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소룡이 스스로 스승이라고 말하는, 중국 광동출신의 엽문(1893~1972)을 소재로 만든 영화로 2008년작 '엽문'이 있다.  이번에 톱스타 송혜교는 왕자웨이 감독의 ‘일대종사’에 출연한다. 이 이야기 역시 엽문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라고 한다.

갑자기 이소룡의 스승을 다룬 영화가 제작될까? 2년전 홍콩의 무술산업관계에게 들은 이야기로 짐작해 본다. 그들은 중국무술이 전세계에 보급되고 있어 중국무술내 산업의 경제적 파급효과는 상당하다고 평가하고 있다.

이미 1960년대 미국 헐리우드에 진출한 이소룡이라는 인물은 중국무술의 상징인물이 됐고, 서양사람들에게도 무술하면 이소룡이라는 인물을 떠올릴정도로 전설의 인물이 됐다고 한다. 그 후 등장한 성룡, 이연걸, 견자단 등 홍콩출신의 무술배우들이 스타로 이어졌지만, 무술수련자들에게는 아직도 이소룡에 대한 신비감과 그의 특기무술인 영춘권과 절권도에 대해 큰 관심을 불러오고 있다.

이런 이유에서 이소룡은 최근 영화뿐만 아니라 각종 무술쇼 등에서도 잘 인용되는 인물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소룡의 스승인 엽문에 대한 이야기는 또다른 관심을 불러 일으킨다. 그를 소재로 만들었다는 것은 그의 인물뿐만 아니고 영춘권에 대한 새로운 관심대상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영춘권은 여러 기원설이 있다. 하지만 최근 학계에서는 청나라 시대에 엄영춘이라는 여자가 창시했다는 것을 정설로 보고 있다. 엄영춘의 남편 양박주에 의해 보급되기 시작했고, 황화보, 양이제에 의하여 광동성과 복건성지역에 보급되면서 성행되었다.

특히 이들의 제자였던 양찬은 '영춘권왕'이라는 칭호를 받으며 당대의 고수로 자리하였다. 그는 일생에 단 4명의 제자만을 두었다고 한다. 그 중 진화순(陳華順)이 길러낸 제자 중 한명인 엽문이 영춘권을 세계화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하지만 중국이 혁명이 일어나자 엽문일파는 홍콩으로 옮겨 여기서 영춘권의 본거지를 만들었다. 엽문에게서 영춘권을 배운 이소룡은 영춘권을 기본으로 하는 절권도를 만든 것으로 유명하다.

영춘권은 어떤 무술일까. 영춘권은 군더더기 없기 간단하게 치며 위력적인 기술을 구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런 특성과 비슷한 것이 북파권법인 팔극권과 형의권과도 비슷하다. 근거리의 상대를 손기술 등을 통해 상대를 무마시키고, 상대의 손과 팔을 제압해 상대의 반격과 방어의 기능을 제한 시키는 기법이다. 이러한 제압이 이루어지면 마지막으로 상대의 몸에 강력한 공격을 해 제압하는 기술이다. 이런 과정에는 타격기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관절기나 급소지르기 등이 포함되어 있어 상당한 파괴력과 실전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영춘권의 형성과정을 보면 수많은 권법중에서 필요한 기술들만 재정립된 무술로 보인다. 근대시기 새로 정립된 기술들도 많았을 것이고, 해외에 보급되는 과정에서 변용된 것도 많았을 것이다.

송혜교가 출연해 이소룡의 스승을 다른 영화가 나온다고 하니, 2008년 먼저 개봉되었던  영화 <엽문> 에 대해 프로덕션에서는 다음과 같은 정보를 제공했다.



REAL INFORMATION 1. 엽문

“우리의 무술은 ‘인(仁)’을 기본으로 남을 헤아릴 줄 안다.
그러므로 너희 일본은 평생 이해할 수 없는 이치이며, 무술을 논할 자격이 없다!”


중국 광동의 불산에서 태어난 엽문(1893~1972)은 7세의 어린 나이에 무술을 시작하여, 16세가 되던 해 ‘영춘권’의 대가 ‘양벽’ 밑에서 수학하며 무술실력이 장족의 발전을 이룬다. 이후, 불산에 있는 다른 무인들과의 교류와 대련을 통해 그의 명성은 중국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그러던 중 중일전쟁이 발발하고 중국이 일본의 손아귀에 들어가자, 애국심이 투철했던 엽문은 일본군을 위해 일하기를 거부하며 가난한 생활을 자처하였고, 중국인들이 일본으로부터 자신의 몸을 지킬 수 있도록 자기방어 수단이 뛰어난 호신무술 ‘영춘권’을 가르치며 일본에 맞서 중국의 자존심을 지켜냈다. 해방 후, 홍콩으로 건너간 엽문은 개인에게 맞는 차별화된 교육 방식으로 홍콩 전역에 ‘영춘권’의 붐을 주도하였으며, 전통무술의 대중화에 앞장섰다. 특히, 당시 13세의 이소룡을 제자로 받아들여 훗날 이소룡이 가장 존경하는 스승이자 ‘절권도’의 기본원칙과 그 사상의 중심이 된 인물로도 유명하다. 겸손한 성품을 가진 그는 영춘권의 대가로서 절대 거만한 모습을 보이지 않았고, 홍콩에 자리를 잡은 후 영춘권과 무술계의 발전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다. 영춘권에 대한 끝없는 열정과 무술인에 대한 존경심은 물론 국가와 민족을 진정으로 아끼고 사랑했던 영춘권의 대가이자 중국을 대표하는 무술인으로 중국인들에게 여전히 존경 받고 있다.

REAL INFORMATION 2. 영춘권

“영춘권은 ‘엄영춘’에 의해 창시되어 ‘양찬’의 손으로 뿌리내려지고,
‘엽문’이 널리 번영시킨 무술이다.”


중국 명나라 말, 청나라의 압박을 피해 후난마을로 피신한 소림의 ‘오매선사’는 동네건달에게 결혼을 강요 당하고 있던 두부장사의 딸 ‘엄영춘’을 돕기 위해 여성의 신체에 적합한 무술동작을 가르쳤고, 무술에 타고난 재능을 가진 그녀는 이 무술을 직선적이고 간결한 호신무술로 승화시켜 자신의 이름을 딴 ‘영춘권’으로 탄생시킨다. 여성의 자기 방어를 위한 수단으로 만들어진 영춘권은 자세가 높고 부드러우며 실용성까지 겸비한 실전무술이다. 이후 그녀의 남편인 ‘양주박’에게 전수된 ‘영춘권’은 그의 제자 ‘황화보’와 ‘양이제’ 등에 의해 영화 속 배경인 중국 광동의 ‘불산’에서 새롭게 태동하게 된다. 계속해서 발전을 거듭한 영춘권의 기술은 영춘권의 왕이라 불린 ‘양찬’을 거쳐 그의 제자인 ‘진화순’에 이르러 제대로 된 권법으로 재확립된다. 그리고 그의 수제자인 ‘엽문’에 의해 누구나 쉽게 배울 수 있는 실용무술로 재탄생, 비로소 대중화에 이르게 된다. 여기에 ‘이소룡’의 인기를 바탕으로 세계적으로 알려지면서 중국을 대표하는 무술로 자리잡게 된다.
ABOUT THE MOVIE 1.

