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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 공식적으로 일본의 가라테가 선보인 사료다. 동아일보 1937년 8월 13일자 1면에는 종로에 있던 YMCA(중앙기독청년회) 유도부 도장에서 13일 오후 8시반 일본 동경에 소재한 임명관대학(리츠메이칸대학)의 야마구치 고겐(山口剛玄,1909-1989)을 초청해 가라테의 대의급(大意及) 실제시범을 보였다는 기록이 있다.

이 당시 야마구치 고겐(山口剛玄)가 시범보인 가라테 유형은 고주류(剛柔流) 가라테였을 것으로 보인다. 

고주류는 1860 년대 후반  히가온나 칸조(東恩納寛量)가 오키나와에서 중국 복건성으로 가 남파 소림권에서 14년동안 중국무술을 수행한 후 그것을 오키나와로 전했다고 한다.  히가온나는 오키나와로 전했다 무술은 후에 "那覇手"이라는 이름으로 부르며, 수제자였던 미야기 쵸준(宮城長順)에게 전승하고 다시 과학적이고 보편적인 합리성을 추가하여 체계화 한 것이라고 한다. 미야기 쵸준(宮城長順)은 1930년(소화5년) 중국 복건성의 소림권백학문의 전서인 <무비지(武備志)>에 있는 권법 8구인 '法剛柔呑吐'를 인용해 자신의 무술을 '고주류(剛柔流)'라고 명명하였다고 한다.

고주류의 특징은 느리면서 호흡을 강조하는 중국 남파권법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이 유파의 가라테는 최배달(최영의)도 수련했다는 기록도 있다.



야마구치 고겐(山口剛玄)

 

야마구치 고겐(山口剛玄) 수련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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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www.cheapcoatsale.com BlogIcon cheap moncler jackets  수정/삭제  댓글쓰기

    국기원, 국기원장, 국사연, 문화체육관광부, 서성

    2012.11.07 14:45 신고
  2. Favicon of http://marijuanaforeveryone.tumblr.com BlogIcon marijuana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세요, 당신은 좋은 작가 이고, 나는 귀하의 사이트를 사랑
    <>URL = http://marijuanaforeveryone.tumblr.com ] 마리화나 사진 <>/ URL ]

    2013.05.16 22:13 신고


일본검도의 정신적 지주 다쿠앙선사

다쿠앙 소오호오(澤庵宗彭, 1573∼1645) 선사는 무도학을 연구하는 사람들에게 익히 알려진 인물이다. 일부학계에서는 조선의 선승일 것이라는 주장도 있지만, 일단 출신지는 일본으로 학계에서 보고되고 있기 때문에 여기서 출생에 대해서는 거론하지 않겠다.

다쿠앙은 일본식 무짠지나 우리가 중국집에서 자장면을 시키면 나오는 ‘다꽝’이라 부르는 반찬(단무지)의 이름이다. 일본 도쿠가와 이에미쓰(德川家光)장군은 동해사(東海寺)를 방문했을 때 다투앙 선사가 평소 먹던 무짠지를 내놓았는데, 소박한 반찬이었지만 그 맛에 크게 감동을 받았다고 한다.

그 후 도쿠가와장군은 이 반찬의 명칭을 ‘다쿠앙쯔케’라 불렀고, 요즘엔 다쿠앙이라 부른다.



다쿠앙은 에도시대의 대표적인 병법서인 <부동지신묘록(不動智神妙錄)>이라는 편지를 쓴 저자이기도 하다. 부동지신묘록은 미야모토 무사시(宮本武藏)의 <오륜서(五輪書)>와 더불어 일본무도의 대표적인 병법서로 알려져 있다.


병법(兵法)은 원래 '사람을 죽이는 법'이나, 검술이나 창술 등을 총괄해 사용하는 말이기도 하다. 일본의 병법은 검술을 중심으로 발전해 왔다. 당시 검술이 중심이 된 일본은 혼란스러운 시기였다. 이에 대해 다쿠앙은 일본의 전국시대의 살벌한 분위기가 남아 있는 에도시대 초기에 무사가 지녀야 할 자세에 대해 강조했다. 특히 무사들이 겪어야 했던 죽음에 대한 공포와 사회적인 살벌한 분위기속에 진정한 무사의 자세는 부동심이라는 말을 정리한 것이다.

부동심은 삶을 지혜롭게 하는 실천공부

부동심(不動心)은 불교용어다. 이와 유사하게 사용된 용어로는 무심(無心)과 평상심이 있다. 현대검도에서도 사계를 극복하고 평상심과 부동심을 갖도록 하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평상심은 평온한 상태를 유지하는 것을 말하며, 부동심은 외부의 충격이나 어떤 상황에도 동요되지 않는 정신력을 의미한다. 마음을 어느 한 곳에 치우쳐져 있거나 욕심을 부리면 효과를 얻을 수 없다는 논리다. 이렇다보니 이 용어가 최근 유행하고 있는 멘탈스포츠에서도 적절히 사용된다. 생사의 갈림길에 서 있는 무사들에게 던진 메시지가 지금은 스포츠에서 활용되고 있는 것이다.

편안한 마음으로 스포츠에 참가해 경쟁을 하면 좋은 결과를 얻는다는 스포츠심리학의 이론과 다를 바 없다. 아무런 욕심 없는 무심(無心)의 상태에서 상대를 공격하여 의외의 효과를 거둔 경험들이 생활체육계에서도 이야기 거리가 된다. 이러한 현상은 군더더기 없는 마음이 몸과 일치되는 현상이기도 하다.

