홍으로 유명)의 호학쌍형권과 거진 같습니다. 국술이란 용어는 청말민국초부터 사용해온 중국무술이란 의미입니다. 아직도 홍콩,대만등지에서는 중국무술을 국술이라고 합니다. 유술(주짓츠)나 야와라나 같은 의미입니다. 대동류도 야와라의 한 종류일뿐입니다.

    2009.06.01 16:57 신고
  2. 고갱님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렇군요! 택견도 니가 정통이냐 아니냐로 세갈래로 나뉘어져있는데

    2011.09.04 08:56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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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른 남자 부르면서 울거면 나한테 이쁘지나 말던지

    2013.07.18 07:15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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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합기도계의 주장에 따르면 최용술은 일본에서 생활하던

    2014.04.18 12:48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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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학생으로 일본에 갔다가 후나고시 기친(船越義珍)에게서 쇼토칸 가라테를 배우고 귀국해 오늘날의 태권도가 만들어지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2014.04.18 12:49 신고


[박성진 기자의 태권도 vs 타무도]

[연재를 시작하며] 전 세계에는 많은 종류의 무술이 있다. 태권도는 그 다양한 무술 가운데 하나다. 팔과 다리를 사용한다는 기본적인 전제를 놓고 본다면, 이 다양한 무술들은 모두 일맥상통하는 면을 가지고 있다. 그것이 태권도나 복싱과 같이 상대방을 가격하는 무술이건 유도나 레슬링과 같이 상대를 잡아 꺾거나 넘기는 무술이건 인간과 인간이 맞서 상대를 제압한다는 목적은 모두 같다. 그런 점에서 태권도를 더 깊이 이해하고 발전시키기 위해서라도 다른 무술들에 대한 이해는 필수적이다.

그런데 의외로 태권도인들 중에 타 무술에 무관심한 경우를 보게 된다. 태권도가 최고이기 때문에 태권도만 잘 알면 된다고 생각하는지도 모른다. 과연 그럴까? 동서고금의 무술 고수들 중에는 한 가지 무술만 잘 한 경우보다 자신의 무술을 더욱 발전시키기 위해서라도 여러 무술을 두루 섭렵한 경우가 더 많았다. 태권도신문은 태권도인들의 타 무술에 대한 보다 깊은 이해를 기대하며 신년 기획의 하나로  '태권도 vs. 타 무술' 연재를 시작한다.

= 제1편 주짓수 =



무술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는 미국의 종합격투기대회 UFC(Ultimate Fighting Championship)는 전 세계에 존재하는 다양한 무술들 중에서 어떤 것이 최강인가를 실제 대결을 통해 가려보자는 시도에서 탄생됐다. 그런 의미에서 1993년 미국 콜로라도주 덴버에서 시작된 제1회 UFC대회는 무술사에서 획기적인 일로 기억되고 있다.

유도, 가라테, 킥복싱, 레슬링 등 각 무술의 내로라하는 고수가 총출동한 이 대회에서 우승을 한 무술은 무엇이었을까? 바로 주짓수(Jiujitsu)였다. 주짓수? 이름조차 생소한 이 무술을 내세운 브라질 출신의 호이스 그레이시(Royce Gracie)가 1회, 2회 대회에 이어 4회 대회까지 거푸 우승을 차지했다. 호이스는 출전자들 중에서 키나 몸무게가 큰 편도 아니었고 오히려 가장 약해 보인다고까지 할 수 있는 선수였으나 어찌된 일인지 상대 선수들은 호이스와 맞붙기만 하면 꼼짝을 못했다.

그런 완벽에 가까운 승자 호이스가 자신의 형은 자신보다 훨씬 더 강하다고 공언했다. 바로 공식, 비공식전을 합쳐 450전 무패의 기록을 가지고 있다는 힉슨 그레이시(Ricson Gracie)다. 힉슨 그레이시 또한 브라질을 넘어 일본과 미국 등지에서 실력을 증명했고, 이후 전 세계 무림계에는 이 새로운 무술 주짓수 열풍이 불기 시작했다.