전대미문! 유일무이! 상상초월!
이소룡의 스승이자, 중국 무술의 전설 ‘엽문’의 감동 실화가 펼쳐진다!!


<엽문>은 ‘이소룡’의 스승이자, 중국 무술계의 전설적인 영웅 ‘엽문’의 파란만장한 일대기를 다룬 감동 실화. 무술 하나로 10억 대륙의 힘과 마음을 하나로 모았으며 전세계적으로 200만명 이상의 제자를 둔 ‘엽문’은 지금도 전세계 무인들에게 큰 인기를 누리고 있는 세계적인 명성의 전통무술 ‘영춘권’을 대중화시킨 인물이다. 특히, 그는 세계적인 우상이자 액션스타 ‘이소룡’이 유일하게 인정하는 스승이며, 그가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이소룡이 창시한 ‘절권도’가 표방하는 모든 형식과 규칙을 버리라는 원칙이 엽문의 사상과 정확히 일치하는 것만 보아도 엽문이 이소룡에게 끼친 영향력은 대단하다고 할 수 있다. 1930년대 최고의 무술실력을 가졌지만 사사로운 감정으로 무술을 남용하는 일이 없었던 ‘엽문’이 갑작스레 발발한 중일전쟁으로 일본의 억압을 받으며 고통 받는 국민들을 위해 ‘인(仁)의 무(武)’로 항거하며 시대가 원하는 진정한 영웅이 되기까지의 과정을 그린 영화 <엽문>. 이소룡의 유일한 스승이자, 맨주먹으로 민족의 자존심을 지켜낸 중국 무술계의 전설 ‘엽문’의 감동 실화가 지금 스크린 위에 펼쳐진다.

ABOUT THE MOVIE 2.

놀라운 스피드! 강력한 파워! 폭발적인 타격감!
‘리얼’을 넘어 이제는 ‘실전’이다!
2009년, 액션의 새로운 키워드 ‘실전액션’!!


<엽문>은 실존인물인 엽문과 그의 무술인 ‘영춘권’의 기본기를 컨셉으로 현실에서도 활용 가능한 100% ‘실전액션’을 자랑하며, 짜릿한 통쾌함은 물론 놀라운 스피드와 강력한 타격감으로 생생하고 실감나는 ‘실전액션’의 진수를 선보인다. 특히, 빠른 손기술을 기본으로 공격과 방어가 결합된 직접적이고 실용적인 근접 격투로 유명한 ‘영춘권’이 영화 <엽문>의 액션 장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기에 그 현실성은 상상을 초월한다. 실제로 현대의 이종격투기에서도 그 격투기술에 커다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영춘권’은 놀라운 속도의 손기술과 강력한 파워, 폭발적인 타격감 등으로 인해 영화 속 특별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또한, 각종 무술 대회 1위를 휩쓴 37단의 무술 유단자이자, 아시아 최고의 액션배우 ‘견자단’이 실제 엽문의 아들인 ‘엽준’에게 전수받은 ‘영춘권’을 기본으로 직접 펼쳐 보이는 액션 장면들은 견자단의 팬뿐만 아니라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의 매력에 빠져들 만큼 강력한 흡입력으로 완벽한 실전액션을 선보인다. 실제 ‘영춘권’으로 영화 <엽문>만의 특별한 ‘실전액션’이 주는 쾌감은 통쾌한 액션의 짜릿함을 뛰어넘으며 보는 이의 시선을 단번에 사로잡게 될 것이다.

ABOUT THE MOVIE 3.

홍콩 박스오피스 1위! 홍콩 금상장영화제 12개 부문 노미네이트! IMDB 관객평점 8.1!
액션과 감동을 넘나들며 모두를 열광시킨 <엽문> 연말 개봉 목표로 속편 제작중!!


<엽문>은 지난 12월 홍콩에서 개봉하여 중국 무술영화 부활의 가능성을 제시하면서 커다란 반향을 불러 일으켰고, 개봉과 동시에 홍콩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함은 물론 영춘권을 배우려는 사람들로 인해 ‘엽문 신드롬’으로까지 이어지며 홍콩뿐만 아니라 중국 등 아시아 전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특히, 홍콩 개봉 당시 <트와일라잇>, <마다가스카2>등 할리우드의 쟁쟁한 경쟁작들을 물리치고 개봉 첫 주 홍콩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하는 저력을 발휘하며 관객들의 폭발적인 지지를 이끌어냈다. 또한, 4월초 개최예정이며 홍콩에서 가장 권위 있는 영화제인 ‘제28회 홍콩 금상장영화제’에서 최우수작품상을 비롯 감독상, 남우주연상, 무술상, 음악상 등 총12개 부문에 노미네이트 되는 쾌거를 이뤄냈다. 이는 중국을 대표하는 전설적인 영웅의 탄탄한 스토리와 빠르고 강력한 실전무술 ‘영춘권’의 완벽한 재연, 실감나는 액션영상과 웅장한 음악 등 작품의 전반에 걸쳐 완성도 높은 웰메이드 작품으로 인정 받았기에 가능했던 것. 여기에 까다롭기로 소문난 IMDB에서 현재 관객 평점 8.1이라는 높은 점수를 기록하며 전세계적으로 열광적인 반응까지 얻어내고 있다. 작품성과 흥행성을 모두 인정받은 웰메이드 영화 <엽문>. 국내 개봉과 동시에 그 파란만장한 흥행돌풍을 이어가며 관객들을 시선을 사로잡을 것이다.

ABOUT THE MOVIE 4.

아시아 영화의 전설적인 최강 제작진들이 모여 만든 최고의 기대작 <엽문>!
완벽한 열연과 감각적인 액션, 감동적인 음악까지 환상적인 조화로 빛나다!!


