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권도보급'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09.12.29 태권도와 군(軍)의 상관관계 (2)
  2. 2009.05.30 태권도로 아메리칸 드림을 이룬 작은거인 정우진 - 하 (9)

베트남전쟁 때 태권도 민사심리전으로 활용, ‘장병 유단자화’순기능 이면에 역기능도
해외 파병부대, ‘태권도교실’운영해 현지인과 유대 돈독히 하고 태권도 우수성 전파

1965년 베트남전쟁에 파병된 태권도교관단 백준기 단장이 사이공에 위치한 대한민국 주월대사관의 앞뜰에서 태권도 연무시범을 하고 있다. 그는 시범에 대해 “세계 유수의 언론매체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열린 연무시범은 태권도의 우수성을 세계 만방에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고 했다.


2009년 가을, 공군 38전투비행전대에 태권도 단증을 100% 취득한 중대가 탄생해 화제를 모았다. 기지대대 소속 45명의 대원들이 그 주인공이다.

중대는 올 초 부대 목표 중 하나로 '100% 태권도 단증 취득'을 세워 중대원들이 열성적으로 태권도를 수련해 왔다. 그 결과 10월 27일 승단심사에서 단증이 없었던 마지막 7명까지 모두 합격, 비로소 부대 목표를 달성했다.

중대장 허석희(33·공사 48기) 대위는 “장병들의 전투력 극대화를 도모하고 군인정신을 기를 수 있는 태권도를 기본적으로 연마해야 한다는 뜻을 품고 올해 초부터 중대원들에게 단증 취득을 장려하게 됐다”고 밝혔다.

태권도와 군(軍)은 뗄레야 뗄 수 없는 밀접한 관계이다. 1950년대 현대적 의미의 태권도가 태동할 무렵, 군은 국방체육의 일환으로 장병들에게 태권도를 가르쳤다.

<스포츠조선>에 연재(1994년 12월 17일자)된 '태권도 아메리칸 드림 40'(글쓴이 이호성)을 보면, 육군사관학교에서 태권도(당시 당수도)가 최초로 교육된 것은 1950년 6월 1일로 되어 있다. 육군사관학교는 1954년 9월 태권도부와 유도부를 창설했다.

태권도가 군대의 전면에 나선 것은 베트남전쟁(월남전)에 한국군이 파병되면서부터다. 특히 1960년대 중반 베트남전쟁이 한창일 때 주월파병한국군(채명신 사령관은 대한태권도협회 전신인 대한태수도협회 초대 회장)이 태권도를 ‘민사심리전’으로 활용하면서 군(軍)에서의 태권도 가치를 급상승했다.

베트남전쟁을 통해 태권도의 세계화가 탄력을 받는 등 태권도 발전과정에서 군(軍)은 중요한 매개체 역할을 했다. 10월 1일 국군의 날 행사 때 장병들이 태권도 시범을 펼치는 것은 예삿일이 돼 버렸고, "군인은 태권도를 해야 된다", "태권도를 잘 하면 군대가서 대우를 받는다"는 말은 우리 주변에서 쉽게 들을 수 있게 됐다.

2008년 현재 유단자가 된 장병들은 얼마나 될까? 대한태권도협회 홍준표 회장이 2009년 10월 국정감사에서 배포한 자료를 보면, △육군 56,418명 △해군 4,460명 △공군 3,002명의 유단자가 배출됐다.

현재 국방부는 훈령 제372조(태권도 수련)에 따라 각 부대는 장병들의 유단자 목표가 달성되도록 태권도 교육계획을 수립해 시행하게 돼 있다.

국방부가 장병들에게 태권도를 가르치면 '유단자화'를 꾀하는 것은 명료하다. 태권도를 통해 장병들의 전투체력을 연마하고, 투철한 군인정신을 함양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자율이 아닌 강압에 의해 유단자를 양산하다 보니 일부 장병들은 태권도의 '태'자만 들어도 몸서리를 친다. 전투체력의 날과 일조행사 때 교관과 고참들에 의해 강압적으로 태권도 훈련이 이뤄져 태권도에 대한 역효과가 생겼다는 게 대체적인 여론이다.