주짓수(Jiujitsu)는 일본무술인 유술(柔術)의 영문표기다. 일본어 발음으로는 ‘주즈츠(Jujutsu)’에 더 가깝지만 브라질을 거쳐 미국에서 알려지면서 주짓수라는 이름으로 정착하게 되었다. 주짓수는 일본의 유술이 브라질에 들어와 그레이시 가문을 통해 발전하고 정립된 새로운 무술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일본의 유술을 브라질에 전해준 인물이 마에다 미츠요(前田光世, 1878~1941, 일명 콘데 코마)다. 마에다는 원래 유도의 창시자인 가노 지고로(嘉納治五郞)의 제자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가노 지고로는 일본의 수많은 유술 유파 중에서 위험하거나 새로운 시대에 걸맞지 않다고 생각되는 기술은 버리고 교육적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기술은 더욱 강조하여 새로운 무술인 유도를 만들어 냈다.

가노는 자신의 무술인 유도를 만들어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일본의 유술이 가지고 있는 가치를 부정한 것은 아니었다. 자신의 수제자들을 다른 유술 유파의 고수에게 보내서 배우게 했으며, 유도의 극의를 깨우치기 위해서는 고류유술을 연구해야 한다고 제자들에게 자주 강조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유도와 유술의 전통을 몸에 지니고 있던 마에다는 미국을 비롯한 여러나라를 돌아다니며 레슬링, 복싱 등의 타 무술 고수들과 ‘이종격투’ 시합을 하고 다녔다. 마에다의 이러한 행보는 가노 지고로의 허락을 받은 것이 아니었고, 따라서 마에다는 유도라는 이름 대신에 유술이라는 이름을 썼다.

마에다는 1914년 브라질로 건너가 정착하게 되었는데 그 과정에서 한 집안(그레이시 가문)의 도움을 받게 되었고, 고마움의 표시로 이 집안의 아들들에게 무술을 가르쳐 준다. 이것이 바로 ‘브라질 유술’, 또는 ‘그레이시 유술’이라고도 불리는 주짓수의 시작이다.

마에다에게 유술을 배운 그레이시 가문의 아들들(그 대표라 할 만한 사람으로 주짓수의 시조라 불리는 엘리오 그레이시가 있다)은 스승인 마에다가 그랬던 것처럼 브라질이라는 나라가 가지는 거친 분위기 속에서 타 무술들과의 끊임없는 대결을 통해 자신들의 무술을 더욱 실전적으로 발전시켜 나간다. 그리고 마침내 브라질에 유술이 소개된 지 만 80년 만에 세계 최강의 무술에 가장 근접하다는 평가를 받게 된 것이다.

한국에는 90년대 후반부터 주짓수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현재는 주짓수를 배우지 않고 종합격투기에 나서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필수 요소가 되었다. 그 파해법도 많이 개발되어 예전과 같은 불패의 무술이라는 명성은 많이 퇴색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주짓수의 성가는 유효하다.

주짓수가 가진 매력의 하나는 10년을 꾸준히 수련해도 따기 힘들다는 주짓수 블랙밸트의 가치다. 길어야 1년, 심한 경우에는 몇 주간의 단기연수만으로도 검은띠를 받을 수 있는 무술이 넘쳐나는 현실에서 주짓수 검은띠의 가치는 여전히 대단한 것이다. 심지어는 주짓수 갈색띠가 웬만한 무술 3~4단보다도 더 권위를 갖는 것이 현실이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실제로 실력을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 자신이 매고 있는 띠와 단위에 어울리는 실력을 갖추고 있는지는 스스로가 잘 알고 있을 터. 주짓수는 가르치는 사람과 배우는 사람이 몸을 맞대고 수련을 하기 때문에 말로만 가르칠 수가 없는 무술이다. 다시 말해 직접 몸으로 보여주지 못하면 가르칠 수가 없는 것이다. 태권도의 경우는 어떠한가? 타 무술을 통해 보다 더 연구하고 배울 필요를 여기서 다시 한 번 찾을 수 있다. (끝)


[박성진 기자의 무림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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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은 정보 잘보고 갑니다

    2016.06.09 04:44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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