중국을 대표하는 전설적인 영웅을 스크린에서 만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가슴 설레게 하는 영화 <엽문>. 빠르고 강력한 실전무술 ‘영춘권’의 실감나는 액션은 물론 웅장한 음악까지 어우러져 더욱 특별한 작품으로 완성되었다. 중화권 최고의 액션 장르의 달인 ‘엽위신’ 감독의 탁월한 연출은 물론 각종 무술 대회 1위를 휩쓸 만큼 뛰어난 무술실력으로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는 액션배우 ‘견자단’과 일본의 석호필이라 불리는 연기파 배우 ‘이케우치 히로유키’가 열연을 펼쳤으며, 80년대부터 홍콩 최고의 액션영화배우이자 살아있는 역사 ‘홍금보’가 무술감독으로 참여해 완벽한 조화를 이룬다. 여기에 <공각기동대>, <데스노트>, 한국 영화 <야수>, <남극일기> 등을 통해 일본 영화음악계의 거장이라 불리는 ‘카와이 켄지’가 음악감독으로 참여해 웅장하고 비장미 넘치는 OST를 완성시키며 가슴 벅찬 감동의 음악을 선사한다. 아시아 최고의 제작진의 의기투합과 열정으로 만들어져 더욱 완성도 높은 작품으로 탄생한 영화 <엽문>. 관객들의 가슴에 영원히 기억될만한 최고의 작품으로 이제 대한민국마저 흥분시킬 것이다.

PRODUCTION NOTE 1.

9개월 간의 무술 수련! 2개월 간의 ‘불산’ 답사와 인물 연구!
견자단, 최고의 열정을 불태우며 실존인물 ‘엽문’으로 완벽하게 변신하다!!


견자단은 <엽문>의 캐스팅 제의를 받자마자 최근 자신의 영화들에서 자주 선보였던 종합격투기(MMA)를 기본으로 한 ‘리얼액션’ 컨셉을 버리고, ‘실전액션’인 ‘영춘권’을 완벽하게 구사하기 위해 시간을 쏟기 시작했다. 그는 엽문의 아들인 ‘엽준’에게 직접 영춘권을 전수받으며 9개월이 넘는 기간 동안 집중적으로 이를 연마했다. 특히, 시간이 날 때마다 엽준에게 엽문의 행적에 대해 듣는 것은 기본이고, 인터넷이나 책 등을 통해 자료를 수집하여 연구했다. 또한 엽준, 엽위신 감독과 함께 생전 엽문이 활동하던 중국 광동의 불산을 2개월여 동안 드나들면서 당시 엽문의 삶과 혼을 직접 체험하는 등 영화를 위한 만반의 준비를 하였다. 뿐만 아니라 실제 엽문과 외모까지 비슷해지기 위해 10kg이나 감량하였으며, 결국 영춘권의 고수들도 감탄할만한 실력을 갖추게 되었다. 이런 그의 노력들은 촬영장에서도 계속되었는데 평소에도 신사답게 말하고, 침착한 자세로 걸으며 물 한잔을 마셔도 엽문이 쓰던 전통 찻잔을 쓰는 등 자신을 1930년대의 엽문으로 완벽하게 변신시켰다. 또한, 도끼를 사용했던 대결 장면을 촬영하던 중 도끼가 얼굴에 스쳐 실명의 위기까지 갔으나 응급처치만 한 채 바로 촬영에 임하는 열정을 보여 스탭들을 놀라게 하기도 했다. 이런 견자단의 준비와 노력 등으로 인해 그의 훌륭한 액션 연기는 스크린 위에서 빛을 발할 수 있었다.

* PRODUCTION NOTE 2.

폐허가 된 창고를 1930년대 공장으로 탈바꿈 시켜라!
대륙의 자존심을 지킨 ‘엽문’처럼 불가능을 가능케 하는 기적을 일으키다!!


<엽문>의 첫 촬영은 상하이 공업지구의 한 창고에서 시작됐다. 이 곳은 영화에서 엽문의 친구가 운영하는 면직공장으로 엽문이 중국인들에게 처음 무술을 가르친 장소이며, 그가 일본군에게 대항하여 민족의 자존심을 건 대결을 신청했던 중요한 촬영지였다. 그러나 촬영에 적합한 분위기의 공장을 찾기 어렵게 되자, 세트가 아닌 실제 공장을 짓기로 결정한다. 그 후, 영화 <엽문>의 미술팀은 기적과 같은 일을 일으키는데, 밤낮을 가리지 않은 3주간의 작업 끝에 폐허가 된 창고를 1930년대의 면직공장으로 완전하게 탈바꿈시킨 것이다. 여기에 아트디렉터인 ‘켄’은 당시 불산은 중국과 서양의 문화가 충돌했던 독특한 지역의 특성을 살려 공장의 기둥과 조명, 의자와 식기류 등에 서양 문화의 요소를 가미하는 등의 디테일도 놓치지 않았다. 또한, 일제강점기의 상황을 감안 건물은 매우 노후하고 낡아 보이도록 하였으며 얼마 되지 않는 참고자료가 전부였음에도 미술팀은 실제로 기계가 작동하는 공장을 만들어냈다. 그곳은 실제로 면 생산이 가능할 정도로 모든 것이 완벽했으며, 이 기막힌 작업을 목격한 <엽문>의 다른 스탭들은 그저 기적이란 말로 밖에 표현할 수 없다며 혀를 내둘렀다. 그것은 마치 민족의 자존심을 지킨 ‘엽문’의 애국심처럼 최고의 작품을 위한 스텝들의 불타는 열정이 있었기에 기적을 가능케 했던 것 같다고 엽위신 감독은 회고한다.

PRODUCTION NOTE 3.

전설적인 10대 1의 대결!
단 한가지 동작에 단 한 명씩만 쓰러뜨려라!
전통 무술 ‘영춘권’에 현대적 액션의 색채를 입히다!!


실제 ‘엽문’이 ‘영춘권’의 고수였기에 영화 속 액션의 대부분은 ‘영춘권’이 차지하고 있다. 기존의 중국 무술 액션영화에서 다뤄왔던 태극권, 취권 등과 같은 무술들은 멋진 액션 장면을 연출해내기 위해 실제보다 동작을 과장하고 리액션을 더 크게할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영춘권은 공격과 방어가 결합된 직접적이고 실용적인 근접 격투 그 자체다. 특별히 꾸밀 필요가 없기에 인상적이고 극적인 액션의 합을 짜는 것에만 집중하면 되었다. 무술감독 ‘홍금보’는 액션 장면에 영춘권이 지닌 무(武)의 컨셉과 동작 등을 최대한 액션의 합에 반영해 영춘권만의 차별화된 액션을 화면에 담아내려 노력했다. 엽문의 첫 번째 액션 장면에서는 계속되는 점프와 강한 리듬, 매끈하고 큰 동작으로 영춘권의 단순한 매력을 소개했고, 엽문의 전설적인 10대 1의 대결 장면에서는 단 한가지 동작에 한 명씩만을 쓰러뜨리는 모습을 선보이며 영춘권의 특징인 빠른 스피드와 강한 타격감을 확실하게 표현해 냈다. 또한, 일본 가라테 고수와의 마지막 대결에서는 영춘권의 화려한 공수 기술을 유감없이 만끽할 수 있는 최고의 하이라이트를 뽑아냈다. 이로써 아시아 최고의 무술감독 홍금보가 구성한 액션의 합이 견자단의 훌륭한 무술 연기에 녹아 들어 영춘권으로만 표현해낼 수 있는 차별화된 액션 장면들을 스크린 위에 펼쳐낼 수 있었던 것. 이는 무술 본연의 기본기를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최근 액션의 경향을 가미하여 중국 전통 무술 영화가 새롭게 나아가야 할 방향성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by 허건식의 무예보고서 ㅣ www.womau.net]


[태권도와 마샬아츠의 오아시스 - 태마시스 ㅣ www.taema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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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treebatman.textcube.com/ BlogIcon 나무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보고갑니다. 좋은정보 감사합니다.