강압적인 분위기 속에서 억지로 태권도를 배운 장병들은 사회인이 된 후 곧잘 "내 앞에서 태권도 얘기도 하지 말라"고 푸념하곤 한다. 태권도에 대한 안 좋은 추억이 있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각 부대별로 경쟁이 붙어(일명 실적쌓기) 태권도 유단자를 양산하다 보니 자격미달의 유단자가 많다는 지적도 들리고 있다. 같은 1단이라고 해도 도장에서 취득한 1단과는 많은 차이가 난다는 것이다.

양통일씨는 '생활체육으로서 태권도 대중화 방안'이라는 논문에서 이 문제를 거론했다. 그는 현재 우리나라 성인들이 태권도를 수련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군대에서 비전문가에게 비효율적으로 태권도를 배웠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이 지적이 모두 맞는 것은 아니지만, 군 태권도 관계자들이 참고할 만하다.

국방부는 1999년부터 태권도와 에어로빅을 결합한 태권체조를 육-해-공군 장병들에게 보급했다. 당시 국방체육정책 담당관은 "태권체조의 부드럽고 경쾌한 동작들이 장병들의 흥미를 유발해 병영 분위기가 한층 밝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각 사단 예하부대로 태권체조를 확대한다는 계획은 제대로 실행되지 않았다.

해외에 파병된 한국군이 대민봉사의 일환으로 태권도교실을 운영하는 것도 주목해 볼 만하다. 한국군은 동티모르 상록수부대, 아프가니스탄 다산부대, 이라크 자이툰부대, 레바논 동명부대 등에서 태권도교실을 운영해 주민과의 유대강화와 한국 이미지 제고에 긍정적인 성과를 거두고 있다.

이런 가운데 2009년 10월, 홍준표 대한태권도협회 회장은 국회 국방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전문적인 태권도 사범단(師範團)을 육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홍 회장은 "언론에 보도된 동명부대(레바논 파병) 태권도교실 운영은 성공적인 해외파병 운용의 모범을 보여주었을 뿐 아니라, 대한민국의 이미지 제고와 태권도의 국제적인 저변확대에 기여했다"며 "새롭게 창설되는 해외파병 부대에서는 성공적인 민사작전을 위해 전문적인 태권도 사범단을 두어 활용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앞으로도 태권도와 군(軍)의 상관관계가 꾸준히 지속되어 태권도 저변확대는 물론 태권도의 가치와 우수성이 더욱 높아지길 기대해 본다.

[by 서성원의 태권도와 길동무하다 - 태권도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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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  수정/삭제  댓글쓰기

    솔직히 군대 태권도는 좀 속된말로 가락이죠...
    저도 어렸을 때부터 수련해왔지만 군대와서
    태권도에 대한 흥미가 떨여졌죠...
    좀 개선이 필요할 듯 하네요

    2010.03.28 15:20 신고
  2. Favicon of http://10521.saxbycoffer.com/raybansunglasses.html BlogIcon Ray Ban outlet  수정/삭제  댓글쓰기

    당신은 내가사랑할 만한 사람이 아니예요,사랑하지 않으면 안될 사람이예요.

    2013.07.17 13:25 신고

초창기 도장 운영에 관한 이야기가 시작되자 그는 흥분했다. 인터뷰 내내 흥분을 감추지 않았다. 힘겨운 미국 정착시절과 도장을 개관하기에 이르기까지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서 말이다. 흑인 빈민가에서 시작한 태권도장 운영은 쉽지 않았다. 어느 정도 예견은 했었다.

가장 큰 문제는 태권도에 대한 인지도와 관심 부족이었다. 당시만 해도 미국인들 대부분은 ‘태권도’란 무술 자체를 모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반면 ‘가라테(공수도)’라고 하면 고개를 끄덕일 정도로 알고 있었다. 가라테는 태권도보다 훨씬 앞서 미국과 유럽 등지에 보급이 되었다.

[정우진 회장이 1973년 아이오아주 씨더래피즈에서 처음으로 개관한 정스태권도장의 전경이다.]