아무나 부동심이나 무심을 자유자재로 사용하진 않는다. 그것은 어느 정도의 수련경지에 도달했을 때, 혹은 심법의 단계가 도달했을 때 가능한 것이다. 또 이 경지에 도달한 것을 어떻게 측정할 수 있는지도 자신밖에 모를 일이다. 똑같은 기량에서 결정적인 승부의 역할을 하는 것이 부동심이고 무심인 것이다. 선불교에서 말하는 ‘무심시도(無心是道)’라는 말처럼 생활 속에서 번뇌 망념이 없는 무심(無心)의 경지에서 자신의 삶을 지혜롭게 사는 것이 실천적인 공부라 할 수 있다.


삶의 여유 도장을 찾자

현대사회에서 청소년이나 성인들은 복잡한 사회구조로 인해 마음의 여유를 갈망한다. 독일의 헤리겔 교수가 일본에서 초청교수로 생활하면서 배운 일본의 궁도를 서양인의 관점에서 쓴 책이 있다. 이 책은 <궁도의 선>으로 서양인들이 일본을 이해함은 물론 동양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유명한 책이다.

그 책에도 “활시위를 힘으로 당기지 말고 마음으로 당겨라”라는 말이 있다. 이 역시 부동심과 무심을 강조하는 말이다. 팍팍한 삶에서 생겨나는 갈등과 불안, 그리고 스포츠나 직장에서의 승부욕 때문에 받는 스트레스를 또 다른 마음으로 극복할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어찌 보면 단순한 반찬인 단무지에 대해 당시의 실력자인 도쿠가와 장군은 단무지의 맛보다 다쿠앙 선사를 만나 정신적인 안정을 찾은 까닭에 단무지의 맛이 더욱 좋았을지 모른다.

삶의 번뇌 속에 살아가는 현대인들도 어느 순간 마음을 버리고 자연과 동화할 때 자신을 알아갈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현대인들은 그럴만한 여유를 찾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 유일한 방법으로 주변의 도장을 찾아 부동심을 배우고 무심을 배우는 여유를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

[by 허건식의 무예보고서 ㅣ http://martial-arts.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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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의 글은 《유도론》의 저자 김상철교수님과 필자가 1999년 겨울방학을 이용해 '일본유도연구'라는 주제로 용인대학교 무도연구소에서 정리한 글이다. 이 당시만 해도 근대유도의 효시라 할 수 있는 강도관유도와 강도관유도의 창시자 가노지고로에 대한 소개가 국내에서 부족한 시기였다. 당시 정리한 내용을 좀 더 요약한 글이다.
글. 허건식(사단법인 대한무도학회 간사 / 현 서일대학 교수)

가노지고로는 1860년 10월 28일 가노지로사꾸마레시가의 3남으로 효고겡 무꼬군 미가게초 하마시가시에서 태어나 어렸을때의 이름은 신스께였다. 메이지 3년, 11살이었을 때 고향에서 동경으로 상경하여 가기가라초에서 부친과 함게 살게 되었다. 상경한 지고로는 가까운 요고꾸의 세이다쯔즈꾸에 다니게 되어 우부가타게이또라는 사람에게 학문을 배움과 동시에 간다의 미쯔꾸리 슈헤이라는 학당(쥬꾸)에서도 학문을 닦았다.

메이지6년, 14살때에는 이꾸에이 즈꾸(학당)에 들어가 처음으로 기숙사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이 즈꾸는 네델란드사람이 선생이었고, 독일사람이 조교였으며, 모든 학과는 영어로서 진행되었다. 가노는 이전에 미즈꾸리 슈헤이의 즈꾸에 다닐 때 어느정도의 영어를 배웠기 때문에 학과에서는 별다른 어려움이 없었지만 당시에 그들사이에 강한 사람이 인정을 받는 풍조가 있었기 때문에 신체가 작았던 가노로서는 여러모로 불리하였다. 또한 병은 없었지만 매우 허약해 보이는 체구인탓에 항상 그들 사이에서는 약해 보였다. 

학문에서는 타인에게 지지않다는 자신감은 있었지만 몸이 허약했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소외당한 것에 대해 항상 불만을 지니고 있어 자신을 강하게 하는 좋은 방법이 없을까하는 고민을 하였다. 때때로 어렸을 때 일본에는 유술이라는 것이 있어 약한자가 강한자를 이길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기억을 상기하여 유술을 배우고 싶어 했다. 그때 가노의 집에 자주 오던 자들중에 나까이 우메이나리라는 사람이 있어서 자신이 옛날에 유술을 배운적이 있다고 자랑하면서 여러 가지 가타(形)을 보여 주었기 때문에 그 사람에게 유술을 배우고 싶다고 부탁했다. 그러나 그 사람은 이 당시에 유술을 배울 필요가 없다고 하면서 거절하였다. 

또한 고이시가와 마루야마초에 있던 부친의 별장에서 일하던 편동유사라고 하는 사람이 가끔씩 유술의 형을 보여 주었기 때문에 이 사람에게도 유술을 배우고 싶다고 부탁을 하였지만 거절당하였다. 그밖에 마찬가지로 자신의 집에 출입하던 비후출신으로 이마이겐시로라고 하는 사람이 큐신류라고 하는 유술을 배운 사람에게도 부탁하였지만, 그 역시 거절 당하였다. 이와같이 유술수련이 불가능한채로 학업에 열중하였지만, 보다 강하게 되고 싶다는 생각이 항상 머리속에 있었다.

