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6/18 - [태마뱅크/백과사전] - 가노지고로(嘉納治五郞; 1860∼1939)의 생애와 근대유도의 발달 (1)
에 이어 계속.

유술의 시대에는 생명을 걸고 했던 격렬한 승부는, 창조된 안전한 경기 속에서 행하여지고 있으며 기술로부터 도에 들어가는 동양적인 무도관도 현재의 인식속에 살아있다.

술(術)은 기술(技術)을 의미한다. 따라서 술(術)에서 강조되는 것은 기술 그 자체이다. 술(術)을 행하는 가장 큰 목적은 싸우는 것이기 때문이다. 반면에 도(道)는 인간이 살아가는 삶의 길이다. 그리고 자신의 심신을 향상시키는 삶의 방법을 의미한다.

비록 유도와 유술의 기술이 닮아쓸지라도 유도의 수련과 훈련의 가장 큰 목적은 유술과 다른 것이라는 결론을 얻었다.

도(道)를 포함하고 있는 여러 단어들이 있다. 예를 들면 불도(佛道), 다도(茶道), 서도(書道) 등의 각각은 단순한 행위의 차원을 떠나서 자신의 인격함양의 의미를 갖고 있다. 가노의 유도는 승패를 떠나서 심신을 단련하는 데 목적을 둠으로써 승패만을 목적으로 하는 유술과 차별성을 갖게 되었다.

- 術에서 道로 전환은 평화와 건강의 원리를 뜻한다.

- 術은 사람을 상대하기 위한 기술로서 힘의 과시를 주제로한 폭력의 원리(공격적)이다.

- 道는 폭력을 부정하는 평화의 원리로서 순수한 방어논리(나를 지키는 수단)이다.


이러한 논리는 도(道)가 본체로, 술(術)은 부수(部隨)된 것으로 도에 들어가는 수단이 되었다. 술(術)로부터 지양(止揚)하여 인간생활 전반에 통하는 대도(大道)로 되었던 것을 의미한다. 이처럼 가노는 술(術)을 도(道)로 바꾸어 승부법으로서의 유도, 체육법(體育法)으로서의 유도, 수신법(修身法)으로서의 유도로 나누고 이것을 '유도의 세 부문'으로 이론화 하였다.

1882년 1월 가노는 당시 귀족들이 경영하던 학습원(學習院)의 강사가 되어 숙소를 시모다니영창사(下谷永昌寺)로 옮기고, 처음으로 가노주꾸(嘉納塾; 학원)을 설치하여 학생들을 가르쳤다. 5월에는 영창사(永昌寺)의 마당에 12장의 다다미를 깔아 도장을 만들고 이를 '고도깐(講道館)'이라 이름하였다. 

같은 해의 9월 영창사(永昌寺)에서 진다(神田)로 옮기고 1886년 98명, 1887년 292명, 1888년에는 378명, 1889년에는 605명으로 늘었으며 후지미(富士見)시대에는 1,400명으로 늘어나게 된다. 당시의 비용은 모두 가노가 부담하였다. 수련생들이 모두 귀족계급의 자산가들이었으므로 강도관(講道館)의 비용은 모두 여기에서 충당되었다.

이 후지미(富士見)시대에 강도관의 형태는 거의 체계화 된다. 입문자의 서약서, 원단식(元旦式), 홍백경기, 월례경기 등의 여러행사가 이 시대에 결정되었다. 기술적으로도 안정되어 현재에도 행해지고 있는 '메치기 본', '굳히기 본', '부드러운 본', '5가지 본' 등의 기본이 이 때에 성립되었다. 

가노는 여러가지 유술(柔術)의 기법(技法)을 이어받아 유도(柔道)라는 새로운 명칭을 붙였는데, 유술이라 하는 것이 실제로는 그 근본이 '도(道)'가 있고 '술(術)'이란 오히려 그 응용이란 사실을 알게 되었다. 때문에 가르침에는 먼저 도(道)로 시작하여 그 위에 응용의 술(術)을 가르치는 것이 적당하다. 그러나 후꾸다(福田), 기(磯), 오꾸보(飯久保)의 3명에게는 쥬우쥬쯔(柔術)란 명칭으로 가르침을 받았기 때문에 전연 다른 이름으로 명칭을 변경시키는 것도 그렇고 하여 '유(柔)'의 한 자만을 쓰기로 하여 유도(柔道)로 하였다. 

1882년 5월에 유도를 연구·지도하기 위하여 도장을 개설하였는데 명칭에 관해서는 어디까지나 도(道)를 중시하고, 도(道)를 넓히고 도(道)를 강의(講)하는 곳(館)이라 하여 '고도깐(講道館; Kodokan)'이라 명명하였다. 단순히 무술을 가르치는 장소가 아니라는 것을 확실히 하기 위함이었다. 만약 구태의연하게 무술의 도장이라 한다면 연무관(鍊武館), 상무관(尙武館)이라 해도 좋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명칭을 피해 '강도관(講道館)'이라고 한 것은 "도(道)는 근본, 술(術)은 응용"이라는 사실을 명백히 하기 위해서라고 하였다.

유도는 과학적인 원리에 맞추어 공격과 방어의 방법을 가르치고 여기에 가미하여 신체의 합리적인 육성법을 가르쳤다. 그리하여 그 배경으로 단순한 무사의 마음 가짐뿐만 아니라 문무의 도를 가르쳤던 것이다. 이런 이유로 무술과 체육과 수심(修心)의 도(道)를 합한 것이 유도라고 말할 수 있다.

가노는 본(本)과 자유연습의 관계에 관해 "마차의 두 바퀴, 새의 두 날개와 같이 어느 한쪽에 치우쳐서는 안된다"고 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유도의 본(本)이란 마치 문장을 쓰는데에 있어 문법과 같은 것이다. 난도리(자유연습)는 작문의 연습이다. 아무리 문법에 정통하다고 해도 곧 바로 명문을 쓸수는 없다. 또 문법도 알지 못하고 엉터리로 문장을 쓸 수도 없다. 이것과 마찬가지로 유도에 있어서도 본을 배우지 않으면 공격 방어 여러면을 이해하고 익숙하여 질 수가 없다. 그러나 오로지 본만 수련한다면, 순서에 따라 일정한 틀로 연결은 되지만 만약 상대가 본에 없는 수법으로 공격해 오는 경우 그 응수에 곤난하여 패배하게 되기가 쉬울 것이다. 상대가 어떤 변화기술을 걸어 와도 이것에 대응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난도리(자유연습)가 필요하며, 본과 난도리(자유연습)의 두가지를 함께 수련할 때 비로소 완전한 수련이 된다.

처음의 '메치기의 본'은 10가지였다. 이 본은 주로 사용되는 신체의 부위에 따라 손기술, 발기술, 허리기술, 바로 누우며 메치기기술, 모로 누우며 메치기기술로 분류하여 메치기 기술의 이치를 이해시키려 하였다. 이후 새로운 메치기, 굳치기 등의 기술체계가 발전하게 되었다.

현대 유도를 창시한 가노가 유도경기의 방법을 오직 일본의 여러 유술 유파의 장점에서만 따온 것은 아니다. 그는 1930년에 공인된 레슬링 규정을 참고하기도 하였다. 일본 강도관의 자료실에는 가노 지고로가 생전에 쓰던 메모를 전시하고 있다. 가노 지고로가 친필로 깨끗하게 정서한 내용은 '레슬링심판규정'이라는 제목하에 북미합중국 아마추어 레슬링규정(1930공인)에 관한 경기장 설비규정과 선수의 복장 등에 관한 것이다. 또 강도관 자료실의 전시자들도 유도가 레슬링규정을 참고하였다고 분명히 밝히고 있다. 이로 미루어 보건데 현대의 유도는 경기장과 선수복장 등에서 레슬링의 제규정을 참고하였음을 알 수 있다.

유도는 더욱 발전하여 1911년에는 일본의 중학교에 "체조의 격검(검술), 유술은 부과할 수 있음(수의과)"이라 하여 정식과목으로 채택된다. 그리고 세계 제1차대전을 전후하여 일본 국민의 상무적 기풍으로 1914년 제1회 전국고등전문학교 유도대회가 개최되고, 1930년에는 제1회 전 일본유도 선사권(選士權)대회가 개최된다. 뿐만 아니라 가노는 해외의 유도보급을 위해 선수들을 이끌고 직접 한국, 중국, 유럽 등을 순방, 일본 유도를 세계에 소개하였다.

1941년 일본은 태평양전쟁을 일으키면서 유도도 군사적 실전을 위한 훈련으로 변질 규정된다. 1945년 8월 15일 일본의 폐전으로 인해 무도(武道)라는 용어가 사용금지 되는 등 대단한 박해를 받게 되지만, 경찰은 그래도 유도와 검도를 실시하여 그 전통을 이었으며, 학교 유도의 금지령해제를 원하는 소리가 높아지면서 1950년 학교유도가 부활되고, 1951년 6월에는 전 일본학생유도 연맹이 결성된다. 

1952년 일본은 국제유도연맹을 창립하고, 가노의 아들인 가노리세이(嘉納履正)가 회장에 취임한다. 1956년에는 동경에서 제1회 세계유도 선수권대회가 열리고, 1960년 로마올림픽대회 총회에서는 유도를 올림픽 선택종목으로 결정한다. 이제 유도는 일본의 유도가 아니라 인류 공통의 무도스포츠로 발전되었다.

by 허건식 체육학박사(1999년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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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의 글은 《유도론》의 저자 김상철교수님과 필자가 1999년 겨울방학을 이용해 '일본유도연구'라는 주제로 용인대학교 무도연구소에서 정리한 글이다. 이 당시만 해도 근대유도의 효시라 할 수 있는 강도관유도와 강도관유도의 창시자 가노지고로에 대한 소개가 국내에서 부족한 시기였다. 당시 정리한 내용을 좀 더 요약한 글이다.
글. 허건식(사단법인 대한무도학회 간사 / 현 서일대학 교수)

가노지고로는 1860년 10월 28일 가노지로사꾸마레시가의 3남으로 효고겡 무꼬군 미가게초 하마시가시에서 태어나 어렸을때의 이름은 신스께였다. 메이지 3년, 11살이었을 때 고향에서 동경으로 상경하여 가기가라초에서 부친과 함게 살게 되었다. 상경한 지고로는 가까운 요고꾸의 세이다쯔즈꾸에 다니게 되어 우부가타게이또라는 사람에게 학문을 배움과 동시에 간다의 미쯔꾸리 슈헤이라는 학당(쥬꾸)에서도 학문을 닦았다.

메이지6년, 14살때에는 이꾸에이 즈꾸(학당)에 들어가 처음으로 기숙사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이 즈꾸는 네델란드사람이 선생이었고, 독일사람이 조교였으며, 모든 학과는 영어로서 진행되었다. 가노는 이전에 미즈꾸리 슈헤이의 즈꾸에 다닐 때 어느정도의 영어를 배웠기 때문에 학과에서는 별다른 어려움이 없었지만 당시에 그들사이에 강한 사람이 인정을 받는 풍조가 있었기 때문에 신체가 작았던 가노로서는 여러모로 불리하였다. 또한 병은 없었지만 매우 허약해 보이는 체구인탓에 항상 그들 사이에서는 약해 보였다. 