그는 “도장 문을 연지 얼마 되지 않아 여러 사람들이 도장에 들어왔다. 반가운 마음에 달려 나갔는데, 오늘의 점심 스페셜은 무엇이냐고 하더라. 내가 무슨 말은 하느냐고 반문했더니, 그들은 중국음식점이 아니냐고 했다”면서 초창기 태권도장에 관한 해프닝을 들려주었다.

정우진 회장은 결심했다. 도장을 살리기 위해서였다. 울며 겨자 먹기로 간판에 ‘가라테’라는 말을 같이 사용하기로 한 것이다. 그러나 제자들 앞에서까지 태권도와 가라테가 혼동되도록 할 수는 없었다. 비록 가라테의 명칭을 빌려 관원을 모집했지만 태권도의 정신을 알리고자 했다. 그래서 “태권도는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드는 힘이 있으며, 자신에 대한 정신적인 도전이다”고 강조했다.

정우진 회장의 초창기 도장운영은 말 그대로 ‘태권도장’이 아니었다. ‘코리안 스타일 가라테 도장’이었다. 실제 80년대 만 해도 외국에서 태권도에 대한 인지도는 매우 낮았다. 지금도 유럽과 중동 등에서는 태권도가 가라테에 비해 보급률이 적은 편이다. 정 회장을 비롯한 당시 해외 곳곳에 태권도를 보급한 한인 사범들이 있어 지금의 태권도가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 회장은 가라테가 아닌 태권도를 미국에 알리기 위해 매일같이 미국인들을 상대로 이마로 벽돌을 격파하고, 발차기를 보여주며 태권도를 알렸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 태권도를 배우기 위해 도장에 방문자가 점차 늘어났다. 

정우진 회장 사무실 벽면에는 정스태권도장의 역사가 한 곳에 정리되어 있다.

또 하나. 미국이라고 텃세가 없는 게 아니다. 우리나라도 타 지역에 가면 텃세가 있다. 미국인들 없겠는가. 흑인들로부터 작은 키의 동양인이 ‘희한한 무술’을 한다는 소문이 주변 동네까지 일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부터 정 회장은 동네 깡패들에게 표적이 되어 있었다. 당시만 해도 폭력과 범죄가 난무하는 흑인 빈민가였던 까닭에 도장개관 1년여 동안은 그들과의 힘겨루기가 반복되었다.

그가 가장 아끼는 도복과 띠. 낡았지만 태권도의 혼이 느껴진다.

이러한 과정은 정 회장 뿐만 아니라 초창기 태권도를 전파하기 위해 해외에 진출한 한인사범들이라면 모두가 겪었던 고충 중 하나다. 그래서 지금 태권도 인들은 초창기 해외 파견 한인사범들의 노고를 잊어서는 안 된다. 그들의 노고가 있었기 때문에 태권도가 세계화 될 수 있었고, 올림픽에 정식종목에 채택될 수 있었다.


무도로서의 태권도가 미국인들을 바꿨다. 태권도라는 이름조차 들어본 적이 없는 미국인들을 대상으로 시작한 태권도장. 사실 이때까지만 해도 정 회장은 앞날에 대해 확신이 서지 않았다고 뒤늦게 털어놓았다. 그래도 확실한 믿음이 있었다. 바로 태권도가 고유한 무도로서의 정신적인 가치가 높다고 생각했었기 때문이다.

그것이 결국 미국인들을 바꾸기 시작했고, 오늘날 태권도가 미국에서 타 무술에 비해 가장 높은 인기를 갖게 한 이유일지도 모른다. 그는 “도장의 문을 열고 첫 제자를 맞이한 순간부터 태권도의 정신적인 면과 무도적인 측면을 누누이 강조하고 실천했다”고 말했다. 

태권도 가치를 깨닫는 미국인들이 늘어나면서 그의 도장은 자연스럽게 정신적인 수련장으로 변해갔다. 동시에 수련생도 급격하게 늘어났다. 그의 제자들 중에는 비교적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몸과 마음이 다 망가진 소외 계층도 많았다. 또 신체적으로 건강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선천적 후천적 장애를 가진 사람들도 많았다. 그러나 그에게는 남녀노소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그들은 태권도를 통해 인연의 끈을 맺은 소중한 제자들이었다.