메이지 7년 4월21일 동경외국어학교의 입학시험에 합격하였기 때문에 이구에이즈꾸에서 동경외국어대학의 영어학부에 전학하였고, 이 학교가 얼마 있지 않아 영어부가 독립하여 관립 영어학교로 되었다. 메이지 8년 개성학교에 입학하였다. 이 개성학교에는 육체적으로 강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지배하려는 풍조가 이꾸에이즈꾸에 있을때보다 더욱 강하였기 때문에 신체적으로 허약했던 가노는 더욱더 유술에 대한 욕구가 강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부친에게 유술가를 소개해 달라고 여러차례 부탁하였지만, 그 당시에는 공부가 우선이라고 하여 동의하여주지 않았다. 그러나 자신도 상당한 연령에 있었고, 신체를 강하게 하기위하여 유술을 배우는 것이기 때문에 자기자신에게 적당한 스승을 찾으려고 신중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

 명치10년 18살 때 동경대학이 창설되어 그 대학의 문학부 제2기생으로 입학하였지만, 입학당시 언뜻 정복술을 하는 사람이 유술가로서 유명하다고 들었기 때문에 그때부터는 정복이나 접골이라는 간판이 있으면 직접 들어가 유술을 한적이 있는지 없는지를 물어보며 찾아 다녔다. 그러나 유술에 대해서 잘 모른다는 사람이 많았고, 그 중에서는 과거에는 유술을 하였지만 당시에는 유술을 하지 않고 있다는 사람들이 더많았다. 이런식으로 스승을 찾아 헤매고 다니던 때에 니혼바시(日本橋)의 민교초 거리에서 벤케이바시에서 멀리않은 곳에 접골간판이 보였기 때문에 들어가 물어 본 결과, 야기마사스게라는 사람이 있었다. 이 사람은 머리와 수염이 하얗고, 골격이 장대하고 실로 위풍당당한 대장부의 풍모를 지니고 있었다.

유술을 한 적이 있느냐고 물으니, 가만히 가노를 살펴본 뒤에 왜 그런 질문을 하느냐고 되물었다. 자기자신이 유술을 배우고 싶다는 처지를 설명하니, 가만히 듣고 있던 야기노인은 무릎을 치며 기뻐하였다. 그러나 자신은 이소마타우에이몬의 제자로서 그 면허를 받을 정도로 옛날에는 전문적으로 유술을 하였지만, 지금의 분위기는 유술에 대해 인정을 하지 않는 추세였기 때문에 접골한 하고 있다고 하였다. 왠만하면 가노의 희망을 들어 주고 싶지만, 이곳은 8장의 다다미공간으로 비좁고 게이코가 불가능하다고 하였다. 그러나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니혼바시의 모토다이꼬초에 자신의 동문인 후꾸다야스께라는 사람이 있다. 다른 친구들은 거의 대부분 유술을 그만 두었지만 이 후꾸다는 도장을 가지고 있으니 한번 가 보아라고 소개를 해주었다. 여기에서 후꾸다를 방문하니 여기서도 겨우 10장의 다다미공간밖에 없었고, 그 중에서도 다다미 한 장정도는 계단으로 사용되고 있어 나머지 9장이 도장으로서 사용되었고, 다음의 3장정도의 공간이 접골의 치료소가 되어 있어 6장밖에는 도장의 공간으로 활용할 수 밖에 없었다. 이 공간도 때로는 환자의 대기실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가노는 자신의 바라던 희망이 이루어져 크게 기뻐하며 드디어 텐진신요류의 유술을 접하게 되었다. 이때 후꾸다의 문인으로 게이코를 하러 온 관원들은 가끔씩 오는 사람이 4-5명정도였고 매일 오는 사람은 1명이었다. 격일로 오는 사람은 1명정도였다. 그중에서 매일 다니고 있던 사람은 선생으로부터 형을 배워 그 것을 관원들에게 게이코를 시키고 선생과 동료들과 자유연습을 하는 형태의 연습이 매일 계속되었다.

이때의 연습은 찰과상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온몸이 만진창이 되도록 연습하였던 시기였다. 이렇게 열심히 한 덕분으로 기량은 더욱더 늘게 되어 메이지 12년 미국의 전대통령(18대)인 글랜튼장군이 왔을 때 시부자와에이이찌 라는 사람에게 초대되어 이소 마사토모, 후꾸다 야스께와 그밖의 유술 명가와 함께 아스까야마에 있던 시부와자별장에서 유술시범을 보였다.

메이지12년 8월 14일 후꾸다 스승은 52세로 죽게 되었고, 후꾸다의 제자들중에는 난도리로서는 가노보다 강한 제자가 있었지만 형과 난도리를 병행해서 수행하였고, 매일 도장에 나온 제자는 가노뿐이 없었고 그 게이코 연습에 열심히 한 점을 고려해서 후꾸다 사람들로부터 신용을 받아 후꾸다가에 전해져 오는 전서 1절을 물려받게 되어 후꾸다의 도장을 위탁받았다. 여기서 한때 그 도장을 맡아 연습을 하였지만, 아직까지 혼자서 도장을 운영할 자신이 없었고, 더욱이 더 높은 수준의 수행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였다. 그레서 새롭게 인문한 것이 간다에서 도장을 열고 있던 텐진신요류(天神眞楊流)의 이소마타우에이몬의 내제자로서 이소가에 입적하여 3대째의 도장을 상속받고 있던 이소마사토모의 도장에 인문한다. 이소도장에서는 후꾸다도장의 동료 후꾸시마 겐요시와 함께 입문하게 된다.

당시에 마사토모는 이미 60세정도의 노령으로서 자신이 직접 난도리 지도를 하지 못하였지만 형의 명인으로 가타의 가르침은 자기자신이 직접하고 있었다. 난도리는 사또와 우라마쯔라고 하는 사람이 간사를 담당하고 있었지만, 가노와 후꾸시마도 후꾸다 도장에서 상당한 출현을 하고 있던 상황이였으므로 이 2사람도 입문과 동시에 간사에 취임하게 되어 앞의 2사람과 함께 보조사범의 역할을 하게 되었다.