학문에서는 타인에게 지지않다는 자신감은 있었지만 몸이 허약했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소외당한 것에 대해 항상 불만을 지니고 있어 자신을 강하게 하는 좋은 방법이 없을까하는 고민을 하였다. 때때로 어렸을 때 일본에는 유술이라는 것이 있어 약한자가 강한자를 이길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기억을 상기하여 유술을 배우고 싶어 했다. 그때 가노의 집에 자주 오던 자들중에 나까이 우메이나리라는 사람이 있어서 자신이 옛날에 유술을 배운적이 있다고 자랑하면서 여러 가지 가타(形)을 보여 주었기 때문에 그 사람에게 유술을 배우고 싶다고 부탁했다. 그러나 그 사람은 이 당시에 유술을 배울 필요가 없다고 하면서 거절하였다. 

또한 고이시가와 마루야마초에 있던 부친의 별장에서 일하던 편동유사라고 하는 사람이 가끔씩 유술의 형을 보여 주었기 때문에 이 사람에게도 유술을 배우고 싶다고 부탁을 하였지만 거절당하였다. 그밖에 마찬가지로 자신의 집에 출입하던 비후출신으로 이마이겐시로라고 하는 사람이 큐신류라고 하는 유술을 배운 사람에게도 부탁하였지만, 그 역시 거절 당하였다. 이와같이 유술수련이 불가능한채로 학업에 열중하였지만, 보다 강하게 되고 싶다는 생각이 항상 머리속에 있었다.

메이지 7년 4월21일 동경외국어학교의 입학시험에 합격하였기 때문에 이구에이즈꾸에서 동경외국어대학의 영어학부에 전학하였고, 이 학교가 얼마 있지 않아 영어부가 독립하여 관립 영어학교로 되었다. 메이지 8년 개성학교에 입학하였다. 이 개성학교에는 육체적으로 강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지배하려는 풍조가 이꾸에이즈꾸에 있을때보다 더욱 강하였기 때문에 신체적으로 허약했던 가노는 더욱더 유술에 대한 욕구가 강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부친에게 유술가를 소개해 달라고 여러차례 부탁하였지만, 그 당시에는 공부가 우선이라고 하여 동의하여주지 않았다. 그러나 자신도 상당한 연령에 있었고, 신체를 강하게 하기위하여 유술을 배우는 것이기 때문에 자기자신에게 적당한 스승을 찾으려고 신중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

 명치10년 18살 때 동경대학이 창설되어 그 대학의 문학부 제2기생으로 입학하였지만, 입학당시 언뜻 정복술을 하는 사람이 유술가로서 유명하다고 들었기 때문에 그때부터는 정복이나 접골이라는 간판이 있으면 직접 들어가 유술을 한적이 있는지 없는지를 물어보며 찾아 다녔다. 그러나 유술에 대해서 잘 모른다는 사람이 많았고, 그 중에서는 과거에는 유술을 하였지만 당시에는 유술을 하지 않고 있다는 사람들이 더많았다. 이런식으로 스승을 찾아 헤매고 다니던 때에 니혼바시(日本橋)의 민교초 거리에서 벤케이바시에서 멀리않은 곳에 접골간판이 보였기 때문에 들어가 물어 본 결과, 야기마사스게라는 사람이 있었다. 이 사람은 머리와 수염이 하얗고, 골격이 장대하고 실로 위풍당당한 대장부의 풍모를 지니고 있었다.

유술을 한 적이 있느냐고 물으니, 가만히 가노를 살펴본 뒤에 왜 그런 질문을 하느냐고 되물었다. 자기자신이 유술을 배우고 싶다는 처지를 설명하니, 가만히 듣고 있던 야기노인은 무릎을 치며 기뻐하였다. 그러나 자신은 이소마타우에이몬의 제자로서 그 면허를 받을 정도로 옛날에는 전문적으로 유술을 하였지만, 지금의 분위기는 유술에 대해 인정을 하지 않는 추세였기 때문에 접골한 하고 있다고 하였다. 왠만하면 가노의 희망을 들어 주고 싶지만, 이곳은 8장의 다다미공간으로 비좁고 게이코가 불가능하다고 하였다. 그러나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니혼바시의 모토다이꼬초에 자신의 동문인 후꾸다야스께라는 사람이 있다. 다른 친구들은 거의 대부분 유술을 그만 두었지만 이 후꾸다는 도장을 가지고 있으니 한번 가 보아라고 소개를 해주었다. 여기에서 후꾸다를 방문하니 여기서도 겨우 10장의 다다미공간밖에 없었고, 그 중에서도 다다미 한 장정도는 계단으로 사용되고 있어 나머지 9장이 도장으로서 사용되었고, 다음의 3장정도의 공간이 접골의 치료소가 되어 있어 6장밖에는 도장의 공간으로 활용할 수 밖에 없었다. 이 공간도 때로는 환자의 대기실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가노는 자신의 바라던 희망이 이루어져 크게 기뻐하며 드디어 텐진신요류의 유술을 접하게 되었다. 이때 후꾸다의 문인으로 게이코를 하러 온 관원들은 가끔씩 오는 사람이 4-5명정도였고 매일 오는 사람은 1명이었다. 격일로 오는 사람은 1명정도였다. 그중에서 매일 다니고 있던 사람은 선생으로부터 형을 배워 그 것을 관원들에게 게이코를 시키고 선생과 동료들과 자유연습을 하는 형태의 연습이 매일 계속되었다.

이때의 연습은 찰과상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온몸이 만진창이 되도록 연습하였던 시기였다. 이렇게 열심히 한 덕분으로 기량은 더욱더 늘게 되어 메이지 12년 미국의 전대통령(18대)인 글랜튼장군이 왔을 때 시부자와에이이찌 라는 사람에게 초대되어 이소 마사토모, 후꾸다 야스께와 그밖의 유술 명가와 함께 아스까야마에 있던 시부와자별장에서 유술시범을 보였다.

메이지12년 8월 14일 후꾸다 스승은 52세로 죽게 되었고, 후꾸다의 제자들중에는 난도리로서는 가노보다 강한 제자가 있었지만 형과 난도리를 병행해서 수행하였고, 매일 도장에 나온 제자는 가노뿐이 없었고 그 게이코 연습에 열심히 한 점을 고려해서 후꾸다 사람들로부터 신용을 받아 후꾸다가에 전해져 오는 전서 1절을 물려받게 되어 후꾸다의 도장을 위탁받았다. 여기서 한때 그 도장을 맡아 연습을 하였지만, 아직까지 혼자서 도장을 운영할 자신이 없었고, 더욱이 더 높은 수준의 수행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였다. 그레서 새롭게 인문한 것이 간다에서 도장을 열고 있던 텐진신요류(天神眞楊流)의 이소마타우에이몬의 내제자로서 이소가에 입적하여 3대째의 도장을 상속받고 있던 이소마사토모의 도장에 인문한다. 이소도장에서는 후꾸다도장의 동료 후꾸시마 겐요시와 함께 입문하게 된다.

당시에 마사토모는 이미 60세정도의 노령으로서 자신이 직접 난도리 지도를 하지 못하였지만 형의 명인으로 가타의 가르침은 자기자신이 직접하고 있었다. 난도리는 사또와 우라마쯔라고 하는 사람이 간사를 담당하고 있었지만, 가노와 후꾸시마도 후꾸다 도장에서 상당한 출현을 하고 있던 상황이였으므로 이 2사람도 입문과 동시에 간사에 취임하게 되어 앞의 2사람과 함께 보조사범의 역할을 하게 되었다.

이 도장에 매일 출석하는 사람은 30명정도 되었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휴식하는 사람이 많았다. 따라서 가노 혼자서 대부분의 사람을 상대로 매일 형을 수련하였다. 또한 난도리도 매일 30인을 상대로 수련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고, 형연습과 난도리의 연습으로 늦게까지는 11시가 넘어서 귀가하는 경우가 많았다. 어떤때는 연습과다로 인하여 길을 걸을때는 비틀비틀거리며 쓰러진 적도 있었다고 한다. 이 마사토모선생은 체격이 매우 작았고, 젊었을 때부터 난도리는 별로 하지 않았기 때문에 형에는 명인있지만 난도리에서는 강하지는 않았다.

그러므로 자신은 이소의 도장에서는 난도리는 거의 자신이 가르치면서 선생으로부터는 형에 대한 것은 매우 많이 배웠다고 술회하고 있다. 이와같이 열심히 수행하고 있을 때 이소는 명치 14년 6월 62세로 죽게되어 또다시 스승을 잃게 되었고, 다시 새로운 스승을 찾으려고 노력하였다. 세 번째의 스승은 기또류의 이이꾸보고넹이다. 이이꾸보는 가노의 대학친구 모토야마마사시사의 부친인 마사오의 소개로 알게 되었다.

모토야마는 법학부의 제1회 졸업생으로 명치 12년에 졸업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가노보다 선배였고, 학과도 틀렸지만, 가노가 대학에 입학한 때에 대학에서 야구가 시작되어 가노와 고다이류사꾸(오대용작)는 투수, 모토야마와 시오다라는 사람은 포수를 하였다. 그래서 모토야마와 매우 친하였고, 조정(漕艇)이나 소풍에도 항상 함께하는 절친한 관계였다. 

모토야마의 부친은 전 막부의 강무소에서 기또류 유술의 선생을 역임하였고, 상당한 기또류 유술의 명인이었기 때문에 가노는 전에 배운 텐진신요류와는 다른 유파여서 가르침을 구하였다. 이 사람은 가타의 명인으로 난도리는 그다지 훌륭하지는 않았지만, 당시에는 제자를 받아들이려고 하는 기분은 아니었다고 한다. 그러나 가노의 스승에 대한 가르침을 갈구하는 자세에 감동한 그는 자신이 선생으로 모시고 싶었던 유술의 명인을 소개하고 싶다고 하여 가노는 찾아 가게 되었다. 그가 바로 이이꾸보고넹이었다.

그 역시 강무소의 유술사범으로 가노는 처음으로 기또류를 접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텐진신요류와 기또류의 기술차이에 많이 놀랐다. 텐진신요류에서는 조르기와 관절기, 눌러굳치기 등이 주된 기술이었고, 던지기 , 메치는 어느정도 있었지만, 배되치기(도모에나게), 아시바라이, 허리기술(고시나게) 등은 기또류와는 기술사용방법이 많은 차이가 있었고, 기또류의 가타와 텐진신요류의 형은 서로 그 기술상 시각에서 차이가 있었다. 또한 이이꾸보고넹은 47세 연령이었지만, 난도리도 상당한 수준에 있었기 때문에 가노도 열심히 게이코를 하였고, 처음에는 가노도 이이꾸보에게는 절대적인 열세였다. 여기에 가노는 성심껏 새로운 연구에 몰두하여 신중하게 기술을 창출하였다. 이렇게 하여 유술수련에 열중할때도 학생으로서의 본분은 열심히 하여 명치 14년 7월 9월 정치과와 경제과를 동시에 공부하며 문학부를 졸업하였다. 당시의 제도에서는 문학부는 정치, 경제, 철학, 국문학의 4부분으로 나누어져 그 중에서 국문학은 독립하였지만, 그밖의 학과는 2개학과씩 전공할 수 있었고, 더욱이 정치, 경제, 철학의 3과는 3년간 공통전공으로 배울 수 있었다. 이외에도 1년 더 철학을 전공하였다. 