    2010.02.19 09:26 신고
  2. Favicon of http://www.hotterdvdau.com/leverage-season-5-dvd-boxset-p-2181.html BlogIcon Leverage Season 5 DVD  수정/삭제  댓글쓰기

    감사합니다. 더 좋은 정보 제공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태마시스-

    2013.05.07 17:17 신고
  3. Favicon of http://www.replicaahandbags.com BlogIcon replica handbags  수정/삭제  댓글쓰기

    여러분의 좋은 소식입니다. 필자 전에 물건을 읽고 당신은 너무 멋져요.

    2013.06.04 17:09 신고

합기도 명인 지한재 원로 방한, 한국 합기도 성립과정 등 강연

이소룡과 한 때 영화 속에서 대결을 펼친 바 있는 합기도 명인 지한재 원로(池漢載, 74)가 방한해 세미나를 연다고 합니다. 현재 미국에 거주하고 있는 지 원로는 한국 합기도를 정립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_'1L|cfile24.uf@19640E0F4B4CE76F4268E6.jpg|width="280"_##]에서 대결을 펼치고 있는 지한재 원로.'>
이번 세미나는 국립 경찰대학 경찰무도연구회 주최로 16일과 17일 양일간 천안에 소재한 선문대학교에서 열릴 예정입니다.
 
이 세미나에서 지 원로는 '한국 합기도의 성립과정과 역사적 배경', ‘한국합기도 성립시기의 술기’에 관한 강연을 할 예정입니다.

지한재 원로는 무술인으로 한 때 홍콩에서 영화배우로 활동했습니다. 경북 안동 출신으로 1949년부터 1956년까지 한국 합기도의 시조라 할 수 있는 덕암 최용술 선생의 수제자로 합기유술을 익혔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합기도 기술과 조직을 체계화 했습니다.

특히 지한재 원로가 대중들에게도 많이 알려진 계기가 있습니다. 바로 세계인들에게 불멸의 사랑을 받고 있는 이소룡의 유작 사망유희에서 합기도 고수로 출연해 대결을 펼쳤기 때문입니다.

영화 속 대결에서 지 원로는 상대의 힘을 이용한 관절기와 던지기를 선보였습니다. 하지만 국내 상영 본에서 지 원로와 이소룡과 대결 장면은 국내 합기도 인들의 반발로 삭제되었습니다.

이번 지 원로의 방한 세미나를 통해 현재 50여 곳 이상의 법인단체로 각각 활동하고 있는 국내 합기도계에 통합과 새로운 비전을 제시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합기도계의 문제점을 스스로 자책하고 화합의 장을 마련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세미나 참가는 다음카페<합기도뿌리를 찾아서 / http://cafe.daum.net/hapkidoskill>를 통해 문의할 수 있다고 합니다.

1978년 사망유희 / 이소룡 vs 지한재 대결장면 / 출처 : 유투브

[태권도와 마샬아츠의 오아시스 - 태마시스 l www.taema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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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www.iplsa.org/online.html BlogIcon replica shoes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소룡과 한 때 영화 속에서 대결을 펼친 바 있는 합기도 명인 지한재 원로(池漢載, 74)가 방한해 세미나를 연다고 합니다. 현재 미국에 거주하고 있는 지 원로는 한국 합기도를 정립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2014.04.18 12:56 신고
  2. Favicon of http://www.bilbaoria2000.org/default.aspx BlogIcon omega replica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를 바탕으로 합기도 기술과 조직을 체계화 했습니다.

    2014.04.18 12:57 신고

손기술에 비해 취약한 발기술을 보완하기 위해 태권도 연마

 

[사진 - 1968년 미국 LA의 모 해변에서 이준구 사범(우)이 이소룡에게 얼굴 옆차기를 하자, 이소룡(좌)이 왼쪽으로 몸을 피하고 있다. 이준구 사범은 이 기념 사진을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다.]

동양 무술을 전 세계에 알린 액션스타 이소룡(李小龍, Bruce Lee). 그가 세상을 떠난 지 36년이 지났다. 하지만 세계인들에게 그의 명성은 아직까지 여전하다. 내가 태어나기 7년 전에 이미 세상을 떠났지만, 나는 그의 얼굴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소싯적 엇박자 스텝을 밟으며 자신보다 큰 상대에게 “아~뵤”를 외치며 급소를 찔러 제압하는 영화를 보고 자랐기 때문이다.

이소룡은 영화 <정무문, 1972>, <맹룡과강, 1972>, <용쟁호투, 1973> 등에서 뛰어난 액션 연기를 펼쳤다. 무술을 소재로 한 영화로 일약 월드스타가 된 그는 안타깝게도 1973년 <사망유희> 촬영 도중 급사했다.

이소룡은 소싯적 태극권을 배웠다. 성장 하면서 당랑권과 공력권, 영춘권 등 무술을 섭렵한다. 이후 그는 각종 무술들의 우수한 기술들을 바탕으로 ‘절권도’라는 무술을 창시했다. 그러나 손기술에 비해 발기술은 상대적으로 부족했다. 자신의 취약점인 발차기 기술을 보완하기 위하여 태권도를 배웠다. 이후 그는 전보다 위력적인 발차기 기술을 영화에서도 선보였다. 그가 주로 사용한 발차기 기술은 태권도의 ‘옆차기’ 기술이다.

이소룡에서 태권도를 가르친 주인공은 미국에 초창기 태권도를 보급한 이준구 사범이다. 수년 전 싱가포르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정기총회에서 만난 이 사범은 이후 한국에서 필자와 재회한 자리에서 이소룡과 생전에 함께 대적하는 듯 한 흑백 기념사진을 선물했다. 그 사진은 1968년 LA의 한 해변에서 서로 무술을 수련하는 사진이었다. 이 사범은 이소룡과 인연을 늘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었다.

이준구 사범은 필자를 비롯해 여러 언론과 인터뷰에서 종종 이소룡과 인연을 소개한 바 있다. 60년대 초반 미국 LA에서 열린 세계가라테선수권대회에서 처음 이소룡과 인연을 맺은 후, 이소룡의 부탁을 받고 태권도 발차기 기술을 가르쳤다는 것이다. 각기 수련하는 무술이 다르지만, 무술 동료로 서로 존중하는 사이였다.