이 도장에 매일 출석하는 사람은 30명정도 되었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휴식하는 사람이 많았다. 따라서 가노 혼자서 대부분의 사람을 상대로 매일 형을 수련하였다. 또한 난도리도 매일 30인을 상대로 수련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고, 형연습과 난도리의 연습으로 늦게까지는 11시가 넘어서 귀가하는 경우가 많았다. 어떤때는 연습과다로 인하여 길을 걸을때는 비틀비틀거리며 쓰러진 적도 있었다고 한다. 이 마사토모선생은 체격이 매우 작았고, 젊었을 때부터 난도리는 별로 하지 않았기 때문에 형에는 명인있지만 난도리에서는 강하지는 않았다.

그러므로 자신은 이소의 도장에서는 난도리는 거의 자신이 가르치면서 선생으로부터는 형에 대한 것은 매우 많이 배웠다고 술회하고 있다. 이와같이 열심히 수행하고 있을 때 이소는 명치 14년 6월 62세로 죽게되어 또다시 스승을 잃게 되었고, 다시 새로운 스승을 찾으려고 노력하였다. 세 번째의 스승은 기또류의 이이꾸보고넹이다. 이이꾸보는 가노의 대학친구 모토야마마사시사의 부친인 마사오의 소개로 알게 되었다.

모토야마는 법학부의 제1회 졸업생으로 명치 12년에 졸업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가노보다 선배였고, 학과도 틀렸지만, 가노가 대학에 입학한 때에 대학에서 야구가 시작되어 가노와 고다이류사꾸(오대용작)는 투수, 모토야마와 시오다라는 사람은 포수를 하였다. 그래서 모토야마와 매우 친하였고, 조정(漕艇)이나 소풍에도 항상 함께하는 절친한 관계였다. 

모토야마의 부친은 전 막부의 강무소에서 기또류 유술의 선생을 역임하였고, 상당한 기또류 유술의 명인이었기 때문에 가노는 전에 배운 텐진신요류와는 다른 유파여서 가르침을 구하였다. 이 사람은 가타의 명인으로 난도리는 그다지 훌륭하지는 않았지만, 당시에는 제자를 받아들이려고 하는 기분은 아니었다고 한다. 그러나 가노의 스승에 대한 가르침을 갈구하는 자세에 감동한 그는 자신이 선생으로 모시고 싶었던 유술의 명인을 소개하고 싶다고 하여 가노는 찾아 가게 되었다. 그가 바로 이이꾸보고넹이었다.

그 역시 강무소의 유술사범으로 가노는 처음으로 기또류를 접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텐진신요류와 기또류의 기술차이에 많이 놀랐다. 텐진신요류에서는 조르기와 관절기, 눌러굳치기 등이 주된 기술이었고, 던지기 , 메치는 어느정도 있었지만, 배되치기(도모에나게), 아시바라이, 허리기술(고시나게) 등은 기또류와는 기술사용방법이 많은 차이가 있었고, 기또류의 가타와 텐진신요류의 형은 서로 그 기술상 시각에서 차이가 있었다. 또한 이이꾸보고넹은 47세 연령이었지만, 난도리도 상당한 수준에 있었기 때문에 가노도 열심히 게이코를 하였고, 처음에는 가노도 이이꾸보에게는 절대적인 열세였다. 여기에 가노는 성심껏 새로운 연구에 몰두하여 신중하게 기술을 창출하였다. 이렇게 하여 유술수련에 열중할때도 학생으로서의 본분은 열심히 하여 명치 14년 7월 9월 정치과와 경제과를 동시에 공부하며 문학부를 졸업하였다. 당시의 제도에서는 문학부는 정치, 경제, 철학, 국문학의 4부분으로 나누어져 그 중에서 국문학은 독립하였지만, 그밖의 학과는 2개학과씩 전공할 수 있었고, 더욱이 정치, 경제, 철학의 3과는 3년간 공통전공으로 배울 수 있었다. 이외에도 1년 더 철학을 전공하였다. 

철학을 전공할 당시 명치 15년 1월에 학습원에 새롭게 연수과가 설치되어 1월 15일 강사로 위촉되어 정치학과 경제학과에서 강의하였다. 이외에도 가노는 유술이외에 야구, 체조, 배구, 조정 등 다양한 운동을 하였다. 그중에서도 유술에 매력을 지니고 매진하였다.

가노지고로는 18세때 텐진신요류(天神眞楊流)를 후꾸다(福田八之助)와 이소마사지(磯正智)에게 배웠으며 20세때에는 오꾸보(飯久保恒年)으로부터 기또류(起倒流)의 가르침을 받았다. 그리하여 두 유파의 교육적 가치가 대단히 큰 것임을 깨달았으며, 아울러 다른 유파에 관해서도 비교 연구하여 유술이 정신과 신체발달에 귀중한 것임을 알게 되었다.

모든 유파에는 그 나름대로 장·단점을 갖고 있음을 발견하여 이것을 어느정도 개량하면 무술로서 뿐만 아니라 체육으로서도 유익하며, 정신의 수양 혹은 처세법으로도 가치가 대단히 높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가노지고로는 배운 유술 가운데 텐진신요류(天神眞楊流)의 급소지르기와 굳히기, 기또류(起倒流)의 메치기 기술을 중심으로 타케우찌류(竹內流)의 체포술(捕縛), 세끼구찌류(關口流)의 낙법(落法) 등 다른 많은 유파를 비교 연구하여 실제로 연습을 실시함으로써 원리에 맞는 것은 취하고 맞지 않은 것은 버렸으며, 여기서 더 나아가 새로운 기술을 만들어 새로운 지도체계와 방법을 확립하였고, 자유연습과 본의 연습에 의해 체육의 목적을 이루고 승부의 방법도 일종의 지육(知育), 덕육(德育)도 될 수 있도록 고쳤다. 단순한 무술에서 도(道)로 지양(止揚)되어 여기에 유도라는 명칭이 나오게 되었다. 