철학을 전공할 당시 명치 15년 1월에 학습원에 새롭게 연수과가 설치되어 1월 15일 강사로 위촉되어 정치학과 경제학과에서 강의하였다. 이외에도 가노는 유술이외에 야구, 체조, 배구, 조정 등 다양한 운동을 하였다. 그중에서도 유술에 매력을 지니고 매진하였다.

가노지고로는 18세때 텐진신요류(天神眞楊流)를 후꾸다(福田八之助)와 이소마사지(磯正智)에게 배웠으며 20세때에는 오꾸보(飯久保恒年)으로부터 기또류(起倒流)의 가르침을 받았다. 그리하여 두 유파의 교육적 가치가 대단히 큰 것임을 깨달았으며, 아울러 다른 유파에 관해서도 비교 연구하여 유술이 정신과 신체발달에 귀중한 것임을 알게 되었다.

모든 유파에는 그 나름대로 장·단점을 갖고 있음을 발견하여 이것을 어느정도 개량하면 무술로서 뿐만 아니라 체육으로서도 유익하며, 정신의 수양 혹은 처세법으로도 가치가 대단히 높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가노지고로는 배운 유술 가운데 텐진신요류(天神眞楊流)의 급소지르기와 굳히기, 기또류(起倒流)의 메치기 기술을 중심으로 타케우찌류(竹內流)의 체포술(捕縛), 세끼구찌류(關口流)의 낙법(落法) 등 다른 많은 유파를 비교 연구하여 실제로 연습을 실시함으로써 원리에 맞는 것은 취하고 맞지 않은 것은 버렸으며, 여기서 더 나아가 새로운 기술을 만들어 새로운 지도체계와 방법을 확립하였고, 자유연습과 본의 연습에 의해 체육의 목적을 이루고 승부의 방법도 일종의 지육(知育), 덕육(德育)도 될 수 있도록 고쳤다. 단순한 무술에서 도(道)로 지양(止揚)되어 여기에 유도라는 명칭이 나오게 되었다. 

유술을 유도로 개칭한 이유를 살펴보면 옛날부터 유술은 전쟁에서 우선 활의 위협으로부터 시작되어 나중에는 도검(刀劍)에 의한 싸움으로 이행되어 화살이 떨어지고 칼이 부러졌을 때 아무것도 없이 맨손으로 싸우는 무술이다. 유술은 상대를 넘어 뜨리는 기술 외에 상대를 찌르기도 하고 차기도 하는 급소지르기 기술, 상대의 손목과 팔꿈치를 꺾는 관절기술, 상대의 목을 졸라서 죽이는 조르기 기술 등 많은 기술을 갖춘 종합무술이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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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종 진지하게 수련에 집중하는 수련생들은 난 가장 좋다. ^^

이집트에 온 후 태권도와 함께 타 무술인 가라테를 새롭게 보게 됐다. 소싯적부터 태권도만 하고 태권도만 보다보니 다른 무술, 다른 스포츠에 눈을 돌릴 여유가 없었다. 어쩌면 관심 분야만 보는 성미 탓일 수도 있다. 

그 중 태권도와 가장 유사한 무술인 가라테에 관심은 있었으나 애써 눈을 돌리지 않았다. 태권도와 가장 유사한 무술로 여러 부분에서 비교되는 무술이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오히려 더 알아야할 무술인데 말이다. 그러나 요즘 가라테에 무척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 계기는 가라테 수련생들을 지도하면서 부터다. 

내가 아스완(이집트)에 온 후로 태권도 수련생들이 많이 늘었다. 그 중 가라테를 수련하다 태권도로 전향한 수련생들이 많다(100여명 정도 됨). 지도자들도 태권도로 많이 전향하고 있는 추세다. 나름 아스완에서 태권도가 대세라고 할까. ^^ 여하튼 기분 좋은 일이다. 그렇다고 가라테가 태권도 보다 못한 무술이라고 단정 지을 수 없다.

2009/05/23 - [한혜진의 태권도 세상/이집트 in 태권도] - 가라테에서 태권도로 전향한 아이들

기존에 가라테를 수련한 경험했던 수련생들을 지도하면 가끔 놀라게 된다. 이제 막 태권도를 시작했는데 몇 개월 수련한 것처럼 잘하기 때문이다. 한 번 가르치면 곧 잘 따라온다. 태권도와 가라테와 기술 구성과 수련 형태가 비슷하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다.

이집트 아이들은 말이 참 많다. 장난도 심하다. 인성 및 예절 교육을 시키는 것이 가장 힘들다. 때문에 지도하는데 체력이 많이 소비된다. 이집트에 와서 가장 힘들었던 것도 수련생들이 웃고 떠드느라 수련에 집중을 못하는 것이었다. 잠시라도 내가 다른 곳을 보고 있노라면 옆 사람과 대화를 하거나 장난을 친다.

눈이 뚤어져라 사범인 날 바라보는 수련생들.

문화가 달라 그러려니 이해가 가다가도, 화가 치밀어 오를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때마다 자중할 것을 권고하였고, 태권도 인으로써 갖춰야할 품행과 덕목을 재차 강조해 교육했다. 요즘은 조금 나아진 편이다. 소통의 한계와 문화적 차이 때문에 인성교육을 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교육 이었다. 개인적으로 인성교육은 수용자가 이해를 하고 깨달아야 된다고 본다.

가라테에서 전향한 수련생들은 따로 교육할 필요가 없을 정도다. 예쁜지 않을 수 없다. 수련 형태는 다르나 두 무술이 예의를 기본으로 하는 것은 분명 한 듯하다. 실제 가라테를 비롯한 검도, 유도 등 일본의 무술들이 예의를 매우 중시하고 잘 지켜지는 교육이 이뤄지는 것 같다. 태권도가 오히려 배워야 할 점들이 아닌가 생각한다. 내가 말하는 예의와 인성이란 단순히 흉내를 내는 것이 아닌, 이해와 깨달음을 통해 몸에 베이는 것을 말한다. 

[by 한혜진의 태권도 세상 - 이집트 in 태권도]

[태마시스 - 태권도와 마샬아츠의 오아시스 ㅣ www.taema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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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덕쇠  수정/삭제  댓글쓰기

    조금 자존심 상하는 이야기겠지만 실질적으로 태권도의 원형은 가라테입니다. 왜정 때 조선 땅에 들어와서 널리 퍼졌던 무술 가라테(공수도)는 해방무렵 송도관 지도관 청도관 등등의 5개의 대표적인 가라데 도장을 중심으로 정착이 되어있었습니다. 이 5개 가라테도장의 사범들이 박정희대통령이 주도한 한국의 무술통합정책의 주축이 되면서 태권도를 창시하게 된 것입니다. 결국 태권도는 가라테를 원형으로 해서 해방이후 태어난 신흥무술인 셈이죠.

    2009.06.11 15:35
  2. 좌천시  수정/삭제  댓글쓰기

    덕쇠님 말씀, 옳소이다. 태권도인들이 발끈할 일은 아니라고 봅니다. 문화는 어떤 형태로든 섞이게 되는 것이니깐요. 중요한 것은 그것을 우리 것으로 잘 소화해서 발전시키는 것이 중요하니깐요. 그런 점에서 태권도는 대한민국의 국기로써 세계화시킨 자랑스런 우리무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굳이 그 뿌리를 따질 필요도 없구요. 원류를 따져 논쟁하는 것에만 집착한다면, 우리가 편리를 누리는 기계문명도 우리민족이 발명한 것은 아니잖아요?

    2009.06.12 13:52
  3. 달마  수정/삭제  댓글쓰기

    태권도나 가라테는 뿌리가 어디서 시작되었냐를 떠나서 예의와 인성교육을 중요시한다는 것에서는 공통점이 있는 거 같습니다. 비록 가라테로 먼저 시작한 아이들이지만 이젠 태권도를 통해 한국의 무술과 정신을 배워나가겠네요.^^ 짜증나고 힘드시겠지만 이집트의 아이들에게 한국의 강한 정신을 팍팍 전해주십시요. 파이팅입니다.!!!!

    2009.06.12 14:35
  4. 쿠쿠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런가요? 가라테를 공수도, 당수도라고 부르는데 그건 오키나와...[지금은 같은 일본이지만, 근현대전까지만 해도 다른 나라였다고 합니다.]에서 중국쪽의 무술을 기반으로한 오키나와 전통무술이라고 합니다. 덕분에 정의로운 유도맨과 악당 가라테맨의 대결이 초창기 일본의 공식이었다고 합니다. 그 이후 최배달로 인하여 세계적으로 엄청나게 세력을 확장하고, 일본으로 무도를 배우러 간 한국인을 박정희가 불러들여서 새로운 군대 무술을 창시하는데... 그것이 바로 태권도죠. 그 과정에서 정통성을 세우기 위해 수박이니 태껸이니.... 일본의 전통(?)적인 가라테에 비해 현란한 발기술을 보이는 태권도이지만, 제가 보기엔 창으로 찌르거나 치는 듯한 태권도식 발차기와 채찍을 휘두르는 듯한 태껸은 상당히 다른 듯.....

    2009.06.13 02:46
  5. 위에 쿠쿠님  수정/삭제  댓글쓰기

    박정희가 군대식 무술을 창시해서...라는 루머는 누구한테 들어셨는지 몰라도 완전히 잘못된 정보입니다. 박정희때 태권도의 위상이 올라간거지 창시된 것은 아닙니다;;;;;

    2009.08.15 16:53
  6. Favicon of http://www.unny.com BlogIcon montreal flower delivery  수정/삭제  댓글쓰기

    실제로 가르치는건 정말 힘들겠습니다

    2009.08.25 04:07
    • Favicon of https://taemasis.com BlogIcon 해니(haeny)  수정/삭제

      가르치는 건 한국이나 이집트나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다만 소통의 한계가 있기 때문에 더 많이 가르쳐주지 못한게 늘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

      2009.08.27 10:29 신고
  7. Favicon of http://hanmail.net BlogIcon karlmon  수정/삭제  댓글쓰기

    동아시아 특히 중국,일본,한국 3국 무술의 원류는 그리 중요한게 아니라고 봅니다. 다만 무술이 어찌 전파되었던 간에 그 나라에 맞게 발전하는 것이겠지요. 보통 우리가 알다시피 중국은 현란하고 화려한 기예 중심이면 일본은 예와 격을 중요시하고 우리는 놀이로서의 무예를 즐기는 각각의 문화적 특징이 있지 않나요? 이렇 듯 각국의 무술이 그 특징을 달리하는데 태권도가 가라테의 영향을 받았다고 너무 예와 격에 억지로 강요될 필요는 없다고 보여집니다. 타 문화를 배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에 앞서 먼저 우리가 우리의 문화에 맞게 소화 시켜야 되지 않을까요? 이건 태권도 전체에 관해 바라는 점입니다..분명 가라테등의 여러 무술과 문화적 교류는 중요합니다만 태권도 시간을 즐기는 아이들을 통해 오히려 격식과 예에 얽매이지 않고 놀이로서 즐겁게 익히는 시간을 만들어 딱딱한 태권도가 아닌 즐기는 태권도로 가르치면 어떨까요. 태권도도 많이 변했으면 합니다. 써놓고 보니 좀 주제넘는 이야길 한게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 세계로 나아가는 태권도 화이팅입니다.