제자를 안고 있는 정우진 회장

이런 제자들을 보며 그는 “무도 태권도를 통해 자신이 갖고 있던 문제점을 훌훌 털어버리는 여러 제자들을 보면서 나는 오히려 그들에게 참으로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내가 무도인의 한 사람이라는 사실이 너무도 감사했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국내외 여러 태권도인들을 만나 보았다. 그 중 정우진 회장은 그 누구보다 태권도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었다. 눈을 뜨는 순간부터 잠에 들 때까지 오직 태권도 생각 뿐이다. 그래서 많은 태권도인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다. 태권도를 통해 얻은 것은 다시 태권도에 환원하겠다던 그다. 이를 위해 그는 소외된 곳을 찾아 뜻을 같이 하는 태권도사범들과 자선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2009/05/22 - [한혜진의 태권도 세상/태권도人 무술人] - [태권도人] 태권도로 아메리칸 드림을 이룬 작은거인 정우진 (상)


* 본 내용 중에 일부는 무술전문미디어 무카스미디어(www.mookas.com)에 게재 되었음을 알립니다.

정우진 회장은? 1943년 경상북도 울주군 청량면 개곡리에서 출생, 한양공대 기계과를 졸업하고 1971년 미국 이민. 아이오와 주 시더래프즈에 정착해 현재까지 거주하면서 한평생 태권도를 위해 몸을 바치고 있다. 1년 동안의 주유소 펌프맨 생활을 거쳐 1973년 흑인 빈민가에 처음으로 태권도장을 열었으며, 97년에는 뉴 라이프 피트니스 월드를 설립하여 동양인 이민자로서는 이례적으로 헬스클럽 사업에 진출하였다. 이후 미국 중남부전역으로 사업을 확장, 현재 8개 클럽에 2만여명의 회원을 확보하고 있다. 2002년부터 본격적으로 중국에 진출, 베이징에 설립되는 첫 헬스컬럽을 비롯하여 중국 내에 총 12개 클럽 오픈을 계획하고 있다. 이 밖에 Mountain Top Co.을 통해 백화점 및 오피스 빌딩 임대사업에도 참여하고 있다. 특히 태권도의 해외 보급하업에 관심을 기울여, 세계 120개국에 영문 태권도 잡지인 ‘태권도타임즈’의 회장을 맡고 있으며, 미국 콜로라도 주에 태권도연구소를 설립하였다.

저서로서는 1998년 ‘Free Style Sparring와 2002년 ‘세계가 우리를 기다린다’ 등 2편이 있다.

[By 한혜진의 태권도 세상 이야기]

[태권도와 마샬아츠의 오아시스 - 태마시스 -  l www.taema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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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주짖수  수정/삭제  댓글쓰기

    원래 태권도는 가라데에서 나온것을 다 아는사실 아닌가요 ?

    2009.05.30 21:08 신고
    • 태권브이  수정/삭제

      "원래 한국 불고기가 일본 야끼니꾸에서 나온 거 다 아는 사실 아닌가요?"와 같이 어처구니 없는 말씀이군요.

      설마 불고기가 일제시대에 일본에 건너가 오늘날의 야끼니꾸가 된 것도 모르시는 건 아니겠죠.

      일본인들은 카라데가 중국에서 오키나와로 건너온 중국 무술이라고 주장합니다만, 신라시대의 무술과 태껸, 수박치기 등 한국 고대무술이 현대의 카라데의 원형이 되었다는 것이 정설입니다.

      불고기가 일본에 건너가 야끼니꾸가 된 것처럼 말이죠.

      이것은 한국적 국수주의나 민족주의적 자존심과는 상관없이 그냥 있는 사실일 뿐입니다.

      잘못된 상식을 사실인 것처럼 말씀하시면 안되겠기에 말씀드립니다.

      2009.05.31 01:19 신고
  2. ...........  수정/삭제  댓글쓰기

    원래 태권도가 가라데에 파생된 무술인데 무슨 코리안 스타일 가라데가 되었던 사연이란 겁니까.. 나참 황당해서..
    신동아에서도 다 까발라진건데...
    어찌 되었든 태권도는 가라데에서 파생된 무술입니다.
    그 근거로 태권도 초기 사범들이 전부 가라데 사범이라는 거...
    그리고 가라데는 중국에서 건너온거 맞습니다. 중국의 남권이던가.. 중국 남쪽 지역의 무술의 영향을 받아 오키나와에서 발전된 거지요.