유술을 유도로 개칭한 이유를 살펴보면 옛날부터 유술은 전쟁에서 우선 활의 위협으로부터 시작되어 나중에는 도검(刀劍)에 의한 싸움으로 이행되어 화살이 떨어지고 칼이 부러졌을 때 아무것도 없이 맨손으로 싸우는 무술이다. 유술은 상대를 넘어 뜨리는 기술 외에 상대를 찌르기도 하고 차기도 하는 급소지르기 기술, 상대의 손목과 팔꿈치를 꺾는 관절기술, 상대의 목을 졸라서 죽이는 조르기 기술 등 많은 기술을 갖춘 종합무술이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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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진 기자의 태권도와 타무도] 제10편 가라테 


가라테(空手道)는, 태권도의 입장에서 볼 때 ‘만지면 만질수록 덧나는 상처’ 같은 것일지 모른다. 태권도의 발생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 몇몇 원로들(이원국, 노병직, 최홍희)이 일본에서 가라테를 수련했으며, 이를 토대로 근대 태권도가 만들어지고 발전해왔기 때문이다.
 
이러한 태권도 초창기의 역사를 어떻게 해석하느냐는 논자들에 따라 견해가 다르지만, 적어도 이 사실만큼은 부정하는 경우가 드물다.

이원국, 노병직, 최홍희 등이 가라테를 배운 스승이 바로 일본 ‘근대 가라테의 창시자’라고 불리는 후나고시 기친(船越義珍, 1868~1957)이다. 오끼나와 사람인 후나고시는 ‘당수(唐手)’라고 표기되던 오끼나와의 전통무술 가라테를 일본 본토에 소개했고, 이 과정에서 ‘당수(唐手)’는 같은 발음인 ‘공수(空手)’로 변형된다.

후나고시가 일본에 자신의 가라테 도장인 쇼토칸(松濤館)을 세운 것이 1936년. 노병직, 이원국 등은 이 무렵부터 쇼토칸에서 수련을 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후 오끼나와의 당수가 1940년, 50년대를 지나면서 ‘일본식 가라테’로 변화 발전했다고 해석한다면, 태권도는 ‘일본식 공수’보다는 ‘오끼나와식 당수’의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노병직, 이원국 등이 오끼나와의 가라테와 일본의 가라테를 연결하는 후나고시의 직제자들이기 때문이다. 노병직의 송무관(松武館)과 이원국의 청도관(靑濤館)이 쇼토칸에서 각각 ‘松’자와 ‘濤’자를 따온 것은 잘 알려져있는 사실이다.

과거의 전통주의식 역사서술에서 태권도가 가라테의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을 드러내지 않았던 것은 36년간 일본의 식민지배를 받았던 한국의 피해의식이 배경에 깔려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
 
왜색이라는 이름으로 금기시되던 일본문화 자체가 1990년대 후반에 들어서야 본격적으로 개방되기 시작한 점을 고려한다면,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현재 태권도의 형태와 가장 가까운 모습을 한 타무술은 역시 가라테다. 도복, 단급체계, 기본 훈련, 품새 등등이 매우 흡사하다. 실제로 태권도는 태권도가 아직 덜 알려지던 시절 ‘코리안 가라테’라는 이름으로 미국대륙과 유럽에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고, 가라테를 먼저 수련한 현지인들을 태권도로 전향시키면서 조직을 확장했다. 태권도가 세계화되었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실질적인 수련인구만을 놓고 본다면, 태권도가 가라테를 앞질렀다고 자신할 수는 없는 현실이다.

그런 면에서 태권도를 정말 사랑하고 연구하고자하는 태권도인들이라면, 가라테에 대한 연구를 게을리 해서는 안될 것이다. ‘태권도의 기본자세와 가라테의 기본자세는 어떤 점에서 비슷하고 어떤 점에서 다른가’, ‘아직도 태권도 품새에 남아있는 가라테의 영향은 무엇이고, 이를 극복해야 한다면 그 방안은 무엇인가.’ 등등.

일본에서는 어쩌면 이미 태권도에 대한 상세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을지 모른다. 자신의 문화에 비해 나은 것이 있다면 연구하기 좋아하는 일본이기에 ‘가라테의 영향을 받은 태권도가 어떻게 가라테 보다도 먼저 올림픽 종목이 되었고, 세계적으로 뿌리를 내리고 있는가’를 궁금해하고 연구를 하고 있을지 모른다는 것이다.

태권도인들은 가라테에 대해서 지금처럼 몰라도 되는 것일까? 쇼토칸을 비롯해, 고주류니, 시토류니 하는 주류 유파들에서부터 한국인 최영의가 창시한 극진가라테에 이르기까지 가라테에서 태권도인들이 참고하고 배울만한 요소는 적지 않을 것이다.

극일(克日)은 지일(知日)에서 시작된다는 말이 있다. 태권도가 세계적인 무술로서 가라테보다 한수 위라고 자신하기 위해서는 가라테를 보다 더 깊이있게 연구해야 할 것이다.


[by 박성진 기자의 무림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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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regteddy.tistory.com BlogIcon Reg Teddy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글 감사합니다.

    사실 태권도가 가라테와 유사한 점이 있다고 생각은 했지만, 그 원류가 오키나와 당수인 줄은 몰랐네요...

    결국은 어떻게 발전시켜나가는가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요즘 태권도 수련인구는 계속 줄어들고 있고, 성인 수련인구는 거의 없다시피 하는데 올림픽 정식 종목이라고 태권도가 가라테보다 낫다고 이야기 하기 보다 끊임없는 연구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또한 만화나 드라마, 영화 같은 2차매체들의 소품으로 적극적으로 활용되면서 일반인들에게 더욱 다가가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마루치 아라치를 제외하고 태권도를 중심으로 전개되던 이야기가 얼마나 있었는가 궁금합니다..