    2009.08.26 21:55
    • Favicon of https://taemasis.com BlogIcon 해니(haeny)  수정/삭제

      님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감하는 바 입니다. 태권도 역시 가라테와 예를 중시하는 무술인 바, 어쩐지 비교가 되는 것 같아, 조금은 예민하게 받아들이는게 없지 않았던 것 같네요. 중요한 건 역시 태권도를 태권도로서 보다 독창적으로 지속적인 발전을 거듭해 나가야 겠다는 겁니다. 좋은 의견에 감사합니다. 즐거운 하루 되세요.

      2009.08.27 10:28 신고
  8.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2009.08.27 23:47
    • Favicon of https://taemasis.com BlogIcon 해니(haeny)  수정/삭제

      꾸벅^^ 끝까지 내용을 읽어 주시고, 잘못된 점을 지적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도 계속 관심 가져주시기 바랍니다.

      2009.08.28 00:26 신고
  9. 훌커  수정/삭제  댓글쓰기

    전통무예라고, 2000년의 역사를 가졌다고 거짓말이나 안했으면 좋겠네요.

    2013.07.02 18:18
  10. Favicon of http://blog.naver.com/happyhansang?102058 BlogIcon 커피한잔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정보 잘보고 갑니다

    2016.06.08 15:56
  11. Favicon of http://blog.naver.com/aa105965/220736072299?92658 BlogIcon 1465914997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읽고 가여~

    2016.06.14 23:36

[박성진 기자의 태권도와 타무도] 제9편 유도  
 
                         Sports News - February 15, 2009

유도(柔道)는 여러 가지 면에서 태권도가 배워야 할 점이 많은 무술이다.

태권도의 경우 올림픽 잔류 여부를 걱정하고 있지만, 유도가 올림픽 종목에서 퇴출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태권도보다 36년이나 빠른 1964년에 이미 올림픽 정식종목으로 채택되었으며, 이후 동양을 대표하는 무술스포츠로서 전 세계에 확고한 뿌리를 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에서도 유도에 대한 관심은 높다. 실례로 태권도 세계대회에서 우승한 국내 선수들에 대한 일반 미디어의 보도는 찾아보기 어렵지만 유도 세계대회에서 우승하는 등의 성적에 대해서는 빠지지 않고 다뤄지는 것을 볼 수 있다.  

태권도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로서 대중적인 스타로 자리잡은 사람으로는 문대성 정도를 꼽을 수 있지만, 유도의 경우에는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 스타로 자리잡은 최민호, 왕기춘을 포함해 이원희, 추성훈 등이 CF모델로 활동할 만큼 대중적 인지도를 가지고 있다. 이 모두가 유도가 국제스포츠로서 확고한 위치에 있다는 증거라고 할 수 있다. 

국제스포츠로서의 유도는 국제유도연맹(IJF)이 이끌고 있다. IJF의 위상도 확고하다. 박용성 현 대한체육회장이 IJF 회장을 지냈으며 현재도 일본인이 아닌 오스트리아의 마리우스 비제르 회장이 IJF를 이끌고 있다. 

유도는 국제스포츠로서의 위상도 확실하지만, 무도(武道)로서의 위상도 그에 못지않게 확고하다. 유도의 본산 고도칸(講道館)이 있기 때문이다. 태권도의 국기원이 바로 이 고도칸을 본보기로 해서 만들어졌다고 할 수 있다. 

태권도의 기술발전 및 연구, 지도자 배출, 수련의 3가지가 주요 업무라고 할 수 있는 중앙도장으로서의 국기원이 현재 제 역할을 잘 해내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불만의 목소리가 많다. ‘단증 공장’이라는 오명까지 쓰고 있는 게 현실이다. 

고도칸에 있는 유도 창시자 가노 지고로의 동상.

그러나 고도칸의 경우, 이런 불만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내부적으로는 문제되는 부분들도 없지 않겠지만, 유도의 성지(聖地)로서 고도칸이 가지고 있는 위상에는 흔들림이 없다. 가장 큰 이유로는 유도의 창시자 가노 지고로(嘉納治五郞, 1860~1939)의 힘을 꼽을 수 있다.

잘 알려진 대로 유도는 사무라이들의 무술인 유술(柔術)을 모태로 해서 만들어졌다.
 
가노 지고로는 천신진양류(天神眞楊流), 기도류(起倒流) 등 몇 가지 주요 유술 유파들에서 위험하거나 비효율적이라고 생각되는 기술은 빼고,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기술들은 강조해 오늘날의 유도를 만들어냈다. 이렇게 과거의 ‘무술(武術)’을 ‘무도(武道)’의 경지로 끌어 올리고, 이를 가르치는 곳[講道]으로 강도관을 설립했다. 이후 ‘도’라는 이름이 들어간 무술들(태권도, 검도, 공수도, 합기도 등)은 모두 유도의 영향으로 만들어졌다고 볼 수 있다. 

가노 지고로는 ‘유도’를 만들어냈을 뿐만 아니라, 근대스포츠의 발전에도 지대한 공헌을 한 인물로 꼽힌다. 동경제국대학을 졸업한 가노는 1909년부터 30년간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으로 활동했으며, 근대 올림픽의 창시자 피에르 드 쿠베르텡의 가장 중요한 협조자가 되었다. 

이렇듯 근대 동양무술의 발전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인물이 바로 가노 지고로다. 지금도 강도관의 정문 입구에는 가노 지고로의 동상이 서 있다. 가노 지고로는 말하자면, 김운용과 최홍희가 한 역할을 혼자서 해낸 인물인 것이다. 그러면서 모든 유도인들의 존경을 받는 인물이다. 모든 태권도인들의 존경을 받는 인물은 누가 있을까?

[by 박성진의 무림통신 - 태권도와 타무도]

[태마시스 - 태권도와 마샬아츠의 오아시스 ㅣ www.taema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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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gamelog.kr BlogIcon 태현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태권도는 '스포츠'라는 의미에서 올림픽 종목에 맞게 룰을 뜯어 고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유도는 시간이 종료 될 때까지 '한 판'이라는 마지막 카드가 있기 때문에 끝까지 긴장을 놓칠 수 없듯이 말이죠.

    분명 태권도도 유도에 뒤지지 않는 우리의 자랑스러운 무술일텐데 올림픽종목에서 보이는 스포츠는 안타깝기만 합니다.

    2009.06.05 16:18
  2. Favicon of http://blog.yahoo.co.kr/greatjobs30 BlogIcon Michael  수정/삭제  댓글쓰기

    대국적인 지혜가 필요합니다.
    스포츠 선수나 스포츠 외교를 펼쳐서 외교선양을 하는 사람이든지 과학이나 학술 분야, 그외 모든 분야에서 국위선양하는 사람에게 특혜는 못줄 망정 조금의 잘못이 있을 때 한번의 기회를 더 주는 것이 옳지 바보같이 그것을 빌미로 죽이면 다 무너집니다. 국익과 글로벌 위신을 생각하는 차원을 대국적으로 높여야 합니다.
    소국민의 마인드와 닭대가리의 지혜로는 결단코 세계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할 수 없다는 것을 명심하고 각성하도록 합시다. 나라는 작지만 마인드가 대국적이면 가능성이 있습니다.

    2009.06.13 00:22
  3. Favicon of http://ad.nikeairmaxukoutz.com/ BlogIcon nike air max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름다운 여자가 해바라기하는 걸 좋아해요

    2013.04.02 00:11
  4. Favicon of http://da.bottesuggds.com BlogIcon ugg france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름다운 여자가 해바라기하는 걸 좋아해요

    2013.04.03 00:50
  5. Favicon of http://dr.suprashoesel.com/ BlogIcon supras shoes  수정/삭제  댓글쓰기

    한세계를 놓고 말하면 당신은 한 사람이지만,단 한사람을 놓고 말하면 당신은 그라삼의 세계입니다.

    2013.04.03 22:51
  6. Favicon of http://www.christianlouboutincanadaelle.com/ BlogIcon Louboutin Shoes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렇죠? ^.^ 귀여운 애들이 있어, 피로가 덜 쌓이는 듯 합니다.

    2013.05.08 17:45
  7. Favicon of http://19027.jasonjordans.com/nikefree.php BlogIcon nike free run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람들은 죽을걸 알면서도 살잖아 .사랑은 원래 유치한거에요

    2013.07.13 07:28

[박성진 기자의 태권도 vs 타무도] 제8편 택견


지난 2007년 2월 택견이 대한체육회 정가맹 종목으로 승인됐다. 수년간 서너 개 분파로 의견이 갈려 한 목소리를 내지 못하다가 극적으로 타협에 성공해 이뤄낸 성과라는 점에서 경사가 아닐 수 없었다. 

택견이 대한체육회에 정식으로 가맹되자 불만의 목소리를 내는 일부 태권도인들도 있었다. 특히 당시 대한체육회장이던 김정길 회장이 대한태권도협회장을 겸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집단행동으로 반대의사를 표현하겠다는 태권도인들도 있었다. 구체적 행동으로까지는 이어지지 않았지만 택견을 바라보는 태권도계의 미묘한 시각을 느끼기에는 충분했다.

그렇다면, 택견과 태권도는 어떠한 관계가 있는가?

택견이 일반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에 들어서부터다. 당시 사회 일각과 대학가를 중심으로 우리의 전통문화를 알아보자는 움직임이 일었고 전통문화로서 택견에 대한 관심은 높아지기 시작했다. 그 후 20~30여 년이 흐른 현재 택견은 씨름과 더불어 한국을 대표하는 전통무술로서의 인식을 굳혔다.

태권도계에서는 이 택견을 어떻게 볼 것인가, 태권도와 택견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에 대해 여전히 의견이 분분한 상태다. 택견에 대한 인식차이가 태권도사에 대한 인식 차이로 이어지는 것이다.

과거에는 근대 태권도사 이전의 태권도가 택견으로 대표되는 한국 전통 무술의 맥을 잇고 있다는 주장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요즘은 태권도와 택견을 전혀 다른 맥락의 무술로 이해하는 경우가 많다. 어느 경우건 현재의 태권도와 택견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았다는 점만큼은 부인하지 않는다.

우선 ‘태권도’라는 명칭 자체가 이승만 대통령이 태권도 시범을 보고 “택견이구만”이라고 했다는 말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정설로 인정받고 있다. 기술이나 용어에서도 ‘두발당성’, ‘칼재비’ 등이 택견에서 유래했다. 

그러나 그 기술면에서는 상이한 점이 많아 과연 택견에서 태권도로 어떤 기술들이 이어졌느냐에 관해서 의견이 분분하다. 오히려, 택견이 태권도로부터 영향을 받은 점이 더 많은 것처럼 보이는 것이 현실이다. 대부분의 택견인들이 태권도를 먼저 수련한 경우가 많고, 일부 택견 분파의 맞서기(겨루기)의 모습은 태권도 겨루기와 흡사한 양상을 보이기도 한다.
 
택견의 대한체육회 가입을 주도한 대한택견연맹의 이용복 상임부회장도 태권도인 출신이다. 1980년대 초 부산시태권도협회 전무이사를 4년여 간 맡았었다.