이소룡은 이 사범에게 배운 발차기를 꾸준히 연마했다. 그 후 옆차기 기술을 전 보다 더욱 위력적으로 발전시켜 자신의 특기로 만들었다. 영화에서도 이소룡에게 이 옆차기를 맞은 상대는 줄곧 나자빠졌다. 옆차기는 뒤차기와 뒤후려차기 등의 발차기 기술에 비해 현란하지 않지만, 타격 속도가 빠르고 정확하면서 상대에게 큰 충격을 줄 수 있는 위력적인 발차기다.

그럼 이소룡이 유독 옆차기를 주로 찬 것은 왜일까. 확실하지는 않지만 이준구 사범이 여러 태권도 발차기 중에 특히 옆차기 기술에 특기를 가지고 있었다는 점이다. 이에 대해 태권도계에서는 “다른 관에 비하여 청도관(태권도는 초창기 청도관, 지도관, 무덕관 등 관을 중심으로 보급했다. 관이 통합되기 전에는 기술에도 조금씩의 차이가 있었다)은 옆차기를 잘했다”며 “이준구 사범은 청도관 출신이기 때문에 당연히 옆차기를 잘 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그렇다고 이준구 사범은 이소룡에게 옆차기만 전수하지는 않았다. 옆차기뿐만 아니라 돌려차기, 뒤차기, 뒤후려차기 등의 여러 발차기 기술을 가르쳤다고 했다. 이 과정에서 이 사범이 옆차기를 보다 세심하게 가르쳤던지, 아니면 이소룡이 직접 수련하면서 실용적인 측면에서 옆차기를 다른 발차기에 비해 더욱 연마했을 수도 있다.

간혹 인터넷 사이트 등을 통해 타 무술에 대해서는 인정하지 않는 비방성 글들을 많이 본다. 직접 체험, 수련하지 않고 눈으로만 그 무술을 이해하기는 사실상 힘들다. 따라서 일방적으로 타 무술을 비하하는 것은 올바르지 못하다는 게 내 생각이기도 하다. 어떤 무술에서든 배울만한 장점이 있기 마련이다.

지금도 전설의 액션스타로 명성을 이어오고 있는 이소룡과 美 태권도 대부인 이준구 사범은 서로에게 각자 배운 무술을 공유하고, 부족한 부분을 채웠다는 점에서 좋은 본보기가 되고 있다.


PS. 나는 요즘 이집트에서 가라테와 쿵푸에서 태권도로 전향한 수련생들에게 태권도를 가르치지만, 종종 그들에게 가라테와 쿵푸의 기술을 배우고 있다. 체험을 통하여 전에 몰랐던 양 무술의 매력을 느낄 수 있다. 

 2009/05/12 - [한혜진의 태권도 세상] - 태권도에도 이소룡과 같은 월드스타가 필요해


<by 한혜진의 태권도 세상 이야기 - 태권도 산책]


                                 [태권도와 마샬아츠의 오아시스 ㅣ
www.taema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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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paramalay.tistory.com BlogIcon parama  수정/삭제  댓글쓰기

    와~ 정말 너무도 멋있는 사진이네요!

    2009.08.27 11:11 신고
    • Favicon of http://taemasis.oom BlogIcon 한혜진  수정/삭제

      그렇죠? 연출이긴 하겠지만, 참 자연스럽게 나온듯 합니다. 소장할 가치가 충분하죠.

      2009.11.10 02:16 신고
  2. 하지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여기서 나온 태권도는 흔히 우리가 알고있는 WTF태권도가 아니라, 초창기의 ITF태권도라는 걸 명시했다면 더 좋았을 글이네요. 글에서 나온 이준구사범은 태권도 창시자 최홍희 총재에게 가르침을 받았었죠.

    2009.08.27 12:23 신고
  3. 잘 읽었습니다.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소룡 일화도 흥미 있고, 각 무술을 비방하지 말라는 말씀도 끄덕여 집니다.
    그리고 특히 후기가 와닿습니다. 문화전파보다 더 중요한것은 문화교류겠죠..^^

    2009.08.27 18:30 신고
    • Favicon of http://taemasis.oom BlogIcon 한혜진  수정/삭제

      예전에는 태권도만 좋고, 태권도만 최고라고 생각했던적이 있었습니다. 철이 들고 나니, 참으로 부끄럽더군요. 태권도 이외 여러 무술들은 태권도가 배울만한 요소 한가지 이상들이 있다고 봅니다. 최고라고 자부하기 보다 타무술의 우수한 것은 겸허히 존중하고, 교류하는 날이 왔으면 하네요.

      2009.11.10 02:19 신고
  4. Favicon of http://damdade.tistory.com BlogIcon 달마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소룡이 자신이 하는 무술만을 인정하고 그것만을 고집했다면 지금까지 존경받고 사랑받는 무술인이 되지는 못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을 수련하고 부족한 점을 채우기 위해 타 무술의 좋은 점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일 줄 포용력있는 마음가짐과 자세는 무조건 타 무술을 비방하고 자신이 수련하고 있는 무술의 우월성만 고집하는 무술인들이 배워야 할 자세라고 생각합니다.

    2009.08.29 22:47 신고
  5. 즤랄하네  수정/삭제  댓글쓰기

    개소리하네 싸우면 개싸움이지 먼 무인 개잡솔꺼져 ㅋㅋ

    2009.09.28 08:58 신고
  6. Favicon of http://somupa.tistory.com/ BlogIcon 깊은나무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소룡이 태권도를 배웠다는 얘기는 전에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와 관련한 자세한 얘기를 읽을 수 있어서 좋았네요^^
    언제나 부상 없이 즐거운 운동 되시기 바랍니다.

    2009.09.29 09:40 신고
    • Favicon of http://taemasis.oom BlogIcon 한혜진  수정/삭제

      도움이 되셨다니 다행입니다. 덕분에 늘 건강히 활동하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2009.11.10 02:22 신고
  7. Favicon of http://hallyuwood.tistory.com/99 BlogIcon 리포터  수정/삭제  댓글쓰기

    허구의 종족 짱골라들의 허풍과 실체
    http://article.joins.com/article/article.asp?total_id=387337