    일본의 경우는 가라테(뿐만아니라 여러가지 전통무술들)에 대한 만화들이 많이 나와 있고, 각종 스타일로 변형되어서 그 원류를 설명함은 물론 전체적으로 그 무술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는데 많은 역할을 하고 있는데요... 우리나라는 그런 문화산업 부분에서 좀 약한 것 같습니다...^^

    2009.06.17 17:24 신고
    • Favicon of http://taemasis.com BlogIcon 해니(haeny)  수정/삭제

      태권도가 지속적인 발전을 위해서는 가라테를 비롯한 타무술에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봅니다. 태권도가 가지지 못한 것들이 있기 때문이죠. 문화산업 적인 측면에서도 태권도계와 문화계에 상호노력이 필요하는데 공감합니다. 더불어 수련층 다양활르 위한 프로그램 개발에도 많은 노력이 필요하죠. 깊은 관심 감사드립니다.

      2009.06.18 07:51 신고
  2. 그림형제  수정/삭제  댓글쓰기

    국기원 부원장 이종우씨가 이미 신동아 인터뷰에서 태권도의 기원이 가라데라고 자백을 했죠. 가라데를 연구하는 것도 좋지만 지금의 태권도의 개판을 정리했으면 좋겠네요. 이건 뭐 어떻게 정치판보다 비리가 심한지 모르겠네요.

    2009.06.17 20:10 신고
    • Favicon of http://taemasis.com BlogIcon 해니(haeny)  수정/삭제

      태권도의 역사적 논쟁은 어제오늘 일이 아님이 분명합니다. 이를 위해 태권도계에서도 하루 빨리 역사 및 정신에 대한 재정립리 속히 이뤄져야 하겠죠. 태권도계에 잇따른 비리와 문제들이 많은 요즘입니다. 태권도를 이끄는 세대가 교체되는 과정과 시대 흐림인 탓이죠. 보다 나은 태권도가 되기 위해 현명한 사태 수습과 해결 방안이 모색돼 하루빨리 정상화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 입니다.

      2009.06.18 07:54 신고
  3. 이명박각하  수정/삭제  댓글쓰기

    올림픽에 채택된 이유?............뇌물과 아부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런 얘기 하지 마세요.사실 이면 챙피 하잖아요.그런 일이 한둘이 아닌데 굳이 밝힐 필요 까지야 있겠어요.나라 꼴을 보면 알 수 있다고 몰아 부치는 사람도 있던데 그러지 마세요.도적의 무리의 대장은 도적이랍니다.

    2009.06.17 21:38 신고
    • Favicon of http://taemasis.com BlogIcon 해니(haeny)  수정/삭제

      우리나라의 자랑스러운 문화유산이자 국기인 태권도를 지나치게 비하할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이유가 어쩌든간에 태권도는 분명한 가치가 있기 때문에 정식적으로 올림픽 정식종목에 채택돼 세계인들의 사랑을 받고 있으니까요. 내부간의 갈등과 기술적인 문제점은 있으나 속히 해결되리라 믿습니다. 따라서 님도 태권도에 따뜻한 애정을 가져주셨으면 합니다.

      2009.06.18 07:56 신고
  4. 무도사범  수정/삭제  댓글쓰기

    박기자님의 글 하나하나가 가슴에 와닿네요.
    앞으로 계속 건필하세요.

    2010.06.14 20:15 신고
  5.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2013.01.10 19:02
  6. Favicon of http://www.brandswatchforlife.co.uk/replica-watches-breitling BlogIcon breitling replica uk  수정/삭제  댓글쓰기

    게시 원본보기, 깊이 시범 날카롭게 평가는, 그래서 제가 갑자기 부드러운을 볼 실제로 드문 걸작이 있습니다

    2013.03.28 16:59 신고
  7. 훌쩍커버린  수정/삭제  댓글쓰기

    대련시스템만 빼면 가라데 것을 모조리 베겼는데 무슨 자랑스런 문화유산인지...
    무술의 이름끝에 도자를 붙이는 것은 왜국문화의 특징,
    특히 우리가 그토록 경멸하고 저주스러워하는
    일제시대에 정립된 왜국 문화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자랑스러워 하는것이 웃긴다.

    벨트로 계급을 메기는 시스템도 왜국것이지.
    품새는 아예 가라데랑 똑같지.
    격파도 원래 가라데의 수련법이고.
    약속 대련도 가라데의 수련법이고.
    발차기도 가라데식 접어차기이고.

    도대체 태권도의 오리지널 부분이 어디인지 알고 싶을 정도다.

    2013.04.04 21:46 신고
  8. 훌쩍커버린  수정/삭제  댓글쓰기

    한국인들이 태권도를 안좋아하는 것은
    본능적으로 왜국 것을 거부하는 DNA가 발동해서야.
    아무리 거짓말로 선동해서 우리 것이라고 주장해도
    수천년간 이땅에 살아온 DNA는 속일수 없지.
    아무튼 거부감이 드는 것이지.