여러 면에서 택견과 태권도가 밀접한 관계에 있다는 점만큼은 분명하다. 청출어람(靑出於藍)이랄까, 후생가외(後生可畏)랄까. 태권도는 택견에 비한다면 짧은 역사를 가지고 있지만, 이미 세계적인 무술로 자리를 잡은 상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뭔가 태권도에 부족하다고 느껴지는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이 부족한 부분을 택견을 통해 메울 수는 없을까? 이미 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지금이라도 택견과 태권도가 서로 머리를 맞대고 함께 할 부분이 없지는 않을 것 같다.

[by 박성진의 무림통신]

[태권도와 마샬아츠의 오아시스 - 태마시스 -  l www.taemas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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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고암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진의 인물이 송덕기 옹과 사운당 선생님이시네요..태권도와 태껸의 산 증인이시죠...!!

    2009.06.11 13:53
  2. 흐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런데 송덕기 옹께서는 "그건 택견이 아니야"라고 하신 것으로 들었습니다

    2009.06.12 15:14
  3. Favicon of http://ㅇㄻㅇ.com BlogIcon 태권도관심  수정/삭제  댓글쓰기

    일제강점기에 일본 유도도장에 입문한 조선청년이야기가 있습니다. 이청년은 조선에서 택견을 수련한적이있었는데 유도사범이 다른무술과 결투에대해 흥미를 갖고 자신의 수제자와 시합을 시킵니다. 그런데 조선청년이 잡으려 오는 유도가에게 내려차기를 해서 쇄골을 부러뜨립니다. 이걸본 유도도장 사범은 택견기술이 유도와는 상극이라고 내려차기기술을 배우는것을 유도도장 문하생들에게 금지시킵니다. 이일은 유명한 이야기죠...... 그런데 오늘날 택견에서는 내려차기 기술이 없습니다. 가끔 택견시합에서 나오는 내려차기는 미는 형식이기에 쇄골을 부러뜨릴수있는 파괴력은 없어보입니다. 차라리 오늘날 태권도의 내려차기가 쇄골을 부러뜨릴정도의 파괴력을 가지고 있죠... 그래서 생각하는것이 옛 택견도 여러가지 유파가 있었고... 오늘날의 태권도와 같이 힘찬 발차기를 하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2009.06.27 13:28
  4. 아하...  수정/삭제  댓글쓰기

    현재의 택견은 많은 기술을 잃어버린 반쪽 상태입니다. 택견의 가공할 기술들인 예법은 잊혀졌고요. 더욱이 지적하신 것과 같이 타무술을 한 사람들이 택견을 하비다. 택견을 널리 보급한 건 이용복회장으로 과거 택견협회 회장이었지요. 그런데 이때 돌이킬 수 없는 실수(?)을 하 것이 타무술 4단 이상의 사범들에게 3개월 연수기간을 거쳐 택견지돚 자격증을 주었다는 겁니다. 즉 타무술 10년 이상 한 사람들에게 택견 3개월 가르치고 택견지도자로 삼은 거죠.무협지에 나오는 주인공들도 3개월만에 10년 이상 배운 무술을 잊고 새로운무술에 고수가 되지는 못합니다. 즉! 택견이라는 이름을 걸고 자신이 자신있는 것을 가르치는 거죠. 가뜩이나 일제시대를 거치며 탄압받아 기술이 사라진 택견이 더 강력한 직격탄을 맞은 겁니다. 아마 일제시대 왜놈들이 이 사실을 알았다면 좋은 방법 몰랐다고 한탄하겠죠. 참고로 이용복 회장도 택견은 얼마 안배웠다고 합니다. 기간으로는 몇년되지만 가끔 뱅러 온 것이라 실제 기간은 몇개월 안된거죠.
    택견이 무형문화재가 된 것은 신한승옹의 힘이 큰데 당시 신한승옹은 제대로 배워지만 막상 무형문화재 등로갈 때 막혔다고 합니다. 택견이란 것이 그냥 보면 춤인지 무예인지 모를 정도로 부드러운데 당시 무형문화재 심사하던 심사위언들이 무식해 무에로 인정 안 한 것이죠. 그 사람들에게 무술의 기준은 가라데였으니까요. 그 이유는 동작도 동자이지만 품새같은 형식도 없다는 이유가 붙어서입니다. 배운 사람은 알겠지만 택견에 품새같은 것은 없습니다. 낱동자일 뿐입니다. 단도 없습니다. 스승이 하는 것을 보고 더 높은 기술을 가르쳐 주는 겁니다. 결국 택견의 큰 특징이자 장점인 부드러움과 자유스러움을 버리고 딱딱한 동작과 틀에 박힌 품새를 만들어서야 등록이 되었는데 문제는 그렇게 변형이 된 것을 가르쳐야 했다는 거죠. 역시 일제시대 당시 왜놈들 안타까워 할 일입니다. 완벽히 택견을 말살할 방법이 일제시대때가 아닌 한국 독립후 한국 사람들 손에서 나왔으니까요.
    아무튼 택견이 택견으로 남으려면 변형되는 것부터 막아야 할 것입니다. 기술개발이야 좋지만 택견 고유의 몸짓과 정신을 지키면서 발저을 시켜야 하는데 그것이 안되니 변형이 되는 거니까요.

    2009.07.03 00:04
  5. Favicon of http://www.van-insurance-cheap.co.uk/ BlogIcon Budget Van Insurance  수정/삭제  댓글쓰기

    매우 인상적인 기사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것은 이해하기 쉽게하고 또한 훌륭한 조언이 큰 세부 사항이 있습니다. 난 당신의 블로그 의 자세한 내용을 기다릴 수 없습니다.

    2011.07.04 04:45
  6. Favicon of http://aventura.jogosloucos.com.br/ BlogIcon jogos de Aventura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그림^^

    2011.08.27 18:50
  7. 고갱님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히려 신한승 옹 또한 택견 이전에

    레슬링 선수로 했지요 그리고 저 사진에 받아주는 할배가.. 몇수 가르켜 주고는..

    신한승 옹이 하는 택견을 보구 그건 택견이 아니야 라구 했다 던데

    일제 침탈때 제대로 전수가 안된것이 참 아쉽네요 태권도보다는 택견의 발차기가 더 멋지다 생각 하는데

    ..

    2011.09.04 09:02
  8. Favicon of http://13921.eastendtalking.com/nikefree.php BlogIcon nike free  수정/삭제  댓글쓰기

    귀를 기울여봐 가슴이 뛰는 소리가 들리면 네가 사랑하는 그 사람 널 사랑하고 있는거야.

    2013.07.11 04:36

초창기 도장 운영에 관한 이야기가 시작되자 그는 흥분했다. 인터뷰 내내 흥분을 감추지 않았다. 힘겨운 미국 정착시절과 도장을 개관하기에 이르기까지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서 말이다. 흑인 빈민가에서 시작한 태권도장 운영은 쉽지 않았다. 어느 정도 예견은 했었다.

가장 큰 문제는 태권도에 대한 인지도와 관심 부족이었다. 당시만 해도 미국인들 대부분은 ‘태권도’란 무술 자체를 모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반면 ‘가라테(공수도)’라고 하면 고개를 끄덕일 정도로 알고 있었다. 가라테는 태권도보다 훨씬 앞서 미국과 유럽 등지에 보급이 되었다.

[정우진 회장이 1973년 아이오아주 씨더래피즈에서 처음으로 개관한 정스태권도장의 전경이다.]

그는 “도장 문을 연지 얼마 되지 않아 여러 사람들이 도장에 들어왔다. 반가운 마음에 달려 나갔는데, 오늘의 점심 스페셜은 무엇이냐고 하더라. 내가 무슨 말은 하느냐고 반문했더니, 그들은 중국음식점이 아니냐고 했다”면서 초창기 태권도장에 관한 해프닝을 들려주었다.

정우진 회장은 결심했다. 도장을 살리기 위해서였다. 울며 겨자 먹기로 간판에 ‘가라테’라는 말을 같이 사용하기로 한 것이다. 그러나 제자들 앞에서까지 태권도와 가라테가 혼동되도록 할 수는 없었다. 비록 가라테의 명칭을 빌려 관원을 모집했지만 태권도의 정신을 알리고자 했다. 그래서 “태권도는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드는 힘이 있으며, 자신에 대한 정신적인 도전이다”고 강조했다.

정우진 회장의 초창기 도장운영은 말 그대로 ‘태권도장’이 아니었다. ‘코리안 스타일 가라테 도장’이었다. 실제 80년대 만 해도 외국에서 태권도에 대한 인지도는 매우 낮았다. 지금도 유럽과 중동 등에서는 태권도가 가라테에 비해 보급률이 적은 편이다. 정 회장을 비롯한 당시 해외 곳곳에 태권도를 보급한 한인 사범들이 있어 지금의 태권도가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 회장은 가라테가 아닌 태권도를 미국에 알리기 위해 매일같이 미국인들을 상대로 이마로 벽돌을 격파하고, 발차기를 보여주며 태권도를 알렸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 태권도를 배우기 위해 도장에 방문자가 점차 늘어났다. 

정우진 회장 사무실 벽면에는 정스태권도장의 역사가 한 곳에 정리되어 있다.

또 하나. 미국이라고 텃세가 없는 게 아니다. 우리나라도 타 지역에 가면 텃세가 있다. 미국인들 없겠는가. 흑인들로부터 작은 키의 동양인이 ‘희한한 무술’을 한다는 소문이 주변 동네까지 일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부터 정 회장은 동네 깡패들에게 표적이 되어 있었다. 당시만 해도 폭력과 범죄가 난무하는 흑인 빈민가였던 까닭에 도장개관 1년여 동안은 그들과의 힘겨루기가 반복되었다.

그가 가장 아끼는 도복과 띠. 낡았지만 태권도의 혼이 느껴진다.

이러한 과정은 정 회장 뿐만 아니라 초창기 태권도를 전파하기 위해 해외에 진출한 한인사범들이라면 모두가 겪었던 고충 중 하나다. 그래서 지금 태권도 인들은 초창기 해외 파견 한인사범들의 노고를 잊어서는 안 된다. 그들의 노고가 있었기 때문에 태권도가 세계화 될 수 있었고, 올림픽에 정식종목에 채택될 수 있었다.


무도로서의 태권도가 미국인들을 바꿨다. 태권도라는 이름조차 들어본 적이 없는 미국인들을 대상으로 시작한 태권도장. 사실 이때까지만 해도 정 회장은 앞날에 대해 확신이 서지 않았다고 뒤늦게 털어놓았다. 그래도 확실한 믿음이 있었다. 바로 태권도가 고유한 무도로서의 정신적인 가치가 높다고 생각했었기 때문이다.

그것이 결국 미국인들을 바꾸기 시작했고, 오늘날 태권도가 미국에서 타 무술에 비해 가장 높은 인기를 갖게 한 이유일지도 모른다. 그는 “도장의 문을 열고 첫 제자를 맞이한 순간부터 태권도의 정신적인 면과 무도적인 측면을 누누이 강조하고 실천했다”고 말했다. 