    13억 중국인 가운데 92%를 차지하고 있다는 한족(漢族)이 실제 조사 결과 '유전학적으론 현존하지 않는 제3의 혈통'으로 나타났다.
    '한족은 혈통 개념이 아니라 문화적인 개념'이라는 통설이 학술연구로 밝혀졌다는 점에서 이목을 끈다. 중국 간쑤(甘肅)성 란저우(蘭州)대학 생명과학학원 셰샤오둥(謝小東) 교수는 "순수한 혈통의 한족은 현재 없다"는 연구 결과를 최근 발표했다고 중국 언론들이 15일 보도했다. 그의 연구 결과는 중국 서북지역의 소수민족 DNA 연구 등을 통해 나온 것이다. 셰 교수는 "DNA 조사 결과 현대 중국인은 다양한 민족의 특질이 고루 합쳐진 것으로 어떤 특정 민족의 특질이 도드라지게 나타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오래전부터 '한족은 중원(中原)에 살고 있다'고 생각돼 왔으나 이는 특정 시기의 한족을 주변의 다른 종족과 구별하기 위해 만든 지역적 구분일 뿐"이라면서 "이젠 한족을 그렇게 지역적으로 따져 정의할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예를 들어 춘추전국시대 현재의 산시(陝西)성 시안(西安)에 세워진 진(秦)은 소수민족인 '서융(西戎:서쪽 오랑캐)'이 주류였다는 것이다.
    또 중국 역사에 나타나는 중원의 범위는 주로 현재의 산시(山西) 남부와 장쑤(江蘇) 서부 및 안후이(安徽) 서북부 등의 소수 지방을 포함한 허난(河南)성 일대였으나, 이곳에 거주한 사람들을 한족이라고 규정하는 것도 역사적 사실과 부합하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중국인들은 또 자신들이 "염제(炎帝)와 황제(黃帝)의 자손(炎黃子孫)"이라고 주장하지만 연구 결과 황제와 염제의 발원지도 중국인들이 오랑캐로 치부해 왔던 '북적(北狄)' 지역이었던 것으로 연구 결과 드러났다. 황제와 염제의 발원지는 모두 현재의 간쑤성과 산시(陝西)성에 걸쳐 있는 황토 고원지역으로 이 두 곳 모두 한족의 본거지가 아닌 것은 물론 주요 거주지역도 아니라는 얘기다.
    셰 교수는 "연구 결과 오히려 중국 북부에서 남부로 이주한 소수민족 객가족(客家族)이 고대 중원인의 문화전통을 계승한 것으로 밝혀졌다"면서 "이들의 고어(古語), 풍속 및 습관에서 나타나는 역사의 흔적을 보면 그들이야말로 진정한 중원인"이라고 강조했다.

    http://news.donga.com/fbin/output?n=200707250129

    한국계 신석기토기 4000여점 일본 오키나와서 무더기 발굴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81&aid=0002001173

    삼별초가 일구어낸 오키나와 유구국
    http://blog.daum.net/santaclausly/11793489

    짱골라 무술, 세기의 대결 ㅋ ㅋ ㅋ

    사건의 배경은 오씨 태극권의 오공의가 스스로의 무술을 소개하면서 복서에게 이길 수 있고 의심스러우면 덤벼도 좋다는 식의 발언을 하는 바람에 백학권사 진극부가 발끈하여 붙게 된 싸움입니다.

    이게 바로 짱골라들이 말하는 전설적인 세계최고수들의 대결..

    앞으로 진짜 고수는 숨어있다느니, 강호를 떠나 은둔하고 있다느니 하는 말은 안 나오기 바란다...

    1954년에 짱골라들 사이에서 세기의 대결이라 불렸던 고수들의 대결 동영상... 평범한 사람들이 쥐나무술의 고수들이 실제 싸우면 어떤 모습일까에 대해 늘 많은 궁금증을 가지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이 동영상을 보고난 후의 사람들의 반응이 쥐나무술에 대한 환상이 깨졌다는 등 황당한 반응 일색이어서 궁금증을 자아낸다.

    유명한 백학권사가 다른 문파의 태극권사와 벌인 대결은 한국영화 '품행제로'에서 전설적인 고교싸움꾼 박중필이 영화 후반부에 어떻게 싸우는지 보여주는 수준의 '쌈박질'이기 때문이다. 무술고수인 사람들은 시합 동영상에서 각 무술의 특징을 찾아내기도 하지만 보통 사람들이 보기에는 중후한 남성들이 시비붙어 싸우는 개싸움(?) 정도 밖에 안보이기 때문이다.

    팔괘장이니 태극권이니 하는 쥐나무술의 신비롭던 것이 처참하게 무너지는 볼품없는 대결이 짱골라들 사이에서는 전설적인 시합이었던 것으로 묘사되기 때문이다. 고수대결을 기록한 이 영상에는 70년대 무술영화에나 나올법한 '휙~ 휙~' 하는 음향효과까지 억지로 넣어 진지한 대결이 더욱 코믹하게 보여지고 있다.

    http://video.cyworld.com/203037843

    당나라를 정복하라! 고구려의 후예들 발해와 제나라 & 택견, 가라데, 우슈 등 무도·무예·무술의 전파 교류 (제주도, 만주, 오키나와 등 여러 지역의 유물, 유적 등의 설명과 함께)

    http://blog.daum.net/hearo9mars/7072074

    가라데와 영춘권의 대결 및 그 기원들도 살펴볼 수 있습니다.
    잘 안 보이는 그림을 클릭하면 확대해서 볼 수 있더군요.

    이 게시물은 약 260개의 사진과 그림이 들어간 대용량이라 불러들이는데 1분 정도의 시간이 걸릴 수도 있습니다.
    게시물의 이미지가 다 뜨지 않았을 때는 '새로고침' 하면 됩니다.

    http://blog.naver.com/xxxod/70071717538

    양쯔강[揚子江]과 황하...
    사실 예전부터 서토의 왕조의 수군은 바다가 아닌 강에서 건조되고 훈련되었다.
    그들에게 수전(水戰)이라 하면 강에서의 전투를 말했다. 그도 그럴 것이 유명한 적벽대전을 비롯해 비수전투(淝水戰鬪)처럼 적어도 649년 이전 수(隋)가 진(陳)을 무너뜨리기 전까지 화북과 화남지방으로 경계를 나누는 강을 둘러싼 전쟁은 많이 일어났다.
    왜냐하면 몇 안되는 통일왕조 시기가 아닌 오랜 시간을 남북조시대나 삼국시대 같이 서로 갈라져 전쟁을 벌였고, 그 경계는 강이었기 때문이다. 여러 기록을 참고하면 그들의 대규모 수군이 강을 벗어나 바다를 거점으로 전쟁을 시작한 것은 수가 고구려를 침공할 때가 거의 처음이라 할 수 있으며, 이렇듯 강에서 조련된 그들 수군은 바다의 파도를 넘나들며 경험을 쌓은 고구려 수군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결국은 이들 수군은 그저 병참과 병사의 수송을 담당하는 정도밖에는 되지 않았던 것이다.
    이러한 경향은 후대로 이어져 명의 영락제때 정화가 활약하던 시기를 제외하고는 변변한 수군을 육성하지 못한다. 실례로 조일(朝日)전쟁 당시 정원이 백수십명이던 판옥선을 주력함으로 사용하던 조선수군에 비해, 명의 군선은 그 크기가 절반정도밖에 되지 않았으며 그나마도 급조한 수군이었다. 북방유목민족이 왕조를 세운 금, 원시대의 수군은 말할 필요도 없을 정도다.

    http://blog.daum.net/hearo9mars/7072081

    2009.11.24 03:07 신고
  8. Favicon of http://whitefriest@naver.com BlogIcon r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소룡이 배운 중국 무술에 이미 옆차기가 있지요 . 이소룡은 옆차기를 배운게 아니라 태권도 스텝과 태권도 스타일의 옆차기를 배운거지요 . 에스크리마 칼리도 배우고 지한제 한테 합기도를 배웠다고 하니 일종의 수집이지요 .