    2013.04.04 21:48 신고
    • ㅂㅂ  수정/삭제

      일본에 의해 식민지된 오키나와의 류큐 당수 마스터가 일본으로 건너가 같은 식민지이던 조선 청년들에게 당수를 가르쳤다. 그리고 그 당수를 배운 조선인들이 해방후 조선에서 태권도를 만들었다. 여기까지가 위에 나온 내용인데, 이건 수백년간 독립되어 자신들만의 문화를 유지하고 일본에 저항하던 류큐의 무술을 그냥 쪽바리 무술로 소급 시켜 생각하는건데 뭔 개소리냐? 그리고 가라테(唐手) 또한 류큐가 중국 남권의 본고장인 복건성관 광동성에서 배워온건데 가라테 또한 오리지날이 아닌데? 도데체 전 세계에 아무도 하지 않고 독특하게 생긴 무술이란게 존재하기는 하냐? 씨름이나 루차 카나리아나 부흐나 생긴건 똑같다. 너놈 새끼의 이름과 성도 신라가 당나라 식 따라한건데 조상 욕이나 한바가지 실컷 해라 문화라는건 교류를 통해 발전하는거고 태권도는 이미 가라테를 뛰어넘었다. 도대체가 뭘 원하는거지?

      2014.08.16 01:24 신고
  9. Favicon of http://4554.acelgxc.com/lib.php BlogIcon ugg boots  수정/삭제  댓글쓰기

    지금은 반짝반짝 빛이 나겠지,,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그빛은 사라저버릴거야,지금 우리처럼

    2013.07.12 11:02 신고
  10. Favicon of http://blog.naver.com/aa105969?106596 BlogIcon 좋은날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정보 잘보고 갑니다

    2016.06.08 15:56 신고

시종 진지하게 수련에 집중하는 수련생들은 난 가장 좋다. ^^

이집트에 온 후 태권도와 함께 타 무술인 가라테를 새롭게 보게 됐다. 소싯적부터 태권도만 하고 태권도만 보다보니 다른 무술, 다른 스포츠에 눈을 돌릴 여유가 없었다. 어쩌면 관심 분야만 보는 성미 탓일 수도 있다. 

그 중 태권도와 가장 유사한 무술인 가라테에 관심은 있었으나 애써 눈을 돌리지 않았다. 태권도와 가장 유사한 무술로 여러 부분에서 비교되는 무술이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오히려 더 알아야할 무술인데 말이다. 그러나 요즘 가라테에 무척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 계기는 가라테 수련생들을 지도하면서 부터다. 

내가 아스완(이집트)에 온 후로 태권도 수련생들이 많이 늘었다. 그 중 가라테를 수련하다 태권도로 전향한 수련생들이 많다(100여명 정도 됨). 지도자들도 태권도로 많이 전향하고 있는 추세다. 나름 아스완에서 태권도가 대세라고 할까. ^^ 여하튼 기분 좋은 일이다. 그렇다고 가라테가 태권도 보다 못한 무술이라고 단정 지을 수 없다.

2009/05/23 - [한혜진의 태권도 세상/이집트 in 태권도] - 가라테에서 태권도로 전향한 아이들

기존에 가라테를 수련한 경험했던 수련생들을 지도하면 가끔 놀라게 된다. 이제 막 태권도를 시작했는데 몇 개월 수련한 것처럼 잘하기 때문이다. 한 번 가르치면 곧 잘 따라온다. 태권도와 가라테와 기술 구성과 수련 형태가 비슷하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다.

이집트 아이들은 말이 참 많다. 장난도 심하다. 인성 및 예절 교육을 시키는 것이 가장 힘들다. 때문에 지도하는데 체력이 많이 소비된다. 이집트에 와서 가장 힘들었던 것도 수련생들이 웃고 떠드느라 수련에 집중을 못하는 것이었다. 잠시라도 내가 다른 곳을 보고 있노라면 옆 사람과 대화를 하거나 장난을 친다.

눈이 뚤어져라 사범인 날 바라보는 수련생들.

문화가 달라 그러려니 이해가 가다가도, 화가 치밀어 오를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때마다 자중할 것을 권고하였고, 태권도 인으로써 갖춰야할 품행과 덕목을 재차 강조해 교육했다. 요즘은 조금 나아진 편이다. 소통의 한계와 문화적 차이 때문에 인성교육을 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교육 이었다. 개인적으로 인성교육은 수용자가 이해를 하고 깨달아야 된다고 본다.

가라테에서 전향한 수련생들은 따로 교육할 필요가 없을 정도다. 예쁜지 않을 수 없다. 수련 형태는 다르나 두 무술이 예의를 기본으로 하는 것은 분명 한 듯하다. 실제 가라테를 비롯한 검도, 유도 등 일본의 무술들이 예의를 매우 중시하고 잘 지켜지는 교육이 이뤄지는 것 같다. 태권도가 오히려 배워야 할 점들이 아닌가 생각한다. 내가 말하는 예의와 인성이란 단순히 흉내를 내는 것이 아닌, 이해와 깨달음을 통해 몸에 베이는 것을 말한다. 

[by 한혜진의 태권도 세상 - 이집트 in 태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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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덕쇠  수정/삭제  댓글쓰기

    조금 자존심 상하는 이야기겠지만 실질적으로 태권도의 원형은 가라테입니다. 왜정 때 조선 땅에 들어와서 널리 퍼졌던 무술 가라테(공수도)는 해방무렵 송도관 지도관 청도관 등등의 5개의 대표적인 가라데 도장을 중심으로 정착이 되어있었습니다. 이 5개 가라테도장의 사범들이 박정희대통령이 주도한 한국의 무술통합정책의 주축이 되면서 태권도를 창시하게 된 것입니다. 결국 태권도는 가라테를 원형으로 해서 해방이후 태어난 신흥무술인 셈이죠.

    2009.06.11 15:35 신고
  2. 좌천시  수정/삭제  댓글쓰기

    덕쇠님 말씀, 옳소이다. 태권도인들이 발끈할 일은 아니라고 봅니다. 문화는 어떤 형태로든 섞이게 되는 것이니깐요. 중요한 것은 그것을 우리 것으로 잘 소화해서 발전시키는 것이 중요하니깐요. 그런 점에서 태권도는 대한민국의 국기로써 세계화시킨 자랑스런 우리무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굳이 그 뿌리를 따질 필요도 없구요. 원류를 따져 논쟁하는 것에만 집착한다면, 우리가 편리를 누리는 기계문명도 우리민족이 발명한 것은 아니잖아요?