    2009.05.31 01:45 신고
  3. 말도안됨  수정/삭제  댓글쓰기

    수박치기라는 원형이 있기나 한가..마구 갖다부치지 마시져..
    택견이랑 태권도가 전래되어서 그렇다고? 택견을 한번이라도 해보고 그런소리하십니까?
    그냥 인정할껀 하고 앞으로 태권도의 역사를 써야지 본류가 어디인들 뭔 상관인가..태권도가 우리 고유무술이라는 건 집어져야한다.
    환상을 개야 발전이 있을뿐이다..

    2009.05.31 01:54 신고
  4. ....  수정/삭제  댓글쓰기

    태권도가 일제 시대 가라데를 했던 분들이 해방 후 이름을 바꾸고 뭔가 약간 수정해서 비롯되었다는 것은 모두가 다 아는 주지의 사실입니다. 그분들은 순수한 무도인들이었다는 것을 믿고 싶습니다. 그 이후에 위 글의 주인공과 같은 수많은 사범들이 해외로 진출하여 태권도를 알리고 동시에 한국을 알린 공적은 높이 평가되어야 마땅합니다.

    2009.05.31 08:54 신고
  5. 태권도뿌리는..  수정/삭제  댓글쓰기

    태권브이 미친놈.. 난 70년초에 청도관에서 팔괘형으로 태권도를 배우기시작했지만 성인반선배들은 철기,내보진등 가라데품세를 했어.. 청도관 만든 노병직님이 일본에 가라데를 전파한, 후나고시선생에게 직접 배웠다구.. 후나고시의 송도관가라데가 한국 태권도의 뿌리야, 한국에 토착화되고 몇십년의 시간이 흘렀으니 전통무술이라고 해도되는 것이지

    2009.06.01 17:22 신고
  6. 태권도뿌리는..  수정/삭제  댓글쓰기

    후나고시기찐이 오끼나와(유구)사람이고 일본에 정착시키려 온 과정에서 한국인이 배워온 것이니 일본이 아닌 오끼나와에서 직접 배운 것이나 다름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습니다..오키나와에 데(手)라는 전통무술이 있었지만 낱기술위주였고, 오키나와를 방문한 중국사신의 일행중 공산군이란 사람이 품세를 가르쳐줌으로서 가라데(唐手)가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가라데 최초의 품세가 "공산군"입니다. 이 품세는 중국북파무술에 해당됩니다. 그후 오키나와사람들이 복건성에 들어가 중국남권을 배우고 와서 가라데의 범위를 넓혔습니다.복건성의 대표무술 백학권의 품세 '삼전'은 가라데의 대표적인 품세이기도 합니다.

    2009.06.01 17:35 신고
  7. 태권도뿌리는..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게 진실이니 데(手)의 원형이 조선무술이라는 주장이 생겼습니다. 조선초에 오키나와와 교류를 했다는 기록이 있고 홍길동이 세웠다는 율도국이 오키나와 남쪽의 저항세력으로 상당기간 존속했다는 것도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홍가라(洪家王)세력은 극히 일부였기 때문에 귀족들의 압제를 받는 민초들을 부축여 민란을 만들어냈다고 합니다.그러기위해 철저히 오키나와민중들과 하나가 되기위해 언어,복식등을 받아들였구요. 축성이나 민간풍습에 조선식은 남아있지만 무술이 있었다는 흔적은 없습니다.

    2009.06.01 17:46 신고
  8. 행인  수정/삭제  댓글쓰기

    태권도의 역사적 진실을 규명해야할 논의가 계속되어야 한다. 태권도학과 교수와 학생들도 뿌리를 찾기 위한 탐구가 계속되야 한다. 내일 내일 할때가 아니다. 지금 당장 시작해야 5년 후에 올바른 역사가 정립될 것이라 믿는다.

    2009.06.02 06:01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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