    2015.07.10 12:26 신고
  9. Favicon of http://whitefriest@naver.com BlogIcon r  수정/삭제  댓글쓰기

    테권도 스텝은 배웠는지 안 배웠는지 잘 몰르겠으나 아무레도 배웠겠지요 .

    2015.07.10 12:36 신고

[by 한혜진의 태권도 산책] 세계 어디를 가나 ‘브르스 리’는 최고의 액션배우이자 무술인

 - 작성일 : 2009/02/27

동양 남성이 외국거리를 걷다 보면, 현지인들로부터 “오우~ 브르스 리~!” 또는 “젝키 챤~!” 이라 부르는 소리를 한번쯤 듣게 된다.(이집트에서 난 매일같이 듣는다.) 세계적인 액션배우 이소룡과 성룡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기분은 썩 좋진 않다. 우선 말 속에 조롱이 섞여있다. 또 난 이소룡도 성룡도 아니기 때문이다. 더구나 쿵푸는 단 한 번도 수련하지 않았다. 어쩌면 대중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는 쿵푸에 대한 열등감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태권도에도 이소룡과 같은 세계적인 스타가 배출되었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다. 

난 소싯적 이소룡이 엇박자 스텝을 밟아가며 자신보다 월등하게 큰 적수를 상대로 “아~뵤~”를 외치며 급소를 찔러 제압하는 영화를 보고 자랐다. 칼 같은 복근은 청소년들의 로망이었다. 그래서 이소룡을 따라 배에 ‘王(왕)’자를 내기 위해 윗몸 일으키기는 물론 갖가지 운동을 한 기억이 있다.

 

 

이소룡은 영화 <정무문, 1972>, <맹룡과강, 1972>, <용쟁호투, 1973> 등에서 명 액션연기를 펼친 ’월드스타’이다. 1973년 <사망유희> 촬영 도중 급사했다. 32세의 젊은 나이에 안타까운 죽음이었다. 그가 죽은 지도 벌써 36년이 지났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동서양을 막론하고 그는 최고의 액션배우로 팬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이소룡의 인기를 실감한 것은 이집트에 와서다. 내가 지금 생활하고 있는 이집트 최남단도시 아스완에서는 이소룡이 최고 액션배우이다. 전성기를 누비고 있는 성룡, 토니쟈(옹박) 보다 인기가 높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이 지역에서는 태권도 보다 쿵푸의 인기가 더 좋다. 그리고 이소룡을 흉내내기 위해 쿵푸를 수련하는 청소년과 성인들이 많다. 

이집트(아스완)에 온 지 초창기 때의 일이다. 한 번은 쿵푸를 수련생들이 몰려와 “태권도를 배우면 ‘브르스 리’(이소룡) 처럼 될 수 있냐”고 다소 황당한 질문들을 하는 것이다.(이때만해도 이소룡의 인기를 몰랐다) 솔직히 태권도를 한다고 해서 이소룡이 될 수 있겠는가. 또한 이소룡이 영화에서 주로 사용한 무술은 영춘권과 쿵푸, 절권도이다.(이소룡이 1960년대 말, 미국에서 태권도 사범으로 활동하는 이준구 사범으로부터 태권도 발차기를 배운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래서 그들을 그냥 돌려보내기가 싫어(어떻게 해서든 태권도 수련생을 늘려야 하기 때문) “단지 이소룡을 흉내 내려고 한다면 쿵푸를 계속 배워라”고 하면서도 “태권도를 수련하면 이소룡보다 더 멋있고 위력적인 발차기와 힘이 있는 주먹 기술을 배울 수 있다”고 우회적으로 태권도의 우수성을 강조했다. 그렇게 해서 그들 대부분이 지금 태권도를 수련한다. 일부 수련생은 아직까지 쿵푸와 병행 수련 중이다.  

영화, 드라마, 뉴스 등 대중매체로부터 시작되는 대중문화의 힘은 상상을 초월한다. 액션배우 이소룡의 인기만 보더라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최근 한국드라마가 세계 각국에서 흥행하자 ‘한류열풍’으로 이어지는 현상도 그것이다.

이소룡의 경우, 그가 출연한 영화의 인기로 쿵푸와 절권도는 지금까지도 팬들에게 꾸준히 사랑받고 있다. 죽어서도 그를 잊지 않고 열광하는 팬들을 보며, 나는 태권도에도 이소룡에 버금가는 월드 스타가 발굴되었으면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왕이면 태권도 종주국인 우리나라에서 배출되었으면 한다. 그게 힘들다면 외국인이라도 나쁘지 않다. 이를 통해 태권도가 보다 일반 대중들에게 친숙한 무술로 다가서는 계기가 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다른 분야보다 태권도계가 앞장 서야 한다. 우선 유능한 태권도 선수들을 발굴하여 ‘스타 마케팅’이 요구된다. 2004 아테네 올림픽에서 통쾌한 KO승으로 일약 스타가 된 문대성 현 IOC선수위원을 당시 태권도계에서는 충분히 ‘활용’하지 못한 것이 늘 아쉽다. 2013년 조성될 태권도공원도 국내외 일반 방문객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상상을 초월한 소프트웨어 개발과 마케팅이 필요하다.

최근 애니메이션으로 부활한 ‘로보트 태권브이’를 ‘스토리텔링’으로 활용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방법일 수 있겠다. 또한 태권도를 소재로 한 영화 및 드라마가 지속적으로 제작돼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태권도계가 자발적으로 재미있는 소재를 개발해 제작사들에게 제공하는 적극적인 자세가 요구된다. (끝)

 

[한혜진의 태권도 세상 이야기 ㅣ www.ilovetkd.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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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흠...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미 있지 않습니까 ? 척 노리스.... ㅋㅋㅋ

    2009.08.27 12:07 신고
  2. ttonko22  수정/삭제  댓글쓰기

    진실을 외면해도 역사는 갈길을 간다 노게이라이면 인정되겠지만 문대성이 실전???

    2010.10.03 01:39 신고

[한혜진의 태권도 산책]  아직도 많은 나라에서는 태권도가 뭔지조차 몰라!

-작성일 : 2008/12/02


[태권도가 세계화 되었다고 자부하는 지금 이시간, 아직도 수많은 나라와 지방 곳곳에서는 태권도를 지도할 사범을 간절히 바라고 있다.]


태권도 하면 대한민국. 대한민국 하면 태권도. 오늘날 태권도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문화브랜드로 자리 잡았다. 1973년 세계태권도연맹(WTF)이 우리나라에서 창설하면서 본격적으로 세계 각국에 한인 태권도사범들이 파견됐다. 이들의 역할은 국기 태권도를 보급하는 것이다.