태권도 가치를 깨닫는 미국인들이 늘어나면서 그의 도장은 자연스럽게 정신적인 수련장으로 변해갔다. 동시에 수련생도 급격하게 늘어났다. 그의 제자들 중에는 비교적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몸과 마음이 다 망가진 소외 계층도 많았다. 또 신체적으로 건강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선천적 후천적 장애를 가진 사람들도 많았다. 그러나 그에게는 남녀노소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그들은 태권도를 통해 인연의 끈을 맺은 소중한 제자들이었다.

제자를 안고 있는 정우진 회장

이런 제자들을 보며 그는 “무도 태권도를 통해 자신이 갖고 있던 문제점을 훌훌 털어버리는 여러 제자들을 보면서 나는 오히려 그들에게 참으로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내가 무도인의 한 사람이라는 사실이 너무도 감사했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국내외 여러 태권도인들을 만나 보았다. 그 중 정우진 회장은 그 누구보다 태권도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었다. 눈을 뜨는 순간부터 잠에 들 때까지 오직 태권도 생각 뿐이다. 그래서 많은 태권도인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다. 태권도를 통해 얻은 것은 다시 태권도에 환원하겠다던 그다. 이를 위해 그는 소외된 곳을 찾아 뜻을 같이 하는 태권도사범들과 자선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2009/05/22 - [한혜진의 태권도 세상/태권도人 무술人] - [태권도人] 태권도로 아메리칸 드림을 이룬 작은거인 정우진 (상)


* 본 내용 중에 일부는 무술전문미디어 무카스미디어(www.mookas.com)에 게재 되었음을 알립니다.

정우진 회장은? 1943년 경상북도 울주군 청량면 개곡리에서 출생, 한양공대 기계과를 졸업하고 1971년 미국 이민. 아이오와 주 시더래프즈에 정착해 현재까지 거주하면서 한평생 태권도를 위해 몸을 바치고 있다. 1년 동안의 주유소 펌프맨 생활을 거쳐 1973년 흑인 빈민가에 처음으로 태권도장을 열었으며, 97년에는 뉴 라이프 피트니스 월드를 설립하여 동양인 이민자로서는 이례적으로 헬스클럽 사업에 진출하였다. 이후 미국 중남부전역으로 사업을 확장, 현재 8개 클럽에 2만여명의 회원을 확보하고 있다. 2002년부터 본격적으로 중국에 진출, 베이징에 설립되는 첫 헬스컬럽을 비롯하여 중국 내에 총 12개 클럽 오픈을 계획하고 있다. 이 밖에 Mountain Top Co.을 통해 백화점 및 오피스 빌딩 임대사업에도 참여하고 있다. 특히 태권도의 해외 보급하업에 관심을 기울여, 세계 120개국에 영문 태권도 잡지인 ‘태권도타임즈’의 회장을 맡고 있으며, 미국 콜로라도 주에 태권도연구소를 설립하였다.

저서로서는 1998년 ‘Free Style Sparring와 2002년 ‘세계가 우리를 기다린다’ 등 2편이 있다.

[By 한혜진의 태권도 세상 이야기]

[태권도와 마샬아츠의 오아시스 - 태마시스 -  l www.taema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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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주짖수  수정/삭제  댓글쓰기

    원래 태권도는 가라데에서 나온것을 다 아는사실 아닌가요 ?

    2009.05.30 21:08
    • 태권브이  수정/삭제

      "원래 한국 불고기가 일본 야끼니꾸에서 나온 거 다 아는 사실 아닌가요?"와 같이 어처구니 없는 말씀이군요.

      설마 불고기가 일제시대에 일본에 건너가 오늘날의 야끼니꾸가 된 것도 모르시는 건 아니겠죠.

      일본인들은 카라데가 중국에서 오키나와로 건너온 중국 무술이라고 주장합니다만, 신라시대의 무술과 태껸, 수박치기 등 한국 고대무술이 현대의 카라데의 원형이 되었다는 것이 정설입니다.

      불고기가 일본에 건너가 야끼니꾸가 된 것처럼 말이죠.

      이것은 한국적 국수주의나 민족주의적 자존심과는 상관없이 그냥 있는 사실일 뿐입니다.

      잘못된 상식을 사실인 것처럼 말씀하시면 안되겠기에 말씀드립니다.

      2009.05.31 01:19
  2. ...........  수정/삭제  댓글쓰기

    원래 태권도가 가라데에 파생된 무술인데 무슨 코리안 스타일 가라데가 되었던 사연이란 겁니까.. 나참 황당해서..
    신동아에서도 다 까발라진건데...
    어찌 되었든 태권도는 가라데에서 파생된 무술입니다.
    그 근거로 태권도 초기 사범들이 전부 가라데 사범이라는 거...
    그리고 가라데는 중국에서 건너온거 맞습니다. 중국의 남권이던가.. 중국 남쪽 지역의 무술의 영향을 받아 오키나와에서 발전된 거지요.

    2009.05.31 01:45
  3. 말도안됨  수정/삭제  댓글쓰기

    수박치기라는 원형이 있기나 한가..마구 갖다부치지 마시져..
    택견이랑 태권도가 전래되어서 그렇다고? 택견을 한번이라도 해보고 그런소리하십니까?
    그냥 인정할껀 하고 앞으로 태권도의 역사를 써야지 본류가 어디인들 뭔 상관인가..태권도가 우리 고유무술이라는 건 집어져야한다.
    환상을 개야 발전이 있을뿐이다..

    2009.05.31 01:54
  4. ....  수정/삭제  댓글쓰기

    태권도가 일제 시대 가라데를 했던 분들이 해방 후 이름을 바꾸고 뭔가 약간 수정해서 비롯되었다는 것은 모두가 다 아는 주지의 사실입니다. 그분들은 순수한 무도인들이었다는 것을 믿고 싶습니다. 그 이후에 위 글의 주인공과 같은 수많은 사범들이 해외로 진출하여 태권도를 알리고 동시에 한국을 알린 공적은 높이 평가되어야 마땅합니다.

    2009.05.31 08:54
  5. 태권도뿌리는..  수정/삭제  댓글쓰기

    태권브이 미친놈.. 난 70년초에 청도관에서 팔괘형으로 태권도를 배우기시작했지만 성인반선배들은 철기,내보진등 가라데품세를 했어.. 청도관 만든 노병직님이 일본에 가라데를 전파한, 후나고시선생에게 직접 배웠다구.. 후나고시의 송도관가라데가 한국 태권도의 뿌리야, 한국에 토착화되고 몇십년의 시간이 흘렀으니 전통무술이라고 해도되는 것이지

    2009.06.01 17:22
  6. 태권도뿌리는..  수정/삭제  댓글쓰기

    후나고시기찐이 오끼나와(유구)사람이고 일본에 정착시키려 온 과정에서 한국인이 배워온 것이니 일본이 아닌 오끼나와에서 직접 배운 것이나 다름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습니다..오키나와에 데(手)라는 전통무술이 있었지만 낱기술위주였고, 오키나와를 방문한 중국사신의 일행중 공산군이란 사람이 품세를 가르쳐줌으로서 가라데(唐手)가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가라데 최초의 품세가 "공산군"입니다. 이 품세는 중국북파무술에 해당됩니다. 그후 오키나와사람들이 복건성에 들어가 중국남권을 배우고 와서 가라데의 범위를 넓혔습니다.복건성의 대표무술 백학권의 품세 '삼전'은 가라데의 대표적인 품세이기도 합니다.

    2009.06.01 17:35
  7. 태권도뿌리는..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게 진실이니 데(手)의 원형이 조선무술이라는 주장이 생겼습니다. 조선초에 오키나와와 교류를 했다는 기록이 있고 홍길동이 세웠다는 율도국이 오키나와 남쪽의 저항세력으로 상당기간 존속했다는 것도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홍가라(洪家王)세력은 극히 일부였기 때문에 귀족들의 압제를 받는 민초들을 부축여 민란을 만들어냈다고 합니다.그러기위해 철저히 오키나와민중들과 하나가 되기위해 언어,복식등을 받아들였구요. 축성이나 민간풍습에 조선식은 남아있지만 무술이 있었다는 흔적은 없습니다.

    2009.06.01 17:46
  8. 행인  수정/삭제  댓글쓰기

    태권도의 역사적 진실을 규명해야할 논의가 계속되어야 한다. 태권도학과 교수와 학생들도 뿌리를 찾기 위한 탐구가 계속되야 한다. 내일 내일 할때가 아니다. 지금 당장 시작해야 5년 후에 올바른 역사가 정립될 것이라 믿는다.

    2009.06.02 06:01

[박성진 기자의 태권도와 타무도] 제7편 태극권    

‘쿵푸(功夫)’ 또는 ‘쿵후’라는 이름으로 모든 중국무술이 통칭되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던 것이 90년대를 지나면서 ‘우슈(武術)’라는 이름으로 대체되기 시작했고, 이제는 ‘쿵푸’ 보다는 ‘우슈’라는 말이 중국무술을 대표하는 말이 되었다. 우슈는 ‘무술’이라는 한자어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모든 무술을 포함하는 광의의 개념이다. 우슈에는 검(劍), 창(槍), 도(刀), 봉(棒) 등의 무기술과 소림권, 태극권, 팔괘장 등의 수 많은 개별 무술들이 포함되어 있다.  

가장 많은 무술의 종류가 있는 곳은 역시 중국이다. 땅이 넓고, 사람이 많으니 당연한 것일지 모르겠다. 이 수 많은 중국의 무술 중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무술로는 소림권과 태극권을 꼽을 수 있다. 그 중에서도 대중적으로 성공한 무술을 꼽자면 단연 태극권이다. 실질적인 수련인구만을 놓고 본다면 전세계에서 가장 많은 수련인구를 가지고 있다고 자부하는 무술도 바로 태극권이다. 

태극권은 그 기원에 대해서 송(宋)나라 말기(13세기) 때 사람인 장삼봉(張三奉)이 창시했다는 설과 명말청초(明末淸初, 17세기)에 허난성(河南省)에 거주했던 진(陳)씨 가문의 일족인 진왕정(陳王廷)에 의해 창시되었다는 설 등으로 나뉘어져있다. 

모든 무술이 그러하듯이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져서 생긴 무술은 없다는 점에서 태극권은 ‘중국무술의 전통에서 발전한 하나의 스타일’ 정도로 이해하면 무난할 듯 싶다. 중요한 것은 현재 전세계적으로 많은 수련인구를 가지고 있고, 특히 21세기 현대 무술의 지향점으로도 여겨지는 ‘건강’, ‘양생(養生)’의 관점에서 볼 때 가장 모범적인 무술로 평가받고 있다는 점이다. 

▲ 많은 사람들이 태극권을 시연하고 있다.

태극권은 스타일의 면에서 볼 때 진식(陳式)을 원류로 해서 양식(楊式), 오식(吳式), 손식(孫式), 무식(武式) 등의 여러 유파가 있지만, 빠르고 강한 스타일인 진식과 느리고 부드러운 스타일인 양식으로 나누어 이해할 수 있다. 중국정부에서 태극권의 가치를 평가하여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배울 수 있도록 만들어 보급한 ‘간화(簡化) 24식 태극권’은 양식이라고 할 수 있다. 국가에서 나서서 보급했다는 점에서는 태권도에 비견되는 중국의 ‘국기(國技)’라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 태극권이 가지는 가치는 서양에서도 높이 평가되고 있다. 그 중에서도 호주의 한 의사가 정리하여 보급한 ‘관절염 태극권’은 관절염 환자들과 노인들에게 태극권이 매우 좋은 효과가 있다는 증거로도 제시되고 있다.