    2009.06.12 13:52 신고
  3. 달마  수정/삭제  댓글쓰기

    태권도나 가라테는 뿌리가 어디서 시작되었냐를 떠나서 예의와 인성교육을 중요시한다는 것에서는 공통점이 있는 거 같습니다. 비록 가라테로 먼저 시작한 아이들이지만 이젠 태권도를 통해 한국의 무술과 정신을 배워나가겠네요.^^ 짜증나고 힘드시겠지만 이집트의 아이들에게 한국의 강한 정신을 팍팍 전해주십시요. 파이팅입니다.!!!!

    2009.06.12 14:35 신고
  4. 쿠쿠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런가요? 가라테를 공수도, 당수도라고 부르는데 그건 오키나와...[지금은 같은 일본이지만, 근현대전까지만 해도 다른 나라였다고 합니다.]에서 중국쪽의 무술을 기반으로한 오키나와 전통무술이라고 합니다. 덕분에 정의로운 유도맨과 악당 가라테맨의 대결이 초창기 일본의 공식이었다고 합니다. 그 이후 최배달로 인하여 세계적으로 엄청나게 세력을 확장하고, 일본으로 무도를 배우러 간 한국인을 박정희가 불러들여서 새로운 군대 무술을 창시하는데... 그것이 바로 태권도죠. 그 과정에서 정통성을 세우기 위해 수박이니 태껸이니.... 일본의 전통(?)적인 가라테에 비해 현란한 발기술을 보이는 태권도이지만, 제가 보기엔 창으로 찌르거나 치는 듯한 태권도식 발차기와 채찍을 휘두르는 듯한 태껸은 상당히 다른 듯.....

    2009.06.13 02:46 신고
  5. 위에 쿠쿠님  수정/삭제  댓글쓰기

    박정희가 군대식 무술을 창시해서...라는 루머는 누구한테 들어셨는지 몰라도 완전히 잘못된 정보입니다. 박정희때 태권도의 위상이 올라간거지 창시된 것은 아닙니다;;;;;

    2009.08.15 16:53 신고
  6. Favicon of http://www.unny.com BlogIcon montreal flower delivery  수정/삭제  댓글쓰기

    실제로 가르치는건 정말 힘들겠습니다

    2009.08.25 04:07 신고
    • Favicon of http://taemasis.com BlogIcon 해니(haeny)  수정/삭제

      가르치는 건 한국이나 이집트나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다만 소통의 한계가 있기 때문에 더 많이 가르쳐주지 못한게 늘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

      2009.08.27 10:29 신고
  7. Favicon of http://hanmail.net BlogIcon karlmon  수정/삭제  댓글쓰기

    동아시아 특히 중국,일본,한국 3국 무술의 원류는 그리 중요한게 아니라고 봅니다. 다만 무술이 어찌 전파되었던 간에 그 나라에 맞게 발전하는 것이겠지요. 보통 우리가 알다시피 중국은 현란하고 화려한 기예 중심이면 일본은 예와 격을 중요시하고 우리는 놀이로서의 무예를 즐기는 각각의 문화적 특징이 있지 않나요? 이렇 듯 각국의 무술이 그 특징을 달리하는데 태권도가 가라테의 영향을 받았다고 너무 예와 격에 억지로 강요될 필요는 없다고 보여집니다. 타 문화를 배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에 앞서 먼저 우리가 우리의 문화에 맞게 소화 시켜야 되지 않을까요? 이건 태권도 전체에 관해 바라는 점입니다..분명 가라테등의 여러 무술과 문화적 교류는 중요합니다만 태권도 시간을 즐기는 아이들을 통해 오히려 격식과 예에 얽매이지 않고 놀이로서 즐겁게 익히는 시간을 만들어 딱딱한 태권도가 아닌 즐기는 태권도로 가르치면 어떨까요. 태권도도 많이 변했으면 합니다. 써놓고 보니 좀 주제넘는 이야길 한게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 세계로 나아가는 태권도 화이팅입니다.

    2009.08.26 21:55 신고
    • Favicon of http://taemasis.com BlogIcon 해니(haeny)  수정/삭제

      님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감하는 바 입니다. 태권도 역시 가라테와 예를 중시하는 무술인 바, 어쩐지 비교가 되는 것 같아, 조금은 예민하게 받아들이는게 없지 않았던 것 같네요. 중요한 건 역시 태권도를 태권도로서 보다 독창적으로 지속적인 발전을 거듭해 나가야 겠다는 겁니다. 좋은 의견에 감사합니다. 즐거운 하루 되세요.

      2009.08.27 10:28 신고
  8.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2009.08.27 23:47
    • Favicon of http://taemasis.com BlogIcon 해니(haeny)  수정/삭제

      꾸벅^^ 끝까지 내용을 읽어 주시고, 잘못된 점을 지적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도 계속 관심 가져주시기 바랍니다.

      2009.08.28 00:26 신고
  9. 훌커  수정/삭제  댓글쓰기

    전통무예라고, 2000년의 역사를 가졌다고 거짓말이나 안했으면 좋겠네요.

    2013.07.02 18:18 신고
  10. Favicon of http://blog.naver.com/happyhansang?102058 BlogIcon 커피한잔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정보 잘보고 갑니다

    2016.06.08 15:56 신고
  11. Favicon of http://blog.naver.com/aa105965/220736072299?92658 BlogIcon 1465914997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읽고 가여~

    2016.06.14 23:36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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