그 후로 35년이 지난 지금. 세계 188개국 7천만 인구가 태권도를 수련한다. 그것도 태권도장이라면 국가와 종교, 문화를 떠나 태극기가 각 도장에 걸려있고, 우리나라 말로 수련을 한다. 이런 태권도를 보는 한국인들은 모두 뿌듯하게 생각한다.

그런데 이것으로 만족해야 할까. 필자는 최근 태권도가 진정한 전 세계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아직 가야할 길이 멀었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태권도가 세계 제일의 무술스포츠, 올림픽 정식종목이라 자화자찬 할 때가 아니라는 것이다.

188개국은 세계태권도연맹에 가입된 회원국을 말하며, 7천만 수련인구는 대체 어떻게 추산된 것인지, 그 근거는 어디에서도 쉽게 찾을 수 없다. 다시 말한다면, 짧은 시간 내에 태권도가 양적성장에 주력한 것에 반해, 질적성장 및 내실화를 다지는 데는 소홀했다.

분명 태권도는 짧은 시간 내에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했다. 특히 스포츠 종목에 최고의 외형적 타이틀인 올림픽 정식종목이 아닌가. 하지만 이 역시 방심하고 정체된 순간 올림픽 정식종목 퇴출은 시간문제라 할 수 있다. 지금이 바로 그 위기상황이기도 하다. 2016년 하계올림픽 정식종목 채택여부를 가리는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정기총회가 내년에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열린다. 중요한 시험을 앞두고 벌써부터 태권도 퇴출설과 관련한 우려의 목소리가 많기 때문이다.

올림픽 정식종목 유지를 위해서는 관중들이 요구하는 것처럼 박진감과 흥미를 줄 수 있는 재미있는 룰 개정이 불가피하다. 더불어 공정한 심판판정이 되기 위한 심판교육 강화 및 시스템 개선이 동반되어야 한다. 이 문제가 어느 정도 보완된다면 자연스럽게 관중이 늘어날 것이고, 미디어도 앞 다퉈 태권도를 조명할 것이다. 이 문제는 이정도로 각설하고자 한다.

오늘 필자가 가장 말하고자 하는 것은 ‘태권도의 진정한 세계화’를 위해 지금 필요한 것은 무엇이냐다. 필자는 앞서 말했듯 내실화를 다지는데 우선이라고 본다. 그동안 회원국 확대를 위한 양적성장에 힘을 쏟았다면, 이제는 그 국가들이 올바르게 태권도를 보급, 정착, 발전을 하고 있는지를 둘러봐야 할 때라 본다.

 종주국인 우리나라를 비롯해 미국, 캐나다, 스페인, 영국 등 일부 선진국들이야 태권도 보급이 원만하게 이뤄지고 있다. 하지만 그밖에 국가, 특히 개발도상국의 경우 보급률이 수도권에 머무르고 있다. 일부 국가의 경우에는 올림픽 메달 획득을 위해 선수육성에만 열을 올리고 있다.

 올해 초. 필자는 코이카 해외봉사단으로 이집트에 태권도를 보급하기 위해 왔다. 이집트는 이미 1979년 WTF 가맹한 국가로 국제대회에서 줄곧 좋은 성적을 보인 나라다. 당연히 태권도 보급이 잘되어 있을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현지에서 생활하다 보니 뜻밖에 사실을 알게 되었다. 수도 카이로와 알렉산드리아, 포트사이트 등 수도권을 중심으로 집중 보급되었을 뿐, 지방의 경우 태권도 보급이 현저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왜 이런 기현상이 있을까 조사를 해봤다. 첫째, 태권도를 지도할 사범이 없다 둘째, 인지도 결여, 셋째, 중앙협회의 관리부재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 필자가 현재 생활하고 있는 이집트 최남단 도시 아스완에도 그동안 태권도사범이 없어 2년 전부터 보급이 시작됐다. 그것도 현지에서 30년 넘게 가라테를 지도하던 한 사범의 전향을 계기로 말이다.

이러한 현상을 접하고 필자는 당혹스러웠다. 올림픽 정식종목인 태권도를 어떻게 모를 수가 있을까. 여러 생각이 들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내가 태권도를 과대평가를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안다고 하여 남들도 다 알 것이라는 것은 나의 착각이었던 것이다.  

평생을 가라테를 지도하다 아스완에 처음으로 태권도를 지도한 Mr.모하메드 배드리는 “태권도의 다양한 기술동작과 발차기의 화려함에 반해” 태권도로 전향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그가 아니었다면 지금도 아스완에서 태권도 수련생을 찾아 볼 수 없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즉 아스완에는 태권도사범이 없었다. 현재 아스완에 1단 이상의 유단자는 모두 3명. 이들 역시 가라테에서 태권도로 전향한 전직 가라테 사범들이다.

이런 까닭에 현지 주민들이 태권도를 알리 만무했다. 우리처럼 다양한 스포츠 채널을 시청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태권도가 올림픽 정식종목이라고 하더라도 그들은 모를 뿐이다. 당연히 인지도야 말할 것도 없다. 이에 반해 가라테와 쿵푸 인지도는 높고 인기도 좋다. 가라테야 30년 넘게 지역주민에게 사랑받는 무술이었고, 쿵푸의 이소룡 인기에 힘입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국가 중앙협회의 관리 부재는 전국적으로 보급을 골고루 하지 못한 것에 있다. 현지 경제사정이 좋지 않은 까닭도 있다. 하지만 최소한 지역마다 유능한 사범 한 명이라도 파견시켰더라면 지금보다 보급이 열악하진 않았을 것이다.

현재도 중앙협회는 지역협회에 이렇다 할 큰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신규 수련생이 늘어남에 따라 협회 재정이 좋아질 뿐이다. 중앙협회와 거리가 멀다는 이유로 협회 관계자 누구도 아스완을 찾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3개월마다 태권도 승급심사 때 심사감독관이 잠시 방문해 심사명부에 서명을 하고, 심사 수수료를 가져갈 뿐이다.

이러한 현상은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다. 실제 한국국제협력단(코이카) 파견 해외봉사단 태권도사범들의 말에 따르면, 수도를 제외한 대부분 지방의 태권도 보급률이 저조하다는 것이다. 일부 지역은 태권도를 알지 못하는 정도라는 것이다. 일부 동료단원들은 필자와 같은 상황을 이야기하며 고민하고 있었다. 이를 위해 코이카는 물론 태권도기관 차원에서 태권도 보급 활성화를 위한 다양한 사범파견제가 보다 확대될 필요성이 있다.

태권도의 진정한 세계화가 되어 발전하는 길은 내실화를 다졌을 때 가능하리가 본다.

[한혜진의 태권도 세상 이야기 ㅣ www.ilovetkd.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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