태극권은 육체적인 건강에도 도움이 되지만 특히 정신 건강에도 좋은 면을 가지고 있다. 실제로 태극권을 수련해보면 마음이 차분해지고 명상을 하는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그래서 태극권은 ‘움직이는 선(禪, Moving Zen)’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린다. 모든 태극권이 그러한 것은 아니지만, 몸 전체의 긴장을 풀고 이완시킨다는 점에서 항상 상대와의 대결을 염두에 두고 몸과 마음을 긴장시키는 다른 무술들과 태극권의 큰 차이가 드러나는 부분이기도 하다. 

Olympics Previews Day -7

태권도만의 문제는 아니지만, 중장년 이상과 노년층의 무술수련을 이야기할 때 무술 수련이 수련의 어려움과 부상의 위험 등으로 권장 받지 못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관절염이 있는 70대 노인에게 태권도를 권하는 의사를 찾기는 어렵지만, 태극권을 권하는 의사는 있다는 것이다.

태권도가 평생무술로서 노년층 수련인구의 확대를 기대한다면, 태극권을 롤모델로 적극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태극권도 처음부터 부드럽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진식태극권은 말할 것도 없고, 양식태극권도 무술인 만큼 무술로서의 원리가 동작 하나하나에 다 담겨 있다. 다만 그 진행을 느리고 부드럽게 할 뿐이다. 한없이 부드러운 태권도가 나올 수도 있다. 그것도 역시 태권도인 것이다.

[by 박성진의 무림통신 -  태권도와 타무도]

[태권도와 마샬아츠의 오아시스 - 태마시스 -  l www.taema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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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한없이 느린 태권도라...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 잘 봤습니다 ^^. 제가 은근히 민족주의같은게 있어서 무술도 '우리나라꺼' 아니면 조금 꺼려하는데요.. 몸이 안좋아서 태극권에 관심을 가지고 있기야 하지만, 느린 태권도라.. 어릴 때 태권도를 1~2년 하면서 태극, 고려 등등의 품새가 '빠른 것도 아닌것, 힘이 느껴지는것도 아닌것이' 밍숭맹숭하게 느껴질 때가 있었어요. 태극권의 요결인 허령정경이라든지, 함흉발배. 이런것들은 태권도에서도 말을 안해서 그렇지 '바른 자세'로 이야기 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시간되면 배워서 천천히 해봐야겠네요 ^^ 태극 1장이라두요 ㅎㅎ

    2009.05.27 12:39
    • Favicon of https://taemasis.com BlogIcon 해니(haeny)  수정/삭제

      네~ 건강을 위해서 태권도든 태극권이든 운동 하시는게 좋을 것 같네요. 태권도 품새는 실력이 어느 정도 이상이 되면 빠르게 느리게 강하게 등 다양하게 수련할 수 있습니다. 더불어 다양한 운동 효과를 볼 수 있겠죠? 다음에 무술을 수련하시게 되면, 이곳에 글 남겨주세요. ^^

      2009.05.29 05:33 신고
  2. 짝퉁도사  수정/삭제  댓글쓰기

    태극권은 진왕정이 황정경(도가내단서)를 권법에 구현한 것입니다. 진소왕(진가태극권장문인)노사말씀에도 방송을 하는 이유는 단전을 활성화시키기위해섭니다. 무가(특히 학가)의 투로(품세)는 철저히 소주천(임독맥순환)을 위해 구성되어있습니다. 태극권을 동선이라고 하면 싫어합니다. 태극권은 도교철학에 가깝습니다. 불교과 같은 성명쌍수라도 불교는 性,도교는 命功이 중심입니다. 돈오가 중심이 아니라 점수가 중심입니다. 마음이 아닌 몸으로 깨우치는 것입니다. 몸이 건강해야 마음이 건강해지는 것입니다.천천히한다고 태권도가 태극권이 될 수는 없습니다.

    2009.06.01 16:50
  3. Favicon of https://somupa.tistory.com BlogIcon 교수a  수정/삭제  댓글쓰기

    태극권처럼 느리게 연무하는 태권도 영상도 언젠가 한번 본 기억이 나네요.
    글 잘 읽고 갑니다. 언제나 부상 없이 즐거운 운동 되시기 바랍니다.^^

    2009.10.22 21:43 신고
  4. Favicon of http://www.bkinf.com/ BlogIcon シャネルコピー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용약관위배로 관리자 삭제된 댓글입니다.

    2014.11.06 14:09

가라테를 수련하던 아이들이 날 찾아왔다. 내게 태권도를 배우고 싶다며 말이다. 태권도 사범으로서 반가운 손님이 아닐 수 없다. 게다가 그들을 지도하던 가라테 사범도 제자들과 함께 태권도로 전향하겠다고 했다.


이집트에는 현재 태권도의 인기가 지속적으로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가라테와 비교해서는 수련인구는 절반 밖에 되지 않는다. 특히 지방의 경우에는 가라테 수련생이 절대적으로 많다. 이런 가운데 가라테 수련생들이 태권도를 전향하는 사례가 매우 높다.

처음 태권도를 배우고자 날 찾아온 아이들에게 태권도에 대해 충분히 설명했다. 또한 태권도의 기본 예절과 용어를 가르쳤다. 첫 수련을 마친 아이들은 하나같이 밝은 표정이었다. 웬만하면 수련생의 눈치를 보지 않지만, 이렇게 타 무도를 수련하던 아이들이 오면 조금은 긴장이 되는게 사실이다.

[태권도를 처음 배우는 수련생들에게 태권도의 기본 예절과 정신을 지도하고 있다.]

아스완에는 현재 약 250여 명이 태권도를 수련한다. 가라테는 2천 여 명이 넘는다. 10배에 가까운 수치이다. 그래서 나는 내년 중순까지 아스완 태권도 수련인구를 적어도 1천명 이상으로 끌어올릴 계획이다.

[by 한혜진의 태권도 세상이야기 - 이집트 in 태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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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멋지세요!!  수정/삭제  댓글쓰기

    먼나라 타국땅에서 태권도를 전파하시는데 앞장서시는 모습이 정말 자랑스럽습니다!!
    꼭 태권도의 정신을 이집트 국민 모두에게 알려주세요~!

    2009.05.24 10:16
    • Favicon of https://taemasis.com BlogIcon 해니(haeny)  수정/삭제

      과찬 이십니다. 님의 격려에 더욱 힘을 내서 열심히 활동하도록 하겠습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2009.05.24 12:57 신고
  2. 감사합니다.  수정/삭제  댓글쓰기

    애국을 하는 일이 쉬운 일이 아닌데.. 좋은일을 하시니 제 마음역시 뿌듯합니다. 아름다운 모습 많이 전해주시길 바랍니다.

    2009.05.24 14:54
    • Favicon of https://taemasis.com BlogIcon 해니(haeny)  수정/삭제

      역시~ 과찬 이십니다. 남들 하는거 흉내낼 뿐입니다. 그래도 이렇게 격려를 해주시니, 큰 힘이 나는건 어쩔 수 없네요. ^^ 어깨도 으쓱거려지구요. ㅎㅎ 더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2009.05.24 16:54 신고
  3. 나비렌즈  수정/삭제  댓글쓰기

    수고가 많으십니다. 참 의미 있는 일을 하고 계시네요.. 중간중간 좋은 소식 많이 부탁드립니다..
    오늘은 슬픈 날인데, 태마시스님 글 보고 많이 좋아졌습니다. 건강 꼭 챙기시기 바랍니다.

    2009.05.24 17:16
    • Favicon of https://taemasis.com BlogIcon 해니(haeny)  수정/삭제

      사실 큰 생각 없이 올린 글인데 이렇게 높게 평가해 주시니 몸들바를 모르겠습니다. 앞으로 보다 더 신중하게 포스팅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네요. 앞으로도 계속해서 좋은 글 전하도록 노려겠습니다. 즐거운 하루 되세요.

      2009.05.29 05:01 신고
  4. ㅇㅅㅇ  수정/삭제  댓글쓰기

    설마하니 태권도를 삼국시대 어쩌고 하면서 소개하진 않으리라 믿고 싶습니다. 어차피 그 뿌리가 같은 무술인데 말이지요.

    2009.05.24 18:01
  5. 태권소녀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국생활이 고생스럽겠지만 지금 하시는 일이 큰 보람이 될거예요. 특히 님의 글에서 타문화에 대한 열린 마음이 느껴져서 좋습니다. 저는 독일에 유학온 후 태권도를 시작했어요. 대학 태권도부라 사범님도 같은 대학생인데 무슬림이예요. 태권도부에 유독 무슬림학생들이 많은 것이 신기해요. 평소에도 말이나 행동이 절도 있고 한국사람처럼 항상 허리굽혀서 인사하고 말이죠. 그랜드마스터는 한국분이라는데 정말 존경받는 듯해요. 님도 이집트에서 가장 존경받는 그랜드마스터가 되시기를 바래요. 그리고 재미있는 글 계속해서 올려주세요~~~

    2009.05.26 01:02
    • Favicon of https://taemasis.com BlogIcon 해니(haeny)  수정/삭제

      이국에서 태권도를 배우시나봐요? 그것도 특별한 경험이 될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한국 문화에 대한 소중함도 느끼실 수 있을 것 같구요. 저도 가끔은 힘들때가 있지만 수련생의 변화를 느꼈을 때 큰 보람을 얻는답니다. 타문화에 대한 이해와 존중은 아직까지 겉으론 하고는 있으나, 실제 속으론 이해 못하는 부분이 많은 것 같아요. 그래도 현지에 관습과 문화인 만큼 이방인이 맞추는게 당연하다고 보고 따를 뿐입니다. 님의 격로로 오늘 하루 기분이 좋아졌네요. 더욱 열심히 활동해야 하겠다는 생각도 하게되고요. 재미는 없겠지만, 이곳에 대한 생활을 계속 올리겠습니다. 관심있게 지켜봐주시길 바랍니다. - 한혜진

      2009.05.29 04:59 신고

[박성진 기자의 태권도 vs 타무도] 제6편 대동류 합기유술

대동류 합기유술(大東流 合氣柔術, 다이토류 아이키주즈츠)은 한국의 합기도와 일본 아이키도의 뿌리가 된 무술로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대중적인 관심을 모으게 됐다. 

[대동류 합기유술의 시연 모습. 시연자는 대동류 육방회의 오카모토 세이고.]


대동류 합기유술의 중흥조(中興祖)라 불리는 다케다 소가쿠(武田忽角, 1860∼1943)가 한국 합기도의 시조 최용술, 일본 아이키도의 창시자 우에시바 모리헤이(植芝盛平)의 스승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에시바가 다케다의 제자라는 점은 의심의 여지가 전혀 없지만, 최용술이 다케다의 제자였다는 점은 논쟁거리로 남아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합기도계 주류에서는 최용술이 다케다 소가쿠의 제자라는 점을 전혀 의심하지 않고 있다. 그 이유는 한국 합기도계의 합기도 역사에 대한 이해와 관련이 있다.

일반적으로 한국 합기도계에서는 합기도의 역사에 대해, “원래 신라(新羅)의 무술이었던 합기도가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 다케다(武田) 가문을 통해 이어지다가 다케다 소가쿠에 이르러 최용술에게 전해지고 이것이 다시 한국으로 넘어와 발전하게 되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즉 대동류 합기유술은 다케다 가문에만 비밀스럽게 전해지던 가전(家傳) 무술인데, 다케다 가문의 조상이 사실은 신라 도래인(渡來人)이라는 것이다.
 
다케다 가문은 일본의 명문가로 일본 전국시대의 무장 다케다 신겐(武田信玄)이 바로 이 가문 출신이다. ‘풍림화산(風林火山)’이라는 문구로도 유명한 다케다 신겐은 일본영화의 거장 구로사와 아키라(黑澤明)의 걸작 <카게무샤(影武者)>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다케다 가문의 뿌리가 신라 도래인이라는 주장에 전혀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닌데, 그 근거로 제시되는 사람이 다케다 가문의 조상의 한사람으로 헤이안(平安) 시대에 살았던 실존인물 신라사부로 미나모토 요시미츠(新羅三郞源義光, 1045~ 1127)다.
 
신라사부로 미나모토 요시미츠는 대동류 합기유술의 실질적인 창시자로 여겨지는 인물이기도 하다.요시미츠의 성 앞에 ‘신라삼랑’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유는 요시미츠가 신사(神社)에서 성인식을 치를 때 신라명신(新羅明神) 앞에서 했기 때문이고 삼랑은 세 번째 아들이기 때문에 붙었다는 것이다.

이 때 신라명신이 신라의 장보고(張保皐)이고 따라서 대동류 합기유술과 신라의 관계가 깊다는 주장은 최근 한 연구[송일훈, '대동류유술의 장보고(신라명신) 기원에 관한 연구]를 통해 학문적으로도 제기된 바 있다. 이에 앞서 소설가 최인호도 자신의 소설 <해신(海神)> 등을 통해 신라명신이 장보고라는 의견을 펼친 바 있다.
[사진 -  대동류 합기유술의 달인 다케다 소가쿠]

이러한 주장이 아직 명확하게 밝혀진 것은 아니지만, 한반도를 통해 많은 사람들과 많은 문화가 일본으로 건너갔다는 것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하는 분명한 사실인 만큼 신라명신, 장보고, 신라사부로 미나모토 요시미츠, 대동류 합기유술이 관계가 있을 것이라는 주장은 설득력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한 가지 지적할 것은 이 모든 것이 실제로 연관이 있다고 밝혀지더라도, 대동류 합기유술은 분명한 일본의 무술이라는 점이다. 대동류 합기유술이 신라에서 건너갔으므로 한국의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일본의 문자 히라가나가 한자 초서체에서 변형된 것이므로 중국의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과 같다. 대동류 합기유술은 1천년 이상 일본에서 발전해온 무술이므로 일본의 고유한 무술이자 문화로 이해하는 것이 옳다.

대동류 합기유술은 이러한 한국과의 특별한 관계로도 주목받고 있지만, 이 무술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아이키(合氣)’라는 개념으로도 유명하다. 이 ‘아이키’라는 것은 중국 무술에서 말하는 ‘발경(發勁)’과 비견되는 것으로 ‘말로는 설명되지 않는 신비한 힘’으로 이해되고 있다. ‘아이키’의 경지는 대동류 합기유술을 수려한 제자들 중에서도 극히 일부만이 도달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기자는 ‘아이키’를 시연하는 유명한 고수의 모습이 담긴 동영상을 본 적이 있는데, 고수가 아이키를 시연하자, 상대방은 마치 감전이라도 된 것처럼 꼼짝도 못하고 고꾸라지는 모습을 보였다. 손만 대고 사람을 날린다는 바로 그 경지였다. 직접 잡아보지 않고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모습이었다.

이 아이키의 실체는 발경과 마찬가지로 무술계의 지대한 관심사의 하나이기도 하다. 한국과의 역사적 관계, ‘아이키’ 등으로 대동류 합기유술에 대한 관심은 국내에서도 높아져가고 있다.


[by 박성진 기자의 무림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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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나그네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냥 지나가다 과거에 합기유술을 접했던 사람으로써 한마디 하자면..

    본문에 " 최용술이 다케다의 제자였다는 점은 논쟁거리로 남아있다."
    -> 한국사람들이 이를 주장하는 이유는 역사에서가 아닙니다.
    한국의 합기유술인들이 그렇게 주장하는 이유는 직접 무술 시연을 보시면 아시겠습니다.
    일본의 한 가문에만 비밀리에 전해오던 무술이 전혀 한국에서 전승되고 있다는건 제자가 아니면 할 수 없는거겠죠. 그리고 일반 태권도나 타격기와 달리 합기유술은 일대일의 지도수련이 아니면 익힐 수 없는 기술들이 대부분입니다. 그리고 기술들이 제대로 나오기까지 몇십년 이상을 꾸준히 수련해야만 합니다. 이게 정통 합기도인 합기유술이 널리 퍼지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고요.
    부드러움을 강조하는 아이키도(일본식 발음 합기도)와 달리 합기유술은 어떤 면에서는 잔인할 정도로 살기성을 가지고 있는 기술이 많습니다. 뛰어난 실전성과 강함에도 불구하고 대동류합기유술이 생각만큼 널리 퍼지지 못한 것처럼, 한국에서의 합기유술(최용술 도주가 세운건 원래는 합기도였으나 합기도가 변질되어 퍼져버린 후 그 제자들이 본 기술을 합기유술이라고 개명함)도 그 기술의 난이도가 높고, 그 수련 기간이 매우 길어 많이 한국에서도 퍼지지 못하였씁니다.

    2009.05.23 17:52
  2. 나도 지나가다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소시적에 여러가지 무술을 두루 수련한 사람인데요...

    아이키도나 대동류 합기유술이나 근본은 동일하구요...

    아이키도가 합기유술에 비해 부드러운건 시대상을 반영하기 때문이죠...

    태권도가 발차기 위주로 스포츠화 되면서 가라데보다 연성이 되었듯이 아이키도나 유도 모두 당대에는 살인기술이었습니다...

    유도는 던지기나 조르기 기술등으로 특화 되었고...

    아이키도는 관절기 중심으로 특화되었죠...

    사람들이 잘 모르는데 원래 고류 유도도 가라데와 유사한 타격기술이 있었습니다. 물론 아이키도 처럼 관절기도 있습니다.

    고류 무술을 처음 접해본 사람들은 그걸 잘 모르고 이상한 소리를 하게 되죠...

    그리고 최용술이 다케다의 제자란 근거는 아직도 문헌이나 사료에서 발견된 적이 없습니다.

    대동류 본가에도 그 어떤 기록도 없구요... 최선생님의 기술을 봐도 대동류 합기유술 본가에서 계승되고 전해내려오는 것과 틀린점도 많았습니다. 게다가 선생의 증언과 대동류 본가의 일이 일치하지 않는점도 많구요.

    양자로 입적되었다고 했다가 기록이 없으니 그건 취소고 동에 번쩍 서에 번쩍 관동대지진때 사람을 구하고... 뭐 거의 김일성 신화와 가깝더군요...

    최용술 신화를 주장하시는분들 보면 태권도의 뿌리가 쇼토칸 가라데였다는것을 아직도 부정하시는분들이 생각나더군요...

    태마시스님 말씀처럼 신라의 무술을 받아들여 1천년간 개량하면 일본의 무술이 되는것입니다. 가라데가 단 100년만에 독자적인 무술인 태권도로 바뀌었듯이... 합기도도 한국고유의 무술로 발전시키면 되는것이죠.

    문제는 최용술 선생과 그 1세대 제자들이 수련하는 원류에 가까운 놀라운 관절기는 현재 난립한 합기도 도장에서는 볼수 없다는것입니다.

    지금 현재 합기도 도장을 보면 이것도 저것도 아닌 상황입니다. 이건 뭐 관절기를 하는지 타격기를 하는지...

    타격기를 접목시킨걸로 봐서는 고류에 더 가까운 무술로서의 가치를 높이겠다는 시도였던걸로 보이는데 합기도는 이것도 저것도 아닌 상황이 되어 버린것 같아요...

    왜냐면 관절기도 제대로 수련이 안된 사범들이 제대로 배워본적도 없는 어슬픈 타격기까지 짬뽕을 시켰으니 죽도 밥도 아닌것이 된것이죠...

    개인적으로 제일 재미없었던 수련이 한국 합기도 수련이었습니다.

    언젠가 나이가 들면 아이기도를 한번 배워 보고 싶네요...

    아마 나이들어 멋지게(?) 건강미를 보여줄수 있는 무술은 아이기도가 가장 좋은것 같아요...

    2009.05.24 01:07
  3. 짝퉁도사  수정/삭제  댓글쓰기

    최용술옹은 다케다가 여러 사람앞에서 시범을 할때 기술을 당하는 역을 했다고 합니다. 조선인이라 정식제자는 아니지만 사실 당하는 역활이 오히려 배우는 바는 더 큽니다..일본대동류류의 제자가 용술관(최용술옹의 기술이 남아있는 곳)을 찾아와 대동류의 기술임을 확인했다더군요.(그 역시 대동류역사에는 최용술이란 이름은 없다고 했습니다만) 아이키(합기)는 태극권에서 중시하는 "인진낙공합즉출"과 거진 동일한 원리입니다.태극권의 핵심도 合입니다. 합을 한후에 타격을 하는 유권술입니다. 역시 태극권의 인진낙공합죽출이 완전히 되는 사람은 극히 소수입니다.

    2009.06.01 16:39

 
<무카스뉴스 = 중국 정저우 / 한혜진 기자> (2007-05-17) ㅣ 추천수:2 ㅣ 인쇄수:0

쿵푸의 본산 중국 소림사 현장 -첫 번째-

무술하면 떠오르는 곳. 대부분 사람들이 중국 소림사(少林寺)를 꼽는다. 그만큼 소림사는 유구한 세월동안 수많은 무술인을 배출한 곳이다. <무카스뉴스>는 무술의 고장 소림사를 방문, 소림사에서 직접 운영하고 있는 탑구무술학교 수련생들의 모습을 화보로 담아 보았다.


소림사에서 직접 운영하는 소림무술학교(탑구학교) 전경.




소림무술학교 수련생들이 훈련을 마치고 기숙사로 이동 중이다.




훈련을 마치고 기숙사로 이동 중인 소림무술학교 수련생들




소림무술학교 수련생들 모습







청소도구를 챙겨 선배들을 뒤따라가는 막둥이 수련생




훈련이 힘들었는지 표정들이 좋지 않다.




무거운 물통을 들고 이동 중인 수련생




매트를 짊어지고 이동중인 수련생들. 표정들이 좋지 않다.




큰 모래 주머니를 지고 훈련장소로 이동 중이다.




<출처 - ⓒ무카스뉴스 /
http://www.mookas.com>


[한혜진의 태권도 세상 이야기 ㅣ www.ilovetkd.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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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www.hermestopsale.com BlogIcon hermes bags  수정/삭제  댓글쓰기

    여러분의 좋은 소식입니다. 필자 전에 물건을 읽고 당신은 너무 멋져요.

    2013.06